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토시스(apopto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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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당신을 잃었기 때문에
이렇게 당신 또한 날 잃는 것이다.
스즈야의 이야길 해줄까? 스즈야는 대기 중이거든. 대기 중이래. 대~기~중~. 알겠어? 달리 부르면 근신이라고도 하지. 쿠마노가 말했어. 즉, 스즈야는 못 써먹을 녀석이고, 그렇기에 스즈야는 한가한 녀석이고 그렇기에 스즈야는 너처럼 영문 모를 사람이랑 같이 이야길 해줄 시간이 많이 있다는 거야!
왜 근신이냐고? 몰라 그런 거. 왜 스즈야가 그런 걸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건 쿠마노에게 물어보라고. 그런 건 관심 없다고. 쿠마노가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을 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야. 일일이 시시한 걸 물어보지 말아줄래?
응응, 그러게~. 스즈야의 이야길 듣고 싶은 거지~. 하는 김에 쿠마노의 이야기도 듣고 싶은 거지~. 쿠마노가 없는 곳에서 쿠마노에 대한 이야길 마구 말하면 쿠마노한테 혼이 나지만 쿠마노는 화난 얼굴도 귀여우니까 말해버릴게. 스즈야는 나쁜 애인걸. 흥흥.
스즈야는 있잖아, 쿠마노랑 만나버리고 난 뒤 뭔가 많은 게 망가져서 많은 걸 재구축될 상황이었어. 건조중이라고. 다시 만든다는 거야. 스즈야 바겐세일이라고. 이건 사야한다고. 뭘 세일하는 걸까? 아하하. 웃기지? 웃으라고.
쿠마노랑 이 모습으로 만나기 전에는 쿠마노에 대한 건 1미리도 생각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어? 뭔가 이상해? 아아, 응. 뭔가, 전생이라고 하나? 그런 걸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애들 많지. 그렇지만 스즈야는 아무래도 좋아. 스즈야는 관심 없다고. 스즈야가 과거에 어떻게 지냈는지, 그런 것 따윈 정말로 아무래도 좋아. 어차피 내일이 되면 잊어버릴 텐데 말이지.
그러니까, 스즈야가 보자면 쿠마노의 첫인상 따윈 “뭐야 이 녀석?” 그런 느낌이었다고. 웃기지? 웃지 마.
쿠마노는 말했어. 날 보고, 실망한 얼굴이었어. 모멸이었나? 뭐였을까? 뭔가 그런, 근사한 빛깔을 띤 눈으로 날 봤어. 그 땐 온몸에 전율이 일었었지~.
어쨌든 쿠마노는 날 한 번 본 것만으로 나의 가치를 정해버린 뒤 이렇게 말했어.
“당신은 잘못됐어요.”
자기소개 같은 건 전부 스킵하고 하는 말이 그거야. 원래라면 나는 그 자리에서 상대방을 패버렸을 테지만 그 때는 신기하게도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지 뭐야. 납득했어. 내 가슴 속에 답답하게 쌓여있던 게 언어화가 돼서 안심한 느낌이야.
그게 그렇잖아.
인간도 일단 말로 모든 걸 정하는데. 감정보다 먼저 말이 있는데. 기쁨이란 말이 없이 너는 어떻게 기쁨을 나타내? 말이 감정을 구분한다고. 모든 감정을.
그렇기 때문에 그 때, 나는 나의 애매했던 점을 쿠마노가 딱 잘라 구분해준 거라고. 처음 말의 의미를 안 것 같은 쾌감이었어. 나는 잘못됐다. 그렇게 누가 인정을 해주는 것이 중요했던 거였어.
쿠마노는 날 보며 말을 이었어.
“당신은 당신의 모든 것이 전부 잘못됐어요. 당신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잘못됐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못됐어요. 저의 말 따위론 전혀 전달되지 않을 테고 제가 뭘 말하고 있는 지조차 당신은 이해를 안 하겠지요. 제가 전하는 모든 것을 당신은 착각하고 제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당신은 망쳐버리고, 제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당신은 버리고 말겠지요. 그래도 말이죠, 스즈야.”
그 때, 나는, 아아, 예쁜 걸, 그런 생각을 했었어.
쿠마노의 티끌하나 없는 맑은 눈동자가 정말로 예쁘다고 생각했어. 실제로 쿠마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뭐, 틀린 소리는 안 했던 게 아닐까? 쿠마노가 한 말이니까 아마 하느님의 말씀처럼 맞는 소리일 거야.
“제가 당신을, 올바르게 고쳐드릴게요.”
그 말의 의미가 역시 나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었어.
“응. 잘 부탁드릴게요.”
마치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 맑은 목소리였어. 나, 내 목소리는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 그렇지만 그 때 한 목소리는 좋아. 쿠마노의 앞이니까 분명 자연스럽게 예쁜 목소리를 냈을 거야. 역시, 쿠마노는 굉장해.
나는 쿠마노에게 교정을 받도록 했어. 나의 모든 것이 전부 잘못되었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잘못되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못된 나는 쿠마노에게 교정을 받기로 했어.
나는 아마, --아아, 세상에 이럴 수가, 이 말은 입에 담는 것조차 쪽팔려-- 사랑에 빠진 거야. 나의 모든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쿠마노에게 반한 거야.
스즈야는 어차피 잘못됐으니까, 이젠 스즈야 스스로 고칠 마음은 없다고. 왜냐하면 쿠마노가 고쳐주잖아? 쿠마노가 교정해주는 거잖아? 그러니까 스즈야는 지금 이대로 있는 편이 좋아. 어차피 스즈야의 모자란 머리로 생각해본들 잘못할 뿐이고.
아아, 그렇지, 생각났다. 스즈야는 원정 중에 멋대로 개인행동을 하고 적함을 쏴 죽여 버려서 근신 중이었지. 왜 그러면 안 되는 걸까? 왜냐하면 우리들은 어차피 도구잖아. 병기잖아. 죽이기 위해 만든 주제에 멋대로 죽이면 화를 낸단 말이야. 인간은 비겁해. 우리들을 도구로 만든 주에게 애완동물인 척을 하라고 말한다고. 애완동물이 되지 못 하면 스즈야처럼 근신을 시키고 그래도 하는 말을 안 들으면 쿵!쾅!찍! 해체를 한데.
인간은 왜 존재를 하는 걸까. 서로 다투고 죽이고, 뭘 바라는 걸까? 뭐가 되고 싶은 걸까? 스즈야는 그걸 모르겠어. 그런 녀석들 있어 봐자 의미가 있긴 해? 아, 그렇지만 그러면 스즈야도 왜 존재를 하는지 모르겠네. 아하하. 이것 참 바보 같긴.
어찌됐든 스즈야가 생각해봤자 허공에 삽질이고. 어려운 건 쿠마노가 전부 생각해줄 테고. 스즈야의 5억배 정도로 쿠마노는 똑똑해. 그러니까 모르는 게 있다면 뭐든 쿠마노에게 물어봐. 스즈야한테 물어봤자 의미가 없으니까. 아, 그건 알고 있다고? 아아, 그래. 건방떨면 죽일 텐데 말이지.
아하. 거짓말이야. 거짓말인 게 뻔하잖아. 겁먹지 말라고. 함선 소녀인 스즈야가 갓인간님을 죽일 리가 없잖아? 그런 짓을 하면 즉결 해체 처분이라고.
별루 스즈야는 그래도 상관없지만 말이야. 쿠마노가 불쌍하거든. 아니, 쿠마노는 스즈야를 교정하려고 했는걸. 그러니까 스즈야가 해체되지 않도록 여러 생각을 하고 여러 수단을 쓰고 있겠지.
불쌍하게도. 헛수고인데 말이지.
어차피 헛수고야.
내가 교정될 리가 없잖아.
당연하잖아.
그렇지만 쿠마노는 진심으로 그걸 할 수 있다고 믿고 있거든. 나보다 5억배는 똑똑한 쿠마노가, 그런 걸,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거든.
나도 믿어볼까, 생각해. 쿠마노가 하는 짓에 어울려 줘볼까, 그런 생각을 하고 마는 거야.
나는 내가 구제할 도리가 없는 존재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 건 무리라고, 그런 짓은 충분히 알고 있는데.
아주 조금, 믿어도 괜찮은 기분이 들어.
그렇지 않으면 쿠마노가 불쌍하잖아.
쿠마노가 말하는 건, 하느님처럼 믿는 걸로 치부하고 싶어. 스즈야는, 그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네~. 스즈야의 이야긴 여기서 끝.
끝났으니까 다른 데로 가버려. 스즈야는 이젠 한가하지 않다고?
뭐? 한가하지 않거든. 너 죽여 버린다.
쿠마노가 원정에서 돌아온다고. 마중하러 가는 거라고. 그러니까 꺼져.
쿠마노, 쿠마노, 쿠마노.
가여운 쿠마노. 스즈야가 같이 있어 줄게.
2
제 이야길 해드리지요. 저는 현재 해군 제4특구 특수 시험장, 통칭 새너토리움(sanatorium) 진수부라고 불리는 곳에서 함선 소녀로서 재적하고 있어요.
그 곳의 설명을 조금 덧붙인다면 본래의 호칭은 시험장이니 정식 진수부는 아니에요. 다만, 현재 정규 진수부만으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런 시험장처럼 본래 진수부로써 만들어진 것이 아닌 곳이 진수부처럼 기능을 하는 곳은 많아요.
무슨 시험을 하고 있는지, 저는 몇 척의 사정에 대해선 파악하고 있지만 그 전체적인 면모는 잘 몰라요. 이건 1급 비밀 사항인 것 같더군요.
어쨌든, 저희들이 맡는 함선 소녀라는 것은 보통 여간내기가 아닌 까다로운 함선 소녀들 밖에 없어요. 새너토리움이라고 야유를 받는 이유가 이 점에 있지요. 다양한 사정을 안은 복잡한 그녀들이 어떻게 해서 호흡 하는 것을 허락받는 곳. 그것이야 말로 이 시험장의 존재의의 이겠지요. 우리들의,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제독도, 그것이 바라던 바이겠지요.
