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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코레/소설

함대콜렉션 -칸코레- 카게로, 발묘합니다! 2권 제2장 전진 극미속

불안이란 연못 바닥에 쌓여있는 진흙 같은 것이라 평소에는 볼 수가 없다. 바닥을 긁어 휘저어야 수면까지 그 모습을 드러낸다. 현재의 제14구축대가 말 그대로 그런 상태이며, 우시오의 말로 인하여 부상한 것이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시라누이는 다른 구축대지.”

 

사츠키가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듯이 말했다.

 

,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알 수 없어......”

 

아라레가 중얼거렸다.

 

우리들 중에서 누군가가 튕겨나갈 가능성도......”

그만해 그런 말은.”

 

사츠키가 진절머리를 내는 것처럼 말했다.

 

그야 우리들이 그렇게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또 배속이 변해도 이상하지 않아......”

우우......”

 

사츠키가 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은 기세였다.

다른 멤버들도 크든 작든 아라레와 똑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전투 이후, 14구축대의 지명도는 올랐고 결속도 깊어졌다. 자기 자신에게 자신감도 붙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카게로를 예전부터 알고 있는 함선 소녀가 찾아온 것이다. 그것만이라면 아직 낫지만, 도리어 자신들이 다른 곳으로 튕겨나갈 경우도 있을 법한 것이다.

사츠키는 쭈그려 앉아 한탄을 터뜨렸다.

 

술 마시고 싶어. 잊고 싶어.”

또 그 소리인가...... , 마실 수 있다면 마셔보고 싶지만, 그건 어떻게 할 수 없군.”

 

그렇게 말하는 나가츠키.

 

우리들이 걱정을 해도 소용없는 일이지.”

그렇지만 말이야, 나가츠키가 어디로 튕겨나가는 일도 있을 수 있다구?”

그건 사양하지.”

 

사츠키의 말을 부정한 나가츠키였지만 자신의 의사로 어떻게 될 수 없다는 것 정돈 잘 알고 있었다.

적막감이란 이름의 바람이 제14구축대의 남은 멤버들 사이로 불고 지나갔다.

 

, 여러분들이랑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우시오가 중얼거렸다.

 

이제와서 제7구축대로 돌아가봤자......”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사츠키도, 여기서 쫓겨나가면 사세보다. 그곳에 방이 남아있을 거란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군.”

 

나가츠키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라레도 작은 목소리를 흘렸다.

 

나는......이제 와서 구레에 돌아가는 것도......”

그건 이상한 이야기가 되는 군.”

시라누이랑 뒤바뀌는 꼴이 돼......”

있을 법 하지 않아? 구레의 구축함 수도 줄어들었을 테고.”

 

그렇게 말한 것은 나가츠키가 아니였다.

아케보노였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입술을 구기고 있었다.

 

시라누이라는 애는 실력이 좋은 애였지? 없어지면 구레 진수부도 곤란하잖아. 아라레는 원래 제18구축대였으니까, 대신 나갈지도 몰라.”

싫어......”

이봐, 아케보노!”

 

나가츠키가 덤벼들었다.

 

말을 막 하지마.”

막하는 게 아니잖아. 가능성이라면 아라레가 가장 먼저 말했다고.”

너는 동료가 없어져도 좋은 것인가?”

별루 동료따윈......”

 

뭔가 거친 말을 하려고 한 것 같지만 우시오가 째려보고 있다는 걸 알곤 아케보노는 일단 입을 닫았다.

 

“......, 요하자면, 여기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면 그 나름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 아냐?”

뭐야 그건.”

훈련이라도 하지 그래?”

 

아케보노는 시시하다는 듯이 그리 말했다.

 

우리들이 카게로에게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함선 소녀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나가츠키뿐만 아니라, 사츠키도 아라레도 우시오도,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정말로......?”

몰라. 다만,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건 그 밖에 있어?”

 

그 말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듣기에는 안 좋지만 구축함은 소모품에 가깝다. 속도야 빠르지만 장갑도 종이 장갑이나 마찬가지고, 출격이 겹쳐지면 금세 격침된다. 그러니까 많은 수가 필요해진다.

그런 와중에서 존재감을 늘리기 위해선 거듭된 승리를 거두는 것 이외엔 없다. 그러기 위해선 훈련을 할 뿐이다.

다들 얼굴을 마주보았다.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오늘, 휴일이었는데 말이지.”

 

사츠키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네요.”

 

그렇게 말하는 우시오.

 

나는 아라레랑 외출할 예정이엇어. 허가도 어제 받았는데.”

 

나가츠키가 한탄했다. 아라레도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 않는다는 수도 있는데.”

 

아케보노의 말에 다른 인원들은 모두 거개를 저었다.

천천한 발걸음은 머지않아 종종걸음이 되었고, 마지막에는 전력질주가 되었다.

14구축대는, 부두까지 달려갔다.

 

 

 

 

시라누이가 조립식 건물로 지어진 제독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카게로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땠어?”

막힘없이 끝났습니다. 사령관으로 부턴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말을 들었습니다.”

 

사무적인 어조로 시라누이는 말했다. 이 아이의 이런 점은, 어딜 가도 변함이 없다고 카게로는 생각했다.

 

그것뿐이었어? 시라누이의 손을 잡던지, 무릎베개를 해달라는 부탁 안 받았어?”

“? 아뇨?”

 

시라누이는 카게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카게로는 그런 걸 당했나요?”

그렇진 않은데...... 취향이 극단적이란 소문도 듣고, 시라누이의 눈매가 무서웠던 걸지도 몰라.”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지만, 상관에게 아양을 떨어봤자 부질없죠.”

요코스카 진수부는 프렌들리한 진수부래.”

 

둘은 나란히 걸어갔다.

태양은 아직도 높이 떠있었다. 햇살이 얼굴에 닿고, 어렴풋한 더위가 느껴졌다. 때때로 부는 바람이 열기를 저 멀리까지 실어 날랐다.

이러고 있으면 제18구축대 시절을 떠올렸다. 그 때는 좋은 동료 좋은 라이벌. 둘이서 경쟁을 하듯이 훈련을 하고, 녹초가 되어 부두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반드시, 함께 돌아간 것이었다.

함선 소녀의 임무에 익숙해진 것도 가미하여, 당시에는 모든 것이 신선했다. 다른 구축대의 소녀들과 사이도 깊어지고, 불가능한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할 정도이다.

문득, 카게로는 떠올렸다.

 

, 그러고보면 카스미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 그 애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탈거야.”

쿠로시오에게 맡겼습니다. 괜찮겠지요.”

18구축대도 개점 휴업인가.”

어뢰를 맞고 괴멸하는 것보단 훨씬 나아요.”

 

그렇게 시라누이는 말했다.

 

작전이 끝나면 시라누이도 구레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부활입니다.”

외로워. 카스미도 불러달라고 부탁해볼까. 시라누이도 계속 이쪽이 있지 그래?”

시라누이는 구레가 체질에 맞으니까요. ......카게로는, 구레가 그립지 않나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카게로는 동요하였다.

갑자기 심박수가 올라가고 손을 팔랑거렸다.

 

, 그렇진 않은데......”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했어요.”

구레 진수부는 좋아해.”

요코스카에 불만을 가지시나요?”

 

그 말에, 그녀는 당혹감에 빠졌다.

시라누이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카게로는 곤혹스러워 한 뒤 입을 열었다.

 

아니, 별루, 여긴 좋은 곳인데.”

편지에는 푸념이 있었다고 기억해요.”

그건 무효. 좋은 애들이야.”

그런가요.”

 

시라누이의 시선이 떨어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카게로는 초조함을 느꼈다. 시라누이이니, 질문에 다른 의도가 있을 리가 없으며, 평범하게 구레에 대한 화제를 꺼낸 걸 것이다. 같이 돌아가자는 말도, 분명 사무적으로 물어본 것이 틀림없다. 아마도, 분명.

하지만 이쪽은 그 말에 곤란해지고 만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필사적으로 화제를 찾았다. 지금의 분위기를 무마시킬 화제, 혹은 흥미가 끌리는 화제는 없을까? TV나 만화는 안 된다. 시라누이는 때때로 책을 읽는 정도이고 취미는 전무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정치,경제,외교 이야기는 이쪽이 흥미가 없다. 날씨는 날씨 좋네.”, “그렇네요.” 이걸로 끝나고 만다.

요코스카 진수부에 있으니, 진수부 화제가 좋을까?

 

, 그렇지. 아직 여행은 안 했지.”

.”

그럼 진수부 안내할게.”

 

새로 착임한 함선 소녀가 진수부 안내를 받는 것을 여행이라고 부른다. 실은 카게로는 이걸 하지 않았다. 금세 향도함 임명을 받고 말아 여행을 할 상황이 아니게 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내를 받진 않았지만 몇 가지 시설이라면 알고 있다.

 

아타고씨랑 만나지 않았지. 얼굴을 비치러 가자.”

 

진수부 청사로 들어갔다.

아타고는 자신의 집무실에 있었다. 비서함은 제독의 서포트를 하기 위해 대량의 잡무를 하기 때문에 독자적인 공간을 배당받는다. 경우에 따라선 비서함 비서가 임명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시라누이는 아타고의 앞에서 착임 인사를 하였다.

 

지도, 편달, 잘 부탁드립니다.”

네가 시라누이구나, 요코스카에 온 걸 환영해.”

 

아타고는 생긋 미소를 지었다.

 

카게로형 2번함이라면, 나에게 있어서도 동생이야.”

 

카게로는 눈으로 시라누이에게 대답할 필욘 없어.” 라고 신호를 보냈다.

카게로는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일부러 와줘서 고마워. 제독이 사방으로 함선 소녀를 불러들이고 있으니까, 정신이 없어서 미안해.”

신경 쓰고 있지 않습니다. 구레의 제독이 가지 말라고 간원을 하였지만요.”

사실은 말이지, 유키카제도 뽑아오려고 했어. 그랬더니 엄청난 항의가 왔지 뭐야. 시라누이의 전속이 작전기간에 한한 것도 클레임을 받아서 그런 거야.”

 

카게로는 마음속으로 작전 기간만 하지 말고, 좀 더 힘내라고.” 라고 중얼거렸다. 아타고에게는 그것이 훤히 들여다보인 것인지, “때 쓰지마.” 라고 카게로를 달래었다.

어깨를 으쓱거린 뒤, 질문하였다.

 

구레에서 온 구축함은 시라누이뿐인가요?”

 

아타고는 서류를 뒤적거렸다.

 

서류상으론, 18구축대가 이관된 걸로 되어 있어.”

시라누이뿐인데요?”

진수부도 관공서인 것은 변함이 없으니까.”

 

아타고는 서류를 덮었다.

 

시라누이의 장비 세트도 이미 도착했어. 남은 건......그렇네, 요코스카에는, 비서함인 나에게 말해야만 하는 말이 있단다.”

 

그녀는 거대함 흉부장갑을 흔들면서 일어섰다. 카게로는 서두러 시라누이에게 말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시라누이는 살며시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요코스카의 작법이라면, 따르겠습니다.”

대단한 건 아냐. , 나가자.”

 

카게로는 아타고의 사이에 끼어들으려고 하였다. 아타고는 몸을 배배 꼬면서, “내 말 들어줘.”란 사인을 보내었다.

 

아앙. 간단한 거야. 카게로도, 똑똑히 말해줬단다.”

그런 것이라면.”

있잖니, 언니라고......”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카게로는 큰 목소리로 말을 가로막고 시라누이를 잡아당기며 퇴실하였다.

 

 

아직 해는 높이 떠있었다. 눈부시지는 않고, 딱 좋은 햇살이 되었다.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았다.

둘은 진수부 청사를 나왔다. 카게로는 안심하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위험했다......”

