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도 뜨지 않아서 밖은 어슴푸레했다. 그래도 서서히 백색이 눈에 띠기 시작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날도 밝아질 것이다. 공기는 차갑고 바람이 불지 않는 탓에 고요했다.
카스미는 늘 일어나던 시간에 맞춰 눈을 뜨고는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룸메이트인 아라레를 깨우지 않도록 일부러 시간을 들여 옷을 갈아입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이번에도 소리를 내지 않도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구축함 기숙사 밖에는 성미가 급한 새가 지저귀고 있을 뿐, 잡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가 기분 좋았다. 내뱉는 입김은 하얗고 두둥실 공중을 떠돌다가 사라졌다.
카스미는 유연체조를 하여 몸을 충분히 푼 뒤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과로서 조깅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혹독한 훈련에서 체력이 버텨주질 못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한 것이 아니라 카스미 이외에도 자주적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진수부에서도 파악을 하고 있으며, 부지 내에선 조깅을 위해 거리 표시판도 설치하고 있었다.
오늘은 사람이 그다지 없다. 진수부 축제이기 때문에 쉬고 있는 함선 소녀가 많았다. 다만, 카스미는 축제라고 해서 일과를 멈출 셈은 없었다.
심박수를 고려하며 몸에 부하를 주면서 자기 페이스에 맞춰 달린다.
문득, 전방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달리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키가 작으니 구축함 소녀인 것 같은데, 뒷모습이 낯설었다. 누굴까? 고개를 갸웃거렸다.
속도를 올렸다. 옆얼굴을 보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 소녀가 달리는 속도를 올렸다. 마치 뒤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으니 기척으로 눈치를 챈 것 같다.
따라잡으려고 카스미도 속도를 올렸다. 하지만 상대방은 더욱 빨리 달렸다. 상호간의 거리는 변함이 없었다.
‘뭐야 저거.’
단숨에 속도를 올려 달렸다. 이번에는 상대방의 허를 찔렀기 때문에 바로 옆에서 달릴 수가 있었다.
옆얼굴을 바라봤다. 역시 구축함이다. 하지만 구레 소속 구축함이 아니다. 어제 도착한, 성격이 드세 보이는 요코스카 소속 구축함이었다.
방울이 달린 꽃모양 장식을 머리에 단 소녀, 아케보노였다. 다만 서로 이름은 모른다. 이름을 대지 않았다.
아케보노의 속도가 떨어졌다. 따라잡힌 이상, 빨리 달려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카스미도 속도를 늦췄다.
“요코스카쪽 구축함은, 아침이 빠르네.”
“뭐야. 달리면 덧나?”
어제 그 꼴처럼 우호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먼 답변이다. 애당초 이럴 거라곤 예상은 해놓은 상태이다.
“아니. 그저 이렇게 달리면 모처럼 온 진수부 축제에 피곤해서 나가떨어지는 게 아닐까 해서.”
“매일 아침 달리는 습관을 어기는 쪽이 몸에 나빠.”
아케보노는 고개를 정면을 향한 채로 옆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카스미는 그에 대조적으로 사양 않고 관찰을 하였다. 과연, 눈빛에 깃든 의지는 굳세고, 입은 꼭 다물고 있는 것이 사뭇 기가 드세 보이는 소녀다. 예쁜 얼굴이라고 생각하지만 애교랑은 연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수치라고 여길 것 같았다.
카스미는 달리면서 물었다.
“달리고 있는 건 너뿐이야? 다른 애들은?”
“이런 건 혼자서 하는 거잖아.”
“안 깨우려고 그런 거 아냐?”
“어째서.”
“내가 그렇게 했으니까.”
그러자, 아케보노는 노골적으로 화를 내며 또 다시 속도를 올렸다.
카스미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속도를 올렸다.
“너 혹시, 너네 요코스카 진수부에서 고립되고 있는 거 아냐?”
“괜한 오지랖이야.”
“그 가슴 큰 구축함이, 네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던데.”
“나한테 참견질을 부리는 것뿐이야.”
“조금은 웃지 그러니?”
“아, 진짜! 시끄러!”
갑자기 빠른 속력으로 앞으로 달려갔다. 조깅이라기 보단 단거리 경주를 하는 것 같았다. 전속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속도로 달렸다.
