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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코레/소설

함대콜렉션 -칸코레- 카게로, 발묘합니다! 2권 제4장 전진 반속

4장 전진 반속

 

도착 예정 시간보다 상당히 이른 시간에 제14구축대는 귀항하였다.

카게로는 유조선을 다른 항구로 호송하고 부두에서 서둘러 올라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 함선 소녀들이 뭉쳐있었다.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저기! 마야씨이신가요?”

 

붉은 리본을 한 여성이 돌아보았다.

 

, 카게로냐?”

. 시라누이는......”

“......, 내 말 잘 들어둬.”

 

마야는 천천히, 말을 씹어 음미하듯이 말했다.

 

정찰은 성공했어. 적의 우두머리가 있는 위치도 판명됐어. 하지만......시라누이와 타카오는 행방불명이야.”

 

카게로는 몸이 휘청거렸다. 과장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마야가 황급히 일으켜 세웠다.

 

정신 똑바로 차려. 굉침한 게 아냐. 분명 살아있어.”

 

그녀의 말은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카게로는 마야에게 매달렸다.

 

어디에......어디에 있나요!?”

적의 우두머리 근처야. 묘코가 아타고와 교섭해서, 고속수복재 사용과 재출격 허가의 인가를 받으러 갔어. 항모쪽 사람들도 함대에 편성해서......”

저도 갈게요! 아타고씨에게 허가를 받고 올게요!”

, !”

 

마야의 만류하는 목소리도 듣지 않은 채 카게로는 달려갔다.

아타고는 부두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은 중순양함 묘코이다. 그 밖에도 비행갑판을 장착한 항모가 있었다.

 

부탁드립니다!”

 

다가가자마자 카게로가 외쳤다.

 

14구축대의 E해역 출격을 허가해주세요!”

 

묘코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시라누이를 구하고 싶어요!”

 

아타고는 묘코와 나누던 대화를 중단하고 카게로를 향해 돌아섰다.

 

군체의 중심함을 칠 계획은 이미 수립이 다 되어 있어요. 시라누이와 타카오의 구출도 그 계획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안심해주세요.”

그럼......”

당신들은 호위 임무를 끝낸 지 얼마 안 되었잖아요. 쉬는 편이 좋아요.”

 

구출할 의도는 있다. 다만, 14구축대를 출격시킬 셈은 없다는 것이다. 카게로는 물고 늘어졌다.

 

피로 따윈 상관없어요! 저희들도 참가시켜주세요!”

난처하네요......”

 

아타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묘코가 힐끔, 그녀에게 시선을 넘겼다.

 

“......좋아요.”

 

아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속전함을 중심으로 편성한 함대와, 마야, 묘코, 이스즈를 중심으로 항모를 포함한 함대가 출격해요. 파상공격을 치루는 사이에, 주변을 수색해주세요. 아무쪼록, 당신들은 심해서함을 공격하지 않도록 하세요. 공세에 휘말려도 도와줄 여유는 없으니까요.”

!”

수색은 다른 구축함과 협력하면서 하셔야 되요.”

알겠습니다!”

 

카게로는 기세 좋게 경례를 한 뒤 뛴걸음으로 부두로 돌아갔다.

14구축대 멤버들이 걱정스러운 기색을 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다급한 어조로 상황을 설명했다.

 

바로 출격할 거야.”

 

카게로는 대원들에게 말했다.

 

배가 고프면 10분 이내로 식사를 끝내줘.”

 

불만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아케보노만이 질문을 던졌다.

 

카게로, ......괜찮아?”

괜찮다니, 뭐가?”

, 분위기 이상하지 않아? 괜찮아?”

나는 평소랑 다를 바 없어. 열혈 근성에 기운차지. 아케보노가 날 걱정하는 게 더 이상하다고.”

괜찮다면 상관없지만......”

 

카게로는 이미 아케보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작전의 세부안을 짜기 위해서 아타고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캔에 연료를 보충하고, 탄약을 채운다. 그 뒤 발묘하였다.

 

양현 전진 원속!”

 

카게로는 호령하였다. 사실은 기관 최대 전속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아타고가 독주는 하지 말라고 엄금하였다.

앞서는 마음을 어떻게 억제하며 전진하였다. 도중, 거대 심해서함 두목이 남방서전귀라고 명명된 것을 알았다. 그 외에도 제5항공전대를 중심으로 기동부대의 참가도 결정되었고, 제독이 현 보유 전력의 대부분을 투입할 심산이라는 것도 알았다.

이 정도의 전력이 있다면 남방서전귀에게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게로의 관심은 그런 게 아니었다.

시라누이 걱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었다.

 

카게로, , 카게로. 부르고 있잖아.”

 

사츠키가의 부름에 그녀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뭐야?”

속력을 좀 너무 냈어. 좀 더 진정해.”

원속 유지하고 있잖아.”

() 20 정도는 되는 거 아냐?”

 

주기의 회전수를 지나치게 올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확인해보니 20은커녕 25까지나 올린 상태였다.

회전수를 낮추려고 하였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길을 앞서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양현 전진 제1전속!”

 

참지 못 하고 속력을 올렸다. 기관전령기(機關傳令機, Engine Rating)가 키잉거리며 소리를 울렸다.

튕겨져 나가듯이 몸이 앞으로 기울였다. 후속함인 사츠키가 입에 거품을 문 것처럼 말했다.

 

멈춰, 그래선 마야씨 함대랑 마주치고 만다고!”

그래도 상관없어!”

 

이미 카게로에게 속력을 늦출 마음은 없었다. 앞 말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해서함이 우글거리는 E해역. 자신의 파트너가 있을 해역.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한다.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들린 뒤, 무선에 음성이 파고들었다.

 

[......남방서전귀를 포함하는 적 함대 발견......굉장한 수야......공격, 공겨억!]

 

아군이 접촉하였다. 귀를 기울이면, 희미하게 포성이 들렸다.

 

최대전속!”

 

속력을 더 올렸다. 물보라가 거세게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얼굴에 닿는 바람이 따가울 정도였다.

전방에는 몇 개의 작은 섬과, 수많은 폐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옆에 몇 명의 함선 소녀의 모습이 있었다.

 

마야씨!”

 

카게로는 다가갔다.

 

수색은 어떻게 되었나요......!?”

진정해. 지금 항모들이 남방서전귀와 교전하고 있어. 우리들은 그 후 공격 할 거야.”

 

마야는 어떻게 카게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천천히 말하였다.

 

그럼 수색은 어떻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진정하라고. 8구축대와 제21구축대가 수색을 개시한 참이야. 너희들도 수색에 참가해.”

 

그 후, 그녀는 담당 영역을 가르쳐주었다.

카게로는 바로 할게요!” 그렇게 대답한 뒤 구축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시작하자. 저쪽 섬 그늘부터!”

 

솔선하여 앞장섰다.

담당 수색 영역은 침몰 혹은 폐기처분이 된 폐함이 많았다. 섬에는 잔해가 상당수 표착하고 있었다. 심해서함이 무지막지하게 날뛴 것을 알 수 있었다.

카게로는 그 속을 찾아다녔다.

 

시라누이! 시라누이!”

