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격전 제14구축대
싸우기로 결정 난 이상, 멍청히 있을 순 없었다. 카게로와 무라쿠모는 협력하여 수차례 정찰을 하였다.
그 결과, 심해서함의 강습 양륙 함대는 일단 후퇴를 한 것이 판명되었다. 물론 포기한 것이 아니라, 손해를 내지 않기 위해서이다. 카게로 일행과 접촉을 했기 때문에 신중해진 것으로 여겨졌다. 생각지 못한 효과였다.
하지만 내일에 다시 앞으로 나설 것이다.
오늘은 양껏 밥을 먹고 푹 쉬고, 내일을 대비할 수밖에 없다.
저녁 식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남아있는 재료를 써서, 밥과 톤지루(豚汁)를 만들었다. 그리고 귀중한 얼음과 설탕을 써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
야외 테이블에 식사가 놓여졌다. 무라쿠모도 제독도, 물론 같은 테이블에서 먹었다.
“배가 고프면 싸움도 못 한다고 하잖아. 자, 어서 먹자!”
카게로가 말했다.
각자 음식을 집었다. 그러자, 사츠키가 컵을 사람들의 앞에 두었다.
“뭔가 마시는 거야?”
“후후후, 짜~잔.”
카게로의 의문에 사츠키는 맥주병 몇 개를 꺼냈다.
“오늘이야 말로 딸 거야.”
“하아, 또?”
“이럴 때 마시는 거야.”
가슴을 피는 사츠키.
잘 보면, 사츠키가 가져온 맥주뿐만 아니라, 링가에 둔 맥주도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야, 사츠키, 이거 링가에 있던 거 아냐.”
“같이 마셔버리자.”
카게로는 무라쿠모의 얼굴을 보았다.
“딸 거야?”
“이건 손을 대지 않을 거라고 정했어.”
“그러고 보면, 왜 그렇게 정했어?”
무라쿠모는 맥주병을 집었다.
“이건 말이지, 요코스카에서 호쇼씨한테 받은 거야.”
“그래?”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인지는 잊어버렸지만. 사령관과 함께 이곳저곳은 전전하였지만 버리지 않았지 뭐야.”
병의 라벨은 거의 다 벗겨졌으며, 문자도 닳아서 읽을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몇 년이나 마개에 막힌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녀는 사츠키에게 물었다.
“어째서 호쇼씨가 구축함에게 맥주를 주는지, 알고 있어?”
사츠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술을 가르쳐주는 취미라도 있다던가.”
나가츠키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라고 말했지만, 무라쿠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꽤 비슷해.”
“그런가?”
“응.”
그녀는 손 안에 있는 맥주병을 돌렸다.
“호쇼씬 말이지, 출격하는 함선 소녀를 몇 척이나 배웅했어. 젊은 함선 소녀도 많아. 음주 가능 연령은 내려갔지만, 우리 같은 애들이 술을 마시는 데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은 있어. 그래도 호쇼씨는 술을 마시고 싶다고 말하면, 거절하지 않고 줘.”
모두,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무라쿠모의 말에는 무게가 담겨져 있었다.
“구축함의 인생은 짧잖아. 이런 소릴 하는 건 좀 그렇지만, 우리들이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을 가능성은 전함이나 항모쪽 사람들이랑 비교하면 월등히 높아. 마시고 싶지만, 마시게 할 수 없어서 그대로 보내고 가라앉기라도 하면, 호쇼씨는 정말로 후회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어쩌면 몇 번이나 후회를 했던 걸지도 몰라. 그 사람은 언제나, 우리들의 인생에 미련이 남지 않도록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호쇼씨는, 마시고 싶다고 하는 애에겐 맥주를 줘. 맥주만큼은 줘.”
카게로는 눈앞에 놓여 있는 맥주병을 보았다. 예전부터 놓여 있던 오래된 맥주병과 사츠기가 가지고 온 새 맥주병.
무라쿠모의 말은 이어졌다.
“이건 호쇼씨한테 받은 귀중한 맥주야. 따서 다 마셔버리면, 추억도 그에 관한 모든 게 다 사라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대로 놔두고 있어. 자고, 일어나서, 남겨둔 맥주를 보고 안심을 해. 아직 함선 소녀로 있을 수 있구나, 그렇게 실감을 해. 잘 알지도 모른 채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무렵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애잔하게 말하였다.
카게로는 한동안 무라쿠모의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말없이 맥주병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단번에 마개를 땄다. 푸슛, 경쾌한 소리가 났다.
무라쿠모는 말 그대로 기겁을 하였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뭐냐니, 마실 거야.”
태연한 표정으로 카게로는 말했다.
“맥주는 눈으로 보는 게 아냐, 입으로 마시는 거라고.”
“내 추억이……!”
“또 만들면 되잖아. 추억에 잠기는 건 적당히 해야 해. 구축함은 강해. 구축함에겐 미래가 있어. 맥주를 마시고 싶으면 호쇼씨에게 또 달라고 부탁하면 되잖아. 살아 돌아가면, 그렇게 할 수 있어.”
아연해 한 채 무라쿠모는 카게로의 말을 듣고 있었다.
머지않아, 키득거리며 웃음소리를 내었다.
“과연, 왜 너희들이 명물 구축대라고 불리는 지, 이해했어. 요코스카 진수부가 너흴 파견할 만하구나.”
“칭찬해 줘서 고마워.”
“그럼, 따라. 다 같이 마셔보자고.”
무라쿠모가 말했다. 나눠서 전원의 컵에 맥주를 따랐다.
제각각 손에 들고, 컵을 눈높이까지 들어올렸다.
카게로가 크흠, 기침을 하였다.
“다들 알겠어? 내일 있을 싸움에서 모두 살아남는 거야. 우리들이 끈질기다는 것을 심해서함에게 보여줄 테니까.”