카스미도 따라하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 조깅을 하는 건 즐거운 걸!”
“시끄럿! 닥치고 달리라고!”
“평소에는 그래.”
“오늘은 좀 색다르게 해보시겠다 이거? 최악이야! 이러니까 구레 따위에 오고 싶지 않았다고!”
완만하게 커브를 그린 코스를 둘은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조깅을 하고 있던 함선 소녀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였다.
“정말! 구축함이라는 것들은 다들 하나같이 오지랖이 넓어!”
“박애주의라고.”
“나는 혼자가 좋다고! 제7구축대도 그만둘 거라고!”
“아까운 걸. 사이좋게 지내지 그래?”
“헛소리 좀 하지 마! 너도 나랑 똑같이 될 거라고!”
아케보노가 조금 속도를 늦췄다. 숨을 헐떡이면서 카스미에게 소리쳤다.
“성격 드세 보이는 낯짝인 걸! 너 무진장 빈축을 사고 있지!”
카스미는 그때 비로소 울컥하였다. 이번에는 언성을 높여 대꾸를 하였다.
“네가 뭘 아는 건데!”
“하! 역시 미움을 사고 있잖아!”
“……옛날 일을 들먹거리지 마!”
어깨를 나란히 한 채로 달렸다. 평소보다 빨리, 언성을 높인 채 말타둠을 하면서 달렸다.
카스미가 침을 튀길 기세로 고함을 쳤다.
“미움을 받아도 괜찮다는 건, 바보나 애들이나 하는 짓이야!”
“구축함은 전부 바보에 애라고!”
“너도 그 중 하나야!”
“바보 집단에서 빠져 나오려고 그런다!”
아케보노는 더더욱 속도를 올렸다. 카스미를 떨쳐내려고 하였다.
“나 좀 내버려둬!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잖아!”
“제대로 달리지도 못한 채 퍼지는 꼴이 보고 싶거든! 있는 힘껏 울어줄 테다!”
“구레의 빈실이 한테 질 리가 없잖아!”
진수부의 외곽을 빙글빙글 돌아 구축함 기숙사 앞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따라 달렸다. 그래도 둘은 여전히 어깨를 마주한 채 달리고 있었다.
아케보노가 소리쳤다.
“아직도 따라올 셈이야!?”
“나는 구축함 기숙사에 돌아가는 거거든! 네가 따라오고 있는 거거든!”
“그렇다면 내 뒤에서 오라고!”
“왜 요코스카 구축함의 꽁무니를 따라가야만 하는 건데!”
둘은 더욱 속도를 올렸다. 서로 말을 할 여유는 없을 터이지만 상대방을 매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 쓰레기 구축함!”
“망할 구축함!”
더욱 속도를 올렸다. 하지만 차는 발생하지 않는다. 질주하는 구축함 소녀 둘은 오로지 전방을 바라보며 어떻게 상대방을 추월하려고 눈에 핏대를 세웠다.
마지막 직진 코스. 구축함 기숙사가 눈앞이다. 이제는 서로 입을 다문 채 마지막 힘을 쥐어 짜냈다.
현관 앞에 동시에 도착했다.
둘은 크게 숨을 뱉으며, 무릎에 손을 짚었다. 여기서 바닥에 엎어지면 상대방의 비웃음을 살뿐이기에 최대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굴었다.
땀으로 이마를 흠뻑 적신 카스미가 말했다.
“알고 있어……? 나, 마지막에……봐줬어.”
“루저한테……어울리는 변명……이야…….”
어깨를 거세게 들썩거리면서 아케보노가 대꾸를 하였다.
그 뒤 둘 다 한동안 말없이 숨을 골랐다.
아케보노는 고개를 크게 젖혀 하늘을 올려보았다.
“후우……. 구레 구축함한테 이겨봤자 바보 같아.”
“아, 그래. 기마전, 각오하라고.”
둘은 서로 노려본 뒤, 동시에 “흥!” 콧김을 내뿜고, 고개를 돌린 채 구축함 기숙사에 들어갔다.
아침, 가장 먼저 잠에서 깬 것은 사츠키였다.
