일본풍 판타지 우울계 야겜의 무명 전투원으로 전생했는데 내 주위에 있는 여자가 위험한 녀석들뿐이라 불안한 예감만 든다.
제1장 튜토리얼조차 시작하지 않았는데 망한 것 같다.
3화
『암야의 반딧불』의 메인 히로인 중 한 명인 오니츠키 아오이는 오니츠키 가문의 직계 차녀이자 원작 스타트 시점에선 16살로 설정된 미소녀이다. 퍼서널 컬러는 분홍색 혹은 연분홍색이며, 머리카락 색도 눈동자 색도 농담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퍼서널 컬러에 준한 색을 하고 있었다. 뭔가 졸려 보이는,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한 눈매를 하고 있으며, 호리호리한 언니 오니즈키 히나와 달리 육감적인 몸매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벗으면 누님보다도 훨씬 풍만하다. 서비스씬에서 수많은 팬들의 주니어가 신세를 졌다.
이 캐릭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유아독존, 혹은 방약무인일까? 생긴 것과 달리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여 고집이 세고, 늘 자신감이 넘치며 독설가, 그리고 독선적이다……그리고 무엇보다도 괴물과 일대일로 싸우는 오니츠키 일족 중에서도 최고의 재능을 보유하고 있다. 그 탓에 노력도 하지 않으며, 노력을 하지 않은 주제에 무지막지한 능력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보단 진지하게 음양술이나 주술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물리공격밖에 못 하는데도 개념계『흉요(凶妖)』를 한방에 잡아버리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팬에게 받은 애칭은 핑크빛 힘캐 고릴라 공주님이다.
뭐, 그런 금수저 재능충인 탓에 노력하는 속물적인 일반인들에겐 흥미를 품지 않으며, 특출난 성격이나 우수한, 혹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이름조차 외우려고 하지 않는 성격파탄자이기도 하다. 게임에선 부농이라고 해도 농가 출신이지만 특수하고 강력한 이능을 각성한 주인공에게 흥미를 가지게 되고, 그렇게 교류를 쌓고(그녀의 막무가내를 들어주고), 위기를 극복하고, 그녀의 과거를 알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함으로서 히로인 플래그를 세울 수가 있다. 성인판 이벤트씬에선 육식 동물으로 변신을 해서 인정사정없이 쥐어짜기 때문에 마조 성벽을 가진 유저는 쌍수를 들고 좋아했다. 기승위로! 탐스런 과실이! 무진장 흔들렸다!
……뭐, 비하인드 프로필은 무겁고, 툭하면 얀데레로 변신을 해버리지만.
가족끼리 벌인 권력항쟁이 지랄맞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오니츠키가에 있어서 그녀는 무척이나 성가신 존재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족의 당주인데 정처와 정략 결혼을 하기 전에 놀랍게도 소작인의 딸과 눈이 맞아버린 것이다. 더불어, 누님은 눈이 맞아버린 소작인의 딸 사이에서 생긴 자식이기 때문에 누님과 그녀의 관계는 실은 이복자매이다. 누님의 늘씬한 도마판은 유년기의 영양상태의 차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명추리)
뭐, 그런 이유로 그녀는 부친에게 있어 기꺼운 자신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퇴마사 일족이기에 그녀 또한 강력한 영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응, 제대로 수행도 하지 않았는데 최상위 요괴를 물리력으로 죽일 수 있는 위험한 녀석을 부친이 방치할 리가 없지.
명목상은 실기 훈련, 진정한 목정은 분명히 그녀를 죽일 속셈이었을 것이다. 구태여 약해빠진 『소요(小妖)』밖에 없다고 거짓말을 치고, 그녀는 몇 명의 수행원만 데리고 부친의 명에 따라 요괴의 소굴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 세계가 18금 그로테스크씬도 사양 않는 우울계 게임이라는 것을 비추어보면 그 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라도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우선 호위와 수행원이 괴물에게 잡아먹혔다. 호위인 이상 전투 기능은 있었지만 수적 열세는 어쩔 수 없었고, 『대요(大妖)』가 여럿 있었던 시점에서 질적 측면에선 승패가 난 상태였다.