그녀는 테이블을 둘러보고 숨을 들이켰다.
“……링가를 위해.”
전원이 합창했다.
“링가를 위해!”
마셨다. 그리고, 동시에 똑같은 소릴 하였다.
“맛없어!”
그녀들은 배를 감싸 안고 박장대소를 하였다.
○
눈을 파고드는 듯한 아침 햇살.
링가 정박지에 해가 떴다.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전투의 신호이기도 하였다.
제14구축대는 부두에 정렬하고 있었다. 모두가 다 진지한 안색이었다. 카게로가 가장 신뢰하는 동료들이었다.
“발묘!”
카게로의 호령과 함께, 구축함 소녀는 출격하였다.
“양현 전진 원속.”
카게로, 사츠키, 나가츠키, 아라레, 우시오, 아케보노 순으로 단종진. 여섯 명이 정확히 같은 간격으로 벌려 앞을 나아갔다. 가장 실력이 좋고 신뢰할 수 있는 아케보노가 최후미이다.
아키츠마루와 무라쿠모는 링가의 청사에서 대기 중. 아키츠마루는 싸우기엔 무장이 불안했고, 무라쿠모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전력이다.
“오늘은 파도가 높아!”
아케보노가 소리쳤다.
“날씨는 좋지만!”
“해전을 벌이기엔 딱 좋잖아!”
카게로가 대답하였다. 이렇게 날씨가 화창하면 상당히 멀리까지 내다 볼 수 있다. 그녀들에겐 좋은 환경이지만, 그것은 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전탐이 있는 만큼 적이 더 유리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뒤로 물러나진 않는다. 거물을 물어뜯는 것이 구축함인 것이다.
카게로 일행의 목적은 적의 공격 의도를 꺾어버리는 것이다. 링가 정박지의 점령을 노리고 있으니, 점령을 못 하게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강습 양륙 함대의 수송선 와급을 격침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타겟은 전함도, 항모도 아니다. 수송선이었다.
섬의 사이를 빠져 지나가듯이 항행하였다.
자기도 모르게 팔을 비볐다. 소름이 돋아나있었다. 적이 근처에 있다. 함선 소녀 특유의 감각이 심해서함의 존재를 가리키고 있었다.
“전투 준비!”
카게로가 외쳤다. 탄약이 장전되고, 포구의 마개가 벗겨졌다. 캔이 열기를 띠고, 주기가 으르렁거렸다.
“양현 전진 강속!”
파도를 가르며 구축함 소녀들이 돌진하였다. 바람이 볼에 닿고 기분 좋은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전방을 색적. 육안으로 보고 쌍안 망원경을 쓰고, 다시 한 번 육안으로 본다. 적의 모습은 없다. 수평선에는 그림자도 모습도 없었다.
“카게로……더 가나?”
나가츠키가 물었다. 카게로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우현 전환! 오른쪽 섬을 돌자.”
섬을 빙글 돌아, 반대쪽으로 나갈 셈이었다. 여기서 안 보이는 이상, 어딘가 시야 밖에 있을 것이다.
우측으로 20도 현을 틀었다. 좌초되지 않도록 항행을 하며 섬을 반 바퀴 돌았다.
투박하게 생긴 바위가 앞을 막았다. 스피드를 낮추지 않은 채 피하였다. 시야가 트였다.
“있다……적 함대.”
아라레가 가리켰다.
정면에 심해서함의 함대. 역시 섬이 그늘이 되어 있었다. 역시 단종진을 유지한 채 항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이쪽을 눈치 챘다.
선두에 있던 타급이 짖었다. 한 번. 두 번. 공기를 진동시키는 외침이 고막과 배에 공포를 전해주고, 유전자가 태고적(太古的) 기억을 환기시켰다. 맹수의 존재에 겁을 먹으면서 살고 있었던 무렵의 두려움. 몸을 지킬 수단이 없는 불안함. 심해서함은 압도적인 화력과 함께 그런 감정을 자극 시켰다.
하지만 제14구축대는 그 누구도 겁먹지 않았다.
“포뢰 동시전을 할 거야! 양현 전진 제5 전투 속도!”
“돌격!”
사츠키의 환희서린 목소리. 카게로는 전원에게 호령을 내렸다.
“전함 돌격!”
기관전령기가 킹킹, 소리를 내었다. 주기의 회전수가 단박에 올라갔다.
구축함 소녀들은 적 함대의 측면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적 함대에서 번쩍거리며 빛이 났다. 발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포탄은 카게로의 아득히 위를 통과하여, 후방에 떨어졌다. 구축함의 속력이 빠른 탓에 조준 보정이 제 때를 맞추지 못 했다.
“스쳐지나가면서 한 방 먹일 거야! ……응?”
카게로는 눈을 좁혔다.
“사정 범위 내.”
“잠깐만……와급이 없어!”
카게로는 사방에서 일어서는 물기둥 사이에서 적의 함대를 응시했다.
“강습 양륙 함대가 아냐! 어딘가에 숨어 있어!”
“어쩔 거야!?”
사츠키의 물음에 잠시 망설였지만,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저 녀석들을 치자. 딱 한 번뿐이야! 한 방 먹이면 도망칠 거야!”
적의 함대가 커져갔다. 선두의 타급의 새파란 안광과, 둔탁한 빛을 내는 포탑이 잘 보였다. 카게로는 호령을 내렸다.
“포격 개시!”
12.7cm 연장포에서 포탄이 뿜어져 나왔다. 개조한 그녀들은 이젠 단장포를 장비하고 있지 않았다. 카게로와 아라레의 경우는 10cm 연장고각포였다. 그런 무기로 무장한 그녀들이 맹렬하게 공격을 쏟아내었다.
쌍방의 포격으로 인한 물기둥으로, 시야는 점점 더 나빠졌다.
“어뢰전!”