아무래도 현관 근처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으며, 그 덕분에 다른 사람이랑 실랑이를 벌이는 꿈을 꿨다.
눈을 한번 비비고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한 뒤 이불에서 나왔다. 아직 기상나팔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자연스런 기상이었다.
그녀는 옆 이불에서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후미즈키의 몸을 흔들었다.
“후미즈키, 일어나.”
“무뉴…….”
“일어나라니까.”
“아침은 약하다구……이불은 따듯하다구……정말 좋아한다구…….”
반쯤 잠꼬대 같은 대답을 하며 후미즈키는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 몸을 둥글게 말았다.
사츠키는 있는 힘껏 이불을 벗겼다.
“심해서함이닷!”
“후냐앗!”
사츠키의 목소리에 놀란 후미즈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어디야!? 심해서함!?”
두리번거린 뒤, 구축함 기숙사에 있다는 걸 안 뒤, 안심을 하며 이불에 주저앉았다.
“정말~, 사츠키! 너무해~!”
“안 일어나주잖아.”
“에~, 그치만.”
후미즈키가 베개 머리맡에 둔 시계를 보았다.
“……아직 안 일어나도 괜찮은 시간이야!”
“이미 충분히 잤잖아. 나랑 나가츠키가 방에 들어왔을 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고.”
“졸렸단 말이야.”
후미즈키는 몇 번이나 눈을 비볐지만, 그래도 이불을 가지런히 갰다.
이 방은 구레 구축함 기숙사에 있는 일본식 방이다. 구축함이 쓰는 방은 2층 침대가 설치된 2인실, 게다가 좁은 것이 상식이지만 손님이라서 특별히 사용이 허락된 방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 제22구축대 전원이 같은 방에서 머물고 있었다.
사츠키도 자기 이불을 개면서 물었다.
“후미즈키도 어제 저녁 먹었어?”
“먹었는데……사츠키는 안 먹었어?”
“우리들은 늦게 와서, 빵을 먹었을 뿐이야.”
“굴튀김이었어.”
“부럽다. 구레다운 식사야.”
“오늘은 기마전을 하니까, 기운을 북돋아야 한다는 소릴 안내인한테서 들었어.”
그러고보면 그랬지, 사츠키는 떠올렸다. 진수부 축제 참가 이유는 이 기마전에 참가하기 위해서 불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있잖아, 나가츠키……아, 일어났네.”
나가츠키는 이미 일어났으며, 이불을 개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소란을 피우면 잠에서 깬다고.”
“어제 말이야, 그 후, 류죠씨랑 만났어?”
“아니.”
“그거, 어떻게 된 걸까?”
“글세.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이겠지.”
어젯밤 본 잠망경 소동을 말하는 것이다. 잘못 본 가능성은 높으며, 야간이라서 경항모가 출항을 하여 확인을 안 한 게 아닐까, 사츠키는 그리 생각했다.
“무슨 이야기야~?”
후미즈키가 물어보았다. 사츠키는 사정을 설명하려고 하였지만, 입단속 명령을 받은 것을 떠올리고,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대답했다.
“야간의 바다는 무섭다는 소리야.”
“당연하잖아~.”
후미즈키는 웃었다. 상당히 앳되게 보이지만, 야간의 수송임무 따위는 그녀의 장기 분야이다. 어제도 헤매지 않고 구레까지 도착했을 것이 분명하다.
“기마전은 어떻게 되는 걸까?”
사츠키가 중얼거렸다. 나가츠키가 끼어들었다.
“오호, 사츠키는 기마전을 못 하나.”
“나가츠키는 잘 했나?”
“아니, 그다지.”
솔직하게 말하였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누구랑 겨루는 건 잘 못 하니 말이야……뭐, 포격을 안 하는 만큼, 그나마 희망이 있지.”
“부럽다.”
사츠키는 그런 그녀를 부러워했다.
체력에 관해서라면 나가츠키가 그녀보다 위다. 사츠키는 어차피 나가떨어질 테니까, 훈련을 건성으로 하고 마는 것이다. 그녀 스스로도 나쁜 버릇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기마전을 한 뒤, 파티가 있데. 전부 먹어치우고 적을 잡아볼까.”
“우리도 아직 지진 않았지……우리들은 뭘 파는 거지?”