당시 약관 10세였던 그녀는 가장 오래 저항하였다. 어린 아이라고 하여도 오래 세월 실력자끼리 교배를 거듭한 퇴마사의 우량종이다. 요괴들을 잡히는 대로 잡아 죽이는 것을 반복하여 둥지에서 도망쳤다.
……뭐, 둥지에서 도망친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가 보낸 자객들의 손에 죽을 뻔하였고,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요괴들이 습격을 하여 자객을 잡아먹고, 그래도 어찌어찌 살았다 싶으면 18금 이벤트씬 돌입이었다. 로리 소녀가 추악한 괴물에 의해 처녀를 빼앗기고 전신 백탁액과 피투성이가 되는 꼴은 상당히 봐주기 힘들었다.
뭐, 썩어도 일족 최고의 재능을 보유한 그녀이기에, 삼일밤낮에 걸친 능욕 지옥을 버텨내고, 틈을 노려 요괴들의 손에서 벗어나는 데에 성공, 일족 중에서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파벌의 보호를 받아 구사 생을 얻어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래도 그런 경험으로 인하여 일족 차기 당주 최우선 유력 후보에서 한방에 탈락하게 되었다. 아니, 부친 입장에선 최악의 전개가 되어도 그게 목적이었던 것 같았다. 처녀신앙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니어도 퇴마사의 명문 당주가 요괴에게 범해진 여자라면 가문 체면이 서질 않으니 말이다.
“어라? 뭘 빤히 보고 있니? 설마 내 미모에 반한거니? 완전 발정기 토끼 같구나, 절조없긴.”
무릎을 굽히고, 원작 게임의 설정을 떠올리고 있자니 눈앞에서 장막을 올린 침대 위에서 두루마리를 읽고 있었던 예의 그 계집애가 생글거리며 농을 던지듯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 나 가면 쓰고 있는데 왜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안거야? 뭐, 괴물이랑 일대일을 뜰 수 있는 퇴마사 녀석들 입자에선 타인의 시선은 1킬로미터 떨어진 거리라고 해도 알아챌 것 같긴 하지만.
일을 마치고, 장로들에게 할 보고도 마치고, 밥이라도 먹고 하루 종일 잠이라도 자려고 생각했던 나, 하지만 지금 있는 곳은 하인 신분으론 입실조차 용납 받지 못 할 호화로운 방이었다.
면적은 얼마나 될까? 적어도 다다미를 20장 정도는 깔 수 있을 것 같다. 아가씨가 앉아 있는 침대가 중앙에 있고, 그 뒤에는 금박을 입힌 산수화가 그려진 병풍, 손가에는 팔걸이가 있으며 그 위에 펼쳐진 그림 두루마기가 놓여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황금 물병, 등 뒤 받침대 위에 있는 것은 향로와 금(琴)일 것이다. 향로에는 불이 피우고 있는지 잿빛 연기가 퍼지자 산뜻한 향이 실내를 메우고 있었다. 그것 말고도 방 한가득 채워진 가구들……그것들은 아무렇게나 배치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이 방을 지키는 강력한 결계와 저주 돌려주기 기능을 내고 있는 중요한 구성요소였다.
“……무례함을 무릅쓰고 말씀드리지만 그러한 일은 없습니다. 그저 이곳에 호출을 받은 이유를 생각할 따름입니다. 불쾌하게 해드렸다면 사죄드립니다.”
나는 담담히, 감정을 담지 않은 채 기계적인 반응으로, 하지만 무례한 태도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하며 대답하였다. 원작보다는 다소 괜찮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지뢰밭 같은 여자이기에 이렇게 구는 것이 정답이다. 나는 평범한 엑스트라 전투원A거든? 고릴라 공주님에겐 나보다 더 흥미가 당기는 주인공님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어서 이런 속물 따윈 잊어주십쇼.
