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어의 꿈
과산화수소 스트리크닌
당신의 그림자는 신기루 같아요.
제 그림자는 스모크 같지요.
그리워하는 행위란
Ich denke immer an dich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몸은 힘을 잃고, 중력에 따라, 그리고 깊숙이 찔러 박힌 내 팔에 딸려와, 날 향해 쓰러졌다. 나는 무심코 몸이 휘청거려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콘크리트처럼 차가운 몸이었다. 아직 부드러운, 그렇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
고맙다는 말을 들을 처지가 아닌 게 분명했다. 죽여 놓고 고맙다는 소릴 듣다니, 말도 안 된다.
나는 떨리는 팔을 뽑아내었다. 팔과 함께 육편이 사방으로 비산하였다. 나는 어째서 이런 곳에서, 사랑했었던 사람을, 이렇게 비참한 꼴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고결한 것이라고 믿었던 완성품을, 과거의 유물, 잔해마저 모욕하는 것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런 짓을 해서 도대체 무슨 득이 된다는 것일까? 후회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어슴푸레하였고, 참회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경박했다.
그래도,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울어본 들 날 보듬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머리를 쓰다듬어 줄 사람은 이젠 없다. 내 대신 희생해줄 사람은 이젠 없다. 그녀의 잔해가 끔찍하게 무거웠다. 목숨이, 너무나도, 무겁다. 어째서. 살아있을 적에는 그렇게나 가벼웠는데. 그렇게 가볍게 다루어졌는데.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만큼 비열한 것을 나는 모른다. 누군가를 위해 흘리는 눈물인가. 내가 그녀에게 보낼 수 있는 말 따윈, 마음 따윈, 이젠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은 게 분명한데 말이다. 그럴 자격은 없다. 그럴 권리는 없다. 나에게 그녀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는 도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하, 하하.”
그렇다, 웃어라. 오늘부터 나는 웃으면서 살아갈 테니까.
세상만사 모든 걸 웃어라. 슬퍼도 괴로워도 분해도 고통스러워도 무서워도 꼴사나워도, 의미도 없이 이해도 못 한 채 이유도 없이 예의도 무시하고 허가도 없이 맥락도 없이, 세상만사를 깔보고 웃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오만을 웃어라. 이 세상 모든 것을 깔보고, 조소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나에게 허락된, 나에게 주는, 유일한 벌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이 때.
그녀에게 마지막 키스를 하지 않았던 것만이, 지금에 와서 사무칠 정도로 후회가 되어 미칠 것만 같았다.
누군갈 탓한다는 행위란.
Du fehlst mir.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깊은 구멍을 파고 있었다. 그 깊이가 몇 미터가 될 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빛도 없다. 나는 그것이 꿈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꿈이기 때문에 이런 일도 있겠지, 라고 애매한 납득을 하고 있었다.
텅, 하고 소리가 들렸다. 나는 들고 있던 삽을 내팽겨 쳤다. 개처럼 바닥을 기어, 양 손으로 흙을 파헤치자 관 짝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환희에 차 나는 몸을 떨었다. 피곤을 모르는 장갑이 새카맣게 변해질 정도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관이 온연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관을 소중히 품에 안아,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깊이가 얕아진 구멍에서 빠져나와 비가 연신 쏟아지는 지표로 돌아온 것은 진흙범벅이 된 채 웃는 나다. 나는 몸이 진흙투성이가 된들, 몸이 더러워진들, 혹은 차가운 비에 맞는 들, 그 무엇도 개의치 않은 채 관을 조심스럽게 그 자리에 놓았다. 그런 뒤, 이번에도 정중히, 그리고 공손히, 나는 관의 덮개를 열었다.
아아,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꿈속에서의 내가 아니라, 현실의 나는, 알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기대를 한들, 그 관 속을 살펴본들. 아무리 간절히 바래도, 그 관 속을 파헤쳐도. 그곳에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 따윈, 그런 건.
관 속에 있는 것은, 시체였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람의 주검이었다. 목 위에 있어야 할 것이, 잃어버리고 만 채로 있는 주검이었다.
⍏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지독하게 땀을 흘렸다는 사실에 기분이 다소 불쾌해졌다. 아직 해가 뜰 시간도 아닌 이른 아침. 가볍게 샤워를 한 뒤 다시 자려고 가디건을 두른 뒤 침대에서 나왔다. 간단히 몸단장을 하고, 방에서 나왔다.
신입인 나에게 주어진 방은 중순양함 기숙사에선 보기 드물게 1인실이며 제법 방이 넓지만, 가장 위층의 구석진 곳에 있었다. 기숙사별로 존재하는 샤워실은 1층에 있기 때문에, 그것에 관해선 조금 불만이 있다. 샤워를 하면서 방에 돌아오는 순간이 이 계절이라면 몸에 좀 지나치게 쌀쌀한 것이다. 추운들 감기에 걸릴 몸은 아닌 것을, 함선 소녀이라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며 기뻐해야 하는지, 혹은 불행하다고 한탄해야 하는 것일까.
다만, 생각한 것 이상으로 조국과 일본의 기온차가 없는 것은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체제 기간을 따지면 일본이 더 오래 됐는데, 조국,인가.’
신기한 감각이다. 나의 귀속의식은 아무래도 바다 저 건너편에 있는 것 같았다. 이 나라에는 없는 것 같았다. 언어회로조차 초기설정은 독일어이지만, 부속 장치로서 일본어가 추가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딱히 일상회화에 지장은 없으며, 사용빈도도 일본어가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에는 흑색, 적색, 황색, 삼색이 선명했다.
‘함선 소녀에게 귀속의식을 프로그래밍한 것은 무슨 의도일까? 만에 하나라도 거역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일까?’
의외로 그 정도의 차이가 함선 소녀와 심해서함을 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샤워실에 도착했다. 일본에 왔을 당시에는 이 탈의소라는 규칙에 익숙해지기 까지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보아하니 선객이 있는 것 같았다. 의복류가 들어간 바구니가 하나 있었다. 이런 시간부터 하는 것인가, 상당히 일찍 일어났구나. 나도 남 말을 할 처지는 아니라고 해도. 선객이 있든 없든 나는 땀을 씻어야만 했기 때문에, 깊이 의식하지 않고 드르륵, 몸을 열었다.
선객은 토네였다. 욕조에서 등줄기가 보였다. 아~ 과연, 그런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은 그녀에게 좀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 노인은 잠이 깊지 않다고 하니 말이다. 아니, 그녀는 노인이 아니지만. 분위기가. 말투가 그렇지 않은가. 응, 말투가.
나는 잠자코 샤워대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녀도 딱히 내가 누구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날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
머리부터 샤워하기에 딱 좋은 온도의 온수를 맞고 있자니, 그제야 잠이 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꿈에 시달릴 정도는 아니지만, 잠자리가 좋지 않은 꿈은 때때로 꾸곤 한다. 수면 시간은 확실히 확보하고 있지만, 그 꿈의 유무로 잠자리의 좋고 나쁨의 수준은 확연히 달라진다.
잊을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의도하지 않는, 원하지 않을 때 튀어나오면 곤란하다. 의식적으로 불러낼 수 있게 되고 난 이후 처음으로, 그 기억을 정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 점을 따지자면 아직 나는 그 무엇도 정리하지 못 했다. 자신의 감정을 기만하는 것은 간단하다고 생각했었다. 사람은 기만하는 것은 간단했듯이.
이런, 손가락을 분지르고 싶어지고 만다. 다른 사람에게 인상을 주기 위해 시작한 고의적인 기행이었지만, 의외로 일상에 침투하고 말아서, 고통에 둔감해지는 것을 넘어서 가벼운 스트레스 해소가 돼버리고 말았다. 내 감각도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연기가 연기가 아니게 돼버린다. 여기서 부러뜨리면 뒤처리가 성가시다, 스스로 납득시키고, 포크를 구부리듯이 간단하게 구부러지는 자신의 손가락을 감쌌다.
“들어오지 않는 겐가?”
샤워를 마친 뒤 곧장 밖으로 나가려고 했을 때, 토네가 불렀다. 그녀는 날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기 때문에, 변함없이 등만이 날 보고 있었다.
“가볍게 샤워만 하려고 온 거거든요.”
“자네는 이런 것에 몸을 담그는 문화에 도통 익숙하지 않지? 잠깐 몸을 담가보게나.”
그런 말을 듣고 말면 거절한 이유도 없기 때문에, 살며시 거리를 두면서 욕조에 천천히 다가가, 욕조에 몸을 담갔다. 으응. 욕조에 몸을 담갔다고 해서 특별히 뭐가 달라진 느낌도 없다. 그저 가만히 있을 뿐, 뭔가 할 일이 없다. 욕조에 몇 분이나 몸을 담근 채로 있는 일본인의 기질을 잘 이해할 수 없다. 이 행위를 어서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눈에 들어온 광경에 한 순간 기겁하고 말았다. 토네의 왼팔이 통째로 둔탁한 은빛을 발하고 있는 기계였기 때문이다.
“어, 그거, 괜찮나요?”
“내수, 내열, 내전, 내산, 내습, 내식......바닷물에 담가도 문제없는 특수사양일세. 목욕 정도는 끄덕도 안 한다네.”
실제로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의수라니, 그런 소린 처음 들었다. 그야, 일부러 말할 일도 아니지만.
“이 정도로 놀라선, 다른 녀석의 알몸은 못 보겠군.”
“벼, 별루 보고 싶은 생각은 안 하는데요......”
“핫핫. 실로, 그렇구나. 익숙해진 들, 센다이의 몸 따윌 보면 대부분의 녀석은 기겁을 하니 말이야.”
“자주 듣네요, 그 배의 이름. 이 진수부에선 중요한 위치에 있나요?”
“으응? 전혀. 그만큼 다양한 배가 신경을 써주고 있다는 것이지. 그 녀석의 인덕일세.”
듣는 상황은, 그다지 밝은 분위기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말을 할 필요는 없어 보였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 단편적인 정보에서 추측하자니, 이제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 그것뿐이다. 나는 그다지 연이 없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에 어떠한 사적인 감정도 개입할 여지가 없지만, 그래도. 분명 그 배가 없어질 때에는 많은 배가 애석하게 여길 것이고, 다양한 배의 마음의 페이지에 책갈피를 끼운 채 사라지고 말 것이다, 라는 상상은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행복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죽어서 얻을 수 있는 구원도 있다. 그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저 부정해도 좋을 것은 아니다. 잘못된 일이지만, 옳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기에 그런 구원 외엔 길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구해주지 못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나는, 구해줄 수 없었다.
“그건, 근사한 일이네요.”
“그렇지.”
“......굉장하네요.”
좀 더 축복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녀의 생을, 좀 더, 좀 더 많은 사람이, 축복해주었다면. 머리가 없는 사체를 떠올린다. 머리는 분명히 잠들고 있다, 잠들고 있는 것이다. 매일 내가 돌보고 있다.
그녀의 고결함을, 나는 더럽히는 길 이외엔 지킬 수 없었다. 그 밖에 어떤 길이 있었다는 것인가? 그 밖에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아아, 어째서, 시술을 받은 것은 내가 아닌 것인가. 내가 시술을 받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을 텐데.
“뭐가 굉장하다는 것인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살라고 격려를 받고 있다니, 근사하고, 굉장한 일이잖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손에, 생을 부지하고 있다. 그것은 축복이다.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고 있다. 산다는 것의 존엄함을, 확실히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짙은 죽음의 냄새를 풍기면서 사는 것이다.
“프린츠. 나는, 콘고에게 자세한 소린 못 들었다네. 그 녀석은 사실을 대강 말하니 말이야. 다만, 자네가 이곳에 온 이유도, 자네가 자네로서 행동거지를 하는 이유도, 무미건조한 문맥을 통해선 알고 있다네. 나는, 그것에, 뭐라 비난할 처지가 아니네. 죽어서야 삶이 긍정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라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 그렇기 때문에, 자네가 그것을 탓해선 안 된다네. 자네의 삶을 자네 자신이 부정하는 것은, 결코, 결코 해선 안 되는 것이야.”
이 눈도, 장기도, 양 다리도, 모든 것이 전부, 그녀의 것이다. 물려받은 것 말곤 그녀를 존속시킬 수단은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은 전부 버렸다.
그렇지만, 사실은, 살아주길 바랬다.
그렇지만, 사실은 정말, 죽이고 싶지 않았다.
이 몸에 어느 정도 남아주었다면, 아직은 살아있다고 나 자신에게 변명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맹신하면 그만이다. 잡을 지푸라기조차 없는 이 손에, 조금이라도 움켜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속일 수 있다.
“자기가 죽을 걸 그랬다, 그렇게까지 적극적인 생각은, 안 했어요. 그렇지만,”
“으음.”
“언니가, 죽는 걸 바라진 않았어요.”