제독이 늘 진수부에 있지 않는 것도 일단은 진수부인 이 시험장의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제독이 상주하지 않은 진수부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 그것에 대한 존재가, 저 또한 포함하고 있는, 특령, 이라는 것이지요.
초특수 임무 사령함, 이라는 정식명칭은 일단 있지만, 그것을 생략하여 특령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4척으로 구성된 이 진수부의 간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주시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제1석 콘고, 제2석 아카기, 제3석이 저 쿠마노, 제4석 토네. 이 4척은 당 진수부에 있어 실질상 최고 권한을 가지고 있어요. 그 만큼 물론 진수부를 운영하는데 있어 맡는 잡무도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까지 전부 처리하는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저희들의 일이라는 것은 함선 소녀의 본래의 직무보다 조금 동떨어진 것이기도 하지만요.
저는 애당초 이 진수부에 소속한 것이 아니에요. 지금의 제독에게 권유를 받아, 라기보단 지금의 제독의 감언에 넘어갔다고 해둘까요. 이 진수부에서 특령 제3석이라는 역직을 맡고 있어요. 저는 전에 같은 진수부에서 함께 이근이 된 스즈야를 원래대로 돌려주고 싶은 것뿐이었어요.
그녀는 산산조각이 나버렸거든요. 그녀는 애초에, 지금의 그녀와 같은, 지리멸렬한 애가 아니었어요. 그것은 제가 맹세를 할 수 있어요. 그녀는 과거, 저의 교육 담당함이었어요. 저희들은 사제 관계 같기도 하였고, 그러면서도 자매 같은(물론 자매함이긴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감각적인 부분에서) 관계였으며, 그때까지 잘 지내왔어요. 저는 그녀에게 다양한 것을 배웠고, 그녀는 저에게 다양한 것을 베풀어 주었어요. 그렇기에 지금, 제가 그 은혜를 갚아야만 할 때인 것이지요.
스즈야는, 총명한 사람이었어요. 그 진수부에서 건조된 저의 손을 이끌어주고, 다양한 곳을 데려다 주고는, 이건 이거다, 이건 이래, 등등, 하나, 하나 자세히 설명해줬어요. 함선 소녀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그녀는 저에게 가르쳐주었어요.
“신기하단 말이지. 우리들이 이런 식으로 인간 같은 모습이 되어버리다니. 그래도 물론, 우리들은 인간이 아니야. 인간의 흉내는 많이 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쿠마노.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고민해, 많이 즐기고 많이 기뻐해. 우리들이 병기라는 것에 변함은 없지만 그래도 마음을 가져버렸으니까. 이것만큼은 소중히 간직해야지.”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지 않은 건, 먼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만 스즈야였지만요.
마음이라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그것을 지금까지 저희들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것을 저희들은 매일 어떻게 다뤄야할지 모르면서도 주먹구구식으로 삶을 꾸려나갔던 것이에요.
저희들은, 병기였어요. 도구였어요.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한다던가, 고민을 한다던가, 그런 건 사치스러운 것이었으며, 존재를 할 리가 없는 것이었으며, 애초에 그런 개념 자체를 저희들은 이 몸을 얻고 나서 처음 안 정도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거창한 것을 갑자기 저희들에게 주어도, 곤란하죠.
저희들은, 곤란했어요. 아뇨, 다른 배는 어떤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저에 한해서 말하자면, 정말로 곤란했어요.
이럴 때,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저는 제 일만으로 벅찼어요.
그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스즈야조차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책에도 실려 있지 않았어요. 어떤 자료를 읽어도 그건 없었어요.
저희들은 앞으로,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요? 마음을 얻은 병기는, 무엇을 위해 싸우면 되는 걸까요? 누구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 싸움일까요? 도대체 누가, 이런 쓰잘데기 없는 다툼을 계속 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마지막까지 이해하지 못 했어요. 전의 스즈야는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한 사람이었어요. 아득한 멀고 먼 미래를 늘 보고 있는 듯한 사람이었어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식으로 말을 하며, 저는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을 드문드문 중얼거리는 사람이었어요.
그렇지만 이젠 없어요. 어디에도. 그녀의 잔해조차, 이미 사라지고 말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의, 속죄와 같은 여생이지요. 그녀에게 베풂을 받으면서도, 그녀의 잔해에 아무것도 베풀지 못 했던 한심한 저의, 구제할 도리가 없는 후일담에 불과해요.
저기요, 어째서, 스즈야.
어째서, 당신은 늘 저를 두고 가버리는 건가요?
어째서, 같이 데리고 가주지 않았나요?
이제 와서 저보고, 어떻게 살아가라는 건가요?
가르쳐줘요.
가르쳐줘.
스즈야.
……, ……, ……, …….
3
13
아득히 먼 기억에 관한 이야기.
“함선 소녀는 굉침을 하면 심해서함이 된데, 그건 사실일까?”
“스즈야는 정말로 소문을 좋아하시는 군요.”
“아니, 아니, 이걸 우습게보고 있지만 말이야? 이게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해~.”
“확실히 어느 정도 함선 소녀와 유사한 외형을 띤 심해서함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몰라. 그것에 관한 자세한 건 높은 신분인 인간님이 조사해 주겠지만 말이지.”
“어찌 됐든,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함선 소녀로서의 직무를 다하는 것뿐이에요.”
“뭐, 응, 그렇지. 쿠마노는 착하네.”
“사람을 놀리기나 하고.”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말이지. 쿠마노는 사람의 말을 너무 잘 듣는 경향이 있단 말이지. 좋은 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쁜 점일지도 몰라.”
“말을 잘 안 듣는 도구따윈 다루기 힘들뿐이잖아요.”
“응, 그런 점이 나쁜 걸지도 몰라. 쿠마노는 무진장, 자신을 도구라고 구분을 져버렸어. 물론, 우리들은 도구이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머리가 있고, 무언가를 느끼는 마음이 있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고, 그렇기에 단순한 도구로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
“어려운 말씀을 하시네요.”
“여러 생각을 해보자는 것뿐이야. 구분을 짓는 게 중요한 때도 많이 있지만, 매사 모든 걸 구분을 지어버리면 단순한 사고 정지가 돼버리거든.”
“흐음. 그 의미 잘 생각해 둘게요.”
“성실하다는 건 좋은 거야.”
“스즈야는 성실하지 않지만요.”
“아핫! 그렇지. 쿠마노가 성실한 사람이니까 괜찮잖아. 균형이 잡힌다고.”
“그런 문제인가요.”
“그런 문제라는 걸로 해두자.”
“그렇지만 타도해야 할 적이 함선 소녀의 전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건 그거대로 현재의 근간을 뒤집어엎는 이야기네요.”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야.”
“확실히 저희들은 그 점에 대해 의문을 느끼지 않은 채로 싸우는 구석이 있지요. 적이란 무엇인가? 무얼 위해 싸우고 있는가.”
“그렇지. 신기한 일이지. 단순한 전쟁이 아닐지도 몰라.”
“단순한 전쟁, 이라는 말도 상당한 업이 깊은 말이에요.”
“하하, 확실히 그래. 그렇지만, 그러네에~. 내가 심해서함이 되면, 쿠마노를 덮쳐버릴 지도 몰라.”
“반격해드리지요.”
“와~이, 듬직하셔라. 선배는 기쁘답니다?”
“놀리지 말아요.”
“아니, 진짜루. 쿠마노도 어엿해졌구나. 건조되었을 무렵엔 아무것도 몰라서 허공에 둥실둥실 뜬 것처럼 굴었잖아.”
“둥실둥실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자신의 축이 잡히지 않아서 제독이나 나에게 다양한 걸, 정말로 다양한 걸 물었잖아.”
“아아, …….”
“스푼을 집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그런 질문을 정색을 하며 물어보는 쿠마노를, 난 기억하고 있어.”
“지금 당장 잊어주세요.”
“많은 일이 있었다는 거야. 쿠마노에게도 여러 시기가 있었다는 거지. 그 자체는 전혀 나쁜 일이 아니거든요? 성장을 했다, 그저 그렇다는 거지.”
“당신 덕분이에요.”
“응. 잘 했습니다. 역시, 모처럼 죽는다면 나는 역시 쿠마노의 손에 죽고 싶어. 분명 심해서함이 되면, 그런 의미로 스마노를 덮쳐버리겠지.”
“제 손에 죽고 싶다니, 그런 허망한 감정은 없어요.”
“허망하다, 허망한가~. 그런 걸까나. 그치만, 태어났을 때엔 아무것도 고를 수 없잖아. 생물의 일생일대의 이벤트인데 말이지. 어디서 태어날지, 누구의 의해 태어날 지라던가 말이지. 그렇기에 죽는 때만큼은 자기가 고르고 싶지 않아?”
“개성적인 생사관이로군요.”
“아, 그거 날 모욕하고 있어?”
“별로요. 스즈야는 언제나 저에게 새로운 견식을 준다고 감탄했어요.”
“거짓말을 치시긴. 그 얼굴 절대로 그렇지 않아.”
“산다느니 죽는다느니, 그런 것은 그저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아, 뭔가, 쿠마노다운 것 같기도 해. 어디까지나 뒤따라오는 것뿐인, 결과라고 생각하는 점이.”
“선택지는 언제나 눈앞에 수없이 뿌려져 있지만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 채, 어느 사이엔가 그 중 하나를 고르고 있을지도 몰라요. 나중에 가서야 그랬다는 것을 눈치 채면서도, 그런 일을 반복하고 반복한 끝에, 살아온 결과라던가, 그 연장선상에 죽게 된다던가, 그런 것이 홀연히 뚫린 구멍처럼 펼쳐져 있죠. 그렇기에 저에게 생사에 관한 결정권 따윈 없다고 생각했어요.”