‘……아니, 제발 나한테 말 좀 걸어주지 말아줄래? 스트레스 때문에 배가 아파질 것 같은데. 그것보다 루트에 따라선 내 배에 물리적으로 구멍이 뚫릴 것 같지 말입니다?’
플레이어의 트라우마 46번째 장면, 아오이님의 ‘식사.’가 떠오르자 욕지기가 치밀어 올라왔다. 아니, 사랑하는 사람의 장기를 먹는 건 진부한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일러스트레이터 양반 뭘 그렇게 공을 들인 거냐고. 도대체 장기 묘사를 하는 데 얼마나 열정을 부은 거냐?
애초에, 이녀 석이 왜 내 얼굴과 이름을 외우고 있냐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부친의 모략, 그 때 호위로 동행을 한 하인 중에는 나도 끼여 있었다. 솔직히 이건 망했다고 생각했다. 이건 분명 같이 따라가면 괴물 녀석들의 식사거리가 될 거거든. 무슨 수를 써서든……그야 말로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어영부영 넘겨보려고 했지만 실패, 도주? 애당초 저주를 받은 탓에 불가능, 나는 어쩔 도리도 없이 눈앞의 지뢰밭 소녀와 함께 가게 된 것이었다.
원작 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도구의 사전준비를 할 수 있었던 점과, 날 둘러싼 모든 것을 전력을 다해 경계를 했었던 점, 주된 스토리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었던 점은 생존을 함에 있어 무척 도움이 되었다. 동료들이 잡아먹히는 것조차 나는 그것을 미끼로 활용해 어떻게 괴물들을 속여 숲 속에 숨는 것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거기서 부터가 문제였다. 결국 우리들 하인은 빌어먹은 일족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다. 오히려 도망을 해도 붙잡혀서 본보기로 벌을 받는지, 실험 재료로 쓰이던지, 혹은 고릴라 공주 사망의 책임을 내가 지게 될 뿐이다.
그런 초조감 속에서 필사적으로 생각을 하던 중, 자객들이 신경독으로 고릴가 공주의 몸을 마비시킨 그 순간 괴물의 습격을 받아 자객들과 함께 사이좋게 괴물의 배속으로 직행……하려던 때였다. 나는 그것 이외엔 선택지가 없었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괴물들이 벌이는 윤간 파티가 시작되기 직전에 준비한 연막탄에 섬광탄, 냄새폭탄을 사용하여, 괴물의 오감을 마비시키고 꼬맹이를 등에 업어 전속력으로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싸우라고? 아니, 그건 무리지, 끔살당한다고. 그 전에 구출을 할 때 내가 중상을 입었을 정도였다.
……뭐, 선의라든가 도덕적인 이유, 혹은 원작 캐릭터를 구하고 싶다는 이유로 그런 위험한 짓을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이대로 가면 나에게도 미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소 위험은 각오하고 그녀를 구출하는 편이 이 난국을 타파 및 상황을 모면한 뒤 나의 처우에 대해서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릴라 공주를 차기 당주로 삼으려고 하는 파벌은 내가 입막음으로 제거되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싶다.
신경독에 당해 제대로 움직이지 못 하는 계집애를 등에 업고 삼일밤낮을 쫓아오는 괴물을 뿌리쳤고, 마지막에 독이 다 풀릴 고릴라 공주가 물리력으로 추격하는 괴물들을 한 방에 해치운 탓에 우리들은 목숨을 건졌다. 아니, 나는 꽤 큰 부상을 입었긴 했었지만.
그게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 이후, 평범하며 재능도 없는 나이지만 그런 경험 탓인지 조금은 그녀의 뇌리에 남은 듯하였고, 때때로 저택이나 야외 활동에서 호위로 불려나가 대화 상대를 맡으면서 그녀의 기분에 따라 주술 도구를 하사받거나, 하인에게는 가르쳐주지 않는 비기(그렇다고 해도 정말로 기초 중의 기초)를 장난을 치듯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선택 잘못했구만. 그녀의 파벌의 비호를 받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고릴라 공주에게 이 정도로 주목을 받게 될 거라곤 계산하지 못 했다. 나보다 더 재밌어 보이는 인간은 있을 테니까 그쪽을 알아보지 그래? 구체적으론 3년 정도 지나면 만나러 올 테니까.