 

불러도 대답은 없다. 애초에 이런 행위에 의미가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그래도 그녀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번 보았던 곳을 또 한 번 더 보고, 다시 한 번 더 확인한다. 잔해의 밑이나 그늘, 해수면에 얼굴을 들이밀어 보았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초조함이 생기기 시작한다. 무선 스위치를 켰다.

 

이쪽은 제14구축대, 아무 구축대라도 좋으니까 응답해줘! 응답하라!”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엄청난 노이즈다.

장거리 무선은 먹통이다. 함대 내 무선통신으로 전환하였다.

 

집합, 집합해!”

 

카게로를 중심으로 제14구축대 함선 소녀가 모였다.

 

누구, 시라누이를 찾은 사람은 없어!?”

 

전원 얼굴을 마주 보았다.

 

없어. 배의 잔해뿐이야. 표류물도 있지만 상관없는 것만 있었어.”

 

나가츠키가 말했다. 카게로는 안색이 파리해졌다.

여기에 없다면 어디에 있는 걸까? 다른 구축대가 발견해주면 좋겠지만 전투해역과 마주한 곳이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수색 정밀도는 떨어지고 만다. 게다가 안개가 끼기 시작했고,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심장 부근이 따끔거렸다. 핏기가 가시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문득, 사츠키가 해면을 가리켰다.

 

뭐야 저거? ......사람?”

 

가리킨 곳에 인영이 있었다. 옆으로 쓰러져, 반쯤 해면에 가라앉았다.

 

설마......!?”

 

카게로는 얼굴을 파랗게 물들이곤, 급하게 달려갔다.

해면에 얼굴을 묻고 있다. 손을 뻗어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투둑, 팔이 떨어졌다.

 

우와아아앗, 시라누이!? 시라......?”

 

팔 안에서 쇠파이프가 나왔다. 카게로는 어안이 벙벙했다.

사람이 아니었다. 철골을 짜서 만든 인형이었고, 그것이 바다에 가라앉고 있었던 것이었다.

 

뭐야! 정말!”

 

안심하는 것과 동시에 실망감이 솟아올랐다.

다른 멤버들도 다가왔다. 시라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들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 발견한 사츠키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거 있잖아, 발에 붙어 있는 거 어뢰 아냐?”

 

우시오가 집어들어서 확인했다.

 

“2발 있네요......으음, 93식 어뢰네요. 이거, 제조 번호를 보아하니 요코스카 진수부 어뢰에요. 신품이네요. 인형에 붙여서 발사시킨 걸까요......?”

시라누이야......”

 

카게로가 중얼거렸다.

 

시라누이가 인형을 만든 거야.”

뭘 하려고요?”

아마, 미끼로 삼으려고,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을 거야. 틀림없어, 발사된 방향에 시라누이가 있어! 우시오, 어디서 발사된 건지 알 수 있어?”

 

우시오는 당혹해하면서도 어뢰와 해면을 보았다.

 

쓰러진 모양새에서 추측한 것이지만, 저쪽이 아닐까요?”

 

그녀는 안개 저편을 가리켰다.

 

, 가자!”

 

카게로는 주기를 발동시켜 전진하였다. 정확한 방향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이쪽인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그녀에게 있었다. 구레에서 오랜 세월 키워온 것이, 시라누이와 자신의 사이에 있다. 그 연결 고리에 이끌려갔다.

이쪽이다, 분명 이쪽이다.

전투해역이 가깝다. 포격음이 들려온다. 이윽고 폭발음이나 함재기 엔진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고, 서서히 커져갔다.

눈앞에 두 동강이 난 폐함이 들어왔다.

 

누가 있어!”

 

몸을 반쯤 바닥에 가라앉힌 채, 잔해에 기대듯이 앉아있는 함선 소녀의 모습. 대파 상태라는 것을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도 알 수 있을 정도였고, 근처에는 타급으로 추정되는 심해서함의 하반신이 떠다니고 있었다.

넝마짝이 된 푸른색 제복과 산발이 된 머리카락. 카게로는 잡아당겨 일으켰다.

 

......타카오씨!?”

 

몇 번 몸을 흔들었다. 살며시 눈꺼풀이 열렸다.

 

......”

타카오씨, 무사하셨군요.”

“............,......그 애는......”

시라누이인가요!? 어디에 있나요!?

 

타카오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동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도망......떠밀............ 이쪽은......적이......있으니까......그 안쪽으로......”

알았어요......감사합니다.”

 

카게로의 옷을 타카오가 잡았다.

 

그렇지만......그쪽에도............하얗고............”

뒷일은 맡겨주세요.”

 

카게로는 제14구축대 멤버들에게 말했다.

 

내가 구조하러 갈게. 너희들은 타카오씨를 데리고 돌아가줘.”

 

대답은 듣지 않았다. 그녀는 튕겨나가듯이 가속하여 해면을 미끄러져 나갔다.

 

전투 소음은 급속도로 커져갔다. 엔진 소리와 사격음이, 상공에선 함재기 간의 공중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속도를 양현 최대 속도로 올린다. 파랑을 일으키면서 돌진했다. 마음은 다급해졌고 심장 고동은 귀에 따가울 정도로 들려왔다.

안개는 옅어지기 시작했다. 전방에 배의 잔해. 여객선의 함미가 해면에서 튀어나왔다.

스피드를 떨구지 않은 채 피했다. 시야가 갑자기 확 넓어졌다.

섬광과 함께 포탄이 폭발. 카게로의 귀를 때렸다.

그곳은 전투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었다.

함선 소녀의 함대와 심해서함의 무리가 포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사방에서 물기둥이 솟아오르고, 공중에선 고사포탄이 작렬하며 파편을 사방으로 뿌리고 있었다.

정면 방향에는 심해서함의 무리. 그 중앙에는 하얗고 거대한 남방서전귀.

카게로는 몰랐지만, 시라누이와 타카오는 도주하는 도중 남방서전귀가 있는 곳까지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카게로도, 전투해역에 진입하고 만 것이었다.

후방에선 마야, 묘코를 중심으로 한 중순 함대가 연이어 포격을 이루고 있었다.

 

아앗! 이 바보야. 돌아와!”

 

마야가 소리치지만, 카게로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한 지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작고, 하얀 것이 떠다니고 있었다. 전장 한복판임에도 불구하고, 카게로는 무리를 해서 접근하였다. 손을 뻗어 집어 들었다.

 

장갑......”

 

무심코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얀 장갑. 카게로형의 정식 장비 중 하나이다. 요코스카에선 자신 이외에 장갑을 끼고 있는 함선 소녀는 한 명 밖에 없다.

 

“......시라누이!!!”

 

무심코 이름을 외쳤다.

가라앉고 만 것일까? 장갑을 남기고 굉침한 것일까? 어지간한 일이 없으면 장갑을 안 벗는 소녀다. 그런데, 여기에 있다니.

으응, 아니야. 반드시 살아있어. 나는 알 수 있어.

장갑이 흘러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곳에는 심해서함의 대군. 중앙에 진좌하고 있는 것은 남방서전귀.

 




시라누이, 지금 구해줄게!”

 

외치고 달려나갔다. 분명 저 너머에 시라누이가 있다. 그러니까 구해주는 것이다.

심해서함 몇 척이 그녀에게 반응하였다. 괴물인 그것들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것처럼 보인다. 포격이 이루어지는 전장 한 복판에 구축함이 혼자 돌진을 해오니 그러한 것도 당연하다.