카게로가 호령을 내렸다. 전원 일제히 어뢰 발사 자세를 취하였다.
“발사!”
압착 공기가 새어나가는 소리. 발사관에서 93식 산소어뢰가 튀어나왔다. 어뢰가 뇌적을 남지기 않은 채 돌진하였다.
적의 포격이 점점 더 거세졌다. 접근을 한 탓에 부포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발바닥으로 수중 폭발의 진동이 전해졌고 상공에서 파편이 쏟아져 내렸다.
적 함대와 엇갈렸다. 서로 멀어졌다. 카게로는 반전을 명령하지 않은 채 그대로 이탈할 것을 명령하였다.
멀어지면서 적 함대를 확인했다.
“……어뢰는 명중되지 않았어. 포탄을 좀 맞추었지만 기껏해야 소파. 저 녀석들 쌩쌩하게 날뛰고 있어.”
카게로의 말을 들었다는 듯이, 타급의 포효가 바람을 타고 실려 왔다.
“손해 보고 해줘.”
“사츠키야, 무사해.”
“아라레……괜찮아.”
“우시오에요. 손해 없어요.”
“아케보노야. 손해 없어.”
“나가츠키, 조금 파편을 맞았지만 문제없다.”
카게로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피해있어? 항해 가능해!?”
“제대로 하고 있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나가츠키의 목소리.
“약간 통증이 있었던 것뿐이야.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렇다면 괜찮지만…….”
카게로는 근래에 들어서 손해에 신경이 많이 갔다. 구축대의 향도함이 되고 나서, 자기 일보다 대원들의 피해에 민감해진 것이다. 향도함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돌아가자. 태세를 정비할 거야.”
제14구축대는 속도를 낮추지 않은 채 링가 정박지를 향해 항행하였다.
부두에서 올라와 카게로 일행은 빠른 발걸음으로 청사로 향했다.
무라쿠모는 청사 안이 아니라 밖에서 가만히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게로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 실패했어. 와급이 없어.”
“어딘가에 숨어 있구나.”
무라쿠모는 카게로의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 납득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카게로 일행의 존재를 알고 나서 강습 양륙 함대는 다른 곳에 이동한 걸 것이다. 와급을 포화 속에 노출 시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화력을 보유한 다른 함대를 전진시켜 링가의 함선 소녀들을 밟으려고 온 것이다.
카게로는 간결하게, 조우한 적 함대에 대해 보고하였다.
“일단 데미지를 줬으니까, 그 녀석들도 피해를 수복하러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해.”
“고마워. 쉬어줘.”
무라쿠모가 말했다. 카게로는 구축대 대원들에게 각각 보급과 휴식을 명령했다.
제독과 무라쿠모가 상당수의 장비를 해체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보급 자재가 부족하진 않았다. 모두 줄줄이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카게로는 나가츠키의 팔을 잡았다.
“너는 여기야.”
나가츠키가 당황하였다.
“이봐, 뭘 하는 거야.”
“됐으니까 따라와.”
“단 둘이서 뭘 할 셈이야. 그만해.”
항의를 무시하고, 카게로는 나가츠키를 청사 뒤쪽으로 끌고 갔다.
창고가 있는 곳이지만 목적은 그곳이 아니다, 그 옆에 있는 간소한 건물이다. 나무 표찰이 걸려있으며 “함선 소녀 전용 상병 요양 시설”이라고 적혀있었다.
“날 독에 넣을 셈인가!?”
“보여줘.”
카게로는 나가츠키의 등을 돌리게 했다.
의장과 주변부를 체크했다. 연돌의 옆이 찢어지고, 코드가 절단되었다.
“역시……너, 소파됐었지.”
카게로가 노려보았다. 나가츠키는 고개를 돌렸다.
“이 정돈, 손상을 입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럴 리가 없잖아. 들어가.”
손을 뒤로 돌려 독의 문을 가리켰다. 나가츠키는 노골적으로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필요 없다고 말했잖아.”
“정 그렇게 내 말을 듣기 싫다면, 사츠키랑 아라레에게 네 손상 상태를 까발릴 거야.”
나가츠키의 안색이 변했다.
“이봐, 그건 그만해. 사츠키는 울상을 지을 것이고, 아라레는 저래 보여도 안색을 바꾸면 무섭다고. 그 둘은 부상을 입은 나에게 화를 낸다고. 이상하지 않나? 어째서 피해를 입었는데 질책을 받아야만 하는 거냐고.”
“그 둘에 관해선 나도 동감이야.”
카게로는 건물의 문을 열었다.
크게 두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한쪽은 함선 소녀의 치료, 또 다른 한쪽은 장비를 수리하는 곳이었다.
함선 소녀의 치료는 중상을 입지 않은 한, 약을 먹고 눕히는 것이 주된 치료이다. 잔다는 행위는 무시할 수가 없다. 전투 중 받은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의장과 신체의 매칭을 원상복구 시키기 때문에 정양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정비인데, 이것이 성가시다. 전용 수리 장치가 있어서 자동으로 고칠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린다. 진수부라면 전문 인력이 몇 명이나 달라붙어 강행군 수리를 하거나 고속수복재를 끼얹을 수도 있지만 이곳에선 그런 수단도 취할 수 없다.
링가 정박지의 요원은 돌아가 버린 탓에 없다. 그리고 고속수복재도 하나 밖에 없었다.
카게로는 장비 수리 공간을 살펴보았다. 생각한 대로, 수리 장치가 둘 밖에 없었다.
함선 소녀용 침대도 확인. 이쪽도 두 대가 놓여있는 것뿐이었다.
요코스카 진수부에선 네 명이 동시에 누울 수 있지만, 링가에선 둘뿐이다. 확장을 하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예산 때문에 제약을 한 것이다.
한탄을 해도 어쩔 수 없다. 일단 나가츠키를 데려왔다.