어째서 그것을, 그 때 말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녀가 죽어버리고 싶다고 나에게 털어놓았을 때, 이미, 나는 결심하고 있었다. 나의 마음 따윈 보다, 그녀의 감정이 우선되었기 때문이다. 아아, 그렇지만, 그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무언가 다른 길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녀를 죽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해결한들, 그 방법이라면 우리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려운 문제로구나. 본래라면 어렵지 않을 텐데......어려워.”
토네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렇다, 어렵지 않을 텐데.
내가 꿈속에서, 그녀의 머리를 찾을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확신에 차있는 예감이고, 그러면서도 신기루처럼, 하늘하늘 흔들리는 환영 같았다. 내가 해답을 찾는 날과, 그녀의 곁으로 가버리고 마는 날, 어느 쪽이 먼저 나에게 찾아올 것인가? 그것을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알 수 없었다.
사모한다는 행위란
Ich sehe nur dich.
나의 내력을 설명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나 자신도, 뭐가 뭔지 잘 모른다. 한 곳에 오래 머문 적은 없고 나름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실은 누군가의 목숨 값으로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뿐이라던가, 임시로 머물었다거나, 누군가를 기만하고 위해 있는 것뿐이었다.
내가 특정 장소에 귀속의식을 가지려고 해본들 이루기 힘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국”이란 것을 동경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 나라 어느 곳에 있든 그것은 내가 아닌 것이다.
애초에 난 한 명의 고집불통인 권력자의 사리사욕을 위해 본부에서 건조된 함선이었다. 그 권력자의 명령으로 시설에 있었던 적도 있다. 그 시설의 다음은 개성 넘치는 진수부로 이동. 지금은 그 권력자가 다시 날 불러, 권력자의 시간 때우기 같은 세계 멸망 작전에 어울려주고 있다.
권력자는 무척이나 변덕스럽다. 함선 소녀의 모습을 한 악마 같은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이 든다. 가라고 해서 갔는데, 격리 요양소[Sanatorium] 생활에 겨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니 금세 부름을 받고 말았다.
“아, 오이겐. 오랜만이다.”
그 최악의, 웃는 얼굴로 날 맞이하였다.
“정말로 그러네요.”
“어땠어? 요양소 생활은. 쿠마노는 건강해?”
“단짝이 죽어버려서, 혼이 나가버린 것 같았어요.”
생각하자니, 그녀도 불쌍한 사람이다. 이 최악이 그린 시나리오 위에 희롱당하고 있다. 그녀야 말로 이 최악을 그 누구보다도 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최악의 열화 클론이고, 그 열화 클론도 최근 가라앉고 말았다. 그건 정말 기묘한 굉침이었지만 내가 생각할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해두었지만. 분명 그것도 이 최악이 그린 시나리오대로 였을 것이다. 모든 것이 최악에게 있어선 한 때의 여흥일지도 모른다.
“안 죽었는데, 뭐~ 쿠마노는 아직 모르나.”
“당신의 애정은 삐뚤어 졌어요.”
“어째서? 쿠마노를 위한 일이야. 나는 쿠마노를 정말로 좋아하는 걸.”
그것을 애정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이 세상은 대부분의 기원은 애정이 될 거에요, 그렇게 대답하면 “아아, 그건 의외로 핵심을 찌른 말이 아닐까? 다들 사랑하고 있다고, 모든 걸.”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낙관적인 성선설이로군요.”
“선성에서 유래한 악성도 있는 거야.”
“당신처럼요?”
최악은, 기쁜 듯, 눈을 좁히며 “하하.” 메마른 목소리로 웃었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얘, 오이겐. 나 큼직한 짓을 하려고 해.”
“본부의 중진이신 당신이 하는 일은 대부분 큼직한 일이에요.”
“아니아니, 좀 더 좀 더 큼직한 일. 나 있잖아, 함선 소녀를 이용한 이 대형 사업을, 깽판을 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거든.”
“대형 사업?”
“몰라? 오이겐은 바보구나. 모처럼 머리가 좋은데 쓰질 않으니까 녹이 쓰는 거라고. 왜 심해서함을 쓰러트려도 한없이 나오는 지 생각해 본 적 없었어?”
“없네요.”
“그럼 지금 생각해. 있잖아, 비스마르크랑 관련된 일도 포함해서.”
비스마르크라는 것은 내가 격리 요양소에 들어가기 이전에 있던 시설로, 내가 죽이고 만 그녀의 일인 게 분명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머리 한 구석까지 상연회를 거듭 되풀이하면서 이 세상의 미쳐 돌아간 제도의 이상한 점을 조금 생각했다.
어째서 아무리 죽여도 끊임없이 심해서함이 솟아나는 것인가? 왜 그 위협을 상대로 인간은 계속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인가? 함선 소녀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가는, 한 줄기 선으로 말끔히 이어졌다. 그건 지독할 정도로 선명하고, 허망하고, 그리고 너무나도, 고만했었다.
“……, ……, 아아. ……정말로 미쳐 돌아가는 상자 정원이로군요.”
“뭐, 우리 함선 소녀따윈 어차피 인간님의 도구니까. 도구라고 한들 정말로 잘, 이라고 할까, 정말로 철저하게 이용된단 말이야, 오히려 감탄할 정도야.”
“그래서, 부셔서 어쩔 셈인가요?”
“철 쪼가리로 돌아가고 싶어서.”
“혼자서 돌아가시는 게 어떠신지?”
“아하, 쌀쌀맞기는. 쿠마노라면 “그럼 같이 가요.” 라고 말해줄 상황이라고.”
나는 대답할 의리도 없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지쳤어. 끝이 안 보이는 제로섬 게임이잖아. 그렇다면 오히려 마이너스로 만들어 버리고 싶더라고. 그건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이잖아?”
“파멸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오이겐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거든. 어쨌든 말이야, 오이겐. 나는 모든 함선 소녀이랑 모든 심해서함을 전부 죽여 버리고 싶다고.”
어째서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자기가 말하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광기에 찬 발언이며, 무척이나 잘못되어 있으며, 무척이나 오만하고 폭학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 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이 벌이는 이 사업이 고만한 것이라면 이 사업에 어울려주는 것이 지쳤다는 개인적인 이유로 모든 걸 망쳐놓으려고 하는 그 사상의, 도대체 무엇이 오만하지 않다고 할 수 있으리?
그래도 최악은 명랑하게 유쾌하다는 듯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다. 자신의 계획이 사뭇 명안이라는 듯이, 내가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이해자라도 되는 듯이.
나는 이 최악의 손에 의해 태어났다. 자기 입맛에 쓰기 쉬운 말이 필요해서, 남아도는 시간 때우기로 태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최악에게 거스를 셈은 없지만 그런 짓을 하면 그야말로 정말로 무참한 불행한 일이 되겠지만, 그래도.
이 최악의 밑에서, 수많은 생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것을 부수고 싶다. 그것은 단순한 여흥이다. 여흥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없이 우직하고, 탐욕스럽고, 솔직하고 성실하게 임하고 싶어진다. 최악은 그런 마음 그 자체이다. 모든 것을 부수고 싶다고, 자신의 모든 것이 부셔버리고 싶다고, 이 최악의 앞에선 그 어떤 죄악감을 느끼지 않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자유이다. 과도한 자유를 최악은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까지 시시한 일을 계~~속하고, 무지~~인장 많이 모았다고. 사람도, 돈도, 도구도, 머릿수만이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어. 질은 못 갖췄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질이 좋고, 써먹을 수 있는 녀석은 얼마 안 돼. 그러니까 모으는 거야, 질이 좋은 쪽을.”
그런 최악이 권력과 돈과 인재를 손에 넣고, 이 세상이야 말로 자기 것이라고 구가하는 최악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그 뒤를 따라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버리고 마는, 범재의 마음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도와줘, 오이겐. 모처럼 그런 최고의 대가리를 가지고 있다면, 썩히지 말라고.”
그건 마치, 같이 죽자는 권유처럼, 감미롭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오이겐의 쓰레기 쪼가리 같은 몸도, 잔해 쪼가리 같은 마음도, 나라면 그 누구보다 잘 쓸 수 있어. 끝내주게 유쾌하게 만들어줄 수 있고, 끝내주게 놀게 해줄 수 있고, 끝내주게 네 멋대로 하게 해줄게. 그러니까 있잖아, 프린츠 오이겐. 나의, 스즈야의 노예가 되어줘.”
그런 바보 같은 권유를, 모든 것을 내던지고 수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 ……좋아요. 마침 따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나의 내력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나 자신, 뭐가 뭔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이 최악의 밑에서 태어나, 최악의 유희를 위해 살고, 최악의 시간 때우기 때문에 죽는 것만큼은, 정말로 뚜렷한 윤곽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에 관해서, 나는 어떤 비난 수단도 없다는 것도.
“당신을 따라 갈게요. 원래부터 그랬듯이, 전 만들어진 생명이니까요.”
“섭섭한 소리 하지 말아줘. 친하게 지내자구~.”
그렇게 말하며 웃는 최악은 즐거워보였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형편없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들, 그것들 모든 것이 이 최악의 시간 때우기라고 한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
스즈야가 나에게 준 방은 나 혼자서 쓰기에는 너무나도 넓었고, 애초에 가장 좁은 방이 좋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견은 수없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가장 좁은 방이야.” 라고 사뭇 당연하게 나에게 말했다. 침대 하나와 책장 하나를 두면 더 이상 둘 수 없을 정도의 크기가 딱 좋다고, 말했지만 “그런 고양이 우리 같은 방은 없어.” 라고 말하며 어처구니없어 했다. 고양이에게 방을 준다는 그 발상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지만 애초에 그 스즈야(최악)에게 잘못되지 않은 점을 찾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나에게 배정된 방을 힘내서 내 방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디에 있든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것은 옛날부터 변함없었다.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는 말을 들어도 곧장 그곳에서 나가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을 진정한 의미로 내가 있을 곳이라고 느끼기는 힘든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문득 나에게 내가 있을 곳이라는 것이 있었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그런 기억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도 그렇다고 납득했다. 나는 날 잘 써먹을 수 있는 누군가가 반쯤 장난으로 써먹으면 그만이었고, 나는 의외로 아무래도 좋았다.
『자기 자신이 없는 분.』
합성음성이 웃었다. 눈앞에는 쓸데없이 큰 수조 같은 무언가가, 그리고 그곳에 떠다니는, 함선 소녀의 것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요란한, 튜브가 잔뜩 꽂힌 뇌수와, 그것에 이어지는 안구가 둘. 원래는 항공순양함 미쿠마, 였던 것,이다. 이미 몸은 없고, 뇌와 안구만이 이렇게 남아있다. 무슨 영문인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녀의 뇌에서 나온 정보가, 방에 부착된 스피커를 통해 합성음성이 울려 퍼진다. 그 합성음성이, 정말로 그녀의 말인지, 아니면 실제론 이 뇌수는 한참 전에 죽어버려서 멋대로 스피커가 적당한 소릴 하고 있는 것뿐인지, 판단할 길은 없다.
일단, 말하고 있는 내용은 타당하기 때문에, 아마도 미쿠마의 의식은 아직 살아있는 걸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지만.
방에는 수조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미쿠마를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취향이 좋다고 할 수 없는 심해어가 들어간 무식하게 큰 수조다. 수조가 방 전체를 둘러싸고 있으며, 그곳에는 심해어 말곤 살아있는 것이 없다.
『스즈야는 분명, 자기가 맘대로 쓸 수 있는 말을 가지고 싶어서 당신을 만들었어요. 그렇지만, 결코 당신에게 명령을 듣기만 할 뿐인 기계가 되길 바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건 독선(獨善)이잖아요.”
『그렇죠. 그 애가 독선적이지 않았던 적이 있나요? 누구나 많든 적든 독선적인 것이랍니다. 그것이 용납되는 것이죠. 당신이라 한들 그 열외가 아니죠.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하게 살아보는 것은 어떠신지?』
나는 대꾸할 말이 없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그 점에 관해선 생각을 해보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지 모른다.
『네가 그런 말을 하지 마,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렇지만 미쿠마이기 때문에, 제가 하고픈 말을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답니다. 뭐니 해도 전 이제 몸도 그 무엇도 없는 걸요. 잃을 게 없으니까요.』
또 웃었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스즈야한테 무슨 말이라도 들었나요?” 물었다.
『아뇨? 왜요? 제가 스즈야에게 무슨 소릴 들었다고 해서 순순히 대답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는지요?』
“생각해요. 당신은 여동생에게 무른 사람이잖아요.”
『아하,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그녀는 스즈야가 아끼는 사람이다. 자매함이라는 것을 제외해도, 말이다.
하지만, 스즈야는 자매함에게, 필요 이상의 의미를, 가치를, 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쿠마노가 그렇고, 미쿠마가 그렇고, 모가미는, 잘 모르겠다. 이야깃거리로 잘 거론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건 정말로, 저는 스즈야한테서 아무런 말도 안 들었어요. 당신을 상당히 신경 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요. 그래 보여도 스즈야는 좋은 사육주에요. 자기 애완견은 끔찍이 여긴 답니다.』
“그건, 알고 있어요.”