카게로는 속도를 낮추지 않았다.

구축함 로급이 포격하였다. 이어서 중순 리급도 포격을 하였다. 포탄 세례로 격침시키려고 하였다.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깨닫지 못 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시라누이를 구출하고 싶다는 심정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주위 사정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반격도 하지 않았다.

운 좋게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채 심해서함 무리의 한복판에 돌입하였다. 이형의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구축함 소녀가 끼어들었다.

하얀 몸이 움직였다.

성가시다고 느낀 것인지 남방서전귀가 카게로에게 접근하였다. 그 움직임도 눈치 채지 못했다.

남방서전귀가 구축함을 장착한 팔을 휘둘렀다.

 

꺄아앗!”

 

망치로 두들겨 맞는 듯한 충격에 카게로의 눈앞에서 불꽃이 튀겼다. 그제야 겨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물러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속력을 살려 남방서전귀를 제치려고 시도하였다. 분명 시라누이는 이 녀석이 있는 너머에 있다. 그 아이는 똑똑하니까, 저 너머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다.

하지만 그 앞길에는 남방서전귀가 가로막고 있었다.

 

비키라고......!”

 

12.7cm 연장포를 발포. 하지만 하얀 몸에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남방서전귀는 다시 한 번 팔을 휘둘렀다. 카게로의 옆구리에 팔이 명중되었고, 이번에는 튕겨져 날아갔다.

비명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어떤 양 다리에 힘을 주어 버텨냈다. 함선 소녀의 제복은 장갑의 기능도 하고 있으며, 게다가 피부에는 옅은 필드가 발생하고 있다. 그 탓에 치명상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아픈 것은 아팠다.

다시 한 번 제치려고 하였다. 하지만 남방서전귀가 두터운 포신을 카게로에게 겨누고 있었다. 16inch포가 거무튀튀한 포구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걸 맞아버리면 구축함의 장갑따윈 종이장갑이나 마찬가지이다. 몸이 통째로 두 동강이 나버리고 만다.

그걸 알면서도 카게로의 머리에는 시라누이를 구한다는 생각 외엔 없었다. 그렇게 때문에 자길 겨누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음에도 회피행동을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였다.

눈앞에 있는 것은 죽음. 포탄이 발사되려고 하였다.

 

카게로, 피해에엣!!!”

 

절규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남방서전귀를 향해 돌진하는 작은 그림자.

나가츠키였었다. 작은 몸을 최대한 활용하여 몸통 박치기를 감행하려고 하였다.

격돌. 구축함은 작고, 무츠키형은 그 구축함 중에서도 작다. 남방서전귀의 체격에 영향을 주는 것은 힘들다. 그래도 그녀는 주눅 들지 않고 몸을 부딪쳤다.

미세하지만, 남방서전귀의 몸이 흔들렸다.

 

다시 한 번 더!”

 

거듭 몸을 부딪친다. 하얀 몸이 크게 기울여졌다.

 

사츠키!”

맡겨만 줘!”

 

사츠키도 뛰어들었다. 하얀 신체의 목덜미를 향해 12cm 단장포가 겨누어졌다.

 

이 자시이익!!!”

 

쾅쾅쾅쾅. 지근거리에서 연속으로 포탄이 쏟아졌다. 남방서전귀가 포연에 휩싸였다.

하지만, 침몰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사츠키의 공격으로 생긴 상처가 느릿한 속도지나 치유되고 있었다.

 

으아......자기수복이 가능하구나!?”

 

사츠키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러는 사이에 나가츠키가 고함을 쳤다.

 

철퇴! 아케보노!”

 

이어서 돌입한 아케보노가 카게로의 제복을 잡았다.

 

, 잡았어!”

후진 최대 속도!”

 

나가츠키도 협력하여 카게로의 몸을 잡아끌었다. 우시오와 아라레가 포격을 하여 주위의 심해서함을 견제하고 있었다.

카게로의 몸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선 닫히기 시작한 삶의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파트너의 구출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시라누이가......시라누이가 저기에 있어!”

 

그녀는 날뛰었다.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도, 난동을 부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거 놔, 부탁이야! 부탁이라고!”

헛소리 하지 마! 그러다간 너 죽는다고!”

 

아케보는 놓지 않았다. 나가츠키도 외쳤다.

 

놓치지 마 아케보노!”

알고 있어!”

시라누이!!!”

 

카게로는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가락은, 그 누구도 잡을 수가 없었다.

 

 

 

 

14구축대 멤버들과 함께 요코스카로 복귀하는 도중. 카게로는 줄곧 생각에 빠져 있었다.

굉침 직전이었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 위험을 돌보지 않고 돌격한 구축대 대원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이렇게 명줄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대로 전진을 했다면 틀림없이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라누이를 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타카오가 무사히 구출된 것은 아라레가 가르쳐주었다.

 

그 후......다른 구축대가......예항해줬어.”

 

평소와 다름없는 담담한 어조였지만 아라레는 위로를 하듯이 말을 덧붙였다.

 

카게로......괜찮아?”

 

괜찮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말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마야씨네 함대는 괜찮을까?”

적의 반격을 받았지만 버틴 것 같아. 우리들보다 먼저 돌아간 게 아닐까?”

 

사츠키와 나가츠키의 회화가 귀에 들어왔다. 남방서전귀를 향한 반복공격은 더불어 거듭된 것 같았다. 자기수복기능을 웃도는 공격으로 처리할 셈인 것 같다. 그렇지만 아직 격침에 성공했다는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애를 먹고 있는 걸 것이다.

요코스카 진수부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완연히 어두워졌다.

부두로 올라왔다. 무거운 몸을 끌고, 진수부 청사로 가려고 하였다.

도중에 마야와 만났다. 몸 이곳저곳이 그슬려 있었지만 건강해 보였다.

경례를 하려고 하자, 저쪽에서 달려왔다.

 

괜찮냐 카게로? 고생했구나.”

 

한참 포격을 하던 중에 돌입한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그에 관한 불만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카게로는 고개를 들었다.

 

죄송해요......공격하는 데 방해를 해서.”

됐어, 신경 쓰지마.”

또 구하러 갈 셈이에요.”

 

그 말을 들은 마야는 머뭇거리는 눈치로 입을 열었다.

 

실은 말이지......”

 

카게로의 눈이 순식간에 부릅떠졌다.

 

 

제독의 집무실.

남성은 의자에 앉은 채로 목깃을 풀고 있었다.

벽에는 E해역의 확대지도가 붙여져 있으며, 지도 군데군데에 핀이 박혀 있었다. 심해서함의 출현 장소와 교전한 표식이었다.

한 번이라도 교전을 하면 핀이 꽂혔다. 그 수는 늘어들 뿐 줄어드는 일은 결코 없다.

단순한 핀이라고 한들 이곳에는 거친 투쟁과 비극이 내포 되어 있다. 격전의 증거였다.

그는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고속수복재의 소모가 심한 걸……. 연료에 강재에 탄약, 보크사이트……. 그리고 허벅지와 발바닥……

마지막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요?”

 

그는 의자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타고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서있었다.

 

언제 온 거지.”

비서함이니까요.”