“독에서 자고 있어.”
침대를 말하는 것이지만 나가츠키는 아직도 불만에 차있었다.
“싫다고 하면?”
“침대에 고정시킬 거야.”
“잘게……그 대신, 사츠키와 아라레에겐 비밀로 해줘.”
나가츠키가 간원했다.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의장을 벗겨, 억지로 침대에 눕혔다. 머리맡에 약을 놓고, “반드시 먹어.”라고 말을 하였다.
카게로는 청사로 돌아갔다. 안에는 무라쿠모와 아키츠마루를 포함한 인원들이, 지도를 앞에 두고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아라레가 고개를 들었다.
“나가츠키는……?”
“독. 소파였어.”
아라레의 안색이 변했다.
“어떤지……보고 싶어……”
“괜찮아.”
“나도!”
사츠키도 외쳤다. 아라레 못지않게 안색이 창백했다.
“나가츠키는 사세보부터 알고 지낸 동료야!”
“다녀와. 내 악담을 말할 것 같으면 목이라도 졸라.”
둘이 방에서 뛰쳐나갔다. 카게로는 그녀들 대신에 회의에 참가했다.
“적 정보 분석?”
“응.”
무라쿠모가 지도에 정보를 기입하고 있었다. 방금 전 카게로 일행이 전투한 곳이, 붉은 매직으로 원이 그려져 있었다.
“지금 싸운 곳이 이곳. 전에 수송선을 포함한 강습 양륙 함대를 목격한 곳이 이곳이지.”
원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이쪽에는 잠수함도 있었어. 이렇게 해서 보면…….”
무라쿠모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도를 바라보았다.
“심해서함은 링가의 동쪽의 거의 전면에 걸쳐 나타나고 있어.”
“그렇지만 우리들은, 적을 각각 1개 함대 밖에 못 봤는데?”
카게로가 의문을 제시하였다.
“우리들이랑 마찬가지로, 저 녀석들도 6척으로 1개 함대. 번갈아 움직일 수밖에 없어. 한꺼번에 공격을 하려고 한다면, 어지간한 일이 벌어졌거나 마무리를 지으려고 올 때야.”
무라쿠모가 대답했다. 함대를 움직이기 위해선 수많은 자재를 소비한다. 단번에 공격을 시킨 뒤에는, 한동안 비축 기간이 필요할 정도이다. 그것은 심해서함도 똑같을 것이라고 추측되었다.
보급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간을 볼 겸 1개 함대씩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보급이 없기 때문에 1개 함대밖에 움직일 수 없는 것인가? 후자는 가능성이 낮다.
무라쿠모가 손에 든 길쭉한 마스트를 들고, 빙글빙글 돌리면서 생각에 빠졌다.
“적이 여유롭다면, 이쪽도 섣불리 출격시킬 순 없어.”
“반대로 찬스가 아냐?”
묻는 카게로. 무라쿠모는 마스트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그만두고 말했다.
“심해서함이 그 정도 수준의 함대를 출격시켰다면, 이쪽도 많은 함선소녀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할지도 몰라. 전함이나 항모가 있으니까, 경계를 하고 색적에서 그만두었다.”
“구축함만 있다는 게 들키면 큰일 나겠네.”
“그러니까 출격은 신중해지는 거야.”
“그렇지만, 아키츠마루씨를 제외하면, 이쪽은 구축함이야. 자재의 소비는 적어.”
카게로는 반박하였다.
“화력의 열세는 수로 메울 수 있어. 전함이나 항모가 없다는 정보가 노출되기 전에 계속 출격을 하면, 분명 와급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과연. 상대보다 많이 움직이자는 거로구나.”
“구축함다워서 좋잖아.”
함선 소녀 중에서도 구축함은 만능 해결꾼인 구석이 있어서, 적 공격 임무만이 아니라 원정을 통한 자재 획득부터, 먼 섬 저편까지 연락을 보내는 일까지 뭐든 하였다. 많은 출항수는 구축함 소녀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다만, 문제는 손상과 피로이다.
“독은, 이미 한 자리가 막혀버렸지.”
카게로는 중얼거렸다.
“나가츠키가 나아도 두 개 밖에 없으니까, 어떻게 돌려 쓸 수밖에 없나. 가능한 한 피로와 손상이 적은 순으로, 교대제로 출격하자. 함대의 조합은 내가 생각할게. 손상과 피로는, 손상된 애가 우선 출격. 피로하면 명중률이 낮아지고 적의 공격도 받기 쉬워지니까…….”
거기까지 중얼거린 뒤, 고개를 들어올렸다.
“물론, 비서함과 사령관의 허가를 받는 것이 전제지만.”
무라쿠모가 대답했다.
“날 잊지 않아줘서 고마워. 노래라도 부르면서 존재를 알리려고 생각했었어.”
“멋진 비서함의 노래라면 언제든지 환영해.”
“구축함의 향도는 사람을 부추기는 게 능숙하구나. 사령관의 허가를 받고 올게.”
그녀는 지도를 손에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카게로는 분담하여 교대표를 만들 셈이었다. 그 때, 손이 올라갔다.
“저기, 저도 넣어주십시오!”
아키츠마루였다.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해군 여러분들이 싸우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습니다. 총알받이 정돈 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카게로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 아키츠마루씨. 아키츠마루가 나설 차례는, 아마 없을지도 몰라.”
“어째서입니까!?”
“독의 수가 부족해.”
확실히, 일부러 적의 공격을 집중시켜, 피해를 특정 함선 소녀에게 몰아넣는 방식도 존재한다. 다른 함선 소녀가 노 데미지로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유효한 전술이다.
하지만, 당연하지만 특정 함선 소녀는 손해를, 그것도 중파나 대파를 입는다. 그 정도 피해를 입으면 출격은 불가능하고, 게다가 오래 시간 독의 자리를 하나 점유하게 된다. 그 결과, 수리의 효율이 나빠진다.