스즈야는 그녀의 그릇을 찾고 있다. 뇌만 남아버린 그녀에게 어울리는 몸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겐 어떠한 특성 때문에 평범한 함선 소녀의 몸은 그녀의 뇌에 적합하지 않는다. 그녀랑 마찬가지로, 특수한 함선 소녀가 아니면 적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스즈야는 그것을 찾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함선 소녀와 심해서함을 없애 버리려고 하는 그녀가, 그런 뚱딴지같은 것을 바라고 있다. 기묘하다고 할까, 사고, 행동이 뒤죽박죽이라고 할까. 그렇지만 그 부자연스런 점은,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당신이 이루고 싶은 것은 뭔가요?』
목소리는 즐거워보였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대답을 못 하시는군요. 그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떠신가요? 당신은 어쩌면, 당신이 어떻게 생각한 들 스스론 아무리 용을 써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헛수고라고 생각하시는 걸지도 모르지만요, 의외로 뭐든지 당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거랍니다. 미쿠마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상한 소릴, 하시네요.”
후후후, 합성음성이 웃었다. 어떻게 본들 수조에는 뇌수와 눈알 외엔 없고, 귀 따윈 어디에도 보이지 않음에도 내 목소리가 그녀에게 닿는 이유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모르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성가시기 짝이 없다. 특히 나는 그곳의 중심인물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중심인물이 써먹고 있는 조역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전체상은 나로선 도저히 파악할 수 없다.
그저, 우리, [함선 소녀]라고 불리는 존재가 이미 인간의 경제활동을 막힘없이 원활히 돌아가게 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것 같다는 것 정돈, 최근에 알았다. 원래, 함선 소녀도 심해서함도, 인간이 지각할 수 없는 초상적인 생물이었다. 그녀들이 그녀들로서, 그저 싸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서로 장난질을 하는 것과 비슷하였고, 인간의 존재 따윈 그녀들의 시야에는 눈곱만큼도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나도 왜소한 인간은, 너무나도 거대한 그녀들의 장난질의 앞에 항거할 수단도 없었고, 대부분 휘말리는 모양새로 피해를 입게 된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일 것이다.
그 이후의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른다. 인간은 어떤 수단을 썼는지, 후에 [제 1세대]라고 불리는 그녀들의 데이터를 손에 넣고, 그 데이터로 그녀들과 유사한, 한편 인간에게 다루기 쉬운 복제품을 수없이 많이 만들었다. 많이, 많이 만들고, 거짓된 함선 소녀와 거짓된 심해서함을 싸우게 만드는 게임을 시작했다. 마치 인류를 위협하는 심해서함과 그런 적을 해치우는 영웅 같은 함선 소녀의 구도를, 훌륭히 국민들에게 인식시켰다. 함선 소녀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이 일을 하고, 생활을 하기 위한 자금을 얻고 있다. 이 게임은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다. 함선 소녀 관련 시장 규모는 수 백조 엔에 달한 것 같다. 그 정도로 너무 거대해진 경제활동을 이제와서 멈출 순 없다.
지금에 와선 그녀들, [제1세대]는 뿔뿔이 흩어져버렸고, 각자 생각하는 바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옛날에 보여준 연대감은 이젠 찾아볼 수 없다.
스즈야는, 내가 사랑해야 할 주인님은, 그 모든 것을 없애버리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전부 그만두게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확실히, 스즈야가 말하는 점은 이해가 간다. 이미 형식화된 전쟁을, 너무나도 무익하고 허무한 전쟁을, 그렇다는 걸 알고 계속하는 건 옳지 않다. 다만, 스즈야의 방식은 다소 난폭하다. 결국, 전부 죽인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딱히. 나는 스즈야가 하고자 하는 일을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수행하는 것뿐이니, 그 점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셈은 없다.
미련이 있다고 한다면, 격리 요양실에 두고 온 비스마르크의 망해의 일부분을, 정중히 매장된 그녀를, 애도할 길이 이젠 없다는 것뿐이다. 여기선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 두 번 다시 그 땅을 밟을 일은 없을 것이다. 누가 묘지기를 해주는 걸까? 콘고라면 해줄까? ……분명 해줄 것이다. 그렇게 긴 사귐은 아니었지만 한동안 그녀의 직속 수하로서 일하고, 그 성실함은 뼈저리게 느꼈다. 개성적인 성격이지만 누구보다 순수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의에 고지식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나의 상황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면서 묘지기를 해줄 것이다. 그녀라면 신뢰할 수 있다. 지금에 와선 적이기도 한 그녀를 신뢰하는 건 이상한 소리지만.
격리 요양실의 콘고는 [제1세대]라고 들었다. 언젠가, 전면적으로 싸워야만 상대라고 해도. 분명 스즈야는 가장 먼저 콘고를 죽이려고 들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간단히 죽어줄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다만,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모두 죽여야만 하는데, 왠지 모르게, 그 점에 싫고 좋음을 느끼는 것은 무슨 영문일까? 죽여도 좋다는 생각하는 이도 있다면, 죽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신기한 일이다, 나에게 이제 와서 그런 고상한 감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말이다.
눈앞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얼굴에 끼얹어진 선명한 적색을 떠올렸다. 그렇다, 내가 떠올려야 할 적색은, 하나밖에 없다.
⍏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당신과 마지막 순간 나눈 대화다운 대화를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라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죠. 제가 어떤 모습이 되어도.
“이젠, 나는 널 감싸줄 수 없을 것 같아.”
“언니,”
“으응, 내가 말하고 있는 말에 오류가 있다면 말해줘. 두서없는 생각이 계속 떠올라, 이런 건 내가 아냐. 분명 네가 보다면 헛소리로만 들리는 소리도 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 검사 후부터 그래, 분명 검사가 아니었어…….”
“진정하세요. 전부, 제대로, 들을 테니까요.”
“이런 곳에서 모르모토로써 죽는 건 사양이야. 이젠, 정말, 나에겐 앞길이 보이지 않아. 그렇지만, 프린츠, 너는 그렇지 않을 거야. 나처럼 되면 안 돼.”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세요?”
“지금의 나라도, 마지막에 한껏 날뛰어줄 순 있어. ……가능하다고 생각해……아니, 그건 어떨까?……그 녀석들은 내가 난동을 피우는 걸 원하지 않아서, 일이 이렇게 된 거야……뭐든지 저네들이 하는 말에 따르고 싶어져……이런 건 내가 아냐, 내가 아니야…….”
“괜찮아요, 언니. 무리하실 필요는 없으세요.”
“그게 아냐 프린츠, 그러면 안 돼. 너마저 이렇게 되어버려. 이미 나는 아무래도 좋아,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난동을 피워서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너는 그 사이에 도망쳐.”
“그러면, 언니는 어떻게 돼버리나요?”
“죽어버리면 돼, 나 따윈. 이미 앞날은 보이지 않아. 그렇다면 적어도 미래가 있는 널 위해 쓰고 싶어.”
“그만하세요, 무슨 소릴 하시는 것이에요.”
“이제 죽고 싶어.”
“…….”
“이해해 줘.”
“…….”
“적어도, 널 위해 죽고 싶어.”
“…….”
“미안해. 이런 말, 너한테 할 말은 아니었지.”
“……그렇다면, ……그렇다면, 제가, 언니를 죽여도 괜찮나요?”
“무슨 소릴 하는 것이니?”
“언니가 말씀하신 계획의 성공률은 낮다고 생각해요. 언니가 받은 시술은 아마도 로보토미 시술과 똑같은 것이겠죠. 의욕의 감퇴, 우울증 발증, 무척이나 높은 순종성, 그 모든 것이, 이만큼 실험을 받아온 언니가 반기를 드는 우려를 고려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언니가 무슨 일을 일으킨들, 그들은 대응할 수단을 준비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어쩌면 좋아? 어떻게 하면 널 구할 수 있니?”
“언니가 죽음을 선택하신다고 하면, 저는 그에 따를게요.”
“그러면 넌 죽어.”
“살고 싶단 생각 안 해요.”
“프린츠,”
“언니가 안 계시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생각 안 해요.”
“…….”
“언니를 죽이고, 제가 미친 척을 할게요. 써먹을 수 없어 실험도구가 되기 전에 자살을 할게요. 바로 언니의 곁으로 저도 따라갈게요.”
“그건, 너에게 상처를 주는 선택이 아닌 거니?”
“언니의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의 저의 가장 큰 행복이에요.”
“그럼, 그런 짓을 할 필욘 없잖아. 왜 같이 죽어야만 하는 거니?”
“언니의 긍지를 잃게 하고 싶지 않아요. 시술을 받아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죽어버리다니, 그런 최후를 언니의 최후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당신의 존엄을 지키게 해주세요.”
“네 존엄을 희생해서?”
“네.”
“프린츠, 얘. 긍지를 잊어선 안 돼. 아무리 비참해도 마음이 비참해지면 그건 패배야.”
“아니에요. 정말로, 이건 저의 고집이에요. 언니를 슬프게 하는 일은 결코 없어요.”
“정말로, 정말로, 너는 그걸로 만족하니? 후회하지 않아?”
“안 해요.”
“……알았어.”
“고마워요.”
“기억해줘. 부디, 너만은 잊지 말아줘. 나에게 분명히 사랑받았다는 것을, 부디 기억해 줘. ……나는 분명, 잊어버릴 테니까.”
“지켜드리지 못 해서 죄송해요.”
“으응. 나야 말로, 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 했구나. 그것만이, 정말로, ……미안해. 사랑해.”
그 때, 몸에 엉겨 붙어, 울고, 통곡하고, 때를 쓰고,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당신을 죽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죽고 싶지 않다고 외쳤다면, 좀 더 다른 길이 있었을까? 존엄 같은 어려운 것은 전부 치워버리고, 둘이서 죽어버렸다면 지금과는 달랐을까? 어쩌면, 혹시, 그렇다면.
나는 살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언니를 죽이고 나서도 언니의 부품을 몇 개나 이어 붙여서, 연명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서? 그것은 모독이 아닌 것인가?
그렇다면 잊어버리자. 내가 없어지면, 누가 언니를 기억해주는 거지? 누가 알아주는 거지? 그 사람의 버릇을, 성격을, 말투를, 어떻게 웃는 지를, 누가 알아주는 거지?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지? 도대체 난 뭘 할 수 있지?
아냐, 전부 거짓말이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쳐서 어쩌잔 말인가. 나는 이미 죽는 법을 모르는 것뿐이다. 죽을 장소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어느 사이엔가 나의 자리는 마련되었고, 어느 사이엔가 죽지 못해 살고 있다. 고상한 이유가 있어 사는 게 아니다. 그저 이곳에 있을 뿐이다. 존재할 뿐. 장식물 같은 생명.
언니의 곁에 있었을 무렵, 나는 장식물이었나?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 사람의 곁에선, 나의 의지를 가지고 하나의 객체로서 있을 수 있었다고 믿고 싶다. 왜냐하면 난 그녈 사랑한 것이었다. 어쩜 이리도 가벼운 말일까? 그렇지만 정말로 그랬다. 사랑했던 것이었다. 분명 그랬다. 그렇지 않다면, 죽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그 밖에 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도 계속 생각하고 있다. 좀 더 잘할 수 없었던 것인가. 좀 더 요령 좋게 살 순 없었던 것인가.
의식이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갈 뿐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나를 붙들어 매는 것은 뭐지?
내가 해야 할 것은 뭐지? 그것은 누가 나에게 준 것인가? 내가 선택한 것은 뭐지? 그것은 언제 한 것이며, 뭘 위한 것? 나는 내가 하려고 나에게 한 약속을 도대체 얼마나 이룬 것인지? 하나라도 있기는 한가? 이젠 나는 웃을 수 없는데.
나란 도대체 무엇인가? 뭘 위해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일까. 그런 것에 정답 따윈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애초에 정답 따윈 그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그것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정말로 분했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죽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언제나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경박한 녀석이다. 내 말 무엇 하나 믿을 수가 없다. 나의 마음 따윈 무엇 하나 신뢰할 수가 없다.
누가 날 좀 잘 써줘.
내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정말로 기계가 돼버릴 정도로, 아무런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새하얗게 만들어 버려줘. 그렇지 않다면 지금 당장 이 세상에서 지워주길 바래.
불가능해, 그런 짓.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들러붙은 피 냄새. 언제나 나의 몸을 떠도는 것 같았다.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씻어도 씻어도. 다른 냄새로 속이는 방법만 익혔다. 나는 내가 봐야할 것에서 눈을 돌릴 뿐이다. 봐야할 것은 무엇인가. 그 날의 시체의 행방인가? 언니의 시체는 어디로 갔지? 수없이 많이, 나의 몸에 남아있다. 내가 그것을 바란 것이다.
숨통이 답답해져서 미칠 것 같다. 숨을 어떻게 쉬는 지 잊어버렸다.
죽이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살아남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그저, 이 세상 어딘가에서 평화롭게. 둘이서, 살아보고 싶었다.