 

아타고는 손에 고속수복재 사용허가 신청서를 들고 있었다. 책상 위에 올렸다.

 

오늘 치 신청서에요.”

늘었네.”

전투가 격심해졌어요. 아무리 용을 써도 늘어나고 말아요.”

전쟁이란 성대한 낭비대전이야. 나라가 휘청거리는 것은 당연한 도리로군.”

사전에 비축을 해둔 덕분에 숨이 돌리지만요.”

그 작업은 귀찮았어. 덕분에 발바닥을 못 봤어.”

그러니까 그건, 무슨 소리인가요?”

 

잽싸게 사인을 하면서 제독은 말했다.

 

나는 함선 소녀의 가슴과 엉덩이와 다리와 발바닥에 흥미가 있어. 그런데 바빠서 볼 틈도 없어. 심해서함과 정전을 하고 싶은 기분이라고.”

발바닥은, 어지간해선 못 보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좋은 거야.”

 

아타고는 처치곤란하단 표정을 지으면서 사인이 된 신청서를 집어 들었다.

 

진지한 편이 제독의 평가가 올라갈 텐데요.”

숨통이 막히잖아.”

제독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은 마음에 여유가 있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그렇다는 것은 전국은 우리들이 유리하다고 발표할게요.”

사기가 올라간다면 해도 좋지만, 반발을 살지도 모르겠어.”

 

대기 상태의 함선 소녀는 전황 발표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동시에 전투로 녹초가 된 함선 소녀들은 그렇게 편한 게 아니야.” 라고 반론을 할 지도 몰랐다. 함선 소녀간이라도 온도차라는 것은 존재한다.

전투가 거칠은 것은 사실이다. 함선 소녀가 귀항할 경우 어딘가 피해를 입고 있다. 그래도 보급을 받고 곧장 출격을 소망하는 함선 소녀는 많았으며, 그녀들은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국면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제독은 다시 한 번 지도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우리가 유리하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냉정하게 견적을 내보면 일진일퇴, 혹은 ………….”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겼다.

 

……뒷심이 부족하군……

 

의자를 움직여 아타고를 향해 몸을 돌렸다.

 

차를 내주지 않을래? 그리고 목덜미를 핥게 해줘.”

뭔가 괜한 말이 붙어 있어요.”

핥아보고 싶어.”

제독의 목덜미를 핥아보는 건 어떤가요?”

시도를 해본 적이 있지만 혀가 닿지 않았어.”

안타깝네요.”

차는?”

그것도 직접 마련해주세요.”

 

아타고는 싱글거리면서도 딱 잘라 말했다. 제독은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이런 태도를 취한 그녀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포기하고 직접 차를 타려고 하였다.

그때, 책상 위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직접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두 마디, 말을 나누었다.

그 후 한동안 회선 너머로 회화가 이어졌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힐끔 벽걸이 시계를 올려보았다.

 

타카오는 어때?”

입거 대기 중이에요. 독이 꽉 차버려서요.”

그래……

 

그는 몸을 움직였다.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 애들은 이곳에 오겠지.”

.”

 

이어서 아타고는 말했다.

 

제가 이유를 알릴 까요?”

아니, 내 역할이야.”

 

제독은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카게로는 달리고 있었다. 피곤함도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 전 들은 마야의 말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동력원이 되어주었다.

진수부 청사 계단을 올라가 제독의 집무실로 들이닥쳤다. 그녀만이 아니라 남은 제14구축대 멤버도, 함께 들어갔다.

실내 안에는 큼지막한 집무 책상이 있으며 벽에는 핀이 꽂힌 해역도가 걸려 있었다. 제독은 의자에 앉아 있으며 그 곁에는 아타고가 시립하고 있었다.

카게로는 대충 경례를 한 뒤 목소리를 높였다.

 

사령관, 구출 작전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남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어째서인가요? 아직 시라누이는 구출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구출 작전은 성공했다고 진수부는 판단하고 있다.”

 

제독은 무겁게 말했다.

 

정말 잘 해주었다.”

 

카게로는 아연실색하였다. 그녀만이 아니라, 사츠키와 나가츠키, 아라레와 우시오, 물론 아케보노도 마찬가지였다. 귀에 들어온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성공이라니…….”

휴가를 주마. 쉬도록.”

잠깐만요. 저는 아직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출격을 하고 다녀온 것뿐이에요. 시라누이는 다른 곳에 있는 게 분명해요. 그곳에는 타카오씨말곤…….”

 

다음 순간, 카게로의 안색이 변하였다.

 

설마, 타카오씨가 구출되어서 그런 것 인가요……?”

 

제독은 대답하지 않았다.

 

중순양함 구출되었으니까, 이제 할 필요는 없다…….”

………….”

시라누이를 구할 필요는 없다는 것 인가요…….”

 

카게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렇군요.”

 

그녀의 머릿속에는, 버림함()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있었다.

작전에서 일정 손실을 감안하는 것은 당연한 행위지만 그것은 대부분 방어력이 낮은 구축함이 맡게 되고 만다. 중순양함이나 전함, 항모를 잃을 순 없기 때문에 구축함이 방패 역할을 맡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작전행동을 속행시키는 것이다.

시라누이는 방패막이가 되어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히는 버림함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똑같은 의미였다.

남성은 담담하게 말하였다.

 

수고했다.”

수고했다……그것뿐인가요?”

 

카게로는 무의식중에 한 걸음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저희들은 함선 소녀입니다. 죽을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라누이는 아직 안 죽었습니다. 살아있습니다! 구출하겠습니다!”

 

고함이 나왔다. 의식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무심코 터져 나온 것이다.

시라누이가, 그 시라누이가 행방불명. 손해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젠 못 움직일지도 모른다. 한 시라도 빨리 구해주고 싶다. 요코스카까지 데리고 오고 싶다.

그 생각만 들었다.

 

제발요, 구조 작전을 하게 해주세요.”

 

몇 번이나 반복하였다. 카게로의 머리에는 그 생각 말곤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제독은 고개를 까닥이는 움직임조차 하지 않았다.

카게로는 필사적으로 간원하였다.

 

, 그럼, 적을 쓰러뜨린 뒤에 수색을 하러 보내주세요. 남방서전귀를 쓰러뜨린 뒤에 주변을 수색할게요!”

수속 처리는 이미 되고 있다.”

……?”

 

그 말에 그녀는 당혹감에 빠졌다. 이 남자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손해는 예정 범위 내이다.”

 

남자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한 순간 카게로는 절규하였다.

 

……시라누이를 제적시킨다는 것 인가요!? 격침된 것으로 간주하고……!”

모레에 수속 처리가 개시된다.”

 

그것은 카게로형 2번함 시라누이가 격침되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소위 굉침이란 직접 보고 확인된 것만이 아니라 행방불명도 포함된다. 48시간의 유예 기간이 주어지지만 대부분 형식적인 것이며, 실제로 발견된 사례는 전무하다고 해도 좋다.

, 제독은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건, 그런 건 싫어요!!!”

 

카게로는 자신의 귀가 따가워질 정도로 소리쳤다.

 

시라누이는……시라누이는 살아있어요! 지금, 적의 해역에서 쓰러져서, 괴로워하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물러나도록……

 

카게로의 눈앞이 새빨개졌다. 절망과 분노가 동시에 찾아왔다.