진수부처럼 규모가 큰 곳이라면 사정은 달라지지만, 지금의 링가에선 피해를 담당하게 하는 방식은 불가능한 것이다.
아키츠마루는 눈에 뜨이게 풀이 죽었다.
“그렇게 실망하지 말아줘. 출격을 못 한다고 해서 아무도 아키츠마루를 탓하지 않아. 함선 소녀에겐 함선 소녀 나름의 임무가 있어. 언젠가 아키츠마루씨에게도 그 날이 올 거야.”
“그 전에 링가가……!”
“괜찮아. 링가는 함락되지 않아. 왜냐하면 우리들이 있잖아.”
카게로는 가슴을 폈다. 아케보노도, 우시오도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츠마루는 납득을 했는지, “알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2층에서 무라쿠모가 내려왔다. 그녀는 실내를 둘러본 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떻게 되었는지 단번에 이해하였다.
카게로에게 미소를 보내었다.
“제법인 걸.”
“그래? 이 정돈 보통이잖아.”
“너 어쩌면 좋은 비서함이 될지 몰라.”
무라쿠모의 말에 카게로는 벙찐 표정을 지은 뒤, 쓴웃음을 지으며 “그럴 리가.” 라고 대답했다.
다시 출격하는 함선 소녀는 무라쿠모, 카게로, 우시오, 아케보노 4명으로 결정되었다. 단순하게, 이 4명은 그렇게 지치지 않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나가츠키와 사츠키, 아라레는 대기. 나가츠키는 출격에 관해선 말하지 않았다. “이미 회복했으니 같이 간다.” 그런 소리를 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가츠키는, 카게로와 무라쿠모가 없을 때 리더격이 되어줄 필요가 있었다. 카게로는 그 정도로 나가츠키를 평가하고 있었다.
이번 출격은 적의 격멸이 아니다. 가능한 한 주변 수색을 하여, 강습 양륙 함대를 발견하는 것이다.
“시라누이가 한 거랑 비슷하네.”
카게로는 중얼거렸다. 요코스카 진수부가 총력을 기울여 벌인 전투에서, 시라누이는 강행 정찰 함대에 소속하였다. 그 형식은 달라도, 비슷한 임무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직 구축함만으로 편성되어 이루어진다.
“양현 전진 원속.”
이 호령은 무라쿠모가 말하였다. 전원 속도를 올렸다.
함대의 지휘는 무라쿠모가 맡았다. 카게로가 양도한 것이다.
“링가 주변이라면 나보다 잘 알고 있잖아.”
출격 전에 말하자, 무라쿠모는 의외롭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괜찮겠어? 나는 너랑 네 부하에게, 무모한 요구를 할지도 몰라.”
“마음대로 해. 그렇지만.”
카게로는 일부러 도발을 하듯이 말했다.
“링가 정박지의 비서함 정도의 무모한 지시는, 우리들은 시시해서 하품이 나올지도 몰라.”
“제법인 걸.”
무라쿠모는 기함이 되는 것을 승낙했다.
이번 출격은 오히려, 섬과 산호초가 복잡하게 얽혀진 회랑으로 나아갔다. 가능한 한 적에게 들키지 않은 채 심부로 향하기 위해서이다.
“좀 어려운 코스로 갈게.”
선두에 선 무라쿠모의 목소리가, 무선에서 흘러나왔다.
“어지간하면 가지 않는 곳이야. 내 뒤에서 떨어지지 마.”
그녀는 키를 크게 오른쪽으로 꺾었다.
섬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무척이나 많은 산호초가 해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해면 밑에는 산호초가 펼쳐져 있을 것이며, 섣불리 다가가면 그것만으로 좌초를 할 것 같았다.
그것은 반대로, 심해서함이 이곳에서 경계망을 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특히 잠수함이 몸을 가릴 곳은 전무하다고 해도 좋았다.
즉, 적에게 발견되지 않은 채 심부로 갈 수 있다. 무라쿠모는 산호초를 교모하게 피하면서 항행하였다.
“속도 올릴 거야. 양현 전진 강속.”
엔진전령기가 경쾌한 소리를 내었다. 무라쿠모의 속도가 올라갔다.
카게로 일행은 허둥지둥 무라쿠모의 뒤를 따랐다.
“보통 이런 곳에서, 속도 내리지 않아?”
최후미에 있던 아케보노가 투덜거렸다. 암초가 많은 해역에선 무엇보다 좌초를 피하는 것이 우선된다. 전투 전에 부상을 입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훈련에서도 이 점은 철저하게 주입받았다.
“아쉽지만 이게 링가류야.”
무라쿠모가 소리를 죽여 웃었다.
“겁먹었다면 돌아가도 돼.”
“누, 누가 겁을 먹었다는 거야.”
아케보노가 반박을 하였다.
“이런 건 요코스카에선 상식조차 아니라고. 자면서도 할 수 있다고.”
“그럼 좀 더 스피드를 낼게.”
무라쿠모는 “양현 전진 제1 전투 속도.”라고 지시를 내렸다.
발밑에 이는 파도가 높아졌다. 산호차나 암초가, 갑자기 저편에서 달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방금 전과는 딴판이다.
무라쿠모는 힘들어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카게로 일행을 떨쳐내려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우시오가 한탄을 하였다.
“하아, 아케보노가 괜한 소릴 하니까.”
“뭐 어때, 이런 도전은 언제든지 받아주는 법이야.”
“다치면 아케보노 탓이에요. 마미야씨네 파르페를 얻어먹어야 겠어요.”
“또? 나 맨날 너한테 사주는 거 아냐?”
“다혈질적인 아케보노가 나쁜 거예요.”
무라쿠모가 선두에서 웃었다.
“여유있는 걸. 사이도 좋고.”