“재미없어, 좀 더 허둥거리면서 대답해도 좋을 것을. 그것도 아니면 남자 눈에 보기엔 나는 그렇게 매력이 없니?”
나의 담담한 답변이 정말로 시시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는 로리 고릴라 공주님. 그 한숨과 동시에 두꺼운 옷 위로도 알아볼 수 있는 언덕이 살며시 위아래로 움직였다. 으응, 이건 C컵은 되나?
“그렇지 않사옵니다. 사람들이 말하길 공주님의 아름다움은 선녀와 같고, 그 미모는 천리 밖에서도 빛난다고 자자합니다. 매력이 없다는 말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 아니신지.”
나는 다른 사람한테 들은 소문……이라기 보단 게임에서 회자된 평판을 그대로 입에 담았다. 무시를 하면 그건 그것대로 빈축을 살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이런 말을 해봤자 속이 꼬일 대로 꼬인 지뢰밭 히로인의 호감도가 오를 리가 없다.
“어머? 칭찬을 해준 거니, 기뻐라. 다른 사람 입이 아니라 네 개인적인 의견이었자면 좀 더 참고가 되었을 텐데.”
예상대로, 약간 불쾌하다는 듯이(하지만 그것도 그저 장난어린 연기라는 것은 원작 지식을 통해 알고 있다.)말하는 고릴라 공주. 나는 하인의 일원답게 감정이 없는 목소리를 유지하면서 대답을 했다.
“공주님의 질문에 답변을 하자면 저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야 말로 목적에 맞겠지요. 소문이나 별명은 그런 점에서 속물적이긴 하오나 일정 수준의 지표가 될 것입니다.”
그럴싸한 일반론이다. 이 작품의 지뢰 히로인들에게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면 호의적이든 악의적이든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감도 안 잡힌다. 지극히 보편적인 의견을 전제로 회화를 나누고 싶을 따름이다. 가능하면 말도 섞고 싶지 않다.
“그렇니, 시시한 의견이구나.……넌 늘 그래.”
팔걸이에 몸을 기대어 턱을 괴면서 날 보는 미소녀. 내 속을 떠보는 듯한 그 눈은 동술(瞳術)을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 또한 있다. 나는 바로, 위화감이 없도록 자연스런 태도로 가면 아래로 시선을 내려 그 수법에 빠지지 않도록 하였다.
일단, 하인들에게 주는 가면은 그런 술수의 대책이 걸려 있지만 눈앞에 있는 괴물의 주술에 얼마나 대항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게임에서도 그랬지만 이 녀석, 기초 중의 기초 술식 밖에 못 쓰는데 어지간한 캐릭터의 필살기보다 위력이 좋았거든. 역시 이 녀석은 힘캐 고릴라다.
“……아, 맞다.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토모베, 너 저번에 내가 준 부적은 어떻게 했니? 늘 지니고 다니라고 말했을 텐데?”
도망을 친 날 두고 잠깐의 침묵 뒤, 그녀는 마침 생각이 났다는 듯한 어조로(그리고 어딘가
연기를 하는 듯한 어조로)그 사실을 지적하였다.
‘기어코 왔구나…… 젠장, 왜 찾을 수가 없었지?’
그렇게 멀리 날아가 버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고, 시간은 허무하게 흘러갈 뿐이라서 나는 애를 태우면서도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껏해야 비천한 하인 신분으로 딱히 대단한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여도 부적을, 명문의 퇴마사 종가의 따님에게 받은 것만으로도 분수에 맞지 않은 것인데 그것을 분실하다니……그 사실만으로도 무서운 것인데, 그것도 망상벽이 심한 미치광이 여자만 있는 이 세계에선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일인 것이다.