지금 건 뭔가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라누이.

 

악몽......은 아니지만, 잊어도 돼.”

아타고씨는, 카게로는 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렇다기 보단, 나 말곤 안 했어.”

 

시라누이까지 할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 카게로는 단언했다.

화제를 억지로 끝냈다. 잊게 만들려고, 그녀는 질문을 했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그렇군요......”

 

시라누이는 잠시 잠자코 생각을 한 뒤 자신의 희망을 말했다.

 

공창을. 구레와 비교하고 싶네요.”

그러고보면 시라누이는 잠시 동안 비서함을 했었지.”

 

그 때는 카게로는 시라누이를 밥맛 떨어지는 구축함.” 이라고 평가했다. 함께 배속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으며, 금세 비서함으로 발탁된 2번함을 수상쩍은 눈으로 본 것이었다. 지금 같은 거리감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하였고, 반발도 했다.

옛날 일을 떠올린 카게로를 시라누이는 떠보는 듯이 물었다.

 

카게로에겐 폐가 되었나요?”

그렇지 않아, 실은 나도 가본 적이 없었어. 여행을 계속 하러 가자.”

 

간소한 지도판에 기대어 둘은 앞길을 나갔다.

진수부의 항구가 아니라 반대쪽, 구릉이 된 쪽으로 향했다.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란 구역에 발을 디뎠다.

머지않아,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한 동만 있는 것이 아닌, 여러 동이 나란히 서있었다.

이곳에 요코스카 진수부의 공창과, 개조,개수를 위한 시설이 있었다.

공창은 바다가 아닌 육지 쪽에 존재한다. 기밀보지를 위해 떨어진 에리어에 집합되어 있으며, 민간인의 출입은 금지된다. 함선 소녀는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일부 구역은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다.

게이트에서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확인에 번거로운 수고를 들었지만 들여보내 주었다.

카게로는 시라누이를 데리고, 근처 건물로 들어갔다.

 

여기, 의장을 수리하는 곳이구나.”

 

내부는 청결하게 하얗게 도색되어 있으며, 수리공창이라기 보단 연구시설 같았다.

함선 소녀의 장비는 군수부가 보관하고 있다. 거기선 일상 정비도 떠맡고 있으며, 자기가 손질하고 싶어 하는 함선 소녀에게 빌려주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장비의 대부분은 이 건물에 없지만, 전투로 심각한 손상을 받으면 일반적인 정비론 손쓸 도리가 없기 때문에 여기까지 반입된다. 이곳에서 신품이나 마찬가지로 탈바꿈을 하는 것이다.

내부에선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밖에선 원통형 짐들이 들어오고 있으며, 여기저기에 쌓이고 있었다.

 

고속수복재를 모으고 있는 것 같네.”

 

창문을 통해 밖을 보며 카게로가 말했다.

 

안뜰까지 쌓여 있잖아. 상당히 모였네.”

공세 작전 준비이겠죠. 시라누이도 그 작전 때문에 불려왔어요.”

그렇다고 해도 많아.”

그만큼 본격적인 것이겠죠.”

 

고속수복재는, 함선 소녀를 지탱하는 자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손상을 입은 함선 소녀는 의장을 벗고, 독이라고 불리는 함선 소녀 전용 상병 요양 시설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리고 의장 자체는 이곳에서 수리를 받는데, 작전이 가경에 접어들면 곧장 수리하여 출격하고 싶은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런 경우에 고속수복재를 사용하였다.

고속수복재는 특수한 액체이며, 장비의 찌그러짐이나 손상을 고치기 쉽게 한다. 예를 들면 함포가 손상받은 경우, 수리 과정에서 다양한 부분을 조정하고 시험 사격까지 할 필요가 잇지만, 고속수복재라면 그 과정을 생략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고속수복재에 들어있는 용기가 거대한 플라스틱 양동이랑 붕어빵이라서, 다들 양동이라고 부르고 있다.

카게로는 창문에서 시선을 때었다.

 

우리 제독,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가는 타입이었구나.”

성실하고 정직한 분이였어요.”

호색한이란 소릴 들었는데.”

 

작업의 방해가 될 것 같았기에, 둘은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인접한 건물은 장비의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은 출입 금지이기 때문에, 그 옆으로 갔다.

 

시라누이, 구레랑 비교해서 어때?”

좀 부지가 좁은 것 같네요. 미우라 반도의 지형 때문에 그런 것이겠죠.”

나는 구레에서도 공창은 한 번 밖에 견학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비서함이 되면 싫어도 볼 수 있어요.”

 

가장 안쪽으로 갔다. 다른 건물과 비교하여 한층 더 큰 건물이 있었다.

정밀기계 공장같은 외관. 다만 창문은 하나도 없었고, 공장에 있는 메이커의 로고도 물론 없다.

이곳은 함선 소녀의 근대화개수와 개조, 그리고 건조를 하는 시설이다.

카게로는 살며시 긴장했다. 구레에서도 이 시설만큼은 온 적이 없었다.

하지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장비개발 건물은 견학조차 불가. 이곳도 출입 금지되어 이상하지 않았다.

문득 보면, 입구 근처의 벤치에 한 명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푸른색 제복에 풍만한 흉부 장갑. 짧은 느낌이 머리카락. 중순양함 타카오였다.

손에는 슬리브에 쌓인 컵을 들고 있다. 카게로와 시라누이보다 먼저 그녀가 눈치를 챘다.







 

어머나. 진수부 여행이니?”

, ......”

 

망설이면서 카게로는 대답했다. 생김새는 상냥해보여도, 이 사람은 아타고 이상으로 엄격하다. 놀고 있다고 생각하면 호된 꼴을 당한다.

타카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으로 불러들였다.

 

겁먹지 마. 너한테 아케보노를 떠맡겨버린 걸,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카게로는 안심하며, 시라누이와 함께 타카오의 곁으로 갔다.

 

휴식 중에 죄송해요.”

아타고에게 공창 감독을 부탁받았는데, 일이 없어져서 한가한 것뿐이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이 중순양함은, 종이컵 말고 종이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약인가요?”

속이 쓰려. 요코스카 구축함 소녀들은 기운이 넘치는 애가 많거든. 14구축대도 폭풍 속에서 훈련을 했지? 다른 애들이 자신들도 한다고 말했어.”

죄송해요.”

괜찮아. 네 덕분에 구축함들이 절차탁마하고 있으니까. 실력이 좋아지는 건 나쁜 일이 아니야.”

대규모 작전이 시작되지요.”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타카오는 카게로의 옆에 시선을 옮겼다.

 

네가 카게로형 시라누이구나.”

금일 부로 착임하였습니다.”

 

시라누이는 직립부동 자세로 경례하였다. 타카오는 답례를 하곤,

 

소문을 들었어. 구레 진수부 제독의 심복이라며? 구레 진수부의 제독, 너마저 전속이 됐다고 상당히 클레임을 건 것 같아.”

명령이니까요.”

고생을 끼치네. 우리 제독도 아타고도, 저래 보여도 막 나가는 구석이 있거든.”

 

그녀는 컵을 손가에 둔 봉지에 넣었다.

 

건물 견학을 할 생각이니?”

그러고 싶은 심정은 굴뚝같지만, 폐가 되는 게 아닌지.”

괜찮아. 나도 전에는 비서함이었어. 아직 안면은 트고 있어. 견학하러 가자.”

 

타카오는 둘을 재촉하였다.

그녀의 말대로, 위병은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필요 이상으로 조명을 받은 복도를 걸어갔다. 외관도 그렇지만, 안도 정밀기기 공장 같았다. 다만, 움직이고 있는 사람의 수는 적었고, 태반은 백의를 입고 있었다.

 

그쪽에서 보이니? 이쪽의 안이 근대화개수 구역이야.”

 

타카오가 가리켰다. 강화 아크릴판으로 구분된 곳에 다양각색의 의장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함선 소녀가 장착하는 함포나 어뢰, 주기나 캔 같은 유닛은, 통틀어서 의장이라고 부른다. 이 의장이, 함선 소녀를 함선 소녀답게 하였다. 그리고 이 의장에는 과거 침몰한 함의 혼백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설명이 애매한 이유는 상층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는 혼돈과 기밀의 소용돌이에 숨어, 함선 소녀 본인이라고 하여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이것은 아무리 인류의 위기이고 달리 수단이 없다고 해도, 마치 사람을 사이보그로 만드는 것 같다.” 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조치인 것 같다.

함선 소녀는 원래는 평범한 소녀이다. 다수의 지원자와 함께 후보자가 되어 적성시험을 거치고 함선 소녀가 된다. 이 적성시험의 최종단계에서 의장과의 상성 체크를 받게 된다. 의장과의 자신의 상성 체크에 합격함으로서 소녀들은 지금까지 지녀온 이름을 봉인하고, 함명을 받게 된다.

건조란 이 의장을 제조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리고 근대화개수는 퇴역하고 사용되지 않는 등 남아도는 의장을 이용하여 성능향상을 이루는 개량행위이었다.

 

근대화개수는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야. 의장을 건드리는 것뿐이거든, 함선 소녀는 지켜보고 있는 것뿐이야.”

 

타카오가 설명했다. 카게로가 물었다.

 

타카오씨는 근대화개수를 한 적이 있나요?”

. 비서함은 초기 상태로는 모양새가 안 산다고 제독이 하라고 했어.”

어떤 느낌인가요.”

평범해.”

 

사츠키랑 비슷한 답변이었다.

이어서 그녀는 여기야.” 라고 안내했다.

앞길로 이어지는 복도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 우측은 튼튼해 보이는 문으로 막혀있으며, 좌측은 개방적인 공간이었다.

 

오른쪽은 건조 에리어. 건조독이라고 불리고 있어. 제독과 현역 비서함 이외에는 출입 금지니까, 나도 안내할 수 없어. 왼쪽은 개조를 위한 곳이야.”

 

의장의 건조방법은 베일에 가려져 있으며, 비서함조차 표면적으로 입회를 하는 것뿐이며 중요한 장면은 볼 수 없다. 반쯤 농담으로 요정이 만들고 있어.” 란 말을 듣는 경우도 있다.

건조 후의 의장은 엄중하게 관리되어, 함선 소녀 후보와의 상성확인 때까지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개조는 그것보다 좀 더 관리가 느슨했다.

개조하는 곳은 근대화 개수와 똑같은 구역이었다. 다만, 마치 의료용같은 커다란 기계가 놓여져 있으며, 수술실로도 보일 것 같다.

중앙에는 큼지막한 둥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개조는 근대화개수랑 달리, 의장을 장착한 채로 받아. 저기 있는 의자에 앉게 돼.”

진료같네요.”

비슷하지만, 눕지는 않아.”

 

카게로의 말에 타카오는 답하였다.

근대화개수랑 달리, 개조는 의장 그 자체를 건드린다. 그 때, 함선 소녀와의 상성에 엇갈림이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거창한 방법이긴 하지만, 실패를 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개조를 받는 함선 소녀는 제독이 정해.”

독단으로 받을 수 있나요?”

 

카게로의 질문에, 타카오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물어본 적은 없어. 제독만이 아니라 비서함의 승인도 필요하거든, 무리라고 생각해.”

 

지금은 의자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바닥은 청소를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인지 반짝반짝 윤이 나고 있었다.

시라누이는 개조 공간 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언젠가 이곳을 사용하는 날이 올까요.”

어떨까.”

 

카게로는 대답하였다. 목욕할 때에도 생각했지만, 잘 모르겠다.

시라누이는 말을 이었다.

 

자신의 약함을 자각하거나, 더욱 높은 경지를 향할 때 개조를 받는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애석하게도, 시라누이는 그런 국면에 조우한 적이 없어요.”

너 어려운 일도 그냥 해치워 버리는 걸.”