사랑한다는 행위란
Ich liebe dich.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양손에 늘러 붙은 냄새가 지독하다. 피가 들러붙어서 지워지지 않았다. 반쯤 패닉에 빠진 상태로 계속 손을 닦지만 그래도 지워지지 않았고 계속 씻었다, 이성은 이미 피는 다 닦았다고 말하지만 손에 계속 늘러 붙은 것 같았고, 하염없이 계속 손을 닦고 기어코 울음을 터트리고 만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냄새가 지금도 남아있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 정돈 알고 있지만 그 후 얼마나 세월이 지났는가. 그래도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씻어도 가시지 않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런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건 이성은 이해하고 있다. 그래도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니, 그것은 씻어봤자 해결하지 않는 문제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일이다.
새로운 냄새를 씌우면 신경이 안 쓰인다는 것을 알 것은 그 후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렇게 나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스즈야는 뭐든지 사준다고 말했고, 난 늘 담배를 부탁한다. 스즈야에게 하는 부탁은, 그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날도 다 떨어진 담배 신청을 하러 갔더니 스즈야는 사주는 김에 말한다는 듯이 성가신 일을 나에게 떠맡겼다.
“얘~. 오이겐, 어차피 한가하지?”
스즈야는 악취미스런 이 수조가 있는 방을 맘에 좋아하였다. 시간이 나면 이곳에 있다. 미쿠마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소중한 미쿠마를 놓고 있는 방에 사방에 심해어가 보이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걸까.
“……한가하긴, 한데요.”
“그럼 신입 교육 부탁해.”
무척이나 짙게 탄 것처럼 보이는 커피를 스푼으로 휘저으면서 스즈야는 말했다.
“최근 건조된 애거든,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 하는 햇병아리야. 삐약삐약. 오이겐의 색으로 물들어버려.”
“아니, 그렇게 건성으로 일을 내던지는 경우가 어디 있나요.”
“내가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나?”
“없네요.”
“그렇지? 그럼, 잘 부탁해.”
고작 그것뿐인 대화이다. 고작 이런 대화로 무척이나 성가신 일을 맡게 돼버렸다. 건네받은 메모를 들고 그 교육 상대가 있는 부두까지 걸어갔다. 담배가 없기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났다. 내일은 새 담배를 받을 수 있겠지만 오늘은 담배없이 지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 갑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오산이었다.
스즈야의 상자 정원 같은 이곳 시설은 진수부와 흡사한 구조를 하고 있지만 생활하고 있는 인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 있던 격리 요양소를 반절 정도 작은 사이즈이지만 그래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방의 넓이는 주체를 못할 정도이다. 창문이 많기 때문에 개방감은 있다. 단, 무인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시설이기 때문에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바다밖에 없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좋은 날씨인 것 같았다. 저 멀리서 갈매기가 유유자적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바다와, 수평선과, 하늘과, 갈매기와, 구름. 색채 따윈 신경 쓴 적이 없었지만, 그런가, 저 빛깔은 언니의 눈동자 색이다, 그런 생각이 돌연히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은 나의 눈동자이다.
학교 수영복은 뒷모습이지만 인상적이었다. 과연 잠수함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째서 잠수함만 수영복차림일까? 그런 순수한 의문이 들었다. 그녀는 부두에 앉아 있었다. 내가 온 걸 눈치 챈 듯 돌아보고, 활짝 미소를 보여주었다. 인사치례로 한 미소라서 안심했다. 그녀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겐 붙임성 좋게 웃으면 된다는 양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확인이다.
“Guten Tag, 이(伊)8에요.”
“Guten Tag, 아, 어, 독일함이신가요.”
“아, 아뇨. 그런 건……. 주설정은 일본어이지만, 부속으로 독일어가 있어서요.”
“그런가요. 하아. Prinz Eugen이라고 해요. 일단, 독일함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스즈야가 데리고 온 사람치곤 정상적인 것 같아 안심했다. 우선 설명을 하기 위해, 조금 시설 안을 둘러보았다.
“설명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다만 1층은 은근히 넓으니까 해맬 지도 몰라요. 스즈야가 상하운동을 싫어해서요, 계단은 가급적 필요가 없는 시설로 만들었어요. 1층이 저희 주거 페이스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해요. 지하랑 2층은, 당신에겐 들어갈 권한이 없어요. 저도 지하 말곤 권한이 없지만요. 모든 것은 1층에서 해결할 수 있어요. 하고 싶은 대로 지낼 수 있어요. 가지고 싶은 것은 스즈야에게 신청하면 대부분은 입수할 수 있어요. 일용품은 차차 갖추어 나갈 텐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스즈야에게 신청해주세요.”
“으음, 근본적인 걸 물어봐도 되나요?”
“네.”
“이곳은 도데체, 뭔가요? 진수부론 안 보이고, …….”
스즈야의 말을 떠올렸다. 그런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 한다는 소릴 들었지만 설마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건가. 그렇게 되면, 스즈야의 의혹따윈 당연히 나는 모르고, 지금 함선 소녀들이 놓여 있는 상황도 모를 것이다.
응, 성가신 일을 떠맡게 되었다. 어디까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당신은 진수부 소속 쪽이 좋으셨나요?”
“으~응. 함선 소녀로서 건조되었으니, 그것이 평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닌가요?”
“아뇨. 확실히, 그렇지요. 이8씨가 말씀하시는 대로에요. 하지만, 이곳은 진수부가 아니에요. 제독은 없어요. 치러야 할 임무도 없어요. 함대라고 부를 정도로 함선 소녀도 없어요. 당신과 나, 스즈야, 카토리, ……그리고, 포함시켜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미쿠마. 이 시설에 한정된 건 아니지만, 오요도도 있어요. 이걸로 전부에요.”
“적네요.”
“적은편이 하기 쉬운 일도 있어요. 이런 팀은, 수없이 많은 진수부나, 그에 속하는 시설 중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단 하나도 없겠죠. 그 이유는, 차후 설명해드릴게요. 지금은 이 시설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시설에는 창문이 많이 있다. 언제나, 어디에서라도 볼 수 있다. 그 모든 것이 하늘과 바다뿐이다. 인간형은 아무것도 안 보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밖을 바라보는 것은 다소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언제나, 말하지 않는 것이 나를 안정시켜주었다.
“단, 만약 익숙해지고, 이곳의 방식이 당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분명 나가셔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스즈야는 분명 허가를 해주겠죠. 저희들은, 그런 것이 용납된 사람들이에요. 저는 애초에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이지만요.”
그렇게 말하자 이8는 살짝 시선을 떨구고, 뭔가 말을 하고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한동안 그녀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도 딱히,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게 할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사정으로 이곳에 왔는지는 모른다. 딱히 사정도 없이 흐지부지 스즈야의 손에 끌려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렇다면 이곳에 남던지 어디로 가던지는 그녀가 정할 사항이다.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저는, ……달리, 갈 곳이 없으니까요.”
아무래도, 뭔가 사정이 있는 쪽인 것 같다.
내가 깊이 관여할 사항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가요.”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생각하자니, 사정이 없는 배가 이곳에는 없고. 그건 그거대로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역시 내가 말할 사항은 아니기 때문에 방 앞에 서서, “여기가 당신의 방이에요. 키카드는 여기. 필요한 것이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요.” 카드 락 키의 카드를 건네주었다. 건네줄 때 그녀는 내 손을 보고, 장갑에서 심상치 않은 흉터가 힐끔 엿보인 것을 확인한 것 같았다. 살짝 놀란 표정을 짓고, 그녀는 내 얼굴을 보았다. 얼버무리는 것도 귀찮기 때문에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때가 오면 말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스즈야가 자기 멋대로 말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들, 지금 그녀가 알아야만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냄새가 신경 쓰인다. 담배가 피우고 싶다. 내일까지 버틸 수 있을까? 버틸 수밖에 없지만.
⍏
그 후, 이8를 그냥 방치를 해버렸지만 아무리 그래도 방만 가르쳐주고 맘대로 지내라고 놔두는 것은 다소 성의가 없지 않는가라고 생각한 것은 그 후 일주일이 가뿐하게 지났을 무렵이었다. 요 일주일 동안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에서 책을 읽거나 잠을 자던가 담배를 피우면서 지냈기 때문에 벌써 일주일이나 지난 건가라고 조금 놀랐다. 스즈야에게 일단 교육을 부탁 받았는데 전혀 하질 않았다. 그녀는 무사할까? 아니, 내가 아무런 질책도 받지 않았다는 것은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상황을 보러 가자. 그렇다, 옷은 신청한 것일까? 일 년 내내 실내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있는 것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방이 조금 먼 것도 문제다. 적극적으로 만나러 갈 맘이 안들만 하다. 내 방에서 그녀의 방까지 체감 시간으로 걸어서 5분은 걸린다. 뭐니 해도 부지라면 얼마든지 있는 무인도 위에 지어진 시설이라서, 1층이 너무 넓다. 큰 역 하나가 만들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넓이다.
실내 금연이란 규칙은 없기 때문에 걸으면서 한 대 태우기로 하였다. 도보 흡연은 좋지 않지만 그걸 탓할 만큼 인구밀도가 높은 건 아니다. 재와 꽁초만 자기가 처리를 하면 그 누구도 주의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점은 무척이나 좋다. 주머니에서 담배와 휴대 재떨이를 꺼내, 불을 붙였다. 창밖 경치를 바라보면서 심호흡을 하는 이 순간은, 나쁘지 않다. 나쁜 일만 있었던 내 인생에서 나름 안도할 수 있는 시간은 귀중하다. 언제나 나쁜 상황으로 몰고 가는 건 나 자신인데, 마치 남 일처럼 여기는 것이 신기하다.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일을, 다른 사람 일처럼 방관할 수 있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마치 내 일처럼 느껴지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 그런 것일까.
나 자신의 몸은 다양한 곳을 전전하며, 한자리에 머물러 진정시킬 곳이 없음에도 내 정신은 똑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알루미늄제 휴대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넣고, 덮개를 덮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실은 이8의 방 열쇠인 카드키는 나도 가지고 있지만(교육 담당이라서, 일단은 가지고 있다.), 그녀의 정신위생을 고려해서 천천히 노크를 하였다. 문을 연 그녀는 방문자가 나라는 것을 알고 무척 놀란 듯, 한순간 인사 하나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나요?”란 말이 왔다. 어라, 생각한 것 이상으로 나와 거리를 느끼고 있으시군.
“물건을 사러 가죠.”
“어, 뭐, 뭘 사러요.”
“당신의 일용품이에요. 스즈야한테 말하면 적당히 물색을 해주겠지만 가구 정도는 고르고 싶잖아요. 그리고 옷. 일 년 내내 수영복으로 있는 건 좀.”
“도, 돈 없어요.”
아마도 그녀는 원래는 자기 의견을 또렷하게 말하는 성격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어째서 계속 방치를 한 내가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인지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여 곤혹스러운 걸 것이다. 흐음. 좀 더 커뮤니케이션을 취하는 편이 좋은 것 같다.
“제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네!? 아니, 신세를 질 순 없어요.”
“어차피 스즈야한테 받은 급료에요. 당신이 스즈야에게 일용품을 신청한들, 그것도 스즈야가 돈을 내요. 똑같은 일 아닌가요.”
“그렇지만 그건 오이겐씨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닌가요?”
“딱히 쓸 용도가 없어서요.”
이8는 역시 아직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눈치였다. 이 이상의 문답을 나눌 시간은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조금 대꾸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어조로 “차를 내올테니까, 적당히 준비를 한 뒤 내려와 주세요.” 라고 말하기로 하였다.
“운전을 하시나요.”
“인간형이니까요, 그 편이 편리하잖아요.”
“여기 무인도이지요?”
“지하 터널이 있거든요.”
“에엣!?”
“지하에 들어갈 권한이 당신에겐 없지만 저는 있다고 말했잖아요. 그저 그런 것일 뿐이에요. 준비 해주세요.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아시죠? 이게 엘리베이터 이용 키카드에요. 그걸 써서 내려와요. 출구에서 기다릴 테니까요.”
“어, 에. 에에. 정말로 가시는 건가요?”
“정말이에요. 그럼 좀 있다 뵈요.”
억지로 그녀의 손에 카드를 쥐어주고 방을 떠났다. 나도 평소의 함선 소녀 제복 차림이면 그녀가 신경을 쓰고 말지도 모르기 때문에 갈아입을 옷과 자동차 키를 꺼냈다.
밖에 나가는 것은 오래간만이다. 그것도 인간이 많이 있는 곳으로 나가는 일은 도대체 얼마 만일까? 반갑게 느껴지기 보단 우울해지는 심정이 더 크다. 어쩔 수 없다. 이8를 위한 일이다.
찰칵, 소리를 내며 방문을 열었다.
이8는 아마도 스즈야의 취향으로 적당히 주어진 옷을 입은 걸 것이다란 생각이 드는 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스즈야가 좋아할 법한 복고풍 옷이다. 스즈야 자신은 자기가 입는 옷은 캐주얼하고 활동적인 옷을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입히는 것은 여자잡고 움직이기 힘들어 보이는 옷을 입히려고 한다.