“부럽지? 더 말해. 많이 부러워해.”
카게로가 말했다.
4명은 큼지막한 암초를 우회했다. 파도가 때때로 얼굴에 부딪혔다.
무라쿠모가 입을 열었다.
“나는, 처음 사령관이랑 만났을 때 나 말곤 아무도 없었어.”
“단 둘만 있었어?”
“응. 아무도 없으니까 자동적으로 내가 비서함. 둘이서 힘을 모아 어떻게 했어. 많은 곳을 가고, 함선 소녀와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그래도 그 할아버지는 날 놓으려고 하지 않았어. 이상하지, 전함이나 항모도 많이 있었는데.”
“널 마음에 든 게 아냐?”
“그건 어떨까. 나처럼 거만하고 짜증나는 여자를 마음에 들 거란 생각은 안 들고, 나도 좀 더 잘생긴 제독이 좋았다고.”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 그 할아버지, 널 마음에 들어 하고 있어.”
그렇게 말한 건 카게로가 아니다. 아케보노였다.
“분명 그래.”
“그렇지도 않아.”
무라쿠모의 반론을 아케보노는 정면에서 부정했다.
“아냐. 너무 가까이 있어서 깨닫지 못 하는 거야. 이렇게 함선 소녀를 자유롭게 해주잖아. 널 좋아하지 않으면 못 하는 일이야.”
“방임주의일지도 몰라.”
“신뢰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거야.”
“잘 아는 구나.”
“감이 좋지 않으면 요코스카에선 해먹을 수 없다고.”
무라쿠모는 헤에,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그럼, 그 기대에 응하도록 해야겠지.”
산호와 산호 사이를 빠져나간다. 장해물이 한층 더 불어났다.
무라쿠모는 속도를 낮출 기색은 없었다.
“애들아, 암초에 신경 써. 그렇지만 속도는 낮추지 마.”
“요구 수준이 높은 걸.”
카게로는 말했다.
“그래도, 할 거야. 제14구축대는 한 번 시작한 일에선 도망치지 않거든.”
4명은 함속을 낮추지 않은 채 항행을 속행하였다.
해도는 머리에 들어가 있다. 태양의 위치와 시각에서 현재 위치의 산출도 가능하다. 똑바로 가고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심해서함의 군체는 E(Enemy) 해역처럼 갑자기 출연하지 않는 한, 서쪽에서 동쪽으로 공세를 가한다. 서측은 서방공격의 함대와 교전 중. 그렇다면 링가로 침공을 시도하는 녀석들은 동쪽에 있을 것이다.
“통과할 거야.”
무라쿠모의 말과 동시에 시야가 확 트였다. 산호초의 수가 격감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해언이 펼쳐져 있었다.
“좌현 회두. 양현 전진 제2 전투 속도!”
일제히 오른쪽으로 키를 꺾었다. 속도를 더 올렸다.
“이쪽이 맞는 거지!”
“틀림없어. 이 앞이라면 함정이 집결하기 쉬워. 심해서함도 그곳에 있어. 나는 줄곧 링가에 있었다고. 이 주변은 잘 알고 있어.”
카게로의 말에도 무라쿠모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 등은 자신감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30분 정도 항행을 계속 하였다.
“……찾았다! 우 20도, 적 함대!”
무라쿠모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심해서함의 함대가 있었다.
5척이 단횡진을 이루고 있었다. 가장 좌측에 경순양함 토(ト)급. 우측에는 구축함 이(イ)이 두 척. 그리고 그 사이에 끼이듯이 하반신이 구체인 흉측한 심해서함이 3척.
“와(ワ)급이야!”
카게로가 외쳤다.
“이 녀석들이 주 함대구나. 어쩔래?”
무라쿠모에게 물었다. 이 출격의 목적은 정찰이다. 이대로 물러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두에 있는 무라쿠모의 모습은 등 말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히쭉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칠거야. 여기서 물러나지 않는 게 구축함이라고.”
그녀는 돌아보며 외쳤다.
“공격할 거야! 함포전!”
단종진을 유지한 채로, 구축함들은 스피드를 올렸다.
“우선 선두의 토급을 잡을 거야. 이 녀석들이라면 이쪽이 유리해. 잡고 난 뒤 반전해서 와급을 공격하자!”
침로를 다소 좌측으로 잡은 뒤 제5 전투 속도까지 속도를 올렸다. 발끝에 이는 파도가 커졌고, 기관부는 소란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으르렁거렸다.
경순양함 토급의 악어 같은 입이 벌려지고, 우레 같은 포효성이 울려퍼졌다. 구축함 소녀들은 주눅 들지 않는다. 전함급의 포효조차 버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정도는 강아지가 짖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접근하는 코스에 진입했다. 구축함의 주포론 적에게 치명상을 주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지근거리라면.
“포격 개시이잇!”
무라쿠모의 호령 하에 구축함 소녀들은 포격을 시작하였다. 포격은 거의 수평을 이루었다. 포격음이 주위에 울려 퍼지고 폭염이 피어올랐다.
사방에서 물기둥이 출현하였다. 구축함 소녀는 그것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맹렬하게 돌진하였다.
심해서함도 반격하였다. 포구가 번쩍이고, 무라쿠모의 주위에 탄착군이 형성되었다. 선두함이기 때문에 타깃이 된 것이다.
“무라쿠모!”
“나는 됐어! 적을 확실히 노려!”
카게로의 염려를 떨쳐내고, 무라쿠모는 호령을 연달아 내렸다.
“1방(方)!”
좌 10로 방향을 변경. 적의 진행 방향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꼴이 되고, 전원이 조준을 하기 쉬워졌다.
“죽엇!”
기어코 무라쿠모의 탄이 토급을 포착하였다. 이어서 카게로의 포탄이 명중되고, 우시오, 아케보노가 이어서 포탄을 쏟아 부었다.