그건 겉으로 보기에 어려운 것뿐이지, 실은 간단했어요. 정말로 어려운 일이랑 조우했을 때, 잘 타개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어요. 그렇게 됐을 때, 아마도 개조를 받게 되겠지요.”

그만해. 천재인 네가 곤란에 처하다니 못 믿겠어.”

시라누이는 천재가 아니에요. 천재란 유키카제나, 이곳의 아케보노를 말하는 것이에요.”

“......~.”

 

카게로는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알겠어?”

 

시라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그 아이는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 탓에 주변과 겉돌기 십상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스스로 거리를 두고 있지요.”

역시 시라누이.”

맞았나요.”

자기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그렇지만 요즘은 친해졌어.”

 

훈련이나 실전을 통하여 서로 마음을 통한 것이다. 그야 말로 주먹이 오고 가는 싸움까지 했다. 툭하면 빈정거리는 그 소녀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세고, 그러면서 동료를 바라고 있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고 있다.

 

, 아케보노는 정말로 좋은 애라고 생각해.”

 

시라누이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카게로가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 그렇겠지요.”

어라, 불만이야?”

그렇게 보이나요?”

 

보인다고 대답하면 더더욱 불만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벽에 걸린 전화가 울렸다. 타카오가 받았다.

그녀는 2,3번 대답을 한 뒤, 수화기를 카게로에게 건넸다.

 

14구축대 향도함에게 전화왔어.”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난 뒤, 카게로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바꿨습니다.”

 

(정말~ 타카오씨가 받는다면 그렇다고 말해줘.)

 

사츠키였다. 조금 당황해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안 보여서,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고. 왜 공창에 있는 건데.)

시라누이한테 진수부 안내를 하고 있었어.”

(아직도 하고 있어? 그러니까 아케보노가 화가 난거라고.)

왜 아케보노가 화를 내는데.”

(왜라고 생각해?)

몰라. 커버해둘게. 볼일은 뭐야?”

(점심. 둘 다 아직 안 먹은 거 아냐? 식사시간 끝나버려.)

 

.” 카게로는 중얼거렸다. 듣고 보니 배가 고프다. 안내하느라 정신을 팔려 깜빡 잊고 있었다.

 

사츠키는 괜찮아?”

(우리들은 이미 먹었어. 빨리 하는 편이 좋아.)

고마워. 그렇게 할게.”

 

통화가 끊어졌다. 카게로는 소리가 끊겨진 수화기를, 벽으로 돌려놓았다.

 

안내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만 실례할게요.”

 

머리를 숙이고 카게로에게 말했다.

 

점심이니? 아직 안 먹었구나. 식사도 훈련의 일부야.”

명심할게요.”

든든하게 먹으렴.”

 

타카오에게 그런 말을 듣고, 카게로와 시라누이는 종종걸음으로 공창에서 나왔다.

 

정오도 지나가버린 탓에 둘은 닥쳐들듯이 구축함 기숙사로 들어갔다.

기숙사에 있는 식당, 통칭 제1사관 차실은 야간 이외엔 매일 열려있다. 그 탓에 휴식 공간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 식사는 3, 정해진 시간 외엔 제공되지 않는다.

다른 구축함 소녀들은 이미 식사를 마쳤다. 어쩌다 카게로는 휴일이고, 시라누이는 오늘 온 참. 그렇기 때문에 식사 시간이 다소 자유로웠다. 그래도 아슬아슬한 시간대였다.

플라스틱 식판을 들고, 식사를 용기에 받았다. 밥과 반찬으로 나온 닭고기도 듬뿍. 오늘의 과일은 선택식이며, 카게로는 감귤, 시라누이는 복숭아를 골랐다.

 

, 오늘도 복숭아야?”

좋아하니까요.”

감기에 걸렸을 때에도 그랬지.”

그건 입수하기 힘들어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부탁해본 것이에요.”

 

예전에 시라누이가 감기에 걸렸을 때 카게로가 복숭아 통조림을 조달해온 적이 있다. 복숭아 통조림은 의외로 인기가 있어서 들고 온 것을 들키지 않도록 숨기는 데에 고생했다.

둘은 자리를 찾았다.

시간이 시간이라, 어느 곳이든 자리는 비어 있었다. 카게로는 한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머지않아 한 구석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에 앉자.”

 

그곳에는 제14구축대의 함선 소녀들이 앉고 있었다.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각각 떨어져서 앉아있다. 식사는 이미 끝난 듯,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테이블의 구석진 곳에서 아케보노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카게로는 다가갔다.

 

앉아도 돼?”

 

아케보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여기 말고도 자리 비지 않았어?”

아케보노랑 같이 있고 싶거든.”

안 된다고 말해도 앉을 거지.”

정답!”

 

카게로와 시라누이는 자리에 앉았다. 다른 구축함 소녀들은 테이블을 널찍하게 이용하고 있으며, 이곳만이 좁게 쓰게 되었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젓가락질을 하였다. 이미 식어버린 조림이지만, 간이 진하게 베여 있어서 충분히 맛있었다.

아케보노는 하찮다는 듯이 찻잔에 입을 대었다.

 

늦은 점심 식사네.”

시라누이를 여기저기 안내를 했더니 늦어버렸어. 아케보노는?”

쉬고 있어. 피곤하니까.”

 

카게로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왜 피곤한 거야?”

훈련을 해서 그래.”

 

누구 때문에 훈련을 했다는 듯한 말투였다.

아케보노는 제1사관차실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었다. 농밀한 관계를 거절하는 타입으로 구축함 소녀 중에서도 고립하기 십상이었다. 평소라면 같이 행동하는 우시오가 떨어져 앉아 있는 것도 분명 혼자 있고 싶어.” 그런 소릴 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우시오는 안달이 난 것인지, 빈번히 이쪽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케보노의 태도는 이래보여도 상당히 나아진 편이며, 예전이라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을 것이다.

 

누구 덕분에 휴일이 어중간하게 돼서, 자주훈련을 했어. 함대 운동을 너무 해서 눈이 팽팽 돌았어.”

미안해.”

 

카게로는 합장을 하며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사과를 하였다. 아케보노는 그 모습을 힐끔 보았다.

 

너희들은 진수부 여행이지. 한가하구나.”

모처럼 구레에서 왔으니까, 안내를 해줘야지. 아케보노도 같이 올래?”

안 가. 그것보다, 나 너보다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다고. 이제와서 안내를 받아도 곤란하다고.”

 

아케보노는 다과를 대신하듯이 절인 야채를 씹어 먹었다.

14구축대의 다른 멤버는 때때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이 우시오고, 안달복달하는 것이 옆에서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카게로는 닭고기를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실은 말이야, 사츠키가 말했어. 아케보노가 기분이 안 좋은 게 아니냐고.”

뭐야 그거.”

그러니까 같이 먹고 싶었어.”

먹고 있는 건 너희들이잖아. 사츠키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나한테 몇 번이나 말을 건다고 생각했더니, 그런 이유였었나.”

그래보여도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잘 쓰는 아이지.”

 

카게로는 샐러드를 삼켰다.

시라누이는 묵묵히 먹고 있었다. , 반찬, , 샐러드, 된장국, 이런 순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데 마치 연료 보급을 하는듯한 분위기였다.

아케보노가 힐끔, 그녀를 보았다.

 

“......왜 장갑을 낀 채로 먹는 건데.”

 

장갑을 착용한 채로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주 앉아있는 카게로는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다.

시라누이는 백반을 입에 넣었다.

 

제복이거든요.”

징그러.”

벗는 편이 위화감이 있어요.”

구레의 유의라는 것도 아니잖아. 카게로는 툭하면 벗고 있어.”

요코스카에서 규율이 헤이해진 것이에요.”

그럼, 너는 마음을 열지 않다는 거야.”

답변은 안 해요.”

 

그 대답에 아케보노는 울컥했다. 시라누이는 태연하게 있었다.

회화에 카게로가 끼어들었다.

 

자자, 그러지말고, 그렇게 땍땍거리지 마. , 아케보노.”

 

카게로는 감귤을 포크로 찔러 내밀었다. 아케보노는 수상쩍게 보았다.

 

하아?”

~.”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케보노는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였다.

 

먹을 걸로 매수할 셈이야?”

마미야씨의 양갱 쪽이 좋아?”

징그럽거든!”

 

기어코 자리에 일어선 아케보노에게 카게로는 미안해, 자리에 앉아줘.” 그렇게 말하며 달랬다.

그 뒤 고개를 기울였다.

 

이상하다. 아케보노가 먹어주고, 우정이 깊어질 예정이었는데.”

너 때때로 이상한 짓을 하더라. 전에 있던 구축대에선 상식이었어?”

가끔인데.”

가끔!? 18구축대는 이상한 곳이구나.”

그게 카스미도 먹어주질 않아서 말이야......카스미는 노골적으로 무시를 했다고. 그 탓이란 생각은 안 들지만, 18구축대도 개점휴업 상태야.”

 

그 말에 시라누이를 젓가락을 놓으면서 말했다.

 

일단 존재하고 있어요. 저 혼자지만요.”

 

그러고 보면 그랬구나라고 생각하는 카게로. 아케보노는 의자에 다시 앉았다.

 

보통 한 명만 남으면 해산하잖아.”

나중에 구축함이 오는 것인지, 해산하고 새로 편성을 하는 것인지, 아직은 밝혀지지 않았어요.”

어서 늘면 좋을 텐데.”

 

아케보노는 찻잔의 내용물을 전부 마시려고 하였다.

 

그 일 말인데요.”

 

시라누이는 자세를 바로 하여, 카게로를 바라보았다.

 

새로 구축함이 올지, 그 여부는 모르는데다가, 구레에 돌아가도 카스미랑 단 둘이에요. 이 인수로는 원정임무조차 불안해요.”

 

가벼운 느낌으로 카게로는 대답했다.

 

시라누이라면 할 수 있데도.”

마음이 통하는 함선 소녀가 그 외에도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요......카게로.”

 

그녀는 곧바로 카게로를 보았다.

 

시라누이랑 같이, 구레로 돌아가지 않겠나요?”

 

카게로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녀만이 아니다. 멀리서 살펴보고 있던 구축함 소녀들도, 물론 아케보노도, 진심으로 기겁을 하고 있었다.

폭탄, 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14구축대 안에서, 시라누이의 말은 폭발을 일으킨 것이었다.

전원, 깜짝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평소부터 표정의 변화가 없는 아라레마저 눈을 껌뻑거리고 있으며, 우시오에 이르러선 쇼크로 기절을 할 것만 같았다. 사츠키는 입을 쩍 벌린 채 굳어있으며, 나가츠키는 환청을 의심한 것인지 연신 귀를 두들기고 있었다. 아케보노는 시선을 허공을 향해 헤맨 채로 앉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역시 폭탄이었던 것이리라. 그녀들에게 있어서 그 말은 그랜드 슬램급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말을 한 것은, 다른 아닌 시라누이였다.

 

왜 그러세요?”

 

그 말에도 침묵이 돌아왔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 말을 한 것은, 아라레였다.

 

왜냐니......그건......”

 

그녀는 시라누이의 곁까지 걸어왔다.

 

너무 어거지야...... 완전히 우리들 중 누군가가 튕겨나가는 건가 싶었는데......”

카게로가 이동을 해주는 편이 일은 신속하게 끝나요.”

우리 구축대의 향도함이야......”

그럼 아라레도 같이 돌아가죠. 당신도 제18구축대였을텐데요.”

......”

 

당혹해하는 아라레. 그 때 의자를 걷어차며 나가츠키가 달려왔다.

 

무슨 소리야!? 카게로만이 아니라 아라레까지.”

카게로만이라면 좋은 거로군요.”