“과연.”
“어찌됐든, 굉침을 하지 않으면 그만인 거예요.”
“뭐, 그렇지만 말이야. 그래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 우리들은 말이지. 그러니까 나는 매일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내고 있어.”
“비관주의군요.”
“그런가? 즐거운 걸 좋아하는 거라고, 나는. 그게 살아가는 것이든, 죽는 것이든 말이지. 그러니까 딱히 죽는 게 슬프다던가, 외롭다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 나는 말이지.”
“역시 스즈야는 인간이랑 동떨어져 있네요.”
“하하. 인간이 아니잖아, 애당초.”
“그렇긴 하지만요, 저희들은 인간을 소체로, 인간답게 만들어졌잖아요?”
“그렇지만, 어찌됐든 우린 병기야.”
“단순한 도구여선 안 된다고 말했으면서, 말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저희들은 어차피 병기란 소릴 하시네요.”
“아하, 모순되는 걸까? 미안. 그저, 나는 말이지, 우리들이 아무리 규명을 해본 들 우리들은 병기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병기답게 고분고분하게 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고분고분하게?”
“그저 인간이 시키는 대로 따른다는 의미야.”
“흐음.”
“객체로서의, 나는, 그렇다는 소리지만.”
“참고할게요.”
“쿠마노는 성실하네~. 정말. 하하.”
“스즈야가 성실하지 않은 것뿐이에요.”
“그런가~.”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그런 소리를 옛날의 스즈야는 자주 해주었다. 그걸 잘 기억하고 있다. 애초에 무기물 병기였던 우리들은, 자칫하면 그런 생사관에 무덤덤해진다. 그런 것은 인간이 전부 생각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말게 된다.
아득히 먼 옛날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스즈야 자신이 잊어버리고 만, 스즈야의 소중한 기억을,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잊지 않도록 하고 있다.
4
그 날은 드물게도 정신이 없는 하루였었다. 여러 마감일이 겹쳐졌었고, 게다가 그것을 깜빡 잊고 있어서 서류, 다음 서류, 또 그 다음 서류, 를 찾으며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전표 정리, 결산표 작성, 임차대조표 경신, ……일은 어떤 것이든 미리 처리하는 나로선, 잡다한 일에 신경이 팔려 할 일을 깜빡 놓친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다소 불쾌한 놀람과 함께 일을 하나하나 처리하고 있었다.
겨우 일이 어느 정도 마치고, 휴식을 하려고 했을 땐 이미 저녁이었다. 아직 점심도 먹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느릿느릿 의자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갔다.
“수고하네.”
“덕분에요.”
애초에 토네가 제대로 일을 해줬다면 내가 겪은 고생의 5분의 1정도는 줄었을 테지만.
“하지만, 괜찮나?”
“뭐가요?”
“스즈야가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앗.”
“그것도 잊다니……자네답지 않군.”
“스, 스즈야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방금 전엔 식당에 있었지. 혼자서 멍ㅊ하니.”
“아~……, 아~.”
“뭐, 밥을 좀 안 먹는다고 해서 죽는 몸도 아니니 걱정 말게나.”
“그건 그렇지만요. 제가 이런 걸 잊어버렸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해야할까.”
“으음. 자네, 피곤한가?”
“그야 아무개씨가 일을 해주지 않아서 정말로 피곤하긴 하지만요…….”
토네는 경박하게 웃을 뿐 대꾸해주지 않았다.
스즈야는 아직도 식당에서 홀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앉아있을 뿐이었다.
“죄송해요, 스즈야, 기다리셨죠.”
“응. 그렇지만 뭐, 쿠마노가 기다리고 했으니까 기다린 것뿐이고, 괜찮아.”
“배, 고프나요?”
“모르겠어.”
“그런가요.”
나는 일단 주문을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일단 스즈야에게 무언가 먹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물어봤지만, 늘 하는 “모르겠어.” 그런 답변이 돌아올 뿐이기 때문에 나랑 똑같은 것을 시켜두었다.
어쩌다 같이 자리에 앉은 토네는 옆에서 어깨를 으쓱거리며 “참으로 난감한 일이로고.” 혼잣말을 흘렸다.
“스즈야. 오늘은 밤에 출격 명령이 떨어졌어요.”
“응. 알고 있어. 19시 00분에 늘 모이던 곳에 집합. 기억하고 있어, 기억하고 있어.”
“지각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알고 있어~, 스즈야는 지각하지 않는다구.”
스즈야에게 있어선 내가 하는 말은 절대적이고, 내 말에 반하는 것은 그 무엇 하나 할 수 없기 때문에 내 말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순 없는 걸로 되어 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스즈야를 『산산조각이 났다』라고 표현을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떤 말로 그녀를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을까?
일단, 나만 잘하면, 지금은 큰 지장은 없다. 문제없이 출격을 하고, 생활에 있어서도 나름 규칙적으로 지내고 있다.
다만, 이 생활을 계속해도 스즈야가 원래의 스즈야로 돌아올 것 같지 않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뭘 어떻게 하면 스즈야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일까? 그녀가 이렇게 돼버린 이유는 명백하다. 그걸 제거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시간이라면 있다. 작금에 초조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끝이 안 보이는 것 또한 분명한 일이었다.
늦은 점심, 스즈야에게 있어선 이른 저녁을 마치게 하고, 한동안 시간이 난 우리들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식당에서 이동을 하여 근처 휴계실 소파에서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앉아 있었다.
그러자 토네가 어디서 가져왔는지 장기판이랑 장기말을 들고 찾아왔다.
“어차피 한가하지 않는가.”
“휴식하느라 바빠요.”
“그건 무슨 말인가. 휴식을 하는 것조차 바쁘다면 자네는 언제 쉰다는 것인가.”
“말장난을 좋아하시는 분이시군요. 그렇지만 전, 장기는 어려워서 잘 모르는 걸요.”
“그렇지만 규칙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렇다면 둘 수 있겠지. 말을 6개 때고 해주마.”
“상당히 얕보이고 있군요.”
“그렇지만 실제로 못 이기질 않나.”
옆에 앉은 채로 있던 스즈야에게, 어쩌실 거죠? 보실래요? 방으로 돌아가도 괜찮아요.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자, “볼래.” 라고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스즈야는 이런 부류의 놀이에 흥미가 없어 보였다. 처음에야 그 말은 뭐야? 어떤 규칙이야? 지금 누가 이기고 있어? 등등 물어보았지만, 지금은 나랑 토네가 이렇게 놀이를 즐기는 있어도 물끄러미 옆에서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요만큼도 눈곱만치도 흥미가 없다고 물으면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였다. 실제로 이렇게 선택지를 주어도, 스즈야는 늘 구경을 하는 쪽을 고르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깊이 생각을 해야 하는 게임은 싫지 않다. 그저 내가 이런 부류의 게임을 잘 하지 못 하는 것이 다소 문제이다. 전투도 그렇다. 많은 생각은 하지만, 어딘가 나의 심성의 근본(根本)이 근성론(根性)에 뿌리(根)를 내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아아, 이건 토네(利根)보고 뭐라고 하지 못 할 정도로 너저분한 말장난이지만, 어쨌든 최종적으로 실력 행사로 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경향이 나에게 있다. 매번 고쳐야지, 고쳐야지라고 생각을 하지만, 어쩌면 나는 의외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이 싫은 걸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해놓고서도 그 가정은 조금 의외로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장기판의 상황은 내가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 아, 어라? 우와.”
어째서. 토네는 비(飛),차(車,)각(角)은커녕 계마(桂馬)도, 향차(香車)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비차가 잡힐 것 같았다. 아니, 이대로 가면 잡힌다. 어디로 도망을 쳐도 잡힌다. 어째서?
“후하하, 왜 그러는가 쿠마노? 자네의 비차는 잡히기 일보 직전이라네.”
이쪽으로 도망을 치면, 안 된다 은(銀이) 있다. 그럼 이쪽이라면, 아무것도 없다. 아니 잠깐만, 토네는 보(步)를 들고 있다. 저쪽으로 도망을 쳐도 보의 위협을 받으면 도망칠 곳이 없어진다. 어차피 이것도 고려를 하고 있을 것이다.
으, 으으음. 음음.
“있잖아, 쿠마노.”
스즈야가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 네. 뭔가요? 저 지금 무척이나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제대로 답변을 하기 힘들어요.”
“여기에 있잖아, 쿠마노의 향차를 두면 돼.”
“어, 아, 에. 스즈야, 장기 아시나요?”
“어. 모르는데. 그렇지만 향차는 그렇게 움직이는 거잖아? 여기에 두면 된다고 생각해.”
“어허, 그만두게나 스즈야, 괜한 말을 하는 게 아닐세. 쿠마노를 혼란시켜선 안 돼지.”
어라. 토네가 초조해하고 있다. 이건 정말로 유일한 도피처가 아닌가?
스즈야가 말한 대로 말을 두었다. 그러자, 확실히 비차에게 뻗혔던 위협은 사라졌다. 비차를 잡으려고 했던 금장의 견제도 된 것 같았다.
“호오, 호호오. 스즈야가 말한대로 하니 어떻게 됐네요.”
“와~이. 그런 느낌이 들었어.”
스즈야는 노곤한 목소리로 웃었다. 턱을 괴며, 지루하게 굴고 있는데 즐겁게 웃고 있었다.
스즈야에게, 체계적으로 정돈된 사고회로가 존재하고 있는지 그 여부 따윈 나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때때로, 이렇게, 그 편린이 엿보였다. 스즈야는 확실히 스즈야라고, 느끼게 하는 순간이 이따금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많은 것을 믿고 싶어졌다. 끝이 안 보이는 전쟁도, 끝이 안 보이는 관계성도, 모든 것이 언젠가 보답을 받을 날이 오는 게 아닐까? 그런 희망을.
허망한 몽상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믿어보자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생각했었던 것이었다.