 

……!”

 

제독에게 덤벼들려고 하였다. 다음 순간, 아케보노가 나가츠키에게 눈짓을 주었다.

카게로의 왼팔을 나가츠키가 잡았다. 떨쳐내려고 하지만 왼팔만이 아니라 사츠키에게 오른팔을 제압당했다.

순식간에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카게로가 소리쳤다.

 

! 이거 놔! 놓으…….”

 

입을 아라레가 막았다. 우시오가 집무실의 문을 급하게 열었다. 카게로의 몸은 그대로 4명이 운반을 하였다.

집무실에는 아케보노만이 남았다.

 

14구축대 향도함 카게로, 퇴실하였습니다.”

 

아케보노는 진지한 태도로 말하였다.

 

전투 피로가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그런가.”

 

남성은 대답했다.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누가 보아도 명백했지만 암묵적으로 못 본 것으로 간주하였다.

 

아케보노도 쉬도록.”

감사합니다.”

 

그녀는 경례를 하였다.

 

그 전에, 발언을, 해도 되겠습니까?”

 

너무 정중한 요청에 듣고 있었던 아타고는 수상쩍은 표정을 지었다.

제독은 허가하였다.

 

뭐지?”

 

아케보는 숨을 들이킨 뒤, 말했다.

 

…… 망할 제독!!!”

 

그리고 무슨 소리를 듣기 전에 집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서 그걸 탓할 틈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면 아케보노의 모습은 없었다.

아타고는 크게 고개를 휘저었다.

 

저 애는…….”

 

제독은 그녀의 감정을 달래듯이 조용히 말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못 들었어.”

그렇지만 저 아이는, 제독에게…….”

아무런, 말도, 못 들었어.”

 

아타고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고 대신 살짝 어깨를 떨구었다.

 

너무 무르다고 생각해요.”

그래?”

구출작전을 중지한 것도, 시라누이의 제적도, 타카오를 구출했으니 성공했다고 판단한 것도, 제독이 아니라 상층부에요. 몇 번이나 반대를 하신 걸 이곳에서 들었어요. 그런데도 저 아이들은.”

그만.”

 

제독은 한손을 들어 올려 아타고의 말을 멈추게 하였다.

책상 위의 펜을 들어 서류에 무언가 사인을 기입했다. 아타고에게 건네주었다.

 

.”

 

그녀는 문면을 읽었다. 그리고 말했다.

 

……제독은 늘, 좋은 소식은 저에게 전달하게 하시고, 나쁜 소식은 직접 말씀하시네요.”

 

아타고가 물었다.

 

왜 그러시나요?”

 

남성은 의자 위에서 몸을 뒤척였다.

 

질문을 금한다.”

부탁드려요.”

……나는 함선 소녀의 호의를 받고 싶어서 제독이 된 게 아니야.”

 

남성은 담담하게 말을 자아냈다. 그 말에는 적적함도 애수(哀愁)도 없었다. 직무를 받아들인 인간의 신념만이 존재하였다.

 

그것뿐이야.”

 

한동안, 아타고는 제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 내올게요.”

내가 할게.”

아뇨, 제가 할게요.”

 

아타고는 찻주전자를 들었다.

 

 

 

 

그것은 언제 적 일이었나?

분명 함선 소녀 후보생이 된 첫날, 교육대로 향하던 도중이다.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애라고 생각하였다.

처음 만났던 때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고, 우산이 없는 카게로의 머리를 가차 없이 적셨다. 그 억센 빗줄기에 당해낼 재간이 없어 숨어든 민가의 지붕 그늘에서 그녀는 선객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녀는 힐끔 카게로를 보고, 눈길을 돌렸다. 카게로는 함선 소녀 후보생이라는 걸 들켜버렸다고 생각했다.

후보생은 독특한 분위기를 발하였다. 인류의 수호자로 뽑힐지 모른다는 기대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불안. 보이지 않았던 장래와, 해야만 하는 일이 될 임무. 그것들이 뒤죽박죽 섞여, 몸에서 흘러내린다. 이해가 있는 사람이 보면 한방이다. 같은 함선 소녀 후보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얘도 그럴 것이라고, 카게로는 짐작을 하였다.

 

……, 안 그치네.”

 

카게로는 막역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대로 가면 첫날에 지각하고 말 거야.”

 

옆에 있는 소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정면을 보고 있을 뿐이다.

머지않아, 그녀는 카게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함선 소녀 후보생이시군요.”

, 맞아.”

 

커뮤니케이션을 나눌 때의 습관을 따라 카게로는 생긋 웃은 뒤 이름을 말했다.

 

너는?”

……….”

 

대답은 없었다.

 

.”

 

그렇게 되물어도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머지않아 비가 그치고, 어떻게 지각을 면하였다. 그 사이 둘은 줄곧 말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었다.

 

뭐지 이 애. 낯을 가리나?’

 

그렇다고 해도 말을 걸고 있는데도 대꾸 하나 안 하는 것도 좀 그렇다. 카게로는 마음속에서 상대방을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없는 부류의 사람이라고 분류하고, 캐비넷에 던져 넣은 뒤 자물쇠를 잠갔다.

이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함선 소녀 후보생은 수없이 많다. 찾으려고 마음먹어도 불가능하다. 귀여운 주제에 무표정한 얼굴도 이젠 안녕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게로는, 교육대에서 같은 반이 되었을 때 깜짝 놀라 죽을 정도로 경악했다.

 

지금의 카게로는 자실에서 로커에 등을 대고 앉아 있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은 걸어 잠갔다. 본래, 기숙사의 방에는 시정 장치가 없기 때문에 틀어박히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대걸레나 빗자루 같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머리를 굴리면 자물쇠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게 된다.

방문을 걸어 잠군들 누가 훔쳐갈 것은 없고, 남자가 기숙사에 들어오는 것은 엄히 금지되니 그 의미는 없지만 이런 부류의 수단은 알아두어서 손해 볼 것은 없다. 특히 지금 같은 경우에는.

제독의 집무실에서 억지로 방출되었을 때, 처음에는 분노가, 그 다음에는 절망감이 엄습했다. 마음에 공백은커녕 모든 것이 빼앗기고 만 것 같았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14구축대에게 격정을 쏟아내는 것은 그저 애꿎은 화풀이가 될 뿐이다. 그것은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카게로는 자신은 억누르기 위해 방에 틀어박히는 것 말곤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멍하니 있었다. 머지않아 노크소리가 들렸다.

 

카게로.”

 

사츠키의 목소리다.

 

카게로. 열어줘.”

 

대답은 하지 않았다.

 

거기, 내 침대도 있는데.”

다른 데서 자.”

 

머지않아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에 등을 기댄 것 같다.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사령관은 이 세상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갈 바보 같은 자식이야.”

 

사츠키는 말을 이었다.

 

구출 작전을 그만두다니.”

그게 제독으로서의 일이라는 것이겠지.”

시라누이를 제적하는 것도 말이지. 조금 이르다고 생각해.”

제독의 의사가 아니라 압력일지도 몰라.”

카게로, 괜찮아?”

……모르겠어.”

 

머지않아 둘 사이에 말은 없어졌다.