아냐! 지휘하는 사람을 뽑아버리면, 이쪽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우리들을 골려주려고 구레에서 전속한 것은 아니지 않나.”

물론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이유가 있다고 해도, 대가도 치루지 않고 가게에서 상품을 가져가면 그것은 도둑질이야.”

 

시라누이는 살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어쩌면 좋죠. 가게라면 돈을 치루면 끝나지만요.”

......그렇군...... , 바닥에 엎드려서 머리를 찧으면서 부탁을 한다면 생각할 것도......”

알았습니다.”

 

시라누이는 곧장 무릎을 꿇으려고 하였다. 오히려 나가츠키가 허둥거리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하지 말아줘.”

카게로가 와준다면, 뭐든지 할 텐데요.”

 

무릎을 꿇는 것은 중지하고 시라누이는 말했다.

 

시라누이도 요코스카까지 온 이상, 맨손으로 갈 순 없어요. 구레의 제독도 푸념을 했어요. 구축대의 리더격이 없어져서 귀찮은 일이 늘어났다고. 카게로가 있다면 구레의 작전 승률이 올라가요.”

 

거기서 사츠키가 참견하였다.

 

그렇지만 그건, 반대로 우리들이 져버린다는 것이 아니야? 그쪽은 좋아도 이쪽은 안 된다고.”

 

시라누이는 사츠키를 바라보았다.

 

카게로는 여러분을, 실력이 좋은 함선 소녀라고 소개했습니다. 없어진 정도로 지지는 않겠지요. 시라누이는, 카게로가 요 수 개월 동안 여러분의 실력을 끌어올렸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단언하였다.

사츠키치곤 보기 드물게, 반론도 못한 채 입안에서 말을 우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성장 따윈 요만큼도 안 했어요란 말은 하기 힘들다.

우시오가 이야기에 참가하려고 말을 하였다.

 

그렇지만 저기, 저희는 카게로씨랑 함께 좀 더 많이 싸우고 싶어요.”

 

눈을 똑바로 보고, 또렷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카게로씨 덕분에 저희들은 성장했어요. 좀 더 시간을 들이면, 좀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가츠키씨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건 아니지만, 훔쳐가지 말아주세요.”

훔치다니, 말이 거창하군요.”

시라누이씨도, 카게로씨가 요코스카로 전속이 결정났을 때에는, 똑같은 생각을 하시지 않으셨나요?”

 

역시 우시오다, 좋은 점을 지적한다고 나가츠키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는 시라누이도 반론하기 힘든 것 같았다, 잠시 동안 침묵하였다.

 

“......카게로 자신은 어떤가요?”

......”

 

카게로는 몸을 흠칫거렸다.

 

, ?”

. 시라누이의 바램은 카게로와 함께 싸우는 것이에요.”

나는......~”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혀로 몇 번 입술을 적셨다.

고개를 들었다.

 

“14구축대를 떠나는 건 힘들겠지.”

 

사츠키는 작은 목소리로 아자.” 라고 중얼거리며, 몸으로 환희마저 드러냈다.

카게로는 말을 이었다.

 

구레를 떠나는 것은 외로웠지만, 요코스카에서도 동료는 늘었고 할 일도 있어. 그야 이런 직업이니까 장래에 명령으로 다른 곳으로 갈지도 몰라.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이것은 숨김없는 카게로의 본심이었다. 시라누이와 만나서 기쁜 것은 사실이고, 14구축대랑 떨어지고 싶지 않는 것도 사실. 아직 요코스카 진수부에 전속을 한지 수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몇 년이나 함께 지낸 것 같은 감각마저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 구축대라면 좀 더 높은 곳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감각이 있다. 그것이 어디까지인가?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런가요......”

 

시라누이는 풀이 죽은 분위기는 보이지 않은 채, 곧장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시라누이가 구레의 제독한테 말하여 요코스카 진수부에 의견 상신을 할게요. 그러면 돌아와 주실래요?”

끈질기네.”

 

카게로는 기가 막혔다.

 

내가 그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함선 소녀인가.”

구레쪽이 음식은 맛있어요.”

요코스카도 나쁘지 않은데.”

그럼 제14구축대째로, 구레로 옮기면 돼요.”

그것이야 말로 명령이 없으면 안 돼. 시라누이가 작전 후에도, 계속 여기에 있으면 되잖아.”

그것도 명령이 필요해요.”

 

시라누이의 말에, 조금씩 열기가 담기기 시작했다. 냉철하게 보이는 그녀로선 보기 드문 일이었다.

 

시라누이 혼자서 하는 요망은 통하기 힘들어도, 카게로가 말해준다면 전속 가능성도 나와요.”

그러니까 무리래도.”

그렇다면 카게로 자신은 무언가 제가 해주길 바라는 일이 있나요?”

?”

 

당혹해하는 카게로. 시라누이는 진지해졌다.

 

시라누이가 뭘 하면, 카게로는 돌와주는 것인가요? 어떤 소망을 이루면.”

소망이라니......”

 

없다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때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소망이라면 있어.”

 

그 말은 아케보노였다. 지금까지 무언이었던 그녀가 말하고 있었다.

 

내가 너한테 소망이 있어.”

 

방금 전까지 아연해하는 분위기는 사라지고, 입을 한 일자로 꾹 다물고 있었다. 눈매는 매섭게 시라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랑 한 판 붙어.”

 

아케보노는 말했다.

 




네가 정말로 카게로의 파트너에 어울리는지, 내가 확인하겠어.”

 

동요를 하고 있는 것은 당사자인 카게로이며, 시라누이는 무표정. 말을 꺼낸 아케보노는 진지했다.

 

돌아와, 돌아와, 타령을 하는데 말이야, 너는 얼마나 카게로의 덕을 보고 싶다는 거야?”

카게로라면 잘 해나갈 수 있다고 말한 것뿐이에요. 좀 더 우숙함 구축대가 될 거에요.”

그렇다면 나랑 겨뤄. 지면 입 다물고 떠나줘야겠어. 실력에 자신이 있지? 한 판 불어줄래?”

당신이랑?”

거절해도 좋아. 퇴역할 때까지 겁쟁이라고 무시를 받아도 좋다면야.”

 

도전적인 눈매로 팔짱을 끼는 아케보노.

시라누이의 답변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좋아요.”

그럼 결정났네. 방금 전까지 자주훈련을 했으니까, 새로 허가를 받을 필욘 없어. 사츠키, 다른 훈련해역 잡아 놔줘.”

알았어.”

 

사츠키는 승낙하고, 한 발 먼저 밖으로 나갔다.

카게로는 한동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대화가 이해할 수 없어 아연해했지만, 머지않아, “시라누이와 아케보노가 한 판 붙는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입에 거품을 물었다.

 

!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들었잖아. 훈련이야.”

 

아케보노가 대답했다. 물론 카게로는 납득하지 않았다.

 

한 판 붙는다고 말했잖아!”

말했어.”

결투 같아서 멋있네요.”

시라누이, 너마저!”

 

무표정한 함선 소녀는 평소대로 냉정했다.

 

아케보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카게로의 등을 지키지 못 해선, 18구축대로 돌아오게 할 의미가 없으니까요.”

잘 알고 있잖아.”

 

그렇게 말하는 아케보노.

 

네가 우리들조차 이기지 못 한다면, 카게로를 뽑아 가기는커녕 여기에 있을 자격도 없다는 거야. 꼬랑지를 말고 돌아가 줄래?”

패자란 그런 것이에요. 좋지요.”

 

시라누이는 일어섰다. 비스듬히 아케보노를 내려보았다.

눈매가 급격히 변하였다. 지금까지 한, 인형 같은 무기질적인 안광은 사라지고, 공격충동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Destroyer란 이름에 걸 맞는, 아니 그 이상의 것으로 변하고 있었다.

 

, 큰소리를 친 이상, 각오는 되어 있겠죠? 시라누이에게 질 것 같으면, 퇴역은커녕 평생 고철덩어리라고 부르겠어요. 수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구축함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실금을 할 인생으로 만들어드리죠.”

“......바라는 바야.”

 

아케보노는 히쭉거렸다. 그 눈동자도, 과거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번뜩거리고 있었다.

 

이쪽도 한 번은 스크랩이 될 뻔 했던 몸이야. 실전에서 지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줄게.”

 

그런 말의 응수에 둘보다도 카게로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 저기, 고작 나의 소속 정도로, 그런 건 있을 수 없......”

 

시라누이가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려 제지했다.

 

이것은 구축함(여자)과 구축함(여자)의 싸움이에요. 참견은 필요 없어요.”

그런 거야.”

 

아케보노도 말을 들어줄 셈은 없었다.

카게로는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둘 다 한 발도 물러설 기척이 없었다. 본래 구축함 소녀는 그 화력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의 투지를 몸에 깃들고 있다. 그러니까 적이 대군으로 몰려있든 뛰어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인데, 아군에게도 그 투지가 향할 것이란 생각은 못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리 생각했지만 말릴 수 없다는 것은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포기를 하고,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다치진 말아줘.”
그건 어떨까요.”

그건 어떨까.”

 

시라누이도 아케보노도, 안전을 보장할 셈은 없었다.

 

훈련해역의 준비는 사츠키가 하였다. 장비사용허가는 아케보노 자신이 받아왔다. 우시오는 누가 오지 않는지 망을 보는 역할을 맡았다.

시라누이의 의장은 그녀 자신보다도 한 발 먼저 도착하였다. 구레 진수부의 군수부가 신경을 써서 보내준 것 같았다.

단판을 지을 장소는 늘 사용하던 부두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이었다. 언덕 너머에 있는 곳이라 진수부에선 전모를 볼 수 없다. 일부분을 제외하고 육지 부분이 깎아지른 듯이 솟아오른 절벽이 되어 있는 탓에 지역 주민도 어지간해서 오지 않았다.

오늘은 하늘은 맑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다. 그 탓에 파도도 거칠지 않아, 크루징을 하기엔 안성맞춤인 날씨이다. 다만 그것이 무장을 한 함선 소녀의 경우가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아케보노와 시라누이는 동시에 해면에 발을 디뎠다. 그 이외의 멤버는 절벽 위에서 구경 중이다.

둘 다 똑같은 구축함 소녀이지만 아케보노쪽이 조금 키가 작다. 다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위협을 하듯이 노려보았다.

 

패배를 인정하려면 지금 해. 비웃어줄게.”

그쪽이야 말로. 열세를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당신의 경우 대놓고 바보취급을 해드리죠.”

 

시라누이에게도 주눅 드는 기척은 없다. 물론 아케보노도 물러설 셈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장을 통통거리며 두들겼다.

 

어뢰는 없는 포격전 온리. 탄은 전부 쏴서, 손해가 큰 쪽이 패배. 알겠어?”

.”

“12.7cm 연장포탑은 탄약을 가득 채우진 않았으니까, 실전보다 탄수는 적어. .”

 

아케보노는 시라누이의 귀에만 들리도록 목소리를 낮추었다.

 

딱 한 발만 실탄을 섞었어.”

 

시라누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호오.”

어느 타이밍에 나올지는, 나도 알 수 없어. 기껏해야 모의탄이라고 우습게 보다 간 큰 코 다칠 거야. 어쩔래? 그만둘래?”

아뇨.”

 

대답하는 시라누이.

 

, 당신에게도 실탄이 명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로군요.”

물론이지.”

그것은 기대되는군요.”

 

시라누이는 장갑을 고쳐 매고는, 서둘러 연안으로 이동하였다. 아케보노는 살짝 울컥거리곤, 그 뒤를 따라갔다.

절벽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다시금 서로 마주보았다. 둘은 무선 스위치를 켰다.

사츠키의 선명한 음성이, 수신부에서 흘러나왔다.

 

준비는 됐~?

됐어.”