그렇지만 뭐, 그녀가 지닌 분위기나 안경 따위가 복장 자체랑 잘 어울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딱히 감상을 말하지 않은 채 차의 조수석의 문을 열어 그녀를 재촉하였다.‘
“굉장하네요. 이런 곳이 있다니.”
“배로 이동하는 건 귀찮으니까요. 배인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한 말이지만. 인간형이니까 그것에 맞추는 편이 살기 편해요.”
월급을 쓸 용도가 없기 때문에 이유 없이 산 피아트가 다른 사람의 도움이 될 줄이야.
“어떻게 면허를 따셨나요? 함선 소녀는 딸 수 있는 건가요, 면허.”
“따려고 하면 딸 수 있지만, 꽤 귀찮네요. 인간보다 상당히 번잡한 수속 절차를 걸쳐야만 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스즈야에게 마련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 걸 할 수 있군요, 그 사람…….”
“뭐든 할 수 있어요, 스즈야라면.”
“함선 소녀가 면허를 딸 수 있다니, 시대는 진보되었군요.”
“그렇게 관리하고 법치 체제로 관리하는 편이 통제하기 쉬운 것뿐이라고 생각하지만요.”
십여 년 전, 함선 소녀는 어디까지나 도구로 간주되어 특설한 권리도 없었던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인신매매(함선 소녀 매매?)부터 시작해서 매춘, 약물 임상실험 따위 등, 정말로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비참한 대우를 받았던 시기도 있다고 들었다. 다만, 권리가 없다는 것은 동시에 의무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도구를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쿠데타를 일으킨 들, 잡히는 족족 해체하는 것 말곤 대처법이 없는 것이다. 문제에 수동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경위를 거쳐 현재는 인간 정도는 아니지만 함선 소녀에게도 어느 정도 자유나 의사결정, 권리나 의무가 인정되어 있다. 면허증이나 신용 카드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좋은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함선 소녀 문제는 많지만, 뭔가 문제를 하나 해결하면 새로운 문제 하나가 보이는 것은 도리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상황 속에서 변해갈 것이다.
어두운 터널을 하염없이 달렸다. 같은 풍경이 이어지면 졸려지기 때문에 좋지 못 하다.
받침대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잠을 깨우는 데에 딱 좋다.
“많이 피우시나요?”
그렇게 말문을 닫게 할 정도로 위압감을 줘버린 걸까? 마침 좋은 대화거리를 건네주는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 “하루에 한 갑 정도에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면 그녀가 혐연가라면 어쩌지. 이미 피워버린 것은 아까우니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일단 양 사이드의 창문을 열어두었다.
“카토리씨가, 오이겐씨의 행동 중 가장 그만두게 하고 싶은 게 담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겠죠. 그녀는 혐연가니까요.”
“그것도 그렇지만, 오이겐씨의 건강을 염려하셔서 그런 것이에요.”
이상한 소릴 말한다. 확실히 카토리는 스즈야의 명령으로 나의 신체 관리를 맡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가 나의 건강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그런 걱정을 받을 만한 몸도 아니다. 담배를 끊은들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이 상처투성이다.
“그건 그렇고, 그 담배 냄새가 상당히 독하지 않나요? 그런 것인가요?”
“아뇨, 이 브랜드가 유독 독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부러 그런 브랜드를 고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카토리는 끊게 하고 싶은 것이겠지만.
“자극이 쌘 것을 좋아하시는 군요.”
그런 소리를 듣고, 대답하기 힘들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좋냐, 싫냐 그런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독한 냄새로 얼버무리면 그 동안은 그 피비린내 나는 환후(幻嗅)를 안 맡을 수 있다. 피우는 이유는 고작 그것뿐이다.
긴 터널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리고, 시가지를 향해 엑셀을 밟았다. 적당한 쇼핑몰로 가면, 적당히 구하고 싶은 건 뭐든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평일이기 때문에 분명 아직 인간은 적을 것이다.
“와아, 굉장해.”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렇구나, 그녀는 이런 곳에 온 적이 없는 건가, 그런 생각이 미쳤다. 건조되고 나서 정말로 곧장 스즈야에게 거두어진 것일까? 아니면 어느 정도는 본부에서 살았다고 하여도 자유가 없는 생활을 보낸 것인가.
“처음이신가요?”
“아, 네. 저기요, 이제부터 어디로 데려가 주시는 것인가요?”
“쇼핑몰이요. 가구랑 옷을 살 수 있는 곳이에요. 그리고 책을 조금 사고 싶으니까, 사는 김에 책을 사려고 생각해요.”
“많은 걸 살 수 있군요. 굉장하다, 인간은 이런 식으로 생활하고 있구나.”
이8의 목소리는 즐거워 보였다. 창밖의 경치는 이미 인간이 사는 마을 풍경이었다. 빌딩이 보이고, 비슷한 차가 몇 대나 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평소의 우리들의 생활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함선 소녀도 이렇게 쇼핑을 해도 괜찮나요?”
“돈을 확실히 지불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어요. 그건 인간과 다를 게 없어요.”
“헤에, 굉장하다. 이 세상,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군요. 제가 모르는 사이에.”
그 감상은, 신기하게도 나의 마음속에서 자리를 잡았다.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다. 우리들의 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정말로 아름답게, 더러운 일, 추한 일은 그 무엇 하나 모르는 것 같다. 도회의 활기찬 풍경에 피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그것이 무척이나 기묘하게 느껴져서, 불안하고, 두루뭉술한 부유감이 드는 것 같았다. 인간의 세상 속은, 피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함선 소녀이기 때문에 신체능력은 인간과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하여도 몸의 사이즈가 인간의 소녀와 똑같은 이상 물리적으로 들 수 있는 짐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그 점을 생각하지 않았다. 무게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그녀의 새 옷이 담겨진 종이 가방에는 내 양손으로 들지 못할 양이 되어 있었다.
이8가 나에게 사양을 해선 안 된다. 좀 더 자유분방하게 대해주는 편이 편한데. 아무래도 나는 자유분방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익숙해진 탓에 이렇게 자기주장을 삼가려고 하는 사람 앞에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을 못 하게 되는 것 같다.
옷에는 흥미진진한데, 돈을 내는 것이 나라는 이유만으로 무척이나 사양을 하기 때문에 본인이 괜찮게 보고 있는 옷 중 나도 그녀와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은 보이는 족족 사버렸다. 자연스럽게 짐이 엄청난 기세로 늘어났다. 그걸 또 “제가 들게요.” 라는 소리를 하기 때문에 “그런 배려를 할 정도라면, 원하는 건 똑 부러지게 말해주세요. 그 편이 제가 훨씬 편해요.” 그런 사실을 말했더니 주눅이 들고 말았다. 정말 어쩌라는 것인지.
옷은 대강 갖추었다. 가구도 차에 넣을 수 있는 것에 관해선 샀다. 일단 차에 짐을 전부 놓고 난 뒤 뒤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오이겐씨는 뭔가 드시고 싶은 건 없나요?
“이8씨가 드시고 싶은 걸로 괜찮아요.”
“아, 으~응.”
지금은 어쩌면 나의 희망사항을 피력해야 하는 타이밍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여 “흡연석이라면 좋겠네요.” 그렇게 첨언을 하였다. 쇼핑몰 내의 음식점은 대부분 가족을 고려한 것들뿐이어서 점내 금연인 가게가 많아 결국 우리들은 값싼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점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여기라면 금연석과 흡연석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다.
자리에 앉아 담배를 물었지만 이8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느낌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가 좀 더 사교적이라고 할까, 명령하다고 할까, 말을 걸기 쉬운 성격이었다면 그녀도 이렇게 불편한 경험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그녀에게 다가는 것도 귀찮기 때문에 방치하였다.
나는 메뉴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뭘 골라야 정답일까, 그런 고민을 하였다. 평소에는 주어지는 식사가 정해져 있으며, 매일 정한 시간에 나오는 것을 남김없이 먹을 뿐이며, 능동적으로 식사를 고르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메뉴가 실려 있으면 난처해지고 만다.
“이8씨는 결정하셨나요?”
“아뇨, ……많이 있어서, 곤란하네요.”
“네. 저도 마침 그렇게 생각했어요. 카토리가 눈을 뒤집을 것 같은 몸에 나쁜 것만 시켜도 괜찮을지도 모르겠지요.”
“예를 들면요?”
“이 고추 포테이토 프라이라던가요.”
“매워 보이네요.”
“이런 햄버그 계통 요리라던가.”
“확실히 평소에는 안 먹죠.”
“시켜보죠.”
“그럼 저는 이 철판 고기 구기로 할게요.”
“그렇게 노골적으로 기름진 음식을 드시나요.”
“아~. 먹어 보고 싶어서요.”
결론을 말하자면, 평소에 먹는 음식이 자기 몸에 맞아서 맛있다고 느껴진다, 라는 것이 되지만. 시험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도전이었다. 나중에 체증이 쌓이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이다. 어떻게 됐든, 미각이 죽어있는 나에겐 그다지 다를 게 없는 일이었다.
“식사를 할 땐 정돈, 장갑을, 벗지 않나요?”
내 손을 보며 이8가 말한다. 평소랑은 전혀 다른, 사복에도 나름 어울리도록 얇은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나는 신경 쓰고 있지 않지만 본 사람은 다들 신경 쓴다. 그러니까 일단 이렇게 숨기고 있다.
“응, 아아……벗어도 상관없지만, 이목을 끌어버리고, 애들이 보면 우니까요, 버릇이 없는 사람이란 인상을 주는 것 만이라면, 그 편이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목을 끈다고요?”
“돌아가면 보여 드릴게요.”
“애들이 운다고요?”
“자자, 식사하죠.”
그녀에게 많은 걸 숨길 셈은 없다. 그저, 지금 말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오이겐씨는 신비한 분이세요.”
“지금,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많은 것뿐이에요. 언젠가 말해야 할 것은 말해드릴게요. 그 때는 시시하다고 생각하겠죠.”
“자신을, 싫어하시나요?”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요.”
이8는, 뭔가 송구스럽다는 표정ㅇ르 지었다. 왜 당신이 그런 표정을 하나요?
“저도, 저 자신을 좋아하지 많아요.”
사람의 콤플렉스에 뭐라고 할 셈은 없지만, 뭔가 마음에 둘 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말이지.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건조되었을 때, 저, 아무것도 못 해서……무엇보다, 지능 발달 미숙 경향이 있어 보인다고, 거기 있는 분에게 그런 말을 들었어요.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 건조되었을 때에는 글을 잘 읽지 못 해서요. 다들 보통은 초등 교육 수준의 지식은 보유하고 태어나는 데. 글자도 못 읽으니까요, 그렇겠죠. 잠수는 누구보다 잘 했지만, 도통 그 이외의 일은 잘 못 했어요. 그래서 저, 실은 폐기 처분이 결정되었어요.”
“그렇군요.”
“그걸, 스즈야씨가, 절 거두어 주셨어요.”
그녀의 태생이 스즈야의 기준에 맞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스즈야가 데리고 오는 인재에 제대로 된 것이 없다는 것은 그녀의 경우에도 준수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학습할 기회나 제가 있을 곳을 주신 점을 무척이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오이겐씨도 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시고요.”
“괜찮아요, 그렇게 뻔히 보이는 인사치례를 하지 않으셔도.”
“그렇지만, 제가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게 해주시잖아요.”
“일단은 일이니까요……”
“이런 식으로 대해줄 가치가, 저에게 있는지 없는지, 잘 몰라요. 이곳에 온 후, 잠수도 안하고 싸우지도 않는. 잠수함인 주제에.”
“언젠가 싸울 때가 와요.”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확정 사항이었다. 싸운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다소 지나치게 일방적인, 살육이 기다리고 있다. 눈앞에 있는 그녀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 죽이라는 명령을 받으면 죽일 수 있을까? 카토리가 그 정도 수준까지 [교육]을 할 것인가?
“당신이 그 때, 어떤 길을 고를 지는, 당신이 하기 나름이지만요.”
“저는, 스즈야씨의 명령이라면, 그에 따를 셈이에요.”
그건 무척이나, 올곧은 눈동자였다. 충성, 이라고 부를 정도로 미화시킬 만한 것은 아니지만. 눈에 비친 빛깔은, 그것과 비슷하였다.