‘아니 잠깐만, 진정해, 진정해,……괜찮아. 아직 플래그는 세우지 않았어. 괜찮아, 괜찮아…….’
특별한 사이가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나는 아직 게임에 있었던 베드 엔딩 루트 요소인 얀데레화 이벤트 같은 건 보지 않았다. 조금 호감을 샀지만 그것뿐이다, 그것뿐이다…….
“정말로 송구하지만……제 실력으론 이번 임무는 너무나도 버거웠습니다.…… 전투 후 수색을 하였지만 제 힘이 모자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니츠키 히나의 도움을 받았단 말은 하지 않았다. 원작에서도 고릴라 공주의 호감도를 올린 후 누님과 교류를 나누면 바로 베드 엔딩 직행이었기 때문이다. 사지절단 후 감금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완전 미친 거 아냐.
“흐~웅, 그래. 정말로 무례하구나. 내가 준 걸 내다버리다니. 그렇게 벌을 받고 싶니?”
가학적인 미소를 그리는 고릴라 공주님. 칫, 뚫린 입이라고……!!! 아니, 정색을 해도 끔살을 당할 뿐이지만 말이지? 우와, 몸에서 영력이 무진장 흘러나오고 있어. 영에 취해서 토할 것 같아.
“……화내심을 마땅하시지만, 부디 자비를. 저 같은 하인이 가진 재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정진하겠사오니 부디 용서를 해주시길…….”
일단 하인답게 굴면서 성심성의를 다해 용서를 구하였다. 이것은 속물답게 행동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나에 대한 흥미를 줄이는 방책이며, 흥미없는 사람에겐 집착도 하지 않는 고릴라 공주님에게 취하는 유효한 방법이다. 이대로 실망을 하고 바퀴벌레처럼 방에서 쫓아내주십쇼. 아니, 진짜로 영력이 너무 강해서 무섭다고.
“……꼴사납긴. 벌벌 떠는 게 마치 겁 많은 양 같아. 한심하긴.”
그렇죠. 그러니까 어서 꺼지라고 말하라고, 고릴라.
“……하아, 어쩔 수 없구나. 이번만큼은 용서해줄게. 대신, 한동안 이 방의 호위를 하렴. 한가한 때 수색의 주술을 가르쳐줄게. 영광으로 알렴.”
정말로 구제불능이라고 여기는 듯한 한숨과 함께 거지에게 적선이라도 해주는 듯한 어조로 지뢰밭 여자는 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하, 토하고 싶다.
초췌한 움직임으로 그가 장지문을 열고 퇴실을 한 뒤, 소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네 잘못이 아니니까. ‘이번만큼은’은 용서해줄게.”
그리고, 대담한 미소와 함께 소녀는 방의 구석을 보았다.
“훔쳐보기는 천박한 게 아니었어?”
다음 순간 검지를 가볍게 휘둘렀고. 그 순간 화륵, 불꽃이 일어났다.
[찍찍찍……!!!]
검은색 쥐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을 굴러다녔다. 아마도 어떠한 주술을 썼으리라, 불꽃에 휩싸인 쥐가 굴러다녀도 바닥에는 탄 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미소를 그리면서 소녀는 불에 타는 쥐가 숨이 끊어지는 것을 감상하였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을 휘두르자 어느 사이엔가 무릎에 검은 고양이가 앉아 나른하게 크게 하품을 한 번 하고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 죽어버린 쥐를 물었다.
“심부름, 부탁할게.”
소녀가 속삭이자 고양이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건 그렇고, 경고를 못 알아 들었어? 다음은 널 태워줄까?”
‘그것’이랑은 어떤 의미론 목적은 같지만 친하게 지낼 셈은 없다. 더군다나 모처럼 ‘그이’와 단 둘이서 보내는 시간을 방해하다니……!!!