.”

 

아케보노와 시라누이는 동시에 대답했다. 눈은 상대방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준비......시작!

 

둘은 동시에, 주기의 회전수를 있는 대로 돌렸다.

구축함은 대형함보다 작고, 그 탓에 순발력이 뛰어나다. 순식간에 카탈로그 데이터 이상의 속력까지 올렸다.

파도가 요란하게 일었다. 둘의 얼굴에 바닷물의 물보라가 닿았다. 정면에서 충돌하지 않고, 병행하여 항행하였다.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떠보듯이 거리를 두었다.

 

우현 전환!”

좌현 전환.”

 

아케보노가 오른쪽으로, 시라누이가 왼쪽으로 현을 틀었다. 서로의 몸이 빠른 속도로 접근하였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게로가 숨을 들이키는 것이 느껴졌다. 아케보노도 시라누이도, 충돌 코스를 변경할 셈은 전혀 없었다. 상대방의 배짱을 시험하는 치킨 레이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왔다. 파도가 한층 더 커졌다. 둘 다 상대방을 노려본 채로 현을 반대방향으로 틀지 않았다. 먼저 굽히는 쪽이, 이 승부에서 열세에 처한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작 종이 한 장 차이 정도의 간격까지 접근. 반 초 후에는 요란하게 격돌.

완전히 같은 타이밍에서 현이 틀어졌다.

둘의 몸이 떨어진다. 거리를 잡은 순간 상대방을 향해 포신을 향했다.

 

동항전! 포문 개방!”

좌포전. 목표, 아야나미형 구축함.”

 

포격 개시 구령은, 쌍방향에서 나왔다.

포구가 빛나고, 상호간의 주변에 물기둥이 일어났다. 물기둥이 무산하기 전에, 연이은 포격. 그것이 반복되었다.

페인트가 들어간 모의탄이라서 물기둥에 색이 입혀졌다. 명중해도 발화는 하지 않지만, 역시 아프다. 무엇보다 바보취급을 받게 된다.

아케보노노 시라누이도, 자신의 주변에 일어난 물기둥과, 상대방 주변의 물기둥을 동시에 확인하였다.

아직 실탄을 쏘지 않았다는 것이, 서로가 내놓은 결론. 둘의 포구에서도 실탄은 나오지 않았다.

페인트탄도 맞질 않았다. 주간전이라고 해도 포격의 명중률은 10%를 밑돈다. 원거리에선 1% 이하도 드물지 않다. 더구나야 지금은 쾌속선인 구축함간의 전투이며, 회피운동을 하면서 하는 포격인 것이다.

아케보노도 시라누이도, 갈지자 운동을 펼쳤다. 동항전이라 거리 감각이 흐트러지면 명중률이 대폭적으로 저하한다. 그리고 둘 다, 개별함 운동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때때로 주기의 기어를 흑,적으로 바꿔나가, 스피드의 변화를 주어 상대방을 현혹시킨다. 명중 가능성이 푹푹 줄어들었다. 그것을 메우려고 연신 발포를 하지만, 항적과 혼동하여 생뚱맞은 해면에 떨어질 뿐이다.

둘은 동시에 생각했다.

 

(그렇다면 다가간다!)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접근하는 것. 그야말로 숨결이 닿을 정도의 거리라면, 절대로 명중한다. 그 만큼 공포감도 늘어나지만, 그걸로 겁을 먹어선 구축함이 아니다.

현을 틀어 급속 접근.

포신은 수평. 여유를 부리며 탄착 관측을 할 순 없다. 맞기만 하면 그만이다. 협차따윈 엿이나 먹으라지.

상대방의 표정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발사앗!”

포격 개시!”

 

둘의 호령이 교차하였다. 포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둔중한 소리. 몸에 충격. 아케보노의 몸에 푸른색, 시라누이의 몸에는 적색 염료가 묻었다.

치명상은 아니다. 애초에 많은 명중탄을 준 쪽이 이기는 것이다. 통증은 있고 몸도 흔들리지만, 맹렬하게 사격을 계속하였다.

물기둥이 적어진다. 그 대신 페인트탄의 도료가 안개가 되어 공중을 떠돌았다.

 

양현 전진 반속!”

 

같은 구령. 더욱 명중률을 높이려고, 속도를 낮춘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빗 맞추는 편이 힘들다. 마치 범선 시대의 포격전이다. 더욱 많은 탄을 쏴주려고, 혈안이 되어 포격을 계속하였다.

착탄의 충격이 둘을 감쌌다. 장갑판으로 변한 제복이 쇼크를 줄여주지만 채 막지 못한 것은 멍이 되어 몸에 흔적을 남겼다. 그래도 공격을 그만두지 않았다.

 

(제법인 걸.)

(제법 하는군요.)

 

상대방의 평가가 뇌리에 떠올랐다. 심성이 삐뚤어진 천재와, 무뚝뚝한 전문가. 투쟁심은 불타오르고, 적을 땅바닥을 기게 만들어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이런 부류의 싸움은 겁을 먹은 쪽이 진다. 들개든 함선 소녀이든 그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결코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여기서 지면 구축함(여자)이 아니다.

시라누이의 포신이 번뜩였다. 안 좋은 예감이 아케보노를 포착하였다.

 

후진 최대한! 좌현 전환!”

 

아케보노는 몸을 왼쪽으로 틀었다. 본래 있어야 할 곳에 한층 더 큰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절벽 위에선 카게로가 뭐야 저거, 실탄이잖아!” 라고 소릴 치고 있지만, 물론 여기까지 들리진 않았다.

오히려 찬스라고 받아들였다.

 

(이제 실탄은 없어!)

 

주기의 회전수를 올려 현을 되돌린 뒤, 단번에 접근하였다. 실탄이 발사된 것 정돈 시라누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한 발 밖에 없던 그것이 없어진 것도.

이쪽의 탄에 겁을 먹으라지.

대담무쌍한 미소를 지으며 시라누이를 바라보았다. 상대방은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리어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는 어딘가 여유가 느껴졌다. 이쪽이 뭘 할지 알고 있는 듯 했다.

 

맞아라!”

 

떨쳐내듯이 아케보노는 발포. 지근거리에서 쏘아진 포격이 시라누이에게 직격한다. 피어오르는 불꽃.

이 폭염은 틀림없이 실탄이 낸 것이다.

아니, 명중되지 않았다. 불꽃과 함께 피어오르는 것은 물기둥. 즉 직격탄이 아니다.

그렇다면 시라누이는 어디에 있는 거지? 그녀의 모습은 어디지.

 

여깁니다.”

 

정면에서 들려오는 그 냉철한 목소리. 아케보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걸로 실탄은 없지요!”

 

시라누이는 몸을 아케보노를 향해 부딪혔다. 아담한 몸이 휘청거렸다. 포구가 안면에 겨누어졌다.

 

“......당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아케보노는 발에 힘을 주어 버틴 뒤, 마찬가지로 포구를 시라누이의 얼굴에 겨누었다.

둘 다 주저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두들겨 패주는 생각 이외엔 머리에 없었다.

 

발사앗!”

 

동시에 외쳤다. 딸깍거리는 작은 소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의 포신에선 아무것도 발사되지 않았다.

 

(탄약이......!)

 

둘은 입 속에서 신음을 뱉었다. 연신 포격을 한 결과, 기어코 전부 쏘고 만 것이었다.

서로 몸을 뒤엉킨 채로, 해상에서 멈추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절벽 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카게로 일행도, 숨을 들이켰다.

 

수단이 없어졌네요.”

 

시라누이가 말했다.

 

어쩌죠?”

비기는 건......멋이 없지.”

 

아케보노는 씨익, 웃었다.

 

단판을 짓자. 괜찮지.”

물론. 시라누이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둘은 아주 살짝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있는 힘껏 주먹다짐을 시작하였다.

 

구축함 둘이 발을 멈추고 서로를 패는 모습은, 절벽 위에서도 잘 보였다. 그저 발포를 하지 않는 것뿐이지, 사양도 뭐고 없이, 그저 주먹을 부딪혔다.

카게로노는 현기증이 일어났다.

 

왜 구축함은, 이렇게 다혈질적인 애가 많은 거지......”

우리들도 했었지~”

 

사츠키가 떠올리듯이 말했다.

 

그건 난투이지만, 이번에는 1:1이야.”

둘 다 형편없어!”

시라누이는, 훨씬 더 냉정하게 보였는데.”

 

카게로는 고개를 저었다.

 

저 애는 화나게 하면 안 되는 타입이야. 구레에 있을 때에도, 싸움을 하던 애가 울고 애걸복걸을 해도 바다에 들이 박았다고.”

 

나가츠키가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건 누가 이긴 거지?”

비긴 거 아냐?”

결판이 날 때까지, 멈출 것 같지 않은데.”

포격전만으로 끝내면 될 텐데......”

 

그러고 난 뒤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그것보다 실탄! 누구야 저런 걸 가지고 온 건!”

아케보노겠지. 자기가 탄약을 빌리러 갔었어.”

맞으면 어쩌자는 거야!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그 때, 우시오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저기~, 누가 와요.”

 

으음, 카게로는 말하며 허둥지둥 살펴보았다. 확실히 이쪽으로 오는 사람이 있었다. 한 명 뿐이지만, 이런 곳에 오는 걸 보면 진수부 관계자인게 틀림없어.

눈을 좁혔다. 알고 있는 얼굴이다.

 

이런, 타카오씨다! 훈련 중지, 중지야! 저 둘을 끌고 와!”

 

카게로는 외치면서 직접 절벽을 내려와, 상대방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아케보노와 시라누이의 곁으로 달려갔다.

말없이 싸우고 있는 둘을 뜯어 말렸다.

 

돌아가자! !”

카게로, 조금만 더하면 끝나니 잠자코 있어주세요.”

그래 맞아, 조금만 더 하면 이 망할 여자를 바닥에 눕힐 수 있다고.”

 

카게로는 서로 주먹질을 하고 있는 둘의 옷을 확인하였다. 둘 다 염료로 질척했다.

 

으음, 대충 똑같은 수. 비겼네. , .”

아직 멀었어요.”

멀었어.”

끝났다고 말했잖아!”

 

다가온 나가츠키랑 협력하여, 등 뒤로 몸을 붙잡아 육지로 끌어올렸다.

어떻게 정렬시켰다.

카게로 일행은 어쨌든, 아케보노와 시라누이는 멍투성이에 염료가 질척하게 묻어있지만, 최저한의 모양새는 세우게 하였다.

마침 타카오가 찾아온 참이었기에, 카게로는 긴장된 자세로 경례를 하였다.

 

14구축대, 자주훈련 종료하였습니다. 현 시각부로 기지 복귀합니다.”

 

타카오도 답례를 하였다.

 

수고했어.”

저기, 어째서 일부러 여기까지.”

휴일인데 열심히 훈련을 하는 구축대를 봐달라고 아타고가 말했어. 실탄 사격도 아닌 한 필요 없지만, 어째서일까?”

 

타카오는 정말로 이유를 모르는 것 같지만, 카게로는 머릿속이 의심으로 가득 찼다.

 

으음, 아타고씨는 그 외에 다른 말씀은 없으셨나요?”

특별한 말은 없는데......너희들, 설마 내 위가 쓰려질 만한 짓을 한 거니?”

 

양손을 허리에 대고, 타카오가 마라보았다.

카게로는 등줄기에 다소의 땀을 흘리며, 시치미를 때기로 했다.

 

아뇨, 그럴 리가요.”

“......둘이 얼굴에 멍을 만들고 있는데, 이건 왜?”

무슨 말씀인지 전혀 모르겠네요.”

 

타카오는 한 명, 한 명 얼굴을 보지만, 물론 아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훈련을 열심히 하는 건 좋은 일이죠.”