“그렇게 긴 사귐도 아닐 텐데, 그건 참 대단하군요.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폐기 처분이 되면, 그건 제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과 똑같아요. 게다가 저는, 단 한 번도 진수부라고 불리는 곳에 배속된 적이 없었어요. 함선 소녀로서 실격인 절 살아도 된다고 긍정해주셨어요. 그런 사람의 명령도 듣지 못 하는 저에게, 저는 존재할 가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
존재할 가치. 그런가, 그것은 자기가 정해도 좋은 것인가. 나에겐 무척이나 어려우누 일이다. 죽으라는 명령을 받지 않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나에겐, 내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니를 죽였을 때에 멈추고 말았다. 그 무엇 하나, 그 뒤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다른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고, 이제 와서 생각해봤자 부질없는 환혹만 눈에 들어와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장식물처럼 그저 있을 뿐인 나에게 어째서 시간이 흘러도 앞날이 마련되어 있는 것일까? 차라리 누군가 날 죽여줬으면 싶다. 아무도 날 벌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준다. 미소를 짓고, 말을 걸어준다. 어째서. 누군가의 상냥함을 느끼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날 보고 미소를 지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안도를 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당신에겐, 당신의 의사가 있다는 것도, 충분히 알아주셨으면 하지만요. 스즈야의 명령이라고 해서, 뭐든지 들을 필요는 없어요.”
“오이겐씨가 그런 말씀을 하시는 군요.”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오이겐씨는 스즈야씨가 말하는 것을 가장 충실하게 지키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아, ……, …….”
생각해보면, 스즈야가 말한 것을, 많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스즈야는 단 한 번도 나의 생각을 소홀히 하는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스즈야의 명령을 들었다고 해서 불만이나 찝찝함이 잇는 것은 아니다. 자매를 죽인 것은, 나의 의사이고, 나의 의사였다. 나의 의사로, 지금도 나는 산산조각이 난 채이다.
“그러네요. 그렇다면, 자기의 의사에 삼켜지지 않도록 하세요.”
“네?”
“자기가 정하고, 자가가 실행하고, 모든 책임을 질 셈이었는데 나중에 가서 보니 그것이 후회가 돼서 미칠 것만 같은 일도 있어요. 그건 정말, 그 누구에게도 변명할 수 없는 일이에요.”
“뭔가 후회하시는 일이 있으신가요?”
이8가 내 눈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후회를 해도 그 한을 풀어내지 못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있다. 그것에 붙잡힌 잔해 같은 내가, 그녀에게 무슨 소릴 말하는 것일까?
대답할 수가 없다.
지독하게 냄새가 풍겨오다. 피 냄새. 담배가 있는데도. 어째서? 냄새가 날 들러붙는다.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언니의 피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꿈을 꿈다는 행위란
Du bist mein Ein und alles.
“안녕. 내가 너의 사육주, 모가미형 3번함, 중순양함 스즈야야. 너는 Admiral Hipper급 3번함, 중순양함 Prinz Eugen. 함선 소녀로서 태어난 몸에는 익숙해졌어? 너는 어쩌면, 앞으로 너는 어느 정도 훈련을 거치고, 진수부로 이동이 되어, 거기서 동료들과 친목을 나무며 절차탁마하며, 좌절을 하거나 고민을 하면서 적인 심해서함을 해치우고, 함선소녀로서의 직무를 다할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 그렇지만 아니야. 너에게 그런 미래는 마련되어 있지 않아. 적어도 나는, 마련해주지 않을 거야. 너는 거기, 진수부가 아니라 내가 마련한 특수 시험장에서 살아줘야겠어. 간단하게 말하자면 너는 검사받을 거야. 검사받는 것만으로 의식주가 확보되고 출격해서 굉침될 걱정도 없어. 좋은 대우지? 검사기간이 끝나면 또 다른 특수시험장으로 이동될 것, 같지만……그건 지금은 결정 사항이 아냐. 즉, 너는 거기서 네 뜻대로 나갈 수 없다는 걸 잘 이해해줘. 지금의 너에겐 말할 수 없지만 너에게 시키고 싶은 일이 산더미처럼 있고 너에게 시험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처럼 있어. 나의 추후 계획에 네 존재가 필수불가결이야. 그러니까, 멋대로 혼자서 판단을 하거나 혼자서 결론을 내리는 짓은 하지 말아줘. 왜냐하면 너는 인간형일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군함이야. 도구야. 인간이 만든 것이야. 그저 네 경우, 인간이 아니라 같은 군함인 내가 만들었다는 것뿐이야. 그렇다고 해도 도구의 본분은 변함이 없지. 너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널 자유롭게 놔둘 맘이 없어. 너의 존엄은 존중해주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광대가 되어줘. 날 위해서, 살아줘. 널 만들기 위해 나는 무척이나 고생을 했어. 쿠마노한테도 엄청나게 혼이 났어. 그만큼 고생을 해서 만든 너야.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날 마지막으로, 너에게 맡길 셈이야. 그러니까, 죽지 마. 한동안 나는 네 앞에 나타날 일은 없지만, 살아줘. 오만한 명령이지. 그렇지만 지켜줄 거지, 오이겐이라면. 바이, 바이. 또 맞이하러 갈게.”
진수부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 채로 그 특수 시험장에서 태어났다. 매일 혈액검사부터 시작하여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을 먹고, 때로는 구역질이 그치질 않게 되고, 때로는 귀에서 피가 나오고, 때로는 현기증이 나 쓰러지고, 때로는 지독한 명정감이 느껴지는 탓에 일어설 수 없게 되는, 의식주의 모든 것이 관리된 장소에서 살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특수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었다. 똑같은 처지의 함선 소녀도 몇 체나 있었고,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로 변경되었다.
어느 때, 정해진 시간의, 정해진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옆에 앉아있던 아이가 느닷없이 구토를 하고 목울대를 쥐어뜯으며 먹었던 것을 전부 토하고 바닥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금세 연구원들이 찾아와 그녀의 목줄기에 무언가 약을 주입하자, 그녀는 몸을 축 늘어뜨리며 얌전해졌다. 그 때는 그것만으로 끝났다.
다음날, 나는 투약된 약 탓에 고열로 몸져누워 간이침대에 눕혀졌을 무려, 그때의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옆에 있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팔은 찝찝하게 느껴질 정도로 새파랗고, 축 쳐져 있었다. 얘, 어제는 괜찮았어? 그렇게 나는 말을 걸려고 하였다. “얘.” 라고 내 입에서 목소리가 나온 순간, 축 늘어진 팔의, 이불에 덮여져 숨겨져 있던 팔뚝 부분이 힐끔 보였다.
전부 썩어있었다.
나는 지나친 열 탓에, 환각이라도 보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무서워서, 말을 거는 것도 싫어져서, 질끈 눈을 감고 이불을 머리부터 뒤집어썼다.
“얘.”
들려오는 목소리는, 무시했다. 아무도 나한테 말을 걸진 않는다. 이것은 환청이다.
“얘, 나 죽는 걸까?”
몰라, 그런 건. 나도 내가 살아남는데 필사적이라고. 네 일 따윈. 모른다고.
“죽고 싶지 않아.”
이건 환청. 이것은 환청. 이것은 환청이야.
“얘, 우리, 이런 식으로 죽으려고 태어난 거야?”
그 이후,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이불을 머리에 뒤집어 쓴 채였다. 머지않아서, 툭, 소리가 들렸다. 나름 질량이 있는 것이 바닥에 떨어진 소리였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주저하며 이불을 걷어냈다. 그녀를 보았다. 바닥을 보았다.
썩은 팔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때,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곳에서 하루라도 더 길게 살아남기 위해선 오만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연구원에게 아첨을 하기 위해 미소를 지어야만 했었고, 험한 일을 잘 피하기 위한 말도, 몸을 지키기 위해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도, 모든 것을, 가장해야만 했었다.
하루 더, 내일까지 살아남자, 그 생각만을 매일 매일 필사적으로 생각하였다. 미래를 꿈꿀 여유 따윈 없었고 스즈야라는 나의 사육주를 떠올릴 정도로 나의 생활에는 여유가 없었다.
어느 정도 처해진 상황에 여유가 있는 함선 소녀는, 나를 기피하는 여유가 있었고, 나를 골리는 짓은 하였다. 부조리한 이유로 맞은 적도 있고, 식사를 뺏긴 적도 있었고,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짓도 당했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는 일이라면 나는 뭐든 용서할 수가 있었다. 나는 해실거리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그녀는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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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짱 뒷바라지, 잘 봐줬구나. 응, 감탄했어.”
“그야, 스즈야가 내린 명령이니까요.”
“핫짱, 오이겐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어. 굉장하네.“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응~? 단순하게 오이겐은 착한 녀석인 주제에 나쁜 척을 한다고 할까? 냉정한 척을 하잖아. 그러니까 그런 오이겐을 좋은 녀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이겐이 핫짱에게 네 본모습을 보여준 때가 있다던가, 핫짱의 통찰력이 예리한 것이지. 어느 쪽이든, 좋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 거야.”
“이8씨가 낙관적인 것이에요.”
“것 봐~, 툭하면 그런 소릴 말하잖아. 뭐, 내가 그런 곳에 오이겐을 처박았으니 그렇게 돼버린 것이고, 내가 뭐라고 할 권리는 없지만.”
나는 원래부터 이랬어요, 그렇게 말하려고 하다가 원래의 나는 뭘 까라고 생각하고, 역시 입을 다물기로 하였다. 스즈야는 “오늘은 커피가 마시고 싶은 기분이야.” 그런 소릴 하며 무척이나 짙은 커피를 마시고 있다. 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오이겐, 억지로 먹으란 소리는 안 하지만,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뭔가 먹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목이 말라도 감각이 거의 없지? 그대로 놔두면 탈수증이 될 거야, 너.”
“과연.”
“갑자기 쓰러져도 골치 아프잖아.”
“그럼 저도 커피를 마시도록 하죠.”
“아자! 스즈야가 타줄게! 특별히.”
“……탈 수 있나요?”
“뭐야 그 눈. 날 의심하고 있는 거야.”
“……아뇨……그렇지만……스즈야잖아요……?”
“무진장 무례한 소릴 진지하게 말하지 마. 탈 수 있거든요~. 맛은 보장 안 하지만, 어차피 오이겐은 맛을 모를 테고, 보장하지 않아도 문제없고.”
“상관없지만요, 커피의 범주에 들어가는 걸 만들어 주세요.”
“뭐야? 나란 애는 그런 게 맛치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아니, 그런 일은 반드시 다른 사람한테 시키고 자기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으면서 살아온 인물이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렇지만 하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다고!”
“그럼, 뭐……불안하지만, 부탁드려요.”
어디선가 커피용 우유를 꺼내고, 유쾌하게 원두를 분쇄하는 스즈야. 의외로 제대로 만들고 싶은 것 같다. 드르륵 드르륵 원두를 갈면서 “있잖아, 오이겐.” 그리 말하며 스즈야는 말을 이었다.
“오이겐은 무진장 반대를 하겠지만, 오이겐한테 줄 선물이 있거든.”
“반대를 할 선물인가요. 비아냥인가요?”
“비아냥이라고 하면 비아냥인가. 그렇지만, 으~응. 나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할까.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한 건데 말이야.”
“과거형이라는 것은 이미 끝나버렸군요. 저에게 거부권은 당연하지만 없는 것이로군요.”
“없어, 응. 무진장 돈이 나갔으니까 이제 와서 취소는 못 해.”
“어, 그런 것인가요……우와아……알고 싶지 않아…….”
“다음 주 초에 있잖아, 올 거야. 마음의 준비는 해둬.”
“그 정도로 말해놓고서 다음 주까지 알지 못 하는 건가요, 저.”
“응. 실제로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뭔가, 무진장……께름칙한 예감만 드는데요.”
“그렇겠지. 응. ……그렇겠는데.”
스즈얀느 수조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완성된 커피의 수면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수조에선 그로테스크한 물고기가 흐느적 흐느적 헤엄치고 있었다. 페인트칠을 한 것 같은 징그럽게 느껴질 정도로 붉은 물고기나, 물고기의 그것 같은 지느러미가 있는데 뱀처럼 길쭉한 것, 비정상적으로 안구가 큰 것 등, 다양하다. 그 중 한 마리가 시야 한 구석에서 한 마리를 잡아먹고 있었다.
“오이겐, 요즘 이 녀석들한테 먹이를 주고 있는 것 같네.”
“네. 주면 안 되나요?”
“으응, 상관없어. 이 녀석들이 살든 죽든 나는 아무래도 좋거든, 정말로.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유를 몰라서 그런 것뿐이야.”
“왜냐니, 먹이를 안 주면, 서로 잡아먹어버리고 말잖아요.”
“새로 보충하면 되잖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이딴 건. 오이겐을 만들었을 때의 천분의 일 정도의 돈으로 백 마리는 여유롭게 만들 수 있어. 물고기에 함선 소녀의 유전자를 처박아서, 살아남은 녀석만을 잡아왔더니 이런 꼬락서니야.”
“그렇지만, 함부로 막 죽일 건 아니잖아요.”
“흐~응.”
스즈야는 그다지 납득이 안 되는 눈치였다. 나라고 한들, 확고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이겐은, 뭐랄까, 상냥하네.”
사람은 놀리는 듯한 말이었기 때문에, “그럴 리가요.” 라고 일단 대답을 하였다.
“오이겐의 자기인식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자기 자신에겐 장난 아니게 엄격한 주제에 다른 사람에겐 무척이나 너그럽다고 할까, 뭐랄까. 그래서 핫짱이 오이겐을 따르는 걸까? 흐~응, 흐~응.”