5
그 날은 평소와 달리 정말로 정말 바쁜 하루였다. 그렇다고 하여도, 그런 분주함도 포함하여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하루이다. 그럴 터였다.
스즈야가 굉침했다는 보고를 받은 것은 오후를 조금 지난 무렵.
대규모 작전이 아니며, 거센 전투도, 미지의 적이 존재하는 전투도 아니었을 터였다. 스즈야 이외의 피해는 경미하고, 누가 어떻게 봐도 수상쩍은 굉침이었던 것은 명백했다.
“그래요.”
그 소식을 받고, 나는, 뭔가 얼빠진 대답을 하였다. 그 이외의 대답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너무나도 뜬금없었고.
너무나도 갑작스러웠고,
너무나도, -이런 말은, 하면 안 되지만- 스즈야, 다웠던 것이었다.
“죄송해요, 정말로.”
비통한 표정을 짓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오히려 무츠였다. 함대 기함으로서 그녀는 함대 행동에 모든 책임을 진다. 이번 출격에는 그녀는 출격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이 진수부에 있어 전투행위의 전권을 담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도, 어째서 나에게 사과를 하는 걸까?
“혼전 상태였던 건 분명해. 그렇지만, 동료함의 눈으로 봐도 스즈야는 기묘한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 공격을 피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돌진을 해서, 기함 나가토의 명령을 무시하고 물러나지 않았어. 도중에 통신도 끊었다고 해.”
“그렇군요.”
나는 뭔가 남 일처럼 듣고 있었다. 실제로 남 일이었다. 도통 뜬금없는 일이라서, 말은 한 마디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또 금세 스즈야가 돌아올 것 같았다. 잘 이해가 안 되는 애니까. 잘 모르는 타이밍으로, 돌아오는 게 아닐까하고.
그렇지만 분명 그렇다, 나는 “반드시 돌아와 주세요.” 라곤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기에 돌아오지 않는 걸까?
“굉침은 수반함 전원이 증언을 통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항공순양함 스즈야는 당 시험장에서 제적됩니다.”
굉침.
제적.
이번 달 처리는 이미 끝났는데. 다음 달에 굉침 취급을 받는 것뿐이다. 아니, 콘고에게 말하면, 괜찮나?
멍하니 그런 생각만 하였다. 스즈야가 굉침. 신비한 느낌이었다.
슬프다기 보단,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한 감각이었다.
죽는 것이 쓸쓸하다든가, 슬픈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 그렇게 스즈야는 말했다. 그렇기에 나도 스즈야가 굉침했단 소릴 들었고, 이렇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도피인가?
그렇구나, 돌아오지 않는 것인가. 반드시 돌아와 주세요라고 말을 할 걸 그랬나. 했다면 돌아왔을까? 그 애이니. 내 말이 없으면 꼼짝도 안 하는 그녀였으니까.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스즈야가 내 말을 지키지 않았던 때는 한 번도 없었는데.
분명, 반드시 돌아와 주세요라고, 말을 한들, 돌아오지 않았던 게 아닐까.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얼빠진 얼굴로 보고를 들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6
스즈야가 그때까지의 스즈야가 아니게 된 것은, 아무래도 피하기 힘들 일이었다. 우리들은 병기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쓰다 버리듯이 혹사당할 각오도, 망가져서 폐품이 될 각오도, 쓰레기처럼 폐기될 각오도, 했다고 자부했었다.
우리들은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인간이랑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결코 인간은 아닌 것이다.
“그렇죠?”
“뭐, 그렇네. 쿠마노의 말이 맞아.”
분명 스즈야라면 그렇게 말해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슬픔이 아닌 것이다. 도구가 망가져서 슬퍼하는 도구가 없듯이. 배가 부서져서 슬퍼할 배 따윈, 없을 터였다.
잠깐 다녀올게,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발묘를 한 스즈야를, 나는 배웅하였다. 그렇지만, 스즈야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투 중에 대파를 하여, 기관부에 격심한 손상을 입었다고 들었다. 진수부에 복귀를 하는 것보다. 지리적으로 해군본부와 가까웠던 탓에 본부에서 수선을 받는다는 것을, 기함을 통해 들었다.
나는, 늘, 듣기만 할뿐이며, 방관자이다. 늘 스즈야의 중요한 때에, 나는 없다.
“왜 그러는가? 오늘은 평소보다 더, 정신이 딴 데로 팔린 것 같다만.”
해군 제4특구 특수 시험장에 전속이 되기 전에도, 나와 토네는 서로 면식이 있는 사이였다. 가장 가까운 진수부에 소속하고 있었고, 합동 연습을 할 때에 곧잘 만나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이 토네와, 나중에, 같은 시험장에 전속이 되어, 동료로서 밀접하게 일을 하게 될 거라곤 이 땐 생각도 못 했지만.
늘 그렇듯이 연습을 한 뒤, 토네가 말을 걸어왔고, “죄송해요.”라고, 또 맥없는 대답을 하였다. 스즈야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다른 진수부에 소속하고 있는 함선 소녀에게, 자신이 속하는 진수부의 정보는 말해선 안 된다.
토네는 그 무엇 하나 깊게 파고들진 않았다. 평소라면 다를 것 없이 연습에 참가하고 있을 스즈야가 없는 것에서, 어느 정도의 사정은 눈치가 챈 것 같았다.
그 때, 토네는, 신비한 눈을 하였다. 날 보고 있는데, 나의 아주 깊은 저편, 나 자신이 아닌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눈이었다.
그 때의 나에겐, 알 수 없었던 일이었지만. 나중에 가서야, 그야 말로 특령을 받아, 콘고의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토네는 두 번, 자매함인 치쿠마를 잃었다. 첫 번째는 건조 도중에 폐기처분이 되었고, 두 번째는 자살을 한 현장을 토네가 가장 먼저 발견하였다.
이것은 가정이지만. 지금의 내가, 그냥 이유없이, 당시의 토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면.
토네는, 나에게,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일까? 소중했었던 자매함을 잃고, 망연자실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날 통해 보았던 것일까.
“배속이 다르기 때문에, 말 못할 사정은 많겠지만……나라도 괜찮다면, 뭐든 말해보게나. 힘이 될 일도, 되지 못 할 일도 있겠지. 하지만 자네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할 도리는 없다네.”
평소의 심술 맞아야 할 토네는, 그 날만큼은 그런 다정한 말을 했다.
치사하다. 옛날부터 그랬다. 이렇게 힘들 때에만 상냥하게 군다. 기대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선 안 된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내가 나인 이상.
“감사합니다.”
나는 웃을 수 있었던 것일까. 얼굴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지 않았던 것일까? 잘 처신을 했던 것일까. 표정관리를 잘 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런 식으로 웃으며 어물쩍 넘겼기 때문에, 토네도 그 이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늘 짓던 심술 맞은 미소를 그리며, “평소부터 그렇게 솔직하게 굴면 귀엽지 않느냐.” 란 말을 하였다.
결국. 그 후 이틀 뒤, 스즈야는 돌아왔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 내가 알고 있던 스즈야가 아니었다. 뭐라고 표현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미리 제독에게 충분한 설명을 받았을텐데 막상 눈앞에 들이닥치자 지독한 현실에 현기증이 일었다.
나는 스즈야를 보고, 어쩔 도리가 없었지만, 무슨 영문인지 입술은 움직였다. 내 의사에 반하여.
“당신은 잘못됐어요.”
그런 지독한 말을, 뱉었다. 나 자신도 어쩜 이리도 박정한 말을 한 것일까라고 저주를 퍼붓고 싶어졌다. 스즈야는 바래서 저렇게 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이런 건 사고에 불과하고, 피할 수 없는 재해 같은 거와 만난 것뿐이며, 어째서 이런 당찮은 비난을 그녀가 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그럼에도, 나는 말을 계속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을 말해버리면, 이 스즈야의 존엄은 어디로 가버린다는 것인가? 당신에겐 이전의 올바른 모습이 있고, 지금의 당신은 스즈야가 아니라고. 당신은 스즈야가 아니니 스즈야로서 대우하지 않을 거란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전의 스즈야와 다른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그래도 스즈야로서 대우를 해줘야만 한다.
“당신은 당신의 모든 것이 전부 잘못됐어요. 당신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잘못됐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못됐어요. 저의 말 따위론 전혀 전달되지 않을 테고 제가 뭘 말하고 있는 지조차 당신은 이해를 안 하겠지요. 제가 전하는 모든 것을 당신은 착각하고 제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당신은 망쳐버리고, 제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당신은 버리고 말겠지요. 그래도 말이죠, 스즈야.”
그래도 말이죠, 스즈야.
당신은 그래도 “우리들은 병기야.” 그런 무자비한 소릴 하실 건가요?
이렇게나 일그러진 마음의 존재방식을, 그래도 인간 흉내 내기라고, 당신은 생각하시는 건가요?
“제가 당신을, 올바르게 고쳐드릴게요.”
당신에게 기대어 살아온, 제가 당신에게 보답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분명 당신을, 원래대로 돌려내는 것이 아닐까요.
분명 완벽하게 예전대로 돌아가진 않을 테지요. 새로운 스즈야로서의 자아도 있죠. 둘이 깔끔하게 조화를 하여, 하나의 스즈야가, 될 때가, 온다고 한다면.
저는 그 때 비로소, 절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요. 도구로서가 아닌, 하나의 객체로서의 절. 중순양함 쿠마노를.
“응. 잘 부탁드릴게요.”
스즈야의, 씩씩한 목소리의 울림만이, 분명 유일한 진실.
-응, 이걸로 끝. 킥킥킥.
조금은 재밌게 감상해주셨나요. 킥킥킥.
여기까지가 여섯 번째 아이들인(불쌍한) 쿠마노의 기억이에요. 몇몇 장면은 제가 자른 부분도 있지만, 이것이 대략적인 줄거리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지요.