이미 밤이다. 저녁 식사 시간도 지나갔다. 하지만 식욕은 없다. 공복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 있잖아, 요코스카에 오기 전에는 사세보에 있었다.”

 

사츠키가 중얼거렸다.

 

같은 구축대에 나가츠키도 있었어, 그렇다고 해도 서로 이야기는 별로 안했지만.”

……….”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야.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무츠키형은 밸런스가 나빠서, 다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자포자기에 빠졌다고 할까, 죽는다면 우리들이 죽겠지라고 생각했었어.”

 

사츠키의 말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나랑 나가츠키가 요코스카에 전속이 되었던 것도 훈련 성적이 나빠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 자포자기에 빠졌는데 좋은 성적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어쩌면 이건 카게로랑 만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닐까란 기분도 들어. 나는 웨이트 트레이닝이 나 자신을 강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던 거였지.”

 

카게로는 양 무릎을 끌어안으면서 귀를 기울였다.

 

14구축대에서 카게로랑 같이 지내고 된 뒤, 소중한 것도 배웠고, 확실히 강해졌어. 그런 나의 향도함이 풀이 죽어있는 걸, 틀린 것은 사령관이야. 분명 그래.”

……….”

 

카게로는 한 동안 무언을 지킨 뒤, 툭하고 중얼거렸다.

 

사츠키……

?”

, 멋있다.”

 

바로 말을 이었다.

 

미안, 잘못 말했어. 귀엽구나.”

아하! 카게로도 귀여워.”

 

사츠키가 문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앉는 것이 방 안에서도 알 수 있었다.

 

 

 

구레 진수부에 배속되었을 때, 그녀는 이미 카게로였다. 그리고 그 소녀가 시라누이가 된 것을 알았다.

둘 다 배속처는 제18구축대. 신예 카게로형 구축함으로서, 카스미와 아라레가 있는 곳으로 보내졌다.

그렇다고 해서 카게로가 시라누이와 친해진 것은 아니다. 시라누이는 도착하자마자 비서함으로 발탁되었고, 교류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카게로는 자신도 동형함이라는 것을 제쳐두고 참 좋으셔, 신형함은.” 그런 비아냥을 말했던 것이었다.

그런 와중, 구축대 훈련을 감독하는 사람으로서 찾아온 것이 경순양함 진츠였다.

진츠는 척 봐선 내성적이고 말투도 패기가 없었다. 사람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이 적고, 여러번 시선을 피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카게로가 그녀를 깔 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시라누이는 그러지 않았다.

 

우습 게 보면 안 돼요.”

?”

저 태도는 분명, 위장이에요.”

이 여자는 나랑 반대되는 주장만 하는 구나, 그 때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 대로였다. 진츠는 카게로의 포격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자마자, 우선 제 지도로 실력이 늘지 않을 지도 몰라요.”라고 풀죽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말에 딸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을 한 순간 맹렬한 훈련이 부과되는 것이다.

통상의 배가 되는 탄약을 소비하는 훈련에 카게로는 눈이 핑핑 돌면서 연신 토악질을 하였다. 그런 한편 시라누이는 처음부터 성적이 우수했으며, 진츠는 가르칠 것은 거의 없네요.”라고 쌍수를 들고 격찬을 하였다.

그러고 난 뒤 그러니까 훈련을 좀 더 과혹하게 하도록 하죠.”라고 말한 뒤, 탄약의 소비량은 카게로의 배가 되었다. 시라누이도 역시 눈이 핑핑 돌며 구토를 하였고, 카게로는 이 애도 나랑 똑같구나.”라고, 비로소 친근감을 느꼈다.

 

 

카게로는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묻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투박하고 딱딱하다. 함선 소녀가 되면 이런 점이 변한다. 퇴역하고 평범한 소녀로 돌아가면 예전의 몸이 되는 것일까?

문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물론 열 마음은 없었고,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 노크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카게로.”

 

억양 없는 어조의 말은 아라레였다.

 

괜찮아……?”

거기서 말한다면.”

 

아라레는 사츠키의 옆에 앉은 것 같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서 나오는 편이 좋아……. 먹을 게 없어져.”

배 안 고파.”

분명 고파질 거야…….”

그러면 다른 데서 가지고 올게. 마실 거라면 좀 마시고 싶어.”

사츠키가 맥주를 숨기고 있을 거야.”

 

문 밖에서, “까발리지마.” 란 말이 들렸다.

카게로는 느그적 느그적 움직였다. 이쯤에 숨겼겠지, 라고 짐작을 한 뒤, 침대 밑을 뒤졌다.

마미야 스티커가 붙여진 맥주병이 나왔다.

 

알기 쉬운 곳에 숨겼구나.”

열지 마.”

병따개 없어.”

 

그녀는 맥주병을 품에 앉은 채 쭈그려 앉았다.

알콜은 안마시지만, 맥주는 화폐로서 기능할 경우가 있었다. 진수부 게이트를 지키는 병사에게 건네줘, 소소한 택배 아저씨 일을 맡기는 것이다. 반입 금지품은 불가능하지만, 보기 드문 과자라던가 매점에는 없는 좀 야시시한 책을 입수할 때 애용하였다.

침대 위로 던졌다.

 

호쇼씨한테 받은 거지, 이거? 훔친 건 아니겠지.”

, 은파리 짓은 안 해.”

카게로는 했었어.…….”

 

아라레가 말했다.

맨날 한 것은 아니다. 부탁받았을 때 말곤 하지 않았다. 시라누이에게 부탁을 받았을 때라던가. 감기에 걸린 얼굴로 부탁을 하면 거절할 수 없지 않은가.

 

카게로와 시라누이는 같은 방이었으니까…….”

아라레는 카스미랑 같은 방이었지.”

카게로가 있어서, 함께 단결 했었어……좋은 추억.”

그런 것치곤 내가 요코스카에 왔을 때, 눈치 못 챘지.”

여유가 없었어……여기선 그렇게 잘 해내지 못 했으니까……. 아는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어……. 나가츠키에게 기댔어.”

나가츠키는, 아라레에게 기댔다고 말했는데.”

 

아라레가 고개를 젓는 기척이 들었다.

나도 결국 나가츠키에게 의존하고 있었다고 생각해……. 지금이 가장 안정돼……. 이것도 카게로 덕분이야…….”

 

아라레는 평소에 쓰던 말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카게로가 풀이 죽어있는 건, 정말로 걱정돼…….”

………….”

 

나도 걱정을 끼치고 있는 거였나. 멍하니 카게로는 생각했다.

문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안에 있는 것인가?”

 

이 목소리는 나가츠키다.

 

있으면 덧나?”

그렇지 않지만 카게로는 향도함이야. 대기인 채로 놔둘 순 없지.”

뭐하면 나가츠키한테 양도할 텐데?”

저번에도 말했지만, 의외로 사람을 보는 누이 없군.”

 

말이 끊어졌다. 작은 목소리로 아라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불명, 언제부터 안에 있었던 것인가, 그런 내용일 것이다.

 

……지금, 아라레랑 네 이야길 했었어.”

그런가. 내 이야길 해서 속이 풀린다면 맘껏 하도록.”

너희들, 예전이랑 인상 변했구나.”

전부 카게로 덕분이다.”

난 사람 보는 안목이 없는 거 아냐?”

으응, 훌륭한 향도함이다.”