스즈야는 커피에 입을 대고, “역시 커피는 맛이 없단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도 만들어 달라고 했기에 마셔보았지만 아마도 맛이 없는 것은 커피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짙게 탔기 때문에 맛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미각의 대부분을 상실한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스푼으로 떠보아도 새카맣다. 지옥 빛깔처럼 짙다. 이래선 맛이 있을 리가 없다.
“맛이 없지만, 마시고 싶어져, 이렇게. 이상한 일이지.”
“그건 정말로 이상한 일이네요.”
나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뭔가 먹고 싶다던가, 마시고 싶다던가, 그런 감정이 내 안에선 도통 희박한 것 같아서 그다지 공감할 수 가 없었다. 예전에는 좀 더 무언가 있었던 기분이 든다. 내 안에, 좀 더 빛깔이 있었던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둔탁한 잿빛으로 보인다. 그것은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것일까?
“그런 건, 소중히 간직해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크게 깊이 생각도 안 하면서 그렇게 말하자, 스즈야는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짓고, 나를 달래듯이 웃었다. 스즈야가 이런 식으로 웃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기 때문에, 어째서 그런 것일까? 그런 의문이 떠올랐지만 금세 그것도 아무래도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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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비스마르크란 전함이 나타났다고 한들 나의 생활이 극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다. 변함없이 나는 주위에게 아첨을 떨며 하루라도 더 오래 살려고 하였고, 그 태도가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녀석들에게 잘 이해가 안 되는 박해를 받고 있었으며 변함없이 옆에서 발광을 하며 죽어버린 녀석은 있었다.
변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사건들을 봐도 옛날만큼 심란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저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체념이며, 일종의 관용이었지만 사태를 호전시킬 태도는 결코 아니었다. 마모되는 자신을 이 이상 닳아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처세술이었다.
모든 것이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비스마르크와 나의 검사가 함께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방이 그녀의 방과 똑같아진 때부터였다.
“얘, 프린츠. 너는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 하고 싶니?”
비스마르크는 이상한 소리를 나에게 물었다. 나갈 수 있는 보장도 없는데, 몰라요, 라고 대답한 나에게, “그러면 평생 여기서 나갈 수 없어. 마음이 이곳에 갇혀있는 걸.” 그런 소릴 하였다.
“나는 있잖니, 반드시 이곳에서 나갈 거야.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이 많이 있어. 이런 곳에서 죽는 건 죽어도 싫어. 내 긍지를 더럽히고 싶지 않아. 같이, 언젠가 나가자. 얘, 프린츠. 나, 너랑 많은 곳을 가고 싶어. 둘이서 자유롭게 사는 거야. 그건 근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나는 그 날을 사는 데 필사적이었고 가능하면 내일도 살고 싶어서, 그걸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산지 얼마나 되는 세월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미래를 보여주었다. 무서울 정도로 좁았던 나의 세계가 소리를 내며 넓혀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무섭기도 하였지만 순수하게, 기뻤다.
둘이서 언젠가 하고 싶을 일 목록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만이, 나의 마음은 평화로웠고, 아무런 부담 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런 순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마이, 나의 마음을 구원해주었다. 정말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친애를 담아 언니라고 불렀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불렀지만 그녀 같은 가족이 있다면, 분명 행복했을 것이 분명했다.
함선 소녀에게 가족 따윈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꿈꾸는 것 정도는 자유로울 것이다.
오늘, 또 방에 돌아오고, 언니랑 이야길 할 거야,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 분명 말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약을 먹어도 어떤 고통이 나를 덮쳐도, 한순간의 인내라고 생각하고 버틸 수 있었다. 언니와 지내는 시간이, 나를 어느 정도 강하게 하였다. 이거라면 분명 언젠가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비굴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내일을 확신하고 있었으며, 우리들의 미래를 절망하고 있었다. 그것은 절박한 감정이 아니라, 기쁨으로 가득 찬 희망이 존재하는 감정이었다.
--지금에 와서도 미칠 정도로 후회되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을, 짜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희망은 금세 들통이 났고, 그리하여, 금세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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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루고 싶은 것은 뭔가요?』
언젠가 받았던 똑같은 질문을 미쿠마는 유쾌하게 나에게 던졌다.
“스핑크스 같군요.”
『아이참. 미쿠마는 당신을 잡아먹지 않아요. 애초에, 그런 입도, 소화기관도, 그 어디에도 없답니다!』
말투는 화를 내고 있었지만, 그 어감은 무척이나 즐거워 보인다. 표정도 음색도 없는, 단순한 함성 음성인데 이렇게 풍부한 감정 표현을 내는 목소리는 만가기 힘들 것이다.
『못 찾았나요? 아니면, 생각할 마음이 없었던 걸까? 아아, 당신의 경우에는, 잊었다, 라는 것이 타당할까요.』
“스핑크스라고 한다면, 제가 정답을 대답하면 당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해요. 그러니까, 대답하지 않는 것뿐이에요.”
『무척이나 유머러스한 분이셔요. 그렇다면, 제가 죽어도, 당신은 언젠가 비참한 삶을 살겠지요. 오이디푸스처럼, 잃을 곳을 잃고서.』
“있을 곳, 이라.”
지금도 있다고 부를 수 있을지 없을지. 나는 언제나 어느 곳에 있었고, 나름 살아왔지만, 다음 순간에는 다른 곳에 있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닌 것이다.
“이루고 싶은 일 따윈, 없어요. 아무것도요. 이곳에 있는 수조 속 물고기들도,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본래의 모습에서 몇 배나 거대화시킨 바이퍼 피쉬가 자기보다 작은 은상어를 잡아먹고 있었다. 먹이를 주어도, 약육강식의 세계에 있는 것은 변함없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큰 의미는, 없다.
“옆에 이런 수조가 놓여있는데, 아무런 생각도 안 드시나요?”
『그야, 똑같은 수조에 들어있다면, 무서워서 비명이라도 지를지 모르겠지만, 그저 옆에 있는 것뿐이에요. 쿠마링코는 이래 보여도 용감한 소녀라고요.』
“용감하다란 말과 유들유들하다는 말은 동의어가 아니에요.”
『어머나. 지독한 말씀이셔요.』
“그저 거대한 것 이외엔, 특수한 수조로는 보이지 않는데, 어째서 그들은 살아있는 것인가요?”
『그들이 특수한 것뿐이에요. 제1세대의 세포를 조합시킨 심해어래요. 그들은 얕은 바다에서도 살 수 있는 강인한 몸을 손에 넣었어요. 아, 멋져라!』
“…….”
『뭐, 단순한 스즈야의 악취미의 연장선상이에요. 후후. 짐작 가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먹이 사슬따윈 존재하지 않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뿐인 심해 세계. 심해와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살아가는 그들.
『태어날 곳을 고른다면, 그런 생각을 그들이 한다고 생각하세요?』
“그 이외를 모르겠죠. 빛을 몰라. 모른다면, 부러워 할 일도 없죠.”
『그런가요. 후후. 그럼 그들이 얕은 바다의 물고기를 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질투에 미쳐 날뛸까요? 분명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심해어인걸요. 심해말곤 살 수 없기 때문에 심해어인걸요.』
“…….”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고 오늘도 살아가겠죠. 내일은 더욱 강한 자에게, 그 강자가 잡아먹힌다. 그 반복.』
“……무슨 말씀이라도 하고 싶으신 것인가요?”
『아뇨? 저의 단순한 망언이에요. 흘려들어 주시와요.』
태어날 곳을 고른들, 분명 똑같은 장소를 고를 것이다. 그곳 이외엔 산 적이 없으니까, 그곳외엔 살 수가 없다. 희망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나가본들,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비참한 죽음뿐이다. 혹은 그것보다 더 비참한 삶뿐.
『그런데, 비스마르크씨가 스즈야에게 고용된 것 같아요.』
“네,……?”
『어머나, 못 들으셨나요. 그 애도 참 짓궂네요. 가르쳐주면 될 텐데.』
“잠깐만요, 무슨 말인가요?”
『당신도 아시듯이, 비스마르크씨가 살아있다는 것, 아아, 표현이 좀 잘못 되었군요. 당신이 잘 아는 비스마르크씨의 뇌가, 다른 비스마르크씨의 몸에 이식되어, 연명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계셨죠. 그 비스마르크씨를, 스즈야가 드디어 소재를 파악한 것이에요. 진수부 소속이 아니라 다행이었어요. 돈으로 고용할 수 있는 용병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스즈야가 계약을 했어요. 정식으로. 쿠마링코는 그렇게 들었어요.』
“그건……스즈야는, 어째서 그런, ……황당무계한…….”
『왜? 어째서 그렇게 싫어하세요? 완전히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와서 만나서 무슨 이야길 하라는 것인가요.”
『뭐든 하면 좋잖아요. 쌓인 이야깃거리도 있는 것이 아닌가요?』
“아무것도 없어요. 이제 와서, 새삼 만나고 싶지도 않아요.”
『어머나 참. 딱딱하신 분.』
그런 일이, 일어나버리고 마는 일은 상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만큼은 성질 나쁜 장난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스즈야가 말했던 선물은 이건가? 그렇다면, 그 성질은 터무니도 없이 지독하다. 최악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저질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 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뭘 이야기 하라는 것인가? 언니가 어떤 모습이라고 해도 살아있다는 것은, 그런 미래가 분명 있었다는 것이다. 죽이지 않아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어리석은 탓에 죽이고, 나만 태연작약하게 살아남고, 이제 와서 무엇을 사과하란 말인가?
만약 가령, 그 사람이 지금의 나를 알면 어떻게 될까? 정말로 상냥한 사람이다. 정말로 섬세한 사람이다. 내가 이런 모습이 되어도 비참하게 삶을 이어나가는 이유를 분명 자신의 죄로 받아들이고 말 것이다. 그런 짓을 시키고 싶어서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아니다.
내 일일랑 기억의 파편조차 없이 잊어버려줬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그것이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한 일도 될 텐데. 모처럼 살아남아준 그 사람의 앞에 있을 미래에, 왜 내가 아직도 그 뒤를 따라다니며, 먹칠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서로 남으로서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인가? 이제 아무것도 모른 척을 하고, 전혀 다른 프린츠 오이겐인 척을 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스즈야는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해버렸을까?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봐요, 오이겐씨. 저, 생각했는데요, 당신은, 너무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게 아닌가요? 현명한 분은, 다들 그래요? 당신은 결론을 내리는 것이 너무 조급해요. 어쩌면, 당신이 아닌 누군가가, 당신의 기준선을 짓밟음으로서, 변해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것도, 모두 다 들여보내라는 말은, 한 건 아니잖아요. 당신의 소중한 사람만 들여보내라고 말하는 것뿐인데, 어째서 그것조차 거부하는 것이에요?』
다 이해한다는 듯한 말은 하지 마라. 그런 식으로 잘 할 수 있다면, 이런 일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뭐든 나는 요령 좋게 할 수 없다. 모든 일에 무력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름대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날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거야?
“……심해말곤 살 수 없으니까, 심해어이지요. 그런 방식 이외엔 살 수 없으니까, 이런 식이에요. 이루고 싶은 일 따윈 생각한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런 건 없어요.”
나에게 뭘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인가.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하는 거냐고.
소중한 사람을 죽이게 했을 뿐이다. 소중한 사람을 죽였을 뿐이다!
이제 와서, 나에게, 뭐가 남아있다는 것인가.
⍏
정말로 스즈야가 말한 대로, 다음 주 초 무렵에 전함 비스마르크가 이 시설에 찾아왔다. 나는 무척이나 우울한 심정에 젖어들면서 일단 인사는 하고, 그 후 방에 틀어박히는 작전에 나섰다. 듣자하니 주 3일, 이곳에 고용되었다고 들었다. 그 중 이틀은 이러니저러니 스즈야가 시킨 일이 있는 것 같다. 그녀가 이 이설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주 1일뿐이다. 그 1일을, 외출을 하거나 방에서 나가지 않기만 하면 그만이다.
아주 조금 이야길 했다.
그 날 이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똑같은 비스마르크의 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날 이후 그 무엇 하나, 무엇하나 상실된 것이 없는 긍지가 분명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름을 불린 것만으로도, 혀를 깨물어 버릴 뻔 했다. 기쁘게 여기는 나 자신이 있었다. 뻔뻔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애써서 쌀쌀맞게 뿌리쳤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소릴 할지 모를 나 자신이 있었다.
인간과는 다른 함선 소녀에겐 정말로 터무니도 없는 생명의 실체가 있다. 확실히 죽었던 것이 분명한 언니가 눈앞에 있다. 그것은 현기증이 일 것 같은 사실이었다. 무엇을 근거로 그 개체를 그 개체라고 인식하는 것일까? 위대한 인간님이 쓰신 논문에나 있을 법한 주제이다.
나도, 그런 것은 확실히 알 순 없지만. 그 사람을 보았을 때, “아아,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그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단순한 착각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나에겐, 뚜렷한 윤곽으로 명확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인식이란 그 정도에 불과한 걸 것이다. 그 정도의 것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는 것이다.