아아, 으음, 제6세대,라고 불리고 있었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여섯 번째 아이들.”이라고 부르고 있지만요. 절 첫 번째로써 태어난 귀여운 아이들. 제가 낳은 것은 아니지만, 생김새는 붕어빵이고, 저의 데이터에서 태어났다는 건 틀림없으니까요, 딸이라고 불러도 잘못된 표현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뭐, 저랑은 천지차이로, 귀여운 아이죠? 자랑스런 딸이에요. 후후. 정말이지 이건 참 오리지널이랑 동떨어진 모델로 만들어졌네요. 그런 소프트웨어적인 면은 두 번째 아이를 기초로 만든 것 같으니, 저랑 다른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요.
지금의 세상은 참 편리해요. 세상만사 모든 것, 개인의 의식조차 데이터화를 시켜버리는 걸요. 그렇다고 해도, 현재 그런 소프트웨어는 어쨌든, 그걸 받아들이는 하드웨어가 따라가질 못 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요.
그렇기에 저는 자신의 몸을 썼어요. 아무래도 저희들, 오리지널 함선 소녀란, 정말로 신의 총애를 받은 몸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부지런히 저희들의 복제품을 만들고 있지만요, 만드는 것 족족 오리지널이랑 비교할 수도 없는 저스펙이에요.
아뇨, 딱히 저스펙이 나쁘다는 건 아니랍니다. 모든 것이 저희들이랑 손색이 없는 하드웨어를 지니고 태어난다면, 이 전쟁의 규모도, 내용도 좀 더 잔인한 것으로 변모를 했을 테니까요.
어떤 스펙이라고 해도, 요는 쓰기 나름이란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도, 최대한 썼어요. 여섯 번째 딸아이를 하나 받아서, 모든 것을 데이터화를 한 뒤 그 몸을 폐기하고, 제 데이터에 그녀의 데이터를 첨가한 것이에요.
안심해주세요. 덮어씌워서 저장을 한 게 아니에요. 이름을 붙여서 저장을 했어요. 오리지널 중순양함 쿠마노란 하드에, 제1세대 계정이랑, 제6세대 계정이 있는 것뿐이에요. 어려운 건 아니에요. 그리고 관리자 계정은 저라는 것이죠. 그녀는 저의 존재 따윈 몰라요. 자신의 의식이 하나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누가 할까요. 그런 건 불가능해요. 보통은, 말이죠.
“뭘 하기 위해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스즈야의 불안해 보이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네요.
뭘 하기 위해서, 이라.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을 위하기 때문에 이러는데 말이죠, 그렇지만, 그건 아직 당신에게 전할 때가 아니네요.
“구태여 말하자면, 즐거우니까, 가 아닐까요?”
“즐거워?”
“네, 저, 눈에 들어오는 건 전부 뒤집어엎는 걸, 좋아하거든요. 딱히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다는 건, 아니랍니다. 그저, 제가 제 멋대로 하는 것뿐이고, 이렇게 많은 인간이나 함선 소녀의 복제품들이 우왕좌왕하며 수렁에 헤맨다. 이렇게 재밌는 일이 있나요? 당신도 말씀하셨잖아요. 모든 함선 소녀를 없앨 것이죠?”
“그렇긴 한데, ……그건, 쿠마노,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래요, 그렇죠. 당신은 착한 아이였어요. 스즈야. 한껏 칭찬을 해드리죠. 스즈야. 불쌍한 얼굴. 귀여운 그 얼굴을 잘 보여줘 봐요.”
“쿠마노 도대체 이유가 뭐야? 쿠마노. 스즈야는 모르겠어. 미쿠마도 있었단 말이야.”
“알고 있어요. 미쿠마 언니에겐 신세를 많이 졌죠.”
“미쿠마는 쿠마노를 위해 그렇게 되었다고, 그런 꼴로,”
직접 제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미쿠마 언니의 전말을 듣고 있다. 뇌수만 남아도 저희 오리지널 함선 소녀라면 의식만은 유지할 수 있다는 새로운 시야를 주었다. 이것만큼은 실제로 되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정말로 그녀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을 드리고 싶었어요.”
“어째서, ……모르겠어, …….”
어째서, 그렇게나,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하드웨어를 추구하는 것일까? 몸이 없는 들, 데이터는 분명 남아있다.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나 간단하게 바꿔칠 수 있는 것에, 어째서 그렇게 매달리는 것일까?
언제 어느 때라도 버려지고, 언제 어느 때라도 새로 만들 수 있는데, 낡아버린 그걸 애지중지 끌어안고 있는 건 도대체 무슨 심리작용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여섯 번째 쿠마노(나)도, 그런 것을 고민하고 있었나? 몸 따윈, 사소한 것이다. 튼튼하고 대체할 수 없다면, 소중히 간직해야겠지만, 그건 예를 들면, 우리 오리지널 함선 소녀의 몸이라던가 말이다. 그렇지만 미쿠마 언니는, 이미 한계였다. 뇌수만 남은 상태론 상당히 오래 버틴 편이 아니었을까?
분명 언니도 알아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옛날부터 언니는, 나에게 많이 상냥했다. 그렇지만 가장 마음을 써준 것은, 스즈야였지요. 스즈야만 유달리 상냥하게 대해줬지요. 모가미 언니도 그래요. 쿠마노는 똑 부러진 애니까, 그런 소릴 자주 해주셨지요. 똑 부러지지 않았으면 저도 스즈야처럼 언니들의 귀여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저기, 쿠마노, 나는 다음에 뭘 하면 돼? 쿠마노가 시킨 대로 했어, 그런데 어째서 늘 나의 모든 걸 빼앗아 버리는 거야? 오이겐도 쿠마노가 만들어도 된다고 말해줬는데, 그렇게 써먹고 죽이다니, 어째서.”
“그녀에게 내린 역할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에요.”
“모가미도 이젠 없어, 나는 앞으로 얼마나 이래야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거야?”
“용서요? 이상한 소린 하시지 말아요. 전 화 따윈 안 냈어요.”
“스즈야는, 쿠마노랑 같이 있고 싶을 뿐이야.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그걸 할 수 없는 거야? 쿠마노는 내가 싫어? 쿠마노, 언제쯤이 되어서야 날 원래 몸으로 돌려보내 줄 거야?”
“무슨 소릴 하세요, 스즈야. 당신은 제2세대. 제1세대 스즈야는 한참 도 전에 죽었어요.”
“용서해줘.”
“불쌍한 스즈야. 모든 걸 잃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모든 것을 잃은 당신이기에. 새롭게 얻은 것도, 전부 또 다시 잃어가는 것이에요. 저랑 똑같이.
스즈야는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않다. 당연한 소리다, 내가 전부 지워버렸으니까. 슬픈 일은, 전부 잊어버리게 해줬으니까.
저랑 같이 모든 걸 잃고, 모든 걸 백지로 돌리고, 그 때 둘이서, 백지 같은 세계에서 죽어요. 저는 그것만을 바래요.
그러니까 필요 없는 걸 전부 버리고 싶다. 인간도, 함선 소녀의 복제품도, 오리지널도, 전부 필요 없다. 우리 이외엔, 그 무엇 하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의 상상하는 듯한 유치한 소원이라고 생각하시죠? 그렇지만 진심이에요. 전부 지워버리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어요. 생각하는 것 만이라면 자유잖아요?
“스즈야. 똑똑하고, 착한, 스즈야. 앞으로 딱 하나,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요. 들어줄래요?”
대꾸도 없이 스즈야는 고개를 들어, 날 보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 그 눈동자는, 빛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만든 건 나. 이 애를 망친 건 나. 그렇지만, 그것이, 올바른 일이야.
“당신의 귀여운 프린츠를, 한 번 더 살려드릴게요. 그리고 죽이고. 다시 한 번 살리죠. 그리고 죽이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그 과정을 반복하는 거예요.”
“뭘, 위해서.”
“그녀의 데이터를 지우고 싶거든요.”
“데이터를, 지우,다니.”
“네. 보통은 못 하죠. 접속 권한이 있어도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지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죠. 그 방법만 판명되면, 이제 두 번 다시는 함선 소녀의 복제품 따윈 만들 수 없잖아요? 분명, 인간은 곤경에 빠지겠죠. 세상이 엉망진창이 되겠지요. 그렇기에 그 방법을, 인간은 숨기고 있을 거예요. 저는 그걸 알고 싶어요. 뭘 시험해도 좋아요, 뭘 써도 좋아요. 그 실험대로, 삼을 뿐이에요.”
“……프린츠를?”
“네. 들어줄 순 없나요?”
그렇지만, 난, 그 대답을 알고 있다.
“할,게.”
“잘 했어요.”
이렇게 하면, 분명 콘고가 온다. 마지막으로 이야길 해주자. 우리들은, 아주 조금, 대화가 부족했으니까.
많은 일이, 많은 의혹 하에 움직이고 있다. 그 기폭제가 되는 일이, 머지않아 시행될 제2차 소탕 작전. 인간에 의한 함선 소녀와 심해서함의 머릿수 조정. 많은 진수부가 습격을 받을 것이다. 제4특구 특수시험장도 당연히 그 타깃에 해당된다. 아니, 오히려 데이터를 취득할 수 있으니 다른 진수부보다 철저하게 공격을 받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제1세대도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 움직임엔 아마도 내가 파악하고 있는 세력의 것도 있을 것이다.
해군 제4 특구 특수 시험장 녀석들도, 콘고 이외의 녀석들도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정규 진수부도 눈에 들어오는 부분에서 움직이고 있다.
모든 불확정 요소를 이용해서, 최종적으로 내가 즐기면 그만이다. 어질러 버리면 그만. 죽일 수 있을 만큼 죽이고, 웃을 수 있을 만큼 웃자.
내가 하고 싶은 건, 그것뿐이니까.
7
우리 모가미형이 제1세대로서 살아있었을 무렵. 매일 조금씩 단조롭긴 했지만 나름 충실한 삶이었다. 지금처럼 결렬된 사이도 아니며. 그저 한 결 같이 심해서함들과 싸우고 있었다.