“제22구축대가 짬뽕. 제30구축대가 카타야키소바(堅焼きそば).”
나가츠키는 어처구니 없어했다.
“면류뿐이군.”
“사세보건 맛있어.”
“그렇군. 그럼, 다른 구축대를 맞이하러 갈까.”
그 전에 아침 식사다. 셋은 갠 이불의 각을 체크한 뒤, 실내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지 않은 지 확인을 하고 난 뒤, 방에서 나왔다.
시각은 오전 9시. 오늘 진수부 축제는 일반 공개 행사이다. 게이트 개방과 동시에 사람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제7전대 명물 카레라이스 한번 드셔보세요~.”
“제8전대의 맛있는 가마솥 밥입~니다.”
요식업계 업자도 출점을 하였지만, 역시 함선 소녀가 여는 점포에 줄을 서는 사람은 많았다. 그녀들이 직접 만들어준 음식을 대접해주는 모습은 등신대 함선 소녀를 알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카게로는 눈을 몇 번 비비면서, 점포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때때로 하품을 씹어 죽였다.
“니 별루 잠 안 잤나?”
잽싸게 물어본 사람은 류죠였다. 그녀는 카게로와 함께 순찰을 돌고 있었다.
카게로는 애교 섞인 웃음을 지으면서 얼버무렸다.
“아, 아뇨……하하.”
“준비할 때부터 바뻤제. 너무 열을 내면 몸 망친다.”
“저는 기운만이 장점인 걸요.”
카게로는 옷소매를 걷어붙이며 알통을 만들어보였다. 류죠는 좀 난처한 얼굴이다.
“니네 구축함들이 니 걱정을 하더라. 일만 시키고 괜찮냐면서.”
“에~, 누군가요 그런 소릴 한 사람은. 시라누이인가요?”
“전부 다 다. 시라누이도, 카스미도, 아라레도. 뭐, 아라레 금마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정말, 그 애들도 참.”
그녀는 투덜거렸다. 오늘 아침 안 보인다 싶었더니만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류죠는 카게로를 어르듯이 말했다.
“그런 소릴 하면 벌 받는다. 카스미 금마는 니를 윽수로 평가하드만, 갸한테 고맙다고 해라.”
“절 높이 평가하나요?”
카게로가 보기엔, 자기 한계를 파악하고 하는 것 같아서, 조금 불만을 느꼈다. 구축함이 이 정도로 지친다고 생각하다니, 맘에 안 든다.
예를 들면 경순양함 따위를 보고 있으면, 함선 소녀의 능력에 한계는 없는 게 아닌가 싶어진다. 진츠에 이르러선 그녀 자신도 같은 메뉴를 소화하여도 멀쩡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안심해주세요. 저는 아직 괜찮아요.”
그렇게 말을 한다. 류죠는 “어쩔 수 없는 녀석이로구만.” 그렇게 중얼거렸다.
카게로는 상황을 무마하려고 다른 화제를 꺼내들었다.
“다른 진수부에서 온 손님은, 이제 다 왔나요?”
“얼추 모였지. 지금은 오요도씨가 상대하고 있다.”
“각지의 제독도…….”
“물론 왔다. 오랜만에 열린 진수부 축제니까, 다들 싱글벙글 아이가. 그렇지만 링가쪽 제독은 안 온다고 했지……그러고보면, 요코스카 진수부 제독은 뭔가 비서함도 데리고 왔다안카이. 이번에 질펀나게 놀고 싶다고 말한 것 같더라.”
류죠는 이제 막 생각이 났다는 듯이 설명을 하였다.
“마, 오요도씨가 있으니까 손님 맞이 일랑 걱정할 거 없다.”
“그 사람, 유능하지요,.”
“하모. 요코스카 진수부 제독은 만나자마자 오요도씨 돌려달라고 말했다아이가.”
“집념 깊네…….”
그렇게 말을 하고 난 뒤, 카게로는 아차하며 입을 막았다.
류죠는 웃고 있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작전 전에는 함선 소녀를 가능한 한 모으고 싶고, 내놓고 싶지 않으니까, 늘 쟁탈전을 벌이는 기다. 멋대로 함선 소녀의 군적을 바꿔버린 이야기도 있제.”