 

나가츠키는 그 말만을 하였다. 문 밖에서 그녀가 앉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풍랑이 몰아칠 때 배가 하는 거센 상하 운동을 오이란휘젖기(花魁揺すり)’라고 부른다는 것을 카게로는 시라누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옛날 뱃사람들이 쓰는 말인 것 같지만 그 표현에 감탄하기 보단, “이 애, 왜 그런 걸 알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런 말을 알고 있는 만큼 악천후 때 하는 항해술도 시라누이는 단연 돋보였다. 천체관측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친 폭풍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방위를 잃지 않는 모습은 믿음직스러웠고, 카게로는 그녀를 참고하였다.

 

파도에 거슬러선 안 돼요. 파도를 타는 느낌을 의식해주세요. 즐기는 정도가 딱 좋아요.”

몸이 너무 기울어져서 메슥거리기 시작하는데!?”

의장의 중심위치와 함선 소녀 항행 안정 장치(스타비라이저)가 이상한 것이에요. 복원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나으니까, 진수부에서 고쳐달라고 해주세요. 그 이외엔 시라누이와 똑같이 해주세요.”

 

온갖 생고생을 하면서 시키는 대로 하자, 신기하게도 몸은 안정되었고 기분도 나아졌다.

 

너 정말로 뭐든지 할 수 있구나.”

그런가요?”

 

카게로가 칭찬하자 시라누이는 이번에도 미심쩍은 표정을 하였다.

 

그렇데도. 가르치는 거 잘하는 걸. 뭔가, 나 폭풍우 속에서도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게 됐어. 조함을 잘하는 애는, 후속함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거로구나.”

카게로도 실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포격이라면 그렇지. 진츠씨한테 다섯 번에 한 번 꼴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어.”

이 앞이 중요해요. 조금이라면 주눅 든 모습을 보이면 그 사람은 가차 없이 몰아붙일 거에요.”

 

풍랑 속에서 진행하는 훈련 복귀 중, 시라누이는 그런 말을 하였다.

 

구축함 소녀가 주력이 되려면, 좀 더 노력을 해야겠죠.”

~, 진츠씨 맨날 구축함은 저희들의 자랑거리라고 말했어.”

기대에 부응하는 이상이란 말이 전제가 되겠지요.”

그렇지만, 그야 말로 구축함이니까, 할 수 있는 건 뻔하지 않아?”

 

그런 부정적인 의문에도 시라누이는 확실히 응수를 하였다.

 

강해지면 돼요.”

~, 강하게라. 그렇지만 구축함이 강해진다는 건, 어떤 걸까?”

뭐든 혼자서 강해질 필요는 없어요. 구축대라면, 대형함에도 대항할 수 있어요.”

과연. 그렇지만 시라누이라면 혼자서도 어떻게 해버릴 것 같잖아.”

카게로도 그래요.”

 

그 말에, 카게로는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나보다 네가 더 굉장하데도.”

아뇨, 카게로가 시라누이를 금세 추월할게요.”

정말?”

정말이에요.”

 

시라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벌써 몇 시간 째 같은 자세로 있는 것일까? 때를 쓰는 어린애 같아서 꼴사납다고 생각하지만 무언가 할 기력은 생기지 않았다.

문 밖에서 또 소리가 들렸다.

 

왜 이런 곳에서 앉고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케보노이다. “카게로씨, 아직도 있는 건가요?” 그렇게 묻는 것은 우시오일 것이다. 최근 이 둘은 같이 행동하는 일이 잦다.

몇 개월 전만과는 달리, 아케보노가 일방적으로 우시오를 싫어하는 일은 없어지고 쓸데없는 긴장감은 사라졌다. 바람직한 상황이다.

난폭하게 문이 두들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튀어나와. 문 부순다.”

그런 짓하면 아케보노를 미워할 거야.”

대꾸한 기운이 있다면 나오래도.”

 

밖으로 나갈 기력만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아케보노는 문을 두들기는 것을 그만두었다.

 

얼른 나와. 사츠키랑 아라레랑 나가츠키가 복도에 앉아 있다고. 거슬리기 짝이 없네. ……, 우시오마저 앉아버렸잖아.”

 

그런 우시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아케보노도 앉지 그래.”

……연결 기뢰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문 밖에서 바닥에 앉는 것을, 소리로 알 수 있었다.

방의 안과 밖에서 제14구축대가 한데 모인 꼴이 되었다. , 전원 앉은 채로 이지만.

 




……너희들 뭐야? 할 일 없어?”

 

카게로의 말에 아케보노가 대꾸하였다.

 

방에서 뒹구는 것도 지겨워.”

모처럼 휴식 시간을 사령관이 줬잖아.”

앉아서 무릎 감싸는 걸 쉬고 있다고 할 수 있어?”

……어째서 아는 건데.”

그렇게 할 게 뻔하니까.”

 

아케보노는 이어서 말했다.

 

너 정말로 카게로 맞아? 정신 차려. 머리 나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명량하고 긍정적인 게 네 장점이잖아.”

그렇지만 시라누이를 구할 수 없었어.”

 

카게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구축함따윈 약해빠진 배야……이거 아케보노가 말한 말이거든.”

그렇지 않다고 말한 건 너야.”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구축함 소녀의, 다른 함선 소녀와 비교해서 약한다는 것은 모두 자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강해지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결과가 시라누이의 구출 실패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카게로는 그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시라누이는 없어지고 말았다.

이젠 어쩔 수 없다는 절망감이 그녀를 덮쳤다.

아케보노가 말했다.

 

일단은 일어서지 그래? 방 안에서라도 해도 되니까.”

귀찮아.”

 

우리들도 계속 앉아있는 꼴이 되는데.”

일어서면 되잖아.”

구축함 기숙사니까, 거슬리긴 하지만 어지간해선 불만을 말하진 않아. 비서함이 순찰을 하러 오면 사정이 달라지지만.”

어마나~, 내 말 하는 거니?”

, 아타고씨!?”

 

문 밖에 있던 함선 소녀들이 화들짝 놀라 일어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서함님이 오신 것인가, 카게로는 생각했다. 직접 기축함 기숙사까지 행차하실 줄이야. 공세 작전 실행 중인데 한가한 건가?

 

카게로는 안에 있니?” “.” 그런 대화가 들려온다. 솔직히 대답한 것은 우시오일 것이다. 거짓말을 해서 쫓아내면 될텐데.

노크 소리.

 

카게로, 듣고 있니?”

 

변함없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다.

 

, 뭐 듣고 있어요.”

카게로의 심정은 정말로 잘 알겠는데, 제독에게 그런 짓을 하면 안 돼. 말려준 애들에게 고맙다고 말해야 된다.”

…….”

제독은 있잖아, 시라누이를 찾으려고, 마지막까지 상층부에게 요청을 했어. 그렇지만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그런 여유가 있다면 공격을 하란 명령을 받았어. 너랑 마찬가지로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으셔.”

………….”

그렇지만 입장 상, 그런 말은 할 수도 없고, 안 하셔. 정말로 이렇게 내가 전하는 것도 싫어하실 거라고 생각해.”

 

카게로는 제독에 대해선 잘 모른다. “괴짜구나.” 그 정도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 직무에, 구축함 소녀의 상상이 미치지 못 하는 세계가 있을 것이다. 막연히 상상할 수 있었다.