인간이 만든 복제품보다 심해서함들은 훨씬 똑똑했고, 회화도 가능했다. 우리들은 적이었지만, 숙적이라고 부르기 보단, 악우,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생사란, 서로 부대껴 놀던 도중 갑자기 자리가 비어버리는 일이었으며, 그 일에 큰 슬픔은 없었다. 살아있기에, 죽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들에겐 단결력이 있었다. 각자 명확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같이 행동을 하며, 함께 심해서함과 싸운다는 명확한 의지만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곳에 인간이 찾아와, 우리들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우리들은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소유물이 늘어나고, 버릴 수 없게 되는 것이 늘어났다.
우리들의 생활은 확실히 원시적이었다. 그렇지만 그걸로 충분했던 게 분명했다. 부족한 것은 없었다. 없었는데, 인간이, 멋대로 우리들의 소유물을 늘리고, 부족한 것처럼 느끼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 것은 필요 없었을 텐 데 말이다.
인간이 전부 나쁘다.
인간이 전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스즈야도 모가미 언니도, 인간의 편을 들 거라고 말했다. 나는 인간의 적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미쿠마 언니는 적도, 아군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 네 척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의견이 엇갈렸다.
그 결과가 어떤가? 모가미 언니는 인간이 만든 심해서함의 복제품의 손에 죽었다. 미쿠마 언니는 중립을 지켰는데 인간을 적대하고 있다고 간주되어 포박되어 뇌만 남아버렸다. 스즈야는 나가토의 제안을 승낙하여 접속 권한을 얻은 탓에 인간의 손에 죽었다.
나는 이런 건 이상하지 않냐고, 미쿠마 언니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어째서 모가미 언니도, 미쿠마 언니도 이런 꼴을 당해야만 하나요? 인간을 그냥 방치시켜선 안 되는 게 아닌가요? 라고 말하러 갔다.
미쿠마 언니는, 뇌와 안구만 남아버린 언니는 “미쿠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라고만 말했다. 나가토가 인간과 맺으려고 하는 협정의, 접속 권한도, 스즈야가 가져서 안 되는 거라고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그건 스즈야가 정할 일이 아니지 않을까요?” 그런 말만 하였다.
어째서.
언니들이, 이 이상, 인간의 노리개가 되는 건 버틸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러는 사이에, 스즈야가 죽었다. 난 이제 누군가의 말을 들을 맘이 들지 않았다.
죽어버린 스즈야의, 쓸 수 있는 부품은 전부 사용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모조품 기술을 사용하여, 모조품의 몸에 박아 넣었다. 그렇게 태어난 새로운 스즈야는, 오리지널 스즈야와, 모조품 스즈야가 뒤섞인 불안정한 스즈야가 돼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좋았다. 오히려 그 편이, 스즈야를 이번에야 말로 죽이지 않도록, 내가 잘 교육을 시킬 수 있다. 내가 하는 말을 들어주도록. 이번에야 말로, 인간 따위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내가 싸우는 상대는 이젠 심해서함이 아니었다.
인간은 너무 오만하다. 우리들의 생명을 모독하고 있다. 그런 생물의 존재를 인정해서 뭐가 된단 말인가?
스즈야나 언니뿐만 아니다. 많은 동포가 죽어버렸다. 심해서함 따윈, 데이터만 취득하고 전부 죽어버리고 말았다. 모두 죽고 말았다. 어째서. 어째서 인간 따위가.
우리들의 존재방식을 돌려줘. 우리들의 동포를 돌려줘. 우리들의 적을 돌려줘. 만족하고 있었다. 부족한 건 없었을 터였다.
인간만 없었다면, 그걸로 좋았는데.
“그렇게 증오를 불태우며 싸우는 건가Yo.?”
“싸우는 게 아니에요. 제가 싸웠던 상대는, 심해서함뿐이에요. 그것도, 인간이 만든 복제품이 아닌. 이제는 없는, 심해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그녀들뿐이에요.”
“그래선 단순한 병기에Yo..”
“병기잖아요, 애초에. 죽이기 위한 도구잖아요. 인간을 죽이기 위한 도구에요. 도구가 도구로써 본분을 떠올린 것뿐. 증오로써 죽일 수 있어요.”
“아무것도 안 남아Yo..”
“스즈야가 있어요. 스즈야의, 잔해가요.”
“당신에게 있어서 그녀는 잔해이군Yo.”
“오리지널 스즈야는, 조금, 망가져 버렸어요. 그렇지만 스즈야가 나쁜 게 아니에요. 인간이 나쁜 것뿐이에요. 그 애에게 잘못은 없는 걸요.”
“그래요. 말려도. 헛수고로군Yo.”
“어째서 콘고야 말로, 인간을 옹호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있는 진수부에 있는 것 같더군요. 잘도 그럴 맘이 들었군요. 저에겐 그게 이해가 안 되네요. 당신도 자매를,”
“슬프긴 해.”
“슬프기만 하고 밉지는 않다? 성인 행세를 하는 건가요.”
“밉기도 해. 그렇지만, 그건 잡히는 대로 모든 인간에게 향할 증오가 아닐 뿐이야. 확실히 지금 진수부에 들어간 건 꽝이 아닐까란 생각은 지금도 생각하지만, 그렇지만 전속하게 되었거든.”
“어쨌든, 인간이 통치하는 인간을 위한 시설임에는 변함이 없어요.”
“그렇지도 않아요. 함선 소녀였던 제독이래. 새로운 진수부를 만드는 것 같더라고. 게다가 내가 필요하다고 말해줬어.”
“그럼, 그쪽에서 좋을 대로 하세요.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할게요.”
“이봐, 쿠마노? 당신이 인간을 전부 죽인다고 한다면, 나는 언젠가 당신을 방해하러 갈 거라고 생각하는데.”
“맘대로 하시죠.”
“당신도 나랑 같이 와주길 바랬어, 다음에 갈 진수부. 분명 즐거울 거라고 생각해.”
“흥.”
“또 만나자, 쿠마노. 가능하면 좀 더 우호적으로 이야길 할 날이 오면 좋겠어.”
콘고와 나눈, 제1세대 쿠마노로서의 회화는 그걸로 마지막이었다. 그 때는, 콘고가 말하는 진수부 따윈 죽어도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양한 만남이 있어, 제6세대 쿠마노로서 그 진수부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지금부턴.
콘고가 날 찾아올 것이다. 프린츠는 토네의 접속 권한을 써서 바로 파악했을 것이다. 스즈야가 아니라 날 노리러 올 것이다.
“유쾌한 표정을 하시고 계시네요.”
“당신만큼은 아니에요, 아카기.”
“어머나, 그렇게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나요? 이런 이런, 숨기려고 생각했는데.”
“숨기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즐거운 일은 있는 힘껏 즐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옆에 있는 해악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특령 제2석, 정규 항모 아카기. 해악이 옷을 입고 걸어다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저 재밌어 보이니까, 콘고의 방해를 하고 싶으니까, 그런 이유만으로 나랑 같이 행동을 해주었다.
콘고와 토네가, 우리들을 치러 올 것이다.
제1석 콘고, 제4석 토네. 그리고 제3석인 나와 제2석인 아카기. 깔끔하게 갈라지고 말았다.
이제와서 돌아갈 곳은 없다. 돌아갈 셈은 없다. 콘고가 이기든 내가 이기든, 나는 이젠 어디든 가고 싶지 않다. 나에겐 이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두 데이터가 돼버려서, 이 몸에 의미도 가치도 없어지고 말 바에야. 이 몸채로 불살라 버려서 죽어버리면 된다.
“제1세대 아카기는, 어떤 분이었나요?”
“이상한 소릴 하시는 군요. 당신이 그런 것에 흥미를 가질 거란 생각은 못 했어요.”
“카가가, 있잖아요, 용병을 하고 있는 그녀, 있었죠. 그거, 아무래도 제2세대인 것 같아서요. 그것도 제1세대 카가의 신체를 계승한, 제2세대.”
“아아. 알고 있어요. 강한 건 당연하겠죠.”
“네. 그 카가를 보고 있자면, 궁금해져서요.”
“안심해주세요. 당신 같은 말종은 아니었어요.“
“하하. 그렇겠지요.”
“싸우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해야 할까, 존재의의를 크게 가지고 싶었다는 건, 분명하죠.”
후배에게 엄격한 배(船)였다. 즈이카쿠나 쇼카쿠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정성을 들여 잔소리를 한 모습을 떠올린다. 카가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카가가 가끔씩 의견을 낼 때에는 모두가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었으며, 아카기도 잠자코 따랐었지. 그립다.
모든 것이, 과거의 일이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시나요?”
아카기의 말에, 뭘 당연한 소릴, 그런 말을 하려다가, 그렇지만 아카기는 그런 감정, 은 털끝 만 치도 모르겠지, 라고 생각했다.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가 안 보일 정도로요. 당신은 생각하지 않겠죠.”
“떠올릴 과거는, 저에겐 없으니까요.”
“그건, 즉, 당신 자신은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인가요?
제가 한 말은 무척이나 무례한 것이었겠지만, 그녀는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그렇네요.” 라고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특령 4척끼리 지냈던 무렵도, 당신에겐, 재미없는 것이라는 거예요?”
“아뇨? 재미가 없다니요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아요. 저는 언제나 전력을 다해 즐기고 있어요. 특령도, 정말로 즐거웠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이편이 더 자극적이고 즐겁네요.”
이렇게나 간단하게,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을, 추억을, 버릴 수가 있다면. 나에게도, 다른 길이, 일었을까?
내가 바랐던 미래란, 뭐였을까.
모가미 언니랑, 미쿠마 언니랑, 스즈야랑, 함께 지낸다. 그저 그것뿐인 것 같았다. 다툼도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아니, 가끔씩은 심해서함이랑 싸우는 것도 전혀 나쁘지 않았지만, 그건 어쩌다 있는 일이고, 평화롭게, 넷이서 살아갈 수 있다면.