“전함이나 항모쪽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오고가는 건가요?”
“그렇제. 구축함도 마찬가지다.”
카게로는 반사적으로 “그럴 리가요.” 라고 말했다.
“저희들은 약해요. 기껏해야 원정이죠. 다른 분들이 강하고요.”
이것은 구축함이라면 누구나가 한 번, 직면하는 문제였다. 심해서함과 정면에서 싸우기엔 스펙이 떨어지고 말아, 중요한 전투는 전함이나 항모에게 맡기게 되고 마는 것이다. 다른 함선 소녀가 출격을 하는 것을 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분한 기분을 맛보게 된다.
다만 구축함이 출격을 해도, 일격에 대파, 자칫하면 격침될 가능성이 높다. 그녀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함선 소녀가 되었으니 전투를 바라는 것이다.
“구축함은 역시, 쓰다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욘석이.”
별나게, 류죠는 조금 화가 난 표정을 보여주었다.
“구축함 덕분에 우리들이 살고 있는 것이니까, 자기비하는 안 좋다.”
“그런……가요.”
“우리 모두가 구축함을 좋아한다. 구축함의 화력이 떨어지는 건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함선 소녀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고, 가능한 한 같이 싸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네…….”
류죠의 진심이 담긴 말에, 카게로는 주눅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주눅이 들거나 자학하는 건 구축함한테는 안 어울린다.”
“예. 지도, 정말로 감사합니다.”
카게로는 등줄기를 꼿꼿하게 세우고는 소리를 높여 류죠에게 말했다.
아담한 몸집의 경항모는 생긋 웃었다.
“응. 그래야 구축함이제.”
“앞으로, 주눅 들 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게까지 분발할 건 없다. 남은 순찰은 내가 할 테니까, 니네 점포나 둘러봐라.”
“네.”
카게로는 경례를 하고는, 종종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류죠는 자리를 떠나는 카게로의 등을 보았다.
“……뭐, 어찌됐든 구축함 아가들은 귀엽구만.”
쓴웃음을 지었다. 그 자리에 큰 의장을 짊어진 항공전함이 찾아왔다.
류죠는 다소 놀라면서 물었다.
“뭐꼬 이세씨 아이가. 이런 데서 그런 큼지막한 걸 달고, 무슨 일이고?”
“전시 항행이 있었거든요.”
“오오, 그런가. 어떻게 됐노?”
“호평을 받았지만, 전함이 갑판을 달 의미를 모르겠단 말도 드문드문 들었네요.”
“아하하. 멋있는데.”
“예정보다 빨리 전시항행을 끝냈어요.”
“그렇나? 책임자는 분명 휴가씨제. 괘안나?”
이세는 목소리를 죽였다.
“그 휴가의 명령이에요. 예의 그것 때문에요.”
“……역시 그렇나.”
류죠도 이세를 따라 목소리를 죽였다.
“그럼, 나가는 기가?”
“네. 오요도씨의 허가는 받아놨어요.”
“가자. 다만 신중하게 해야겠지. 그 애들의 눈에 띠면 큰일이다.”
둘은 밀회 현장을 들키면 큰일이라고 말하는 듯이,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떠났다.
○
점포는 정문에서 운동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늘어서있었다. 평소에는 차가 오고가는 도로이지만 오늘만은 차량은 통행금지이고, 보행자가 우선시되었다.
카게로는 구축대 점포를 향해 뛰어갔다.
도로가에 ‘제18구축대’라고 적혀진 깃발이 서있었다. 그 옆에서 쿠로시오가 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자~, 어서옵쇼, 어서옵쇼.”
손님을 부르면서, 꼬챙이로 재주좋게 타코야키를 뒤집고 있었다. 막힘없는 부드러운 손놀림이었다.
“맛있는 타코야키입니……아, 카게로 아이가.”
쿠로시오가 고개를 들었다.
“순찰? 고생 많네.”
“잘 되가?”
“그럭저럭이다. 힘든 일도 없고. 카스미도 도와주러 왔고.”
쿠로시오의 바로 옆에서 카스미가 초생강이랑 카츠오부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타코야키 여섯 개들이 팩의 위에서 뿌린 뒤 사러 온 소년에게 건네줬다.