아타고는 비서함이다. 시라누이는 비서함의 일을 그건 정말 힘들었어요.” 라고 말했다. 제독의 일을 보조하는 것도 그 역할에 포함된다.

그것이 제독의 뜻에 따르지 않은 것이라고 하여도.

 

내일, 요코스카 주력함정 대부분이 출격할 거야. 전력 공세에 나설 거에요.”

 

그녀는 말했다.

 

어쩌면, 내일 공격으로 남방서전귀를 쓰러뜨릴 수 있을 지도 몰라요. 아직 시라누이를 구할 기회가 있어요. 희망을 가져요.”

……희망이란 게 뭔가요?”

 

반사적으로 그녀는 반론하였다.

 

다른 누군가가 시라누이를 찾아주는 것인가요? 마야씨도 다른 구축함도 도와줬어요. 저희들을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어요. 그렇지만 시라누이는 없어요. 저와 함께 돌아오지 못 했다고요.”

카게로…….”

저는 시라누이를 찾았다고 생각했었어요. 분명 그 괴물 근처에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구할 수 없었다고요. 이번에도 잘 될지 몰라요.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희망도…….”

 

카게로는 입을 다물었다.

문 밖도 무언이었다. 아타고는 물론, 사츠키, 나가츠키, 아라레, 우시오, 아케보노, 모두 입을 다물었다. 같은 구축대 소속의 그녀들에겐 카게로의 심정은 뼈가 저릴 정도로 이해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걸 수 없었다.

머지않아, 한 명의 여성이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니야.”

 

조용히 아타고가 말했다.

 

이번 전투에선 나도 절망했어. 그렇지만 카게로 덕분에 구원을 받았어. 적어도, 너는 날 구해줬어. 네가 희망을 버릴 필요 따윈 없어. 희망 그 자체였는걸.”

그렇지 않아요.”

으응, 내 말이 맞아. 왜냐하면……네가 찾아주었잖니. 타카오를…….”

 

그 말을 듣고 떠올렸다. 아타고는 타카오형의 2번함이었다.

평소의 그녀는 그다지 타카오에 관한 일은 입에 담지 않는다. 나긋나긋한 태도를 보여주긴 해도 자매함에 관해선 다른 함선 소녀와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다루었다. 그것은 비서함의 직무를 맡은, 그녀의 다짐 같은 것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 감정을 개입해선 안 되지만…… 이 말만은 하게 해줘.”

 

아타고는 한순간, 말을 끊었다.

 

타카오를 찾아줘서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울먹거리는 목소리인 것인가. 문 밖의 상황을 카게로는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아타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희망을 버리지 말아줘…….”

 

문 밑에서 무언가가 머리를 밀고 나왔다.

아타고가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카게로는 무심코 일어섰다. 두 번 접힌 서류를 들어 올려 읽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타고가 모습을 지운 것을 확인하고 겨우 제14구축대 멤버들은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아슬아슬해라. 징벌을 받는 건가 싶었어…….”

 

아케보노가 말을 흘렸다. 우시오는 수상쩍게 생각했는지 물었다.

 

뭔가 했나요?”

, 이것저것.”

 

아케보노는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

사츠키가 방문을 바라보았다. 열릴 기척은 나지 않았다.

 

나오지 않네. 어쩌지?”

뻔하잖아.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한 것은 나가츠키다. 그녀의 얼굴은 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츠키가 되물었다.

 

문을 부술까?”

아니. 출격해서 시라누이를 구하자. 그 수밖에 없어.”

 

그 말에는 사츠키뿐만 아니라 모두가 놀란 얼굴을 지었다.

하지만 나가츠키는 진지했다.

 

카게로가 할 수 없다면 우리들이 하자. 출격하는 함대에 참가하는 거야. 다만…….”

 

잠시 망설인 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우리들은 구축함이야. 심해서함의 대군과 싸운들,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몰라. 생존할 가능성은 낮아. 싫을지도 모르지만……

좋아.”

 

가장 먼저 찬성을 한 것은 놀랍게도 아케보노였다.

 

까짓거 해주지 뭐.”

 

의외로운 인물의 의외로운 발언에 모두가 깜짝 놀라며 쳐다보았다.

 

제안을 해놓고서 말하긴 그렇지만, 너는 시라누이와 싸웠잖아. 괜찮아?”

 

나가츠키의 질문을 아케보노는 거센 어조로 부정했다.

 

괜찮아. 그야 그 여자는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카게로의 동료잖아. 이 자리에 없는 것만으로도 카게로가 저렇게 풀이 죽어 있는 걸.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구해줘야지. 뭐든 해줄 거야. 카게로는 내……우리들의 향도함이야. 풀이 죽어 있는 상태로, 있어선 안 된다고…….”

 

카게로 대신 시라누이를 수색한다.

그것은 남방서전귀와 싸우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전투가 끝나는 것을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간 시라누이의 제적이 결정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싸우지 않으면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코스카 진수부의 함대는 전력 공격을 시도한다. E해역은 강철의 폭풍에 휩싸일 것이다. 그곳에 존재감이 희박한 함선 소녀가 나서봤자 희롱당할 뿐일지도 모른다. 수색 성공 확률도,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들은 구축함이다. 작은 몸에 큰 긍지를 품에 안은, 구축함 소녀였다.

곤경에 처한 동료가 있다면 전력을 다해 도와주는 것이다.

아케보노는 한순간 말문이 막히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러니까 난 할 거야. 아무도 안 간다고 해도, 나는 갈 거야.”

아케보노야…….”

 

우시오가, ,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도 찬성이에요.”

우시오…….”

저도 갈게요. 저는 카게로씨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이번에는 제가 도와줄 차례에요.”

나도…….”

 

아라레가 손을 살며시 들었다.

 

카게로를 위한 일이라면…….”

나도 할게! 시라누이를 데리고 돌아와서, 카게로의 기운을 되찾아 줄 거야.”

 

사츠키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분위기로 말했다. 아케보노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나가츠키를 보았다.

 

다들 마음은 굳혔어.”

그래, 한마음 한뜻이군.”

 

나가츠키는 말했다.

 

하지만,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구축함은 약해. 생환은 바랄 수 없어. 그래도 가는 건가?”

 

대답할 것도 없다.

망설임은 없다. 다른 사람의 안색을 살필 일도 없다.

전원이, 자신의 의지로, 출격하겠다고 결정했다.

 

, 가자.”

기다려.”

 

다들 목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방 문이 열려 있었다. 그곳에는 카게로가 서있었다.

 

날 놓고 가지마.”

카게로…….”

 

나가츠키가 놀랐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카게로는 생긋 웃었다.

 

애들아, 고마워. 나 같은 앨 위해서……정말로 기뻐. 그렇지만 구축함은 약하다고 비하할 일은 없다니까. 우리들도 강해질 수 있다고.”

어떻게?”

이걸 할 거야.”

 

그녀는 제독과 아타고의 사인이 기입된, 개조 명령서를 손에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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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도 앞으로 1장 남았군요. 다음주 내로  끝내보도록 하죠. 그 다음에는 괴기냠냠이 보내주신 동인 소설 한 다음에 이어서 3권 들어갈 것 같네요. 응.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