 

그녀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훈련이 끝났다면 다행이다. 30분 후에 강당에 집합하라고 제독이 명령을 내렸어.”

지금부터인가요. 일단 휴일인데요.”

너희들뿐만 아니라, 휴가 중인 애들도 부대 복귀 명령을 받았어.”

뭔가, 전원 모아서 성희롱을 받을 것 같네요.”

 

카게로는 농담을 말할 셈이었지만 타카오는 대답하지 않은 채, 잠시 생각하고 나서 질문을 하였다.

 

그러고보면......요즘 제독이랑 만난 적이 있니?”

저는 없지만, 시라누이가 착임 인사를 하러.”

무슨 짓을 당했니?”

 

타카오의 질문에 시라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과연......”

 

타카오는 살며시 탄식을 한 뒤,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각오를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네.”

 

잘 이해가 안 되는 반응에, 카게로는 그만 묻고 말았다.

 

무슨 소리인가요?”

그 분이 함선 소녀에게 찝쩍거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여유가 없다는 거야. 돌아가자.”

......?”

 

그녀는 척척 걸어갔다. 전원 서둘러서 따라가려고 했다. 그러자 타카오는 돌아서서.

 

기다려. 너희들은 달려.”

에에, 왜요!?”

 

모두가 입 밖에 내놓은 말에, 그녀는 대답했다.

 

아타고가, 너희들이 시치미를 땐다면, 벌칙으로 달리기를 시키라고 말했어. 진수부 외주를 한 바퀴 뛰고 난 뒤 강당으로 들어오렴.”

에엣!”

불만을 말하면 두 바퀴로 늘린다. , 달려!”

 

전원, 우는 소리를 내면서 달려갔다.

아타고씨에겐 들켰었구나. 카게로는 그런 것을 생각하면 달렸다.

 

 

 

 

 

 

함선 소녀들은 모두 강당에 집합하였다.

14구축대와 시라누이는 진수부를 한 바퀴 뛰고 난 뒤 들어왔기 때문에 모두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그 탓에 다른 함선 소녀들은 이 녀석들 어째서 땀범벅이지?” 그런 수상쩍은 시선을 받게 되는 처지가 되었다.

진수부 안에 있던 함선 소녀뿐만이 아니다. 휴가를 받아 밖으로 나갔던 소녀도 호출을 받았으며, 말 그대로 전원이 이곳에 있었다.

요코스카 진수부의 강당은 오래되고 유서깊은 시설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제독 이하의 전원이 이곳에 모여 출격하는 함선 소녀 한 명, 한 명을 전송했다는 일화도 있다. 당시의, 아직 함선 소녀의 수가 적었던 무렵의 이야기이며, 지금에 와서 그렇게까지 할 순 없었다.

내부에는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져 있으며, 함선 소녀들은 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머지않아, 제독을 비롯한 높으신 분들이 도착하였다. 차렷과 쉬어 구령이 ᄄᅠᆯ어지고, 정면에 초로의 남성이 일어섰다.

 

어라......?”

 

카게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 적이 없는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뒤에 앉아있던 우시오도 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제독이 아니네요......”

제독보다 더 높은 신분의 사람이 아닐까?”

 

그렇게 대답했지만,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남성은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작금, 심해서함은 점점 더 세력을 늘리고 있으며, 인류의 고향인 바다는 녀석들의 수중에 떨어지고 있는 와중, 해상교통로의 복구야 말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항이며......”

 

카게로는 설명인지 연설인지 모르는 이야기를 멍하니 듣고 있었다.

인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있다.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최근 들어서, 있을 리가 없는 곳에 심해서함은 나타나고, 공격받을 리가 없는 곳에서 공격을 받았다. 카게로 일행의 특별연습도 적의 출현으로 인하여 중단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좀 더 분발하라는 것 같지만, 느릿느릿한 말투로 말하는 탓에 집중력이 깎여나가고 있었다.

시선을 좌우로 움직였다. 가장 좌측열은 항모, 그 옆이 전함, 그 옆이 중순양함, 경순양함이며, 자신들 구축함은 가장 구석. 과연 선배들은 지루해하는 눈치를 보여주지 않았다.

항모는 함선 소녀들의 주력이며, 탑재한 기체로 누구보다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신이나 마찬가지이다. 대화를 나눌 때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저자세가 되고 만다. 항모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긴장하지마라고 말해주지만, 이쪽은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전함도 마찬가지로 진수부의 에이스. 어떤 의미론 항모보다 중요하다. 구축함에게 있어선 천상인 같은 존재이지만 동경의 대상이며,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소녀들도 많다.

중순양함은 훨씬 대하기 쉽다. 구축함과 접하는 일은 많지만, 직접 그녀들의 지도를 받는 일이 적으니 안심할 수 있다. 이게 경순양함이 되면 수뢰전대의 보스이기 때문에 귀신보다 무서운 사람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그 밖에도 수상기모함 따위가 있지만 카게로는 이야길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높으신 분은 우리들은 각 진수부에서 함선 소녀를 집결시켜.” 라는 말을 연설하고 있다. 확실히 함선 소녀 중에는 낯선 얼굴이 있다. 특히 전함이나 항모 언니 쪽에 그런 사람이 많았다.

화력이 있는 사람을 모으고 있다고 그녀는 느꼈다. 중순양함의 모습마저 보였다.

 

“......그리하여 지금, 요코스카 진수부가 중심이 되어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남성의 열변은 드디어 끝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 자리를 대신하여 제독이 나타났다.

 

우선 제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다수의 출격 하에 이루어진 오키노시마 해역에서 벌어진 해전은, 우리들의 승리로 끝났다. 고맙다.”

 

제독의 어조는 담담했지만 진지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심해서함의 활동은 최근 들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보급로의 공격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목소리의 강약이 적절하게 들어간 화법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던 함선 소녀도 또렷한 표정으로 듣기 시작했다. 카게로도 등줄기를 곧게 폈다.

 

각 진수부는 연락을 나누고, 정보를 분석한 결과, 심해서함이 활동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추론을 얻었다. 유감스럽지만 걱정은 사실이었고, 남방 해역에 거대한 군체가 발견되었다.”

 

제독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대기하고 있던 아타고가 손가에 있는 스위치를 몇 개 눌렀다.

강당 내의 조명이 꺼지고, 하얀 스크린이 내려왔다. 그곳에 영상이 투영되었다.

 

이것은 사세보 진수부의 함선 소녀가 정찰을 하여, 가까스로 촬영에 성공한 것이다.”

 

스크린 안에는 높은 파도가 일렁이고 있으며, 영상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머지않아 파도 저편에 검어 보이는 물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심해서함이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강당 안이 술렁거렸다. 수가 많았다. 남방 해역은 비교적 평화로운 곳으로 보아, 자원 운송 항로로 사용되고 있다. 그곳에 대량의 적이 출현한다는 것은 숨통을 물어뜯기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였다.

심해서함의 무리는 점점 커져갔으며, 화면 바로 앞까지 닥쳐왔다. 구축함 이급이나 로급의 모습은 거의 보이질 않았고, 경순양함 호급, 중순양함 리급 투성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본 것보다 흉폭함이 몇 배는 늘어난 것 같은 인상이다. 게다가 인간형의, 명백히 전함급으로 보이는 것까지 존재하고 있다.

그 뒤에는 하얗게 보이는 물체가 힐끔힐끔 영상에 들어왔다. 함선 소녀들의 입에서 뭐야 저거?” 라는 목소리가 올라왔다.

갑자기 화면이 크게 흔들리며 함선 소녀의 발밑을 비추었다. 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강당은 아직 어두운 채였다. 마이크 너머로 제독의 목소리만이 강당 안에 울려 퍼졌다.

 

영상은 이상이다. 근린에 위치한 섬에서 함선 소녀가 표착한 것을 발견하고, 영상 장치 째로 회수되었다.”

 

촬영자인 함선 소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제독은 말하지 않았고 질문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번에는 지도가 비추어졌다. 위쪽에는 본토가 있으며, 다른 지역이 제각각 간소하게 그려져 있다. 면적을 보면, 바다의 영역이 압도적으로 많다.

화상이 전환된다. 남방 일부가 붉게 칠해져 있었다.

 

이곳이 새로운 심해서함이 발생한 해역이다. 진수부는 남방해역의 이 장소를, E해역이라고 명명하였다.”

 

또 다시 함선 소녀들은 술렁거림에 휩싸였다.

심해서함이 발생하는 해역은 숫자로 구분된다. 예를 들면 남서제도해역은 ‘2’이며, 오키노시마 주변 해역은 그 중 ‘4’으로 구분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키노시마 해역의 심해서함 공격을 명령받은 함선 소녀들은 “2-4로 간다.” 라고 말한다. 이것은 속칭이기 때문에 공식 서류에는 기재되지 않으며, 항모나 전함 등은 입에 담는 일이 적다. 대강 중순 이하가 쓰는, 장난삼아 쓰는 말이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적이 갑자기 출격한 해역을 상층부가 직접 ‘E(Enemy 해역)’ 이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임시적인 면이 강하고, 그리고 긴급한 경우에 한한다.

이번의 남방해역에 갑자기 출현한 심해서함 생식지에는 ‘E’가 붙여졌다. , 중요시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곳을 격파시키지 않으면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우리들은 큰 타격을 받는다. 그리하여 요코스카 진수부는 타 진수부에서 증원을 받고, 이곳에 공세 작전을 거행하는 것이다. 제군들의 건투를 기대하겠다. 작전 발동 일시는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이다.”

 

스크린이 수납되고, 강당에 조명이 켜졌다.

함선 소녀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수군거리며 이야기를 하거나, 어떤 자는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어느 얼굴에도 고양감과 긴장감이 뒤섞여 있었다. 지금까지 요코스카 진수부는 신중하게 침략된 해역의 회복에 주력하였지만 드디어 공세에 나선 것이다.

상당한 기대를 받고 있으며, 더불어 곤란한 작전이 될 것이다. 제독보다 상위자가 연설을 한 점을 봐도 명백하다.

그래도 눈에 뜨이는 절망감은 없다. 모두, 이 날을 위해 절차탁마를 한 것이다.

 

아타고가 제독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전체통달은 이것으로 종료합니다. 작전에서 편성하는 함선 소녀를 발표하오니, 항모, 전함 분들은 앞으로 집합해주세~.”

 

항모 소녀와 전함 소녀가, 긴장어린 얼굴로 아타고의 곁으로 향했다.

대조적으로 구축함 소녀는 시시하다는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필살의 어뢰를 손에 들고, 대형함을 격침시키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삼고 있는 그녀들이었지만 이런 부류의 작전에선 뒤로 밀리는 것이다. 자원 확보나, 함단 호위 임무 따위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모처럼 어뢰를 실었는데.” 그런 불만을 터뜨리는 소녀도 있었다.

 

뭔가, 대대적인 작전을 하네.”

 

카게로는 시라누이에게 말을 걸었다. 무표정한 전 파트너는 전쟁이란 그런 것이에요.” 라고 대답했다.

 

상층부와 사령관이 짠 작전이겠죠. 구축함은 싸울 뿐이고, 그러기 위해 봉급을 받고 있어요.”

, 힘내자. 지루한 임무라도 잘 하면 분명 이길 수 있을 거야.”

카게로의 긍정적인 점이, 정말로 부러워요.”

나는 너의 냉정한 점이 좋아.”

 

카게로는 웃었다.

그 때, 아타고가 카게로형 구축함 시라누이씨, 앞으로 나와주세요.” 그렇게 시라누이를 불렀다.

시라누이는 종종 걸음으로 앞으로 나갔다.

그 자리를 메우는 모양새로 제14구축대 멤버들이 모였다. 모두 불만스러워보였다.