토급은 몸을 휘청거렸다. 몸이 비틀거리는가 싶었더니만 몸의 반을 바다에 가라앉혔다.
침몰하기 전에 탄약에 불이 붙었는지, 그 몸은 폭발을 하며 비산하였다.
“해냈어요!”
우시오가 환호성을 질렀다. 무라쿠모는 차분하게 방향 변경을 지시하였다.
“방 X!”
우측 160도 방향 전환. 다음 목표는 적의 수송함이다.
와급은 회피운동을 취하였고, 거리를 벌리려고 하였다. 주위의 구축함 이급이 앞에 나서지만, 이쪽이 유리하다.
“다음은 어뢰전! 전부 날려버려!”
여기서 와급을 잡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무라쿠모의 말과 함께 각자 어뢰를 조준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카게로만이 달랐다.
‘응……?’
자신의 좌측에 무언가가 보인 것이다. 검은 점이 드문드문 떠올라 있으며, 갑자기 커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함선 소녀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적 함대! 좌 40도!”
카게로는 전원에게 경보를 발령하였다.
“이쪽으로 오고 있어, 커!”
선두는 틀림없이 전함급이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크기가 커서 박력이 있었다. 저 실루엣은 눈에 익었다.
“타급!”
적의 전함 부대였다. 강습 양륙 부대가 불러들인 것이다.
“선두에 있는 녀석, 우리들이랑 싸운 녀석이야!”
“적함 발포하였습니다!”
우시오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적함이 번쩍이고, 희미하게 발포연을 피어올랐다. 머지않아 상공에서 공기를 찢어발기면서 포탄이 낙하하였다.
자신들이 일으킨 것보다 몇 배나 높은 물기둥이 솟아오르고, 폭발의 진동이 전신을 감쌌다.
연이어 낙하하는 포탄 때문에, 몸을 직진시키는 것조차 힘들었다.
“방향 바꾸지 마! 방향 유지!”
전투 노이즈 속에서, 무라쿠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적 우 20도. 조준해!”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뢰 공격은 단판 승부다. 아무리 차탄 장전 장치가 있다고 해도, 한번 빗나가버리면 절호의 사격 위치를 잡는 것은 힘들어진다. 더군다나 지금은 전함 부대가 접근 중인 것이다.
각 함선 소녀의 귀에, 발사 준비 완료 버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엄청난 물기둥 수와 파편 속에서, 수송함 와급의 모습이 엿보였다.
“잘 노려서……발사!”
압착 공기와 함께 어뢰가 사출되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구축함 소녀들은 방향을 변경하였다. 적에서 급속도로 거리를 벌렸다.
어뢰는 부채꼴 형으로 퍼지면서 나아갔다. 가장 좌측에서 불기둥이 일었다.
“명중!”
우시오의 환성. 하지만 카게로는 혀를 찼다.
“저건 이급이야. 와급에 맞아야 하는데.”
그 외에 폭발음은 없다. 슬슬 명중돼야 하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빗나갔다……!”
무라쿠모가 분한 기색으로 말했다. 카게로는 말을 걸었다.
“나는 한 번 더 할 수 있는데?”
카게로형에겐 어뢰 차탄 장전 장치가 탑재되어 있다. 여차하면 단독으로도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의사표명이었다.
하지만 적의 전함 부대가 접근하고 있다. 공격 찬스는 한 번 있을까 말까일 것이다.
무라쿠모의 망설임은 한순간이었다.
“알았어. 산소 어뢰 부탁해. 다른 애들은 포격으로 카게로를 엄호해.”
“맡겨줘.”
“알았어요.”
카게로와 우시오는 또렷하게 대답을 하였다. 함대는 Y방(좌 170도 방향 전환) 신호를 내고 방향을 바꾸었다.
3번째로 강습 양륙 함대를 향해 조준을 하였다.
“얘……잠깐만 기다려봐.”
최후미에서 의외로운 목소리가 났다.
“뭔가 좀 이상해.”
아케보노였다. 평소라면 그녀가 말할 것 같지 않은 말이라, 카게로는 수상쩍게 여겼다.
“어서 말해. 머지않아 사격 위치에 진임해.”
“적 함대는 5척밖에 없어?”
“6척이잖아.”
“아냐. 몇 번이나 셌어. 토급이랑 이급을 격침하고 남은 게 3척이니까, 5척밖에 없었어.”
“그런 함대야.”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고! 어딘가에 마지막 한 척이 숨어있다고!”
“어디라니……”
카게로가 말을 다하기 전에, 우시오의 절규가 뛰어들었다.
“좌 30도, 뇌적입니다! 수는 4!”
심해서함의 어뢰가 무라쿠모와 카게로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잠수함!? 또……”
발사한 적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틀림없이 잠수함이다. 아케보노가 말한 대로, 바다 속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회피, 회피해주세요!”
“아직 멀었어!”
우시오의 말에 카게로와 무라쿠모가 동시에 대답했다. 여기서 진로를 바꾸면 발사 과정을 다시 한 번 더 거처야 한다. 그 틈에 전함 부대가 거리를 좁힐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둘은 주기를 있는 힘껏 직진시켰다. 뇌적이 쫓아왔다.
“빗나가라!!!”
그녀의 기합이 닿은 것일까.
적의 어뢰는 전부 카게로의 후방을 통과하였다.
무라쿠모의 목소리에 환희가 찼다.
“이번에는 우리 차례야!”
“차탄 장전 완료!”
카게로의 귀에, 어뢰발사관의 버저 소리가 울렸다. 짊어진 의장의 암을 조작하여, 발사구를 해면을 향해 겨누었다.
이 녀석을 와급에 부딪히면 이 싸움은 자신들의 승리다.
하지만.
“발……우현!”
카게로의 눈이 부릅떠졌다.