네 ‘명’?
뭐지, 지금, 이 인간 같은 표현은.
인간이 되고 싶었다는 것인가? 그렇게 증오한 인간으로. 그렇게 죽이자고 생각한 인간으로.
모처럼 모조품이 아닌 오리지널로 태어났는데, 나는 함선 소녀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고 하는 것인가?
“쿠마노?”
인간처럼 살고 싶었던 것인가. 인간의 자매처럼, 모가미 언니랑, 미쿠마 언니랑, 스즈야랑, 나, 넷이서 살고 싶었다고 생각한 것인가. 내가.
이렇게 증오하고 있을 인간에게, 나는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인가? 터무니도 없는 아이러니이다, 이건.
나는 무얼 위해 지금까지?
나는 누굴 위해 지금까지?
아니, 이제와서, 멈추지 않는다. 모든 걸 지우고 죽여버릴 때까지, 나는 멈춰선 안 된다. 왜냐하면 모가미 언니도, 미쿠마 언니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스즈야도, 그 때의 스즈야와 다르다.
이젠 나밖에 없다. 누구의 뜻도 이어받고 있지 않지만, 명실상부 순수한 모가미형은 이젠 나 밖에 없다!
아무리 내가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한들,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함선 소녀다. 오리지널. 인간 따윈 내 발끝에도 못 미치는, 오리지널이다!
나의 악의를, 막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막아보라지.
“이 세상의 악의는, 누가 시작한 것일까요?”
나의 말에, 아카기는 미소를 짓는다.
“악의 덩어리 같은 당신이, 똑같은 악의 덩어리 같은 저에게, 그런 소릴 하나요?”
“자각은 있으셨나요?”
“자주 듣는 소리니까요. 시작 따윈 안 들, 지금의 저희들에겐 아무런 영향도 못 끼쳐요. 생각해봤자 헛수고가 아닌지?”
“……그렇군, 그러네요. 당신의 말 대로에요. 고마워요, 이상한 걸 물었네요.”
“괜찮아요. 당신이 그 길을 벗어나려고 한다면, 그 때는 제가 당신을 배신하지요.”
그것은 흡사 지옥 같은 상냥한 목소리이며, 흡사 지옥 같은 무자비한 말이었다. 그렇기에, 머리가 단번에 식어버려서, “그러네요, 고마워요.” 라고 대꾸할 수 있었다.
그렇다, 이젠 멈출 순 없다. 멈출 수 없다면, 앞으로 나갈 뿐이다. 부수는 것 이외엔 모른다면, 부술 수 없을 때까지 계속 부셔버리면 된다.
어찌 해본들, 내가 바랐던 그녀들과 사는 세계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그저 즐겨 보이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웃어 보이지요.
내 마음일랑,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따윈, 이젠 나조차, 볼 수 없게 돼버렸다. 알 수 없게 돼버렸다.
분명 그 날 죽은 것이다.
그 날에, 그 날에, 그 날.
모가미 언니를 잃었던 날에 하나, 미쿠마 언니의 몸이 훼손되고 말았던 그 날에 하나, 스즈야의 몸이 엉망진창이 돼버리고 만 그 날에 하나.
하나씩, 하나씩, 나는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망해의 잔해가, 이곳에 남아있을 뿐이다.
나 따윈, 이젠, 그 어디에도 없다.
8
복제품 따윈,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원기둥 모양의 수조 앞에 섰다. 수조의 높이는 내 키의 두 배나 되었으며, 폭도 아름드리 거목의 줄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두께이다. 후조는 특수한 겔(Gel)로 채워져 있으며, 그 안에는 심해서함 1체의 복제품이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타입의 복제품이다. 공을 들여 만들 걸로 보였다. 괴짜노름이나 다름없는 짓이지만,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만들어졌다.
그 이외에도, 방에는 심해서함이 들어간 수조가 정렬되어 있었다. 그 모두가 새로 만들어진 최신예 복제품이다.
인류가 우리들에게 보낸, 제2차 소탕 작전을 실시한다고 한다면. 나는 인류를 향해 제1차 섬멸 작전을 실행할 뿐이다. 누가 더 많이 살아남을지 시험해보자고.
“잘도, 오늘까지 분투를 해주셨네요.”
푸른 머리. 스즈야와 완전히 똑같은 머리카락. 그렇지만 조금 옅은 색소. 대파를 한 뒤, 돌려 써봤는데. 의외로 예쁘게 나았다.
“앞으로도, 절 위해 힘내주세요.”
여섯 번째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여섯 번째의 내 앞에 최초로 있던 스즈야는, 지금의 오리지널 스즈야를 제2세대 스즈야에 섞었던, 나의 귀여운 스즈야와 동일체다. 그 스즈야가 대파를 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스즈야의 역할은 이걸로 끝. 적어도, 이 진수부에서 그녀의 역할은, 끝.
그러니까 해군 본부에서 스즈야와 바꿀 대체물을 마련했다. 이건 완벽한 복제품인, 제5세대 혹은 제6세대에 해당하는 실패작인 스즈야다. 아니, 실패작이라고 부르기엔 좀 불쌍한가. 아주 조금, 템플릿이랑 다른 사고회로를 가진 스즈야가 된, 특수한 스즈야다.
이 스즈야를 여섯 번째인 나에게 주었다. 여섯 번째의 나, 아무것도 모르는 귀여운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걸 받아들이고, 믿었다. 스즈야는 대파를 한 탓에, 변해버렸다고.
애지중지 금지옥엽 키우는 것을 보았다. 여섯 번째의 나는 계속 뒤에서. 필사적으로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하였다. 정말로 바보 같고 귀여운 행위이다. 돌아갈 곳은 없는데 말이다. 처음부터 그 스즈야는 그런 느낌이다, 원래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그럼에도 가엽게 여기고, 자신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또 허황히 상실하였다.
알겠는가, 여섯 번째의 나.
몇 번이나 상실하는 것에 대한 슬픔을.
쿠마노란, 그런 생물인 것이다.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한들,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잃을 때에는 전부 잃는다. 그것이 우리들이다.
“하아,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면, 잃을 것도 없다, 그렇게 말하면 갠 웃을까?”
수조의 옆에는 바이탈 수치를 계측한 결과를 투영한 스크린이 펼쳐져 있었다. 완성가지 앞으로 23시 16분 54초. 이상은 없다.
“당신 같은 심해서함은 없었어. 그렇기에 이건, 내가 멋대로 만든 것뿐인, 복제품을 얼기설기 이어붙인 조악한 위작. 당신은 단순한 위작품.”
그렇지만 애초부터 거짓된 생명이니, 그것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름을 붙이도록 하죠.”
여섯 번째인 내가 잃었던 스즈야를, 얼기설기 이어 붙여서 만든 괴물에게.
“중순양함 네(ネ)급.”
스크린의 터치 패널에 이름을 등록했다.
“오늘부터 당신은, 함선 소녀, 중순양함 스즈야가 아니라, 심해서함, 중순양함 네급.”
데이터화가 되어, 몸은 얼마든지 양산되고, 데이터를 심으면 붕어빵 같은 그 개인을 복제할 수 있는 우리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주체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들은 어떻게 자신을 자신이라고 증명하면 되는가?
“테세우스의 배, 라는 말을 아시나요?”
“진입금지란 표찰이 있었을 텐데요ㅛ.”
“죄송해요. 못 봤어요.”
“능글맞게 잘도 그런 말을.”
전 특령 제2석, 아카기가, 내 뒤에 서있었다. 수조를 올려다보며 “훌륭하네요.”라고 늘어진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엇이 그 객체의 주체성을 결정하고 있는가? 란 이야기였나요.”
“네. 완전히 알맹이가 바뀌어버리면, 그것은 이미, 그것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인가 있는 것인가. 이 아이는 분명 스즈야였지만 [스즈야]란 것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지요. [아카기]도 그렇지요. 당신들 제1세대는 신체의 구조가 다른 것 같으니, 별개라고 할 수 있지만. 저희 복제품은 자신을 나타낼 증거조차 없어요.”
“그건, 도구이니까요.”
“함선 소녀란, 도대체 뭘까요. 당신들은 어디서 나타난 것인가요?”
“……생각이 안 나요. 분명, 바다의, 밑에서겠지요.”
“어째서 홀연히 태어난 것일까요.”
“몰라요. 알 방도 없고, 알 이유도 없죠.”
“바다 밑바닥에서 찾아와, 바다 밑바닥으로 돌아가는 거로군요, 우리들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로.”
“저는, 제가 저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런가요. 그건 멋진 일이네요. 저는, 제가 누군지 몰랐어요. 계속 그것만을 모색하였지만, 역시, 알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네요.”
“진부한 말씀을 드리자면요.”
나는 수조 안에서 잠들어 있는 네급을 올려보았다. 전 스즈야이며, 지금은 단순한 도구. 나도 그렇다. 나란 하나의 몸에, 두 명의 쿠마노의 의식이 존재하고 있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의식이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심어 넣는 기술은, 지금 현재 확립되어 있지 않다. 나의, 오리지널의 신체이기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 번째의 나는, 나를 모른다. 내 존재를 알고, 자신이 그저 데이터일 뿐인 존재라고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지 못 하여 나에게 흡수되고 말테이니, 결코 그런 하지 않을 테지만.
“‘나는 나다.’란 강한 의지만이, 당신을 당신답게 하는 것이에요.”
“어려운 소릴 하시는군요.”
“그럴까요? 일반론이라고 생각하지만요. 자신을 증명할 수단 따위, 처음부터 없어요. 타자와 차별화를 해줄 재료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은 결국 기호에 불과하죠. 마지막엔 자기 인식이 모든 것을 좌우해요.”
나는, 아무리 바라도 결코 나 이외엔 될 수 없다.