 

~. 우리들도 작전에 불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츠키가 머리 뒤로 손깍지를 끼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저번의 전투에서도 전함을 퇴치했는데.”

그렇지만 명령위반을 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우시오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어조였다. 아케보노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위험한 줄타기를 엄청나게 저지른 것이였다.

 

좀 더 고려를 해줘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분명 찬스는 올 것이에요.”

 

나가츠키가 카게로에게 물었다.

 

우리들은 어떤 임무가 내려온 것이지?”

아직 아무런 말도 못 들었어.”

 

카게로는 대답했다.

 

지금은 공세 작전 쪽으로 제독도 아타고씨도 엄청 바쁜 것 같아. 그쪽이 끝나면, 불릴 거야.”

우리들의 원정처는 북쪽인가 남쪽인가, 어느 쪽일까?”

춥거나 덥거나, 극단적이네.”

 

그 때 아라레가 중얼거렸다.

 

추운 곳보다 더운 곳이 좋아......”

나는 둘 다 거기서 거긴가. 느긋하게 지낼 수 있는 날씨가 좋아.”

 

그 때 시라누이가 돌아왔다.

 

카게로.”

어서와. 시라누이는 더운 곳이랑 추운 곳, 어느 쪽이 좋아?”

더운 쪽이 될 것 같네요.”

 

시라누이는 평소의 말투를 유지한 채 말했다.

 

작전 참가를 명령받았어요. 남방해역으로 강습 정찰을 해요.”

 

한 순간, 카게로는 말을 잃었다. 그 후 말을 하였다.

 

, 그렇니. 잠자리 낚시라도 하는 거야?”

 

잠자리 낚시란, 항모의 비행갑판에서 떨어진 항공기를 회수하는 작업을 말한다. 수수한 임무라서 구축함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시라누이는 고개를 저었다.

 

중순양함, 경순양함의 수반함이에요. 본대보다 앞서 출격해요.”

왜 구축함이?”

강습정찰과 경계에 뛰어난 함이 좋은 것 같아요. 구레에서 한 적이 있어요.”

시라누이가 아니더라도......”

 

그 말에 시라누이는 수상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만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니, 없어...... 힘내.”

 

격려를 하면서도 무슨 영문인지 카게로의 마음은 불안에 휩싸였다.

어째서 일까? 시라누이는 신뢰하고 있으며, 우수한 함선 소녀라고 생각하고 있다. 뭐니해도 그 진츠가 보장한 것이다.

다만, 마음의 한 구석에서 캥키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오래 알고 지내서 그런 것일까? 묘한 기분이 떠오르고 말았다.

그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숨을 들이켰다. 으응, 이런 걸 생각하면 안 돼. 괜히 말을 해서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좋지 않았다.

 

부럽다, 선봉을 서다니.”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려고 하였다.

 

나도 심해서함이랑 싸우고 싶어.”

카게로의 구축대가 맡은 임무도 훌륭한 임무에요. 후방 지원이 없으면 진수부는 돌아가지 않으니까요.”

우리들은 후방 지원 결정난거야?”

아닌가요?”

.”

 

불만을 말한다. 시라누이는 카게로에게 경례를 하였다.

 

그럼 시라누이는, 준비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케보노.”

?”

 

아케보노가 건성으로 답변을 돌려주었다.

 

방금 전의 승부는 비긴 걸로 괜찮나요?”

무승부야. 실제론 내가 이겼으니까, 카게로를 데리고 가지마!”

그건 인정할 수 없네요. 작전이 끝나면 다시 한 번 겨루죠.”

. 죽지나 마.”

 

시라누이는 다시 한 번 경례를 하곤, 자리를 떠났다.

 

“......부럽다.”

 

그렇게 말하는 사츠키.

 

작전 참가인가. 구레에서 일부러 부를 만한 이유가 있구나.”

14구축대 어필은 다음 기회네요.”

 

우시오가 말했다.

카게로는 부러움 반, 불안 반이었다. 한번 의식하고 만 점은 좀처럼 불식되지 않았다. 그래도 애써 쫓아내려고 몇 번이나 머리를 흔들었다.

 

 

 

 

그 날 저녁 식사는 평소랑 다른 분위기였다.

작전 참가를 명령받은 구축함은 시라누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큰 목소리로 이야길 나누면서 급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공세 작전 참가에 대한 긴장을 한 탓인지 평소보다 더 밥을 먹거나, 혹은 먹지 않는 등, 반응은 다양했다.

대조적으로 대기조에 해당하는 구축함은 평소보다 축 처진 분위기였다. 작전에 참가하는 함선 소녀를 질투하는 것도 질렸는지, 식사를 마치면 곧장 방으로 돌아갔다.

14구축대는 물론 전자는 아니다. 후자 중에서도 사장 빨리 먹고, 말없이 돌아갔다.

카게로는 시라누이를 기다리고 싶었지만 준비를 하는 것인지 작전내용을 설명 받고 있는 것인지, 1차사관차실에는 없었다.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던 탓에 구축대 중에서도 식사를 마친 것은 마지막이 되었다.

비좁은 방으로 돌아왔다. 사츠키는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어서와.”

다녀왔어......별난 일이네. 네가 커튼을 열고 있다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카게로가 이야길 하자고 날 끌어내니까, 버릇이 들어버린 거라고.”

 

그랬었나, 카게로는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사즈키와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한 탓에, 억지로 화제를 만들고 이야길 했었다. 그 탓에, 그녀도 잘 때까지 커튼을 닫지 못 하게 되었다.

자신의 2단 침대 위에 몸을 파묻으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역시 아직 자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일도 없다. 예전이라면 방에서 편지를 쓸 상황이지만, 편지를 보낼 사람이 이곳에 있다.

한동안 벽에 등을 기대고 멍하니 있은 뒤, 일어섰다.

사츠키에게 말을 걸었다.

 

산책하고 올게.”

? 이런 시간에?”

언제 하든 좋잖아.”

시라누이가 안 보여서 외로워?”

노 코멘트.”

 

사츠키는 몸을 반쯤 일으켰다.

 

지루하면 같이 웨이트 할래? 일단 팔굽혀펴기.”

안 해.”

그럼 오늘밤엔 같이 잘까.”

징그러.”

 

카게로는 소등 시간까지 올게.” 그 말을 남기고 방에서 나갔다.

해가 떨어지고, 완전히 어두워졌다. 귀를 기울이면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에는 체력 단련에 공을 들이는 함선 소녀나 공창에서 나는 소리로 시끄럽지만, 시간대에 따라선 고독함을 느낄 만큼 조용해진다.

기숙사에 위치한 부지를 멍하니 걸었다.

지금은 자유시간이니 주의를 받지 않지만, 소등 후가 되면 곧장 엄격해진다. 기숙사 밖으로 한 걸음이라도 나간 것만으로 곧장 벌칙이다. 그래도 은파리 짓에 목숨을 거는 함선 소녀는 야간 행동을 밥 먹듯이 하였으며, 경계병과 치열한 배틀을 펼치게 된다. 참고로 은파리란 식료나 그 외의 물품을 삥땅치는 것을 가리킨다.

카게로는 고개를 들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순양함 기숙사와 전함 기숙사, 그 저편에는 항모 기숙사가 있다. 지금은 어디든 불빛이 켜져 있지만, 작전 종료 후에는 이 수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것은 함선 소녀에게 있어선 어떤 의미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무슨 재수 없는 생각을......)

 

생각을 중단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이 치우쳐졌다. 아직 작전은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다.

터덜터덜 걸었다.

 

어라......?”

 

아담한 건물의 1층에 불빛이 켜져 있었다. 매점이 들어선 곳의 옆이다.

다가가면 호쇼라고 쓰여진 1)노렌이 걸려져 있었다.

여기구나, 카게로는 생각했다. 주간에는 단순한 경식 코너이지만, 밤이 되면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는 주점. 경항모 호쇼가 오너를 맡고 있는 가게.

, 함선소녀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용하는 일종의 클럽이지만, 소위 말하는 장교 클럽과는 달리 누구든 들어올 수 있었다. 개점 시간은 호쇼의 스케쥴에 따라 다양하지만, 폐점은 소등시간에 맞추고 있다.

카게로는 들어간 적이 없었다. 애초에 구축함 소녀는 어지간해선 다가가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어도 전함같은 어른스런 사람이 쓰는 가게란 인식이 있다.

다만, 이 날은 왠지 모르게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노렌을 스쳐지나가 미닫이문을 열었다.

 

[1] 노렌 : 가게의 입구나, 점두에 치는 천막, 가게 이름이 적혀져 있다.]

 

어서오렴.”

 





 

차분한 느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본 전통의상의 소매를 끈으로 걷어 올리고, 머리를 묶은 여성이었다. 다소곳한 몸가짐과 고요한 수면같은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 사람이 항모라는 것이 좀 믿겨지지 않았다.

호쇼는 카게로에게 미소를 보여주었다.

 

구축함이구나. 보기 드문 손님이네.”

......, 죄송합니다. 폐라면 돌아갈게요.”

 

허둥지둥 우향우를 하려고 하였지만, 호쇼는 웃었다.

 

괜찮아. 구축함 애들은 좀처럼 와주질 않는 걸. 와줘서 기뻐.”

 

사양하지마, 그녀는 말했다.

가게 안에는 그다지 손님이 없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앞으로 늘어나는 것 같다.

 

내일은 출격하는 애가 많잖니. 그러니까, 발 딛을 곳도 없어져.”

 

호쇼가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어디에 앉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카운터에서 그녀에게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어머나, 카게로 아니니.”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은 타카오였다. 안주인 조림 반찬을 담은 소접이 놓여 있다. 그리고 맥주병과 컵.

 

앉지 그러니.”

 

그렇게 말을 하기에, 옆에 앉았다.

앉은 것은 좋지만, 뭘 주문할까. 설마 케이크나 파르페가 나올 리도 없고.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지만, 단 것을 주문한 함선 소녀는 아무도 없었다.

 

마실래?”

 

타카오가 맥주가 담겨진 컵을 집었다.

 

아뇨, 저는 안 마셔요.”

언젠가 마시게 될 거야.”

알콜이 없는 게 좋아요.”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호쇼가, 메뉴를 보여주었다.

 

이걸 보렴. 사이다에 라무네, 2)히라노수(탄산수)도 있어.”

사이다를 주세요.”

. 그렇지만 눈칠 보면서 주문을 하네. 사츠키였었나? 전에 맥주를 사러 온 적이 있었어.”

그 애는 정말...... 마셨나요?”

으응. 소중히 들고 갔었어.”

 

[2] 히라노수(平野水) : 효고현 카와니시의 히라노 광천에서 나온 탄산수의 상품명.]

 

어디다가 숨기고 있는 걸까? 점검을 받다가 걸려서 전원 벌칙을 받기 전에 압수를 해야지.

옆에 앉은 타카오는 호쇼에게 오뎅을 주문했다.

 

이 아이에게 주세요.”

 

카게로는 당황했다.

 

, 그렇게는.”

그냥 받으렴. 호쇼씨의 오뎅은 끝내줘. 사이다랑 어울리는 지는 모르지만.”

 

주문을 받은 호쇼씨는 키득거리고 있었다.

눈앞에 사이다와 오뎅이 놓였다.

카게로는 젓가락으로 무를 짚었다. 힘을 주지 않아도 사르륵 잘렸다. 입안에 넣자 야채의 단맛과 간장의 짭짤함이 섞여있어서 여운을 느끼게 하는 맛을 이루고 있었다.

 

맛있다......”

젊은 애가 알아줘서 기뻐.”

 

호쇼는 표면을 바싹하게 구은 고등어를 내었다.

 

이것도 먹어. 서비스야.”

감사합니다......호쇼씨는 이번 작전, 출격하시나요?”