방에서 멍하니 담배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때, 작고 망설이는 듯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그 노크 소리를 보아, 이8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대답을 하려고 했을 때, “얘.” 들린 그 목소리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것은 언니의 목소리였다.
“저기,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 대답도 해주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거기에 있지? 다른 데에는 없는 것 같았고, 분명 있을 테니까, 있을 거라고 믿고, 지금 말을 걸었는데. 으음, 대답은 안 해도 돼. 정말로. 내 멋대로 이야길 하는 것뿐이니까.”
나는 손바닥으로 담뱃불을 움켜서 껐다. 상처투성이 손바닥에, 또 하나의 작은 화상 자국이 생겼지만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도, 스즈야한테서 여기로 오란 말을 듣고, 그리고 네가 있다는 걸 들었을 때, 무슨 이야길 해야 할지 몰랐어. 우리들은……응, 복잡한 일이 일어났고, 그 일들을 자기 일이면서 전부 파악하는 건 어려웠으니까. 그렇지만 너랑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많은, 정말로 많은 감정이 내 가슴 속에 생겨났는데, 그 감정들은 아름답지 않은 색채를 띠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너랑 만나고 싶었어. 정말이야.”
이것은 나의 꿈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들었다. 이렇게도 많은 말이, 언니가 나에게 건네주셨다는 것이, 그저, 그저 신비하게 느껴지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너에게 있어선, 그렇지 않았구나.”
숨이 멈출 것만 같았다.
심장을 꿰뚫린 것처럼, 저릿한 통증이 일었다. 어째서.
그렇지만, 그렇지만.
아니에요, 그렇게 외칠 수 있다면.
아니야, 언니, 오해하지 말아줘요.
그렇지만 나에게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당신을 죽인 나에게, 이제 와서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리?
당신의 모습을 바꾸게 하고, 그래놓고서 이렇게 뻔뻔하게 살고 있는 나에게, 당신에게, 뭘.
“나는 너에게 모든 짐을 짊어지게 하고, 모든 것을 네 탓으로 하고, 혼자서 편하게 살았다. 그 탓에 네가 어떤 심정으로 살아왔는지, 나는 알 수 없어. 널 위한 일이라면, 나는 어떤 속죄라고 할 셈이었지만, 분명 그 자격도 없겠구나. 그건 정말로, 나의 오만한 생각이었어. 용서해달란 말은, 안 할게. 너에게 사과해야 했었어. 그런데, 고맙다는 말한 그 때부터,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짊어지게 말았구나. 얘, 그렇지만……우리, 그 밖에 좀 더, 다른 길은 없었던 거니? 이런 식으로 되어야만, 했었던 걸까? 얘, 나는 어떻게 했으면 좋았었니? 어떻게 하면 너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었어? 이제 모든 게 다 늦은 거니?”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나는 당신에게, 언니에게, 그런 말을 하게 만들고 싶었던 게 아냐.
나에게 사과를 해주길 바란 게 아냐. 후회하길 바란 게 아냐.
내 일일랑 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주길 바란 것뿐인데.
그것도 그럴 것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내가 당신을 죽인 건, 무슨 짓을 한 들 뒤집을 수 없는 사실인데.
이젠, 당신을, 볼 면목이 없어.
많은, 정말 많은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당신 탓에 그 후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그래도 최소한의 속죄로 당신의 장기를 전부 이식받았다고?
그 탓에 강해졌지만, 몸에 가는 부담도 너무 심해서 오래 살지 못한다고?
당신이 없어지고 난 뒤 자포자기에 빠져서, 부담만 늘어나는 생활을 계속 하고, 몸 이곳저곳이 이미 한계라고?
사는 게 이젠 싫다고?
죽을 곳이 없어서 죽지 않는 것뿐이라고?
스즈야가 명령을 하니까 그에 따를 뿐이라고?
죽으라고 말하면 죽을 셈이었다고?
왜 내가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내 미래 따윈 조금도 그릴 수 없다고?
그딴 걸 이 사람에게 말해서, 뭐가 즐겁다는 거야. 이 빌어먹을 쌍년아.
“널 좋아해, 프린츠.”
날, 미워해줘.
당신의 호의를 받을 가치가 없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해줄 가치가 없어. 당신을 좋아해도 될 자격이 없어. 당신을 그릴 자격이 없어. 언니, 차라리 실망해. 이 세상에서 가장 미워해줘. 그렇게 해주면, 아무런 부담 없이,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웃을 수 있는데.
그 때, 고열로 시달리다가 죽어버릴 걸 그랬어. 그 때, 썩어서 떨어진 손을 보고 패닉에 빠지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죽을걸 그랬어. 연구원에게 아첨을 떨지 말고 죽을걸 그랬어. 같은 연구대상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받다가 죽을걸 그랬어. 내일까지 살자는 생각따윈 하지 말고 죽을걸 그랬어.
그 때, 언니랑 같이 죽을걸 그랬어.
처음부터 나 따윈, 태어나지 말걸 그랬어.
살아있기 때문에, 언니랑 만나고. 살아있기 때문에, 언니를 죽이고. 살아있기 때문에, 격리 요양소에 가고. 살아있기 때문에, 스즈야의 부름을 받고. 살아있기 때문에, 이8의 뒷바라지를 보고. 살아있기 때문에, 언니에게 이런 말을 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서 죽는 것도, 나는 하지도 못 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론 그 무엇도 못 한다. 누군가를 위한 행위가 아니면, 할 수 없다. 누가 내린 명령이 아니면, 못 한다.
있잖아요. 언니. 저한테 죽으라고 말해요. 지금 당장 매도랑 함께 죽으라고 말해요. 매도를 하지 않아도 좋으니까요, 그저 단 한 마디, 작은 목소리로 말해도 좋아요, 죽으라고 말해요. 그러면 전 죽을 수 있어요. 분명 죽을 수 있어요. 아무런 미련 없이 죽을 수 있어요. 그렇게 해야만 해요. 지금 당장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돼.
그런데, 당신은, 문 건너편에서, 흐느끼고 있을 뿐이야. 그 긍지 높은 전함 비스마르크가 울고 있어. 나 때문에. 나의 생(生)에.
이상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엇부터 엇갈리기 시작한 것일까?
울고 싶은 건, 나야.
그렇지만 이젠 눈물도 안 나와.
당신을 죽였을 때, 우는 건 이제 지치고 말았어.
난 이젠 지쳤다고.
많은 걸 했어.
당신을 죽이고, 나는 지치고 말았어.
이상해.
당신을 울리고 싶은 게 아니었어.
당신은 웃어주길 바랬어.
정말이에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당신이 웃는 얼굴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니까.
웃어줘.
어째서 우는 거야.
당신을 울리고 싶지 않아.
당신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왜냐하면, 언니.
나, 언니를, 사랑해――, ――, ――.
꿈을 꿨다. 나와 언니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있다. 우리들은 함선 소녀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꿈을 꾸었다. 아마도, 우리들은, 웃고 있었다.
우웅우우우웅, 멀리서 무언가가 준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가, 끝날 때가 온 것인가, 멍하니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너무나도 덧없고, 아무런 전조도 없이 찾아온 종막에, 깊은 감개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겨우 끝날 수 있다, 그런 안도가 더 컸다.
“함선 소녀가 어떻게 하면 확실하게 죽는지 아시나요?”
오요도는 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서 앉은 채 조용히 말하였다. 그 손에는 손도끼가 보였다. 큰 손도끼다. 목 정도는 간단하게 쳐낼 수 있을 정도로.
“글쎄요. 적어도, 가슴을 찢어발기면 죽었지만요, 경험상으론.”
“그렇지만 그녀는 살아있어요. 장기는 당신의 안에, 뇌는 새로운 비스마르크의 안에.”
“그 정도론 죽지 않는다는 것인가요.”
“네. 썩어도 함선 소녀. 그렇게 간단하게 죽지 않아요. 죽지 않는 함선 소녀 계획은 아시고 계시지요. 죽지 않는 함선 소녀를 만드는 그 계획은, 기이하게도 죽음을 판단하는 좋은 샘플이 되었어요. 어떻게 하면 함선 소녀가 죽는지, 인간은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인간의 수하인 당신도 잘 알고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신세를 졌어요. 프린츠씨,”
날 보는 오요도의 눈에는 아무것도 비추어지지 않았다. 탁한 늪 같은, 오탁이 들어차 있을 뿐이었다. 그녀 또한, 분명 도망칠 수 없는 탁류 속에서, 깊은 이유도 찾아내지 못 한 채, 날 죽일 것이다.
“제1세대가 아닌 함선 소녀를, ……처음 제2세대를 만든 인간은, 이렇게 될 것을 예측했었던 것이겠죠. 언젠가 함선 소녀가 인간을 배신할 것일.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배신하지 못 하도록, 모든 함선 소녀에게 시간제한을 설정하고, 거기에 더해 인간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자폭 코드를 마련했어요. ……프린츠씨. 당신은 기밀사항에 접촉하고,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지나치게 많이 아셨어요. 특정 진수부에 소속도 하지 않으며, 인간에 대한 공헌도가 무척이나 낮고, 반사회적 사상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되었어요. 또한, 인가되지 않은 개조를 받아, 함선 소녀 개조 금지 조약에도 저촉되고 있어요. 그에 따라, 당신에게 파기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그런 거창한 말씀 하지 않으셔도, 이젠 몸이 안 움직여요. 굉장하네요, 이거. 자폭 코드란 건 뭔가요?”
“인간의 혈액을 함선 소녀의 체액에 직접 중비시키는 것이에요.”
“오후의 카토리씨가 한 신체검사 때인가.”
“일단 해명을 하자면, 카토리씨는 아무것도 모르세요. 제가 바꿔쳤을 뿐이에요. 미쿠마씨도 이미 생명 유지 장치는 크랙킹 했어요. 카토리씨는 이후 처리되지만, 이미 손을 쒀뒀으니 제가 할 일은 없겠지요.”
“이상하네요. 스즈야가 그렇게 간단하게 무너질 시스템 만들 거란 생각은 안 드는데.”
“유감스럽지만, 전 혼자가 아니니까요.”
스즈야는 이것을 허가한 것일까? 아니면, 아아, 쿠마노인가. 그렇구나……스즈야는, 마지막까지 쿠마노의 일에 대해서, 깊이 알려주지 않았다. 내 임무는, 이걸로 끝난 걸 것이다. 길었지만, 이제, 괜찮을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아, 드디어. 드디어, 편해질 수 있어.
죽은 들, 언니랑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은, 지금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참이다. 내 이름으로, 그 생을 더럽힐 필요도, 이젠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무척이나, 상쾌한 기분이었다.
전함 비스마르크는 살아있다. 그 무엇에도 더럽혀지지 않은 채, 고결하게 살 것이다. 음침한 죽음은, 이젠 그녀를 속박하지 않는다. 긍지를 위해, 죽일 일도, 이젠 없는 것이다. 그녀를 죽인 것에 대해 내가 언제까지 늘어 잡고, 있었을지도 모를 미래를 모색할 필요도, 이젠 전혀 없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돼버리든, 그 사람은 살아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충분히, 나는 나의 생을, 구가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남기실 말씀은 있으신가요?”
“그렇네요, ……아뇨. 겨우 죽을 수 있다,고, 안심했어요.”
“그럼, 부디, 편안히.”
아아, 그렇다. 내가 없어지면, 누가 그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줄까? 서로 잡아먹는 것 말곤 재주가 없는 그들. 마지막 한 마리가 될 때까지 서로 잡을 먹을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한 마리는 굶어죽는 것이다. 심해에 태어난 탓에. 그곳 말곤, 살아갈 수 없는 탓에. 아아, 이건 곤란한 걸. 그들을 죽도록 놔두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누가 그들에게 먹이를 줘. 그들은 딱히,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것이 아니야. 살아가기 위해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고, 그곳 말곤 살아갈 수 없었던 것뿐이야. 그들은 그곳 말곤 살 재주가 없다고.
――얘, 우리, 이런 식으로 죽으려고 태어난 거야?
분명, 아니야.
그런 식 이외엔 살 수 없으니까, 그런 식으로 죽어버리는 것뿐이다.
“물고기에게 먹이, 줘야하는데.”
--쿵
―End.
평소와 변함없는 시간에 그 시설에 찾아온 비스마르크가 본 것은,
부서진 수조, 산산조각, 해체된 팽대한 장치, 나뒹구는 뇌편, 눈알, 침대 위에 목과 동체가 절단된 채로 조용히 누워있는 중순양함의 주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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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소설은 괴기냠냠님이 보내주신 소설을 번역한 작업물입니다.
원본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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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번역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 내가 치고 있는 문장은 무엇인가,
감기약에 취해서 뭔가 문장을 치고 있는데...초벌 번역은 어제 완료하였고, 오늘 한 번 읽어보면서 오류가 있는지 확인을 했지만...아마 다 나으면 한 번 더 해야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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