‘…………’
살기를 보내니, 천장 뒤에 쌓여있던 요력이 조용히 떠나가는 것을 소녀는 파악했다.
“……설마, 이렇게 간단히 결계가 뚫릴 줄이야. 귀찮지만 좀 더 공부를 해야겠는걸.”
살며시,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그저 죽여서 끝낼 것이라면 이런 잔재주 따윈 배울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성가시고 비효율적인 주술도 익혀야만하고, 갈고 닦아야만 했다.
“정말로, 귀찮아.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켜볼 수가 없는걸.”
그녀가 ‘하사한’ 부적에는 고작 하인이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게 위장한 정신조작과 감시 술식이 부여된 상태였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그’의 주위에 달라붙은 다른 ‘천박한’ 여자들과는 다르다. 세뇌 같은 모양새 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저, 고난에 절망하고, 포지하지 않도록 정신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감시의 술식도 마찬가지다. 어디까지나 ‘그’의 분투를 지켜보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24시간 내내 지켜보는 것은 변태나 할 짓이다. 그녀 자신은 그런 미친 여자가 아니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 잡견이 꼬리를 휘둘렀을 때, 바로 정신조작으로 직격을 피하도록 몸을 움직인 것은 비밀이다.
“정말, 위험했어. 그런 송사리 상대로……뭐, 하인이니 어쩔 수 없지만.”
퇴마사 일족과 소모품인 하인은 소질도, 자라난 교육환경도 전혀 다르다. 오히려 저 정도 수준도 괜찮다고 평가해야만 했다. 물론, 그래선 의미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서 강해지렴. 내가 잘 키워줄 테니까.”
그녀는 천재이다. 재녀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술식조차 쓰지 않아도 강화한 신체능력만으로 『흉요(凶妖)』조차 싸잡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 있어 주변 사람들은 평범하며 시시한 것들뿐이다.
하지만……『그』만큼은 별개이다. 그 날, 절망하고, 죽음조차 각오한 그 때, 그녀는 보았다. 가령 일류의 퇴마사라고 하여도 겁을 먹을 상황에서, 고작해야 하인이 자신을 구해낸 그 모습을. 넝마짝이 되어가며, 전신에서 피를 흘리며, 그저 짐이 될 뿐인 계집아이 따윈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그 모습을. 그 모습에 그녀는 안도하였고, 감동하였고, 간절히 의지하였다.
……뭐, 실력은 전혀 없지만.
“그래, 실력은 아직 부족해. 정말로 부족해. 특별은커녕 2류 조차 아득할 정도로.”
……그러니까, 내가 키울 거야.
“내가 진심으로 반하고, 모든 것을 내던지고, 주고 싶어질 정도로 특별한 존재로……….”
키득키득, 새가 지저귀듯이 귀엽게, 하지만 어딘가 요염하게, 무언가 섬뜩함이 느껴지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이번 임무도 일부러 방치를 한 거거든? 무모한 일이 아니었어. ‘그’의 실력, 그리고 괴물의 실력도 계산해도, 피를 토하면서 싸우면 아슬아슬하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분명 싸우고 난 뒤 ‘그’는 더욱 높은 경지를 이룩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 재수 없는 여자에게 방해를 받아버렸지만.
“정말로 애지중지 아끼고 드네. 그런 것보다 걱정할 일이 있을 텐데.”
뭐, 좋다. 언니는, 그딴 여자 따윈 아무래도 좋다. 그것보다도 앞으로 있을 일이다. 수색의 술을 가르쳐준다고? 고자 그것뿐일 리가 없지 않은가.
“자, 내가 직접 가르쳐주는 거니까 분발하렴. 이번에는 좀 더, 좀 더 높은 벽에 도전할 테니까.”
그리고, 넘어보렴, 이름을 남기렴. 영웅이 되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저 범속하고 저속한 범인으로 끝나서 좋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사랑에 빠진 소녀 같았고, 그리고 그 눈동자는 끝을 알 수 없는 구덩이처럼 질척한 어둠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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