나설 차례는 없어.”

그럴 리가......항모이시죠? 분명 언젠가.”

머지않아 퇴역하는 항모야. 나보다 성능이 좋은 애들은 많이 있단다. 게다가 내가 출격하게 되는 일이 되면, 그건 전국이 힘겹다는 거야. 그러니까 여기서 애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편이 좋아.”

 

그녀는 조림 음식을 졸이고 있는 불을 줄였다.

 

그리고, , 그렇네, 바다가 평화로워져서, 이 가게를 열지 않게 될 날이 오면 좋겠지.”

 

어딘가 달관한 말이었다.

호쇼는 요코스카 진수부에서도 최고참에 해당하는 항모이다. 함선 소녀들은 그녀를 어머니처럼 따르고 있다. 과거엔 구레에도 있었던 것 같지만, 카게로는 만난 적이 없었다.

 

너는 구레에서 전속을 왔지 방금 전까지 전속 온 구축함 애가 있었어.”

시라누이인가요.”

 

그 말엔 타카오가 대답했다.

 

. 나랑 같이 출격하니까, 미리 기념회를 열었지.”

타카오씨랑, ?”

나랑 묘코, 마야, 이스즈, 그리고 시라누이야.”

다섯 명인가요.”

정찰이니까 어디나 이런 편성이야. 사실은 구출함을 좀 더 많이 끼우고 싶었던 것 같아. 제독은 구레에서 유키카제나 쿠로시오도 불러들일 셈이었던 것 같았어.”

 

놀랍게도 그 오사카 사투리로만 말하는 명랑한 함선 소녀도 후보 대상에 올라와 있었던 것인가.

 

설마, 타카오씨가 기함이신가요?”

.”

 

그녀는 말했다. 함대의 기함은 통신능력이 뛰어난 함이 맡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제독의 신뢰를 받아야만 한다. 이 여성은 그 조건을 전부 해결한 것이다.

 

굉장하네요.”

어떻게 된 일일까, 아케보노의 뒷바라지에서 해방되니 운수가 풀리는 걸까? 정신을 차려보면 선봉을 맡게 됐어.”

“......대신 제가 보고 있어요.”

미안해. 그렇지만 역시 구레 진수부의 에이스, 구축대를 확 틀어잡았네.”

 

“............”

 

문득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지만 자중했다.

타카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말하고 싶은 건 알아. 아케보노 관리에 고생한 함선 소녀가 시라누이를 지휘할 수 있을까 생각한 거지?”

죄송해요.”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해. 역시 구축함을 지휘하는데 불안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야. 많은 일을 맡게 되고, 한계에 부닥친 적도 있어. 아타고에게 비서함을 양도한 것도 그게 이유 중 하나야.”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마음 고생이 심할 것이라고 카게로는 느꼈다. 고작 일개 구축대를 지휘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돌아갈 만큼 바쁜 것이었다.

더구나 비서함이나, 공세작전의 선봉으로 기함이 되면 얼마나 고생이 심할까?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아.”

 

그녀는 맥주를 추가 주문했다.

간이 잘 베인 한펜을 먹으면서 카게로는 물었다.

 

강습 정찰이라는 건,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말 그대로야. E해역에 돌격해서, 심해서함을 떠보는 거야. 전투가 벌어질 경우 가능한 한 격파. 그것뿐이야.”

그거......다섯 명이서 하는 건가요.”

.”

위험하지 않나요?”

 

어림짐작으로 심해서함이 출현한 해역에 돌진하는 것이다. 어떤 전력이 어디에 떠돌고 있는지를 찾는 임무. 그만큼 위험도는 높고, ‘고속함으로 분류된 함선 소녀만이 그 임무를 맡았다.

뭐니 해도 적 세력이 불명확한 하기 때문에 재수 없게 거대 전력과 충돌할 일도 있을 수 있다. 그 경우 귀환률은 현저히 저하한다.

 

사세보 진수부가 했었던 임무였는데, 이 이상 그곳의 전력을 소모시킬 순 없는 것 같아.”

그렇지만, 그건.”

 

카게로는 말문을 망설였다. 강당에서 본 영상이 머리에 떠올랐다. 사세보 진수부 소속의 함선 소녀가 가까스로 촬영한 광경. 그 함선 소녀는 어떤 꼴을 당했는지 입 밖에 꺼내는 것이 망설여졌다.

타카오는 맥주를 마시면서 말했다.

 

괜찮아. 귀환할 실력이 있기에 우리들이 뽑힌 거야.”

그렇지만요.”

그렇게 불안해?”

실은......시라누이는 다혈질적인 성격이에요.”

 

카게로는 말했다.

 

보기에는 태연하게 있는 주제에 가만히 놔두면 한없이 공격을 해요. 정찰인데 공격에 정신이 빠질지도 몰라요.”

어머나, 심해서함에게 동정을 해야겠네.”

목줄을 놓지 않으면, 그 만큼 믿음직스런 구축함도 없어요. 게다가, 동료함을 끔찍이 여기는 애니까요.”

고마워. 좋은 조언이야.“

 

생긋 웃으며, 카게로를 위해 오뎅의 추가 주문을 해주었다.

한동안 무언의 시간이 이어졌다.

카게로가, 툭하고 말을 꺼냈다.

 

“......, 공창에 있었잖아.”

.”

개조를 받으려고 생각했었어.”

그렇지만, 그건.”

제독이랑 비서함의 승인이 필요하지. 물론 알고 있어. 이 작전......대규모 작전이 될 건 어렴풋이 알고 있으니까, 그 전에 개조를 해두고 싶다고 생각했었어. 그렇지만 승인이 떨어지기 전에 작전이 발동되고 말았어. 그러니까, 거기서 멍하니 있었던 것뿐이야.”

어째서 개조를 밭으려고......”

왜라고 생각해?”

 

카게로는 당혹스러웠다. 타카오는 말을 이었다.

 

시라누이가 말했었지. 자신의 약함을 자각하거나, 더욱 높은 경지를 지향할 때 개조를 받는다고. 강해지고 싶었던 거야.“

타카오씨는 무척이나 강하세요. 무장도 장갑도.”

 

카게로는 힐끔, 중순양함의 가슴 부분을 보았다.

타카오는 예리하게 그 몸짓을 발견하였다.

 

욘석. 어딜 보고 있는 거니?”

 

변명할 건덕지도 없어서 고개를 으쓱거리는 카게로.

타카오는 화가 난 어조는 아니었다.

 

가슴을 보고, 누군가가 생각나지 않니?”

 

카게로는 이번에는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타고씨인가요?”

정답. 그 애를 말이지, 지키고 싶었어.”

지키는 건가요?”

. 지킬 거야.”

 

문득 떠올랐다. 이 여성은 타카오형의 1번함. 2번함이 아타고였다.

아타고는 툭하면 팡파카파~.” 이란 말이 나오며, 구축함들에게 자길 언니라고 부르게 하는 사람이다. 보통은 뭐지 이 괴짜?” 라고 경원시되어도 어쩔 수 없다. 실제로 카게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한편 비서함이며 함대 기함도 몇 번이나 맡고 있다. 그 만큼의 능력을 겸비한 여성이다.

 

약한 애가 아냐. 오히려 강해. 그러니까 내가 도와줄 필요 따윈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컵에 남아있던 맥주를 들이켰다.

 

그렇지만 어쩌면 언젠가, 내 힘이 필요할지도 몰라. 그 애를 위해 싸울 때가 올지도 몰라. 지원을 하거나, 구출할 날이 올지도 몰라. 그 날을 위해서도 힘을 길러두고 싶었어. 개조를 하면 힘이 느니까.”

“............”

그 전에, 내가 전선에 나가게 되었지만. 이것도 운명이지.”

 

카게로는 사이다가 담겨져 있는 컵을 손에 쥔 채, 카게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 이야기, 아타고씨에게 하셨나요?”

설마. 나는 1번함이야. 2번함에겐 이런 말을 들려줄 순 없어.”

그렇지요. 잘 알아요.”

 

그녀또한 카게로형 1번함이었다.

카게로는 아직 개조에 대해선 고민한 적이 없다. 목욕탕이나 공창에서도 느꼈지만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자신도, 이 여성과 마찬가지로 개조를 받을 결의할 날이 오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멍하니, 얼마 안 남은 오뎅이 담긴 그릇을 바라보았다.

타카오가 입을 열었다.

 

아 맞다. , 무장 신청을 했었지? 수리됐어. 아타고가 그렇게 말했어.”

......어뢰인가요?”

산소어뢰야. 내일쯤에 양도받을 거라고 생각해.”

 

단번에 카게로의 안색이 밟아졌다.

산소어뢰는 진수부가 잘아하는 최신 병기이다. 종래의 어뢰랑 달리 항적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작약양도 많다. 구축함의 공격력 향상은 틀림없었다.

타카오는 카게로의 희색이 가시는 것을 기다리고 난 뒤.

 

그렇지만, 전탐은 거절됐어. 아직 수가 적어서 구축함까지는 배당이 안 되는 것 같아.”

 

조금 실망하는 카게로. 예상은 했다고 해도, 그 신병기를 수령하는 것은 먼 앞날이 될 것 같다.

 

어쨌든 그걸로 참아줘. 이번 작전에 예산도 자재도 쏟아 붓고 있으니까.”

......”

 

입구가 열렸다. 왁자지껄, 함선 소녀들이 찾아왔다. 항모나 전함들이었다. 출격 전에 원기를 충전하려는 것일까?

이만 물러날 때라고, 카게로는 일어섰다.

 

잘 먹었습니다.”

더 먹어도 돼.”

배불러요.”

 

맛있었기 때문에 배가 가득 찼다. 주문한 사이다가 남아있을 정도이다.

타카오는 아직 더 남아있을 셈인 것 같다.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방금 전에 한 이야기인데, 아타고랑 함께 있지 않는 만큼, 자신의 함대를 위해 진력을 다할 셈이야. 모두를 위해......물론, 시라누이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어.”

시라누이도, 분명 기뻐할 것이에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카게로는 가게를 나섰다.

고요했다. 밖은 어두웠고 하늘에는 달이 떠있었다. 조금 발돋움을 하면, 항구와 바다도 보였다.

그러고보면 시라누이(不知火)’란 말은 여름날 밤의 신기루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걸, 그녀는 멍하니 생각하였다.

 

“......좋은 아이네.”

 

호쇼는 식힌 술을 준비하면서 말했다. 가게 안쪽에선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숙취에 걸리지 않게 과하게 술을 마시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도 그녀의 역할이다.

타카오는 대답했다.

 

다들 좋은 애들이에요.”

내가 제1선에 섰을 때엔, 이것보다 살벌한 분위기였어. 심해서함과 싸우는 수단을 모색하면서 출격을 했으니까......무모한 짓도 많이 했었지.”

호쇼씨들이 그렇게 해서 얻은 데이터가 지금 활용되고 있어요. 호쇼씨가 없으셨다면 항모는 함재기의 발함조차 할 수 없어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좋으려만.”

 

술병과 술잔을 쟁반에 올려놓았다.

타카고은 손을 뻗어 도와주었다.

 

그 구축대의 애들은 곧바르고 때때로 눈부실 정도로 빛나요. 부러워지기도 하죠.”

지켜야만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누구든 필사적인 모습이 되지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타카오는 문득, 질문을 던졌다.

 

“......호쇼씨도 개조는 받으셨나요?”

 

일본 정통복 차림의 여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한 분위기를 한 채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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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자들을 후리는 마성의 여성 카게로,

정식, 동인 통틀어서 이렇게 많은 이들의 애정을 받는 칸코레 주인공은 처음이네요.

...모든 것을 연애 시점으로 보는 것은 제 뇌가 썩어서 그런 것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