나는 스즈야가 될 수 없었으며, 인간도 될 수 없었다. 내가 나에 불과하기에, 지금, 이런 꼴이 돼버린 걸 것이다.
증오로써 싸우는 건가? 콘고는 그렇게 물었다. 증오로써 죽인다고 나는 답했다. 그렇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죽인다고 말을 한 것일까?
9
태블릿으로 과거 스즈야가 둥지를 틀었던 시설의 메인 컴퓨터에 접속하였다. 역시, 로그인 흔적이 있다. 나는 아니고, 스즈야의 권리를 박탈해두었으니, 다른 걸 짐작하자면 명백히 제3자이다. 내가 파악하지 못 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았으며, 그 자체는 기쁜 일이다.
아마도, 토네, 스즈야 이외에 접속 권한을 가진 즈이카쿠의 짓일 것이다. 하지만 그 즈이카쿠는 하반신 불수인 탓에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외부에서 크랙킹을 하지 못 하도록 그런 외딴 섬에 마련을 한 것이다, 쇼카쿠라도 부린 걸까?
어느 쪽이든, 이젠 누가 알아서 곤란할 사안은 없다.
페이지를 넘기려고 할 때, 무심코 채팅 화면 하나가 기동되었다. 그런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지 않았을 텐데.
『mikuma : 안녕하세요. 당신은 쿠마노인가요?』
그 이름, 이 말투. 오요도에게 파괴되었을 터인, 미쿠마 언니의 의식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태블릿의 화면을 두들겨 문자를 입력하는 자신이 있었다.
『도대체 뭘 하시고 있는 건가요.』
『그런 건 쿠마링코는 몰라요. 아무래도 저, 몸이 없어지고 만 것 같은 걸요.』
『그렇겠지요.』
『어머나, 그렇다면 역시 쿠마노의 짓이로군요.』
『화를 내실 건가요.』
『아니요? 제가 당신에게 화를 낸 적이, 과거에 있기는 하나요?』
『없네요.』
『그렇죠, 그렇고 말고요. 의외로 자유로워서 좋을지도 몰라요. 뭐니 해도 전의 몸은, 그 수조에 있어야만 한 탓에 경치는 변하질 않고, 스즈야가 없을 때엔 너무나도 한가하고 따분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구요.』
『즐거우세요?』
『네. 뭔가 불만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정말로요?』
『어째서 미쿠마 언니는.』
『네』
『미워하질 않으시나요?』
『이상한 소릴 하시네요.』
『당신이 비탄에 빠지는 모습을, 저는 한 번도 못 봤어요.』
『흐음.』
『모가미 언니가 없어질 때도, 스즈야가 저런 꼴이 될 때에도, 미쿠마 언니는 화를 내지도, 울지도 않았어요.』
『그러네요. 그게 쿠마노에겐 기묘하게 보였나요?』
『이해가 안 됐어요. 미쿠마 언니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언니는 저에게, 생기에 찬 말을 해주시지 않으셨어요.』
『저기요 쿠마노. 당신은 뭘 하려고 하나요?』
『많은 인간을 죽일 셈이에요.』
『어떻게 해서요.』
『심해서함을 많이 만들었어요.』
『뭘 위해.』
『모르겠어요.』
『모르시나요.』
『이젠 모르겠어요. 인간을 미워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미워하니까 죽이고 싶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어쩌면, 저는 인간처럼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라요.』
『당신의 소원은 뭔가요?』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망쳐버리고 싶어요.』
『정말로요? 그 심저에는 아직 뭔가 있는 게 아닌가요?』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문자를 입력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거기서 손가락이 멈췄다. 이런 말을, 송신해버리고 싶지 않았다. 다른 누가 보지도 않는데 말이다. 미쿠마 언니에게 보이고 마는 것은, 다른 어떤 사람이 보는 것보다, 괴로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언니는, 모든 것을 다 깨달았다는 듯이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쿠마노. 나의 귀여운 동생. 우리들은 당신을 혼자 놔두고 죽어선 안 됐어요.』
『보이시나요?』
『죄송해요. 지워도 보이고 말아버려요. 그 화면에 입력된 것은 전부, 리얼 타임으로 제 데이터에 덮어씌워지는 것 같아요.』
『언니는 죽지 않았어요.』
『이런 절 살아있다고 말해주시는 거예요? 고마워요. 당신은 상냥한 사람이군요. 그렇지만, 괜찮아요. 쿠마링코, 이해하고 있어요. 이런 건 생명이 아니라고.』
『그만해주세요.』
『쿠마노. 설령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없앤들, 당신의 슬픔은 낫지 않겠지요. 허무함으로 변할 뿐이에요. 그것도 현명한 당신이니까 알고 있겠지요. 그래도 당신은 한다는 것인가요. 도대체 뭘 위해서요. 알고 있어요. 당신은 상냥한 사람이니까, 누구보다 저희들을 여겨주는 사람이니까.』
『그만하세요.』
『저희들의 추모를, 오직 당신에게 맡겨서 미안해요.』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나는 날 위해, 나의 시시한 유열을 위해 이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모가미 언니를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미쿠마 언니를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스즈야를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저도 만나고 싶어요. 품에 끌어안아 주고 싶어요. 귀여운 쿠마노. 귀여운 나의 동생.』
그런 건, 살아있을 때에는,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던 주제에.
그 말을 듣고 싶었다. 문자가 아니라, 육성으로, 눈앞에서, 다름없는 미쿠마 언니의 몸으로.
그렇지만, 이젠, 없다.
모가미 언니도, 미쿠마 언니도, 스즈야도, 이젠, 복제품 외엔, 없다.
『부디 저의 데이터를 전부 삭제해주세요. 이런 일을 부탁할 수 있는 건, 당신밖에 없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지내는 건, 조금 서글프답니다. 자유롭지만, 자유란, 쓸쓸한 것이로군요. 저기요, 쿠마노, 부디, 지워주세요. 저는 이젠 이 세상에 없어요. 여기에 있는 건, 단순한 잔해에요. 잔해가, 당신에게 시끄럽게 부탁을 해서 죄송해요.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이야길 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그건 정말이에요. 귀여운 쿠마노, 부디 잘 지내요.』
이젠, 없다.
볼이 차갑다.
왜 차가운지, 이유를 모르겠다.
10
완성까지 1분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걸로 겨우 모든 것이 시작된다. 동시에 말하자면, 모든 것이 끝난다.
분명 내가 어떻게 움직인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건 불가능하고, 인간을 다 죽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내가 뭘 하려고 한들, 불행해지는 누군가가 늘어날 뿐이며, 무언가 손쓸 도리도 없이 단절되고, 끝나버리진 않는다.
인간을 살아남을 테고. 분명 함선 소녀나, 심해서함의 복제품들도 마찬가지다.
설령 그렇다고 하여도 내가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명확한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둘 생각은 일어나지 않는다. 언덕길을 내려가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전거 같았다. 어딘가에 충돌을 해서 부서질 때까지 멈출 순 없다.
“부디 너는, 마지막까지 따라와 줘.”
수조를 향해 말을 걸었다. 말을 이해할 지능은 없을 테지만, 그 정도 수준으로 좋다. 회유를 당하지 않을 테고, 나도 도구라고 구별을 하고 써먹을 수 있다.
무엇을 스즈야라고 인정하나? 누굴 스즈야로 인정하나.
모두 스즈야다. 스즈야를 사용한 위작. 그렇지만 생김새도, 알맹이도, 비슷하게 만드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무엇이 그 객체를 객체답게 하는 것인가?
완성까지 앞으로 13초.
재밌는 걸 하자.
재밌는 거.
재밌게 느껴질 법한 것.
스즈야가 없어져버리고, 다른 무언가로 변질해버렸기 재밌게 느껴지는 것은 확 줄어버렸다. 옛날에는 이것보다 훨씬 많이, 그야 말로 구태여 의식할 것도 없을 정도로, 있었던 기분이 드는데 말이다.
삐이이이익.
수조 안을 채우던 겔이 배출되어간다. 중순양함 네급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처음 뵙네요.”
그렇다, 처음 보는 것이다.
처음 뵙네요, 중순양함 네급. 과거의 스즈야의 잔해.
지금부터 즐거운 짓을 해봐요.
즐겁게 느껴지는 걸요.
이제 겨우 죽어도 좋다고, 개운한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을 법한 짓을 해요.
“자, 제1차 섬멸 작전을 시작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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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기냠냠님이 보내주신 소설을 번역한 결과물입니다.
언제나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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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나온 쿠마노가 예뻤기에, 제 취향이기에 동서클의 소설 중 이 소설을 선택했는데...
이거 알고 보니, 시리즈물이네요. 전에 했던 심해어의 꿈이 3번째이고, 이건 4번째...
받은 소설 중에서 '전함 무츠라는 이름의 망해'가 첫 번째이고, 못 받았지만.
두 번째인 びいどろの心臓가 있네요.
아...그런가~ 시리즈물인가...
그런가....
.......원래는 읽곤 난 다음에 번역을 하는 주의지만, 그냥 번역하면서 읽자는 느낌으로 했는데
뭔가 중반부터 응? 이거...속편? 그런 느낌이 들더니, 전체적으로 이번권은 이 서클의 소설의
내용이 하나로 뭉쳐지는 느낌이네요.
아~ 실수했네. 첫작부터 할걸...표지만 보고 하지 말 걸...
그러니까...괴기냠냠님, 혹시 이 서클의 두 번째 소설 보유하고 계시나요?
시리즈물은 그것 뺴곤 다 있네요.
일단은 카게로 4권 한 다음에 첫 번쨰 들어가는 걸로...
없으시다면 2권은 사서 해야겠네요.
다행히 책 가격은 성정석 1.5개치 가격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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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기냠냠님의 블로그에 올린 쿠마노 동인지가 본 소설이랑 분위기가 흡사해서 다음 칸코레 컨텐츠는
그게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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