구축함 이급이 있었다. 단 한 척, 구축함이, 이쪽을 향해 접근하여 어뢰를 발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게로의 산소어뢰보다 빠르게, 이급의 어뢰가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
이급은 아케보노와 우시오의 포격으로 폭발하였다. 하지만 4개의 어뢰는 격추시키지 못 했다. 부채꼴 모양이 아닌, 나란히 직진을 하여 카게로가 있는 전방을 향해 돌진하였다. 뇌적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선두함을 포착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무라쿠모.
“무라쿠모, 회피, 회피해!”
카게로가 외쳤다.
“안 돼, 방향을 변경하면 카게로에게 탄이 집중돼!”
무라쿠모의 어뢰공격을 돕기 위해, 끊임없이 포탄을 발사하고 있었다. 그 행동은 전함 부대의 주위를 끌고 있었다.
“어서 어뢰를 쏴!”
“회피해!”
“쏘라고!”
카게로는 순식간에 결단을 내렸다.
산소 어뢰를 발사했다. 그리고 속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무라쿠모와 적 어뢰의 사이에 뛰어들었다. 첫 번째 어뢰는 카게로의 바로 앞을, 두 번째 어뢰는 바로 뒤를 통과하였다.
그리고 세 번째 어뢰. 심도 조정이 이상했는지 발밑을 통과하였다. 마지막 네 번째.
‘터지지 말아줘……!’
카게로는 무심코 눈을 감았다. 오른 다리에 충격이 전해졌다.
하지만 기적은 두 번 일어나지 않았다.
폭발로 인해 물기둥이 드높이 솟아오르며, 카게로는 그 속에 휘말렸다.
시야가 막히고, 의식이 혼탁했다.
시야가 막힌 것은 대량의 바닷물에 휘말렸기 때문이고,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는 것은 폭발의 충격 때문이었다. 카게로는 어뢰를 맞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멀어져가는 의식을 어떻게 붙잡으려고 하였다.
왼쪽 암은 뜯겨져 나갔다. 4연장 어뢰발사관을 장착하였는데, 어디로 날아 가버린 것 같다. 다른 의장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등이 아픈 걸 봐서 캔도 큰 피해를 입은 걸 것이다.
오른발은 더 아팠다. 그 부위에서 적의 어뢰가 폭발한 것이다. 함선 소녀의 제복은 최대한 데미지를 흡수하여 피부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해주고 있지만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게다가 이 정도의 폭발이라면, 육체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고통 속, 주기를 움직여보려고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공회전 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오른쪽도 왼쪽도 망가져버린 것 같았다. 이런 상태를 보면 부력도 의심스럽다.
등에 격심한 통증이 내달렸다.
아마도 의장의 중심부분이 손상을 입었다. 힘이 빠져나가는 감각도 느껴졌다. 여길 어떻게 하지 않으면 함선 소녀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생애를 마치고 만다.
‘데……데미지 컨트롤……’
응급 수리 요원은 적재하고 있지 않았다. 함선 소녀에게 사람이 타는 것이 아니라 그런 명칭의 부품이지만, 귀중한데다가 장비 공간을 압박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함선 소녀는 탑재하고 있지 않았다. 카게로도 그렇다.
이렇게 되면 자력으로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주수……어라, 주수는 뭐였더라?
혼탁한 의식. 생각이 좀처럼 한데 집중되지 않는다. 평소라면 자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추진력을 잃었을 때에는,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을 때에는, 으음, 으음 어떻게 했더라.
힘이 빠져나간다. 말을 하려고 해도 공기가 입에서 새어나올 뿐이다. 가슴 부근이 압박되어서 폐가 짓눌려가는 느낌도 들었다.
세상이 오른쪽으로 회전하고, 그 다음에는 왼쪽으로 회전하고, 완전 엉망진창이었다. 머릿속에선 몇 번이나 전류가 흐르고, 머지않아 뇌내 마약으로 바뀌었는지 빠른 속도로 힘이 빠져나갔다. 이젠 아무런 생각도 할 필욘 없구나, 그런 안도감이 몸을 지배하려고 하였다.
“카게로!”
누군가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할 기력이 없다.
“카게로, 카게로!”
낯익은 목소리다. 필사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걸로 보아, 저세상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린 아니다.
카게로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눈을 떴다.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묶어 정리한 소녀가 자신을 살펴보고 있었다. 뭔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다. 드세 보이는 얼굴인데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슬퍼할 요소가 있을까?
아아, 깨달았다. 날 보고 슬퍼하고 있다. 내가 죽는 게 슬픈 것이다. 바다를 떠도는 부표가 될 것 같은 함선 소녀를, 진심으로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카게로는 입을 열었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였다기 보단, 향도함으로서의 책무가 그렇게 하게 만들었다.
“아……아케보노……”
“카게로, 정신 차려!”
“구……구축대는……무라쿠모와……아키츠마루씨를……지켜……지휘는……나가츠키……없……없으면……아, 아케보노가……해줘……”
시야가 암전되었다. 전원이 끊긴 것처럼 어두워졌다.
그 이후, 카게로는 모든 감각을 잃었다.
'칸코레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대콜렉션 -칸코레- 카게로, 발묘합니다! 3권 제6장 -불꽃의 구축함- (6) | 2016.06.06 |
---|---|
함대콜렉션 -칸코레- 카게로, 발묘합니다! 3권 제5장 -링가에서 가장 긴 하루- (9) | 2016.03.07 |
함대콜렉션 -칸코레- 카게로, 발묘합니다! 3권 제3장 -잠수함을 찾아라- (9) | 2016.01.17 |
함대콜렉션 -칸코레- 카게로, 발묘합니다! 3권 제2장 링가 세상만사 이야기 (7) | 2016.01.08 |
함대콜렉션 -칸코레- 카게로, 발묘합니다! 3권 제1장 유빙이 떠다니는 해역. (7) | 2015.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