“자, 여기.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
소년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뛴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카게로는 막힘없이 주문을 처리하는 카스미의 손놀림에 감탄을 하였다.
“역시 카스미.”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야.”
“나는 요리 전반을 잘 못 해. 접객도.”
“알바 한 적 없어?”
“그게 없지 뭐야.”
그녀는 그렇게 대답을 하였다. 사정이 있어, 이렇게 일을 한 적은 없었다. 밥벌이를 위해 함선 소녀에 지원한 그녀였다.
이어서 카스미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보면 너, 눈매가 나쁜 구축함 못 봤어?”
“시라누이라면.”
“아니라니까. 성미가 드세 보이고 입술이 툭 튀어나와서, 뭔가 사사건건 트집을 잡을 것 같은 느낌이야.”
“눈앞에 있는 데.”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고 생각한 카게로이지만, 혼이 나고 말았다.
“아니라고! 내가 아니라 다른 진수부 구축함!”
“못 본 것 같은데.”
“아침부터 조깅했었어.”
“대단하잖아. 나 오늘은 걸렀다고.”
함선 소녀는 체력 만들기 일환으로 자주적 트레이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카게로네의 경우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츠의 훈련에 따라가지 못 하기 때문이지만, 축제날인데 그렇게까지 부지런하다니 참으로 감탄할 일이었다.
“진수부 축제날에도 달리는 걸 보면,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성격같긴 한데 입담이 정말 사나워.”
“카스미랑 빼다 닮았네.”
“시끄러. 그렇지만, 그렇게 계속 굴면 사람들한테서 미움을 사는 게 아닐까 해서…….”
카게로는 감탄하였다.
“카스미가 잘하는 오지랖이 발동됐구나.”
“그러니까 시끄럽다고. 오지랖이라면 나보다 네가 훨씬 더 잘 부리잖아.”
“그렇지만 난, 너희들을 좋아하는 걸.”
“정말, 좋아한단 소릴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을 하나……뭐, 어차피 상관없나. 잊어.”
카스미는 “그 애 문제고.” 라고 중얼거린 뒤, 타코야키를 팩에 담는 작업을 다시 시작하였다.
카게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새삼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타코야키는 잘 팔려?”
쿠로시오가 대답했다.
“제법 잘 팔린다. 그렇지만, 제17구축대쪽이 더 굉장하지.”
그녀는 정면을 가리켰다. 도로 마주편에 잇는 점포는 제18구축대가 쓰고 있었다. 먹거리가 아니라 사격이었다.
이따금 환호성이 올라왔다.
“돈을 많이 내면 유키카제가 대신 쏴준다네. 행운함이라서 사람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모여서 말이지.”
확실히 인파가 생겼다. 그 탓에 저 안에서 뭘 하고 있는 안 보일 정도였다.
“그렇지만 사격에서 대리 사격이 의미가 있어?”
“글쎄. 호평이니까 뭐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면서, 쿠로시오는 타코야키 만들기를 다시 시작했다.
카게로는 방해를 하면 안 될 것 같아 자리를 떠나려고 하였다. 카스미가 말을 걸어왔다.
“야, 시라누이를 불러줄래? 나무 꼬챙이가 떨어질 것 같으니까, 좀 가져와달라고 해줘. 그리고 기마전 열리기 전이 되면, 이 점포를 닫을 거야.”
“알았어.”
그렇게 대답을 한 뒤, 구축함 기숙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구축함 기숙사의 인구 이동은 거셌다. 다른 진수부에서 온 구축함이 속속들이 도착을 한 탓이다. 그 탓에 낯선 사람들 천지다.
카게로는 고생을 한 뒤 시라누이를 찾았다. 손에 나무 꼬챙이를 든 채, 구축함 소녀에게 내부 길안내를 해주고 있었던 참이었다.
“아, 여기 있네. 카스미가 부르고 있었어.”
“지금 바로 갈게요.”
“사람 엄청 많네.”
“네. 구축함은 이렇게 많았나하며 놀랐어요. 부두에서 아라레가 안내를 하고 있는데, 너무 많아서 눈이 핑글핑글 돈다고 말했네요.”
“나중에 대신 해줘야겠네. 시라누이는 괜찮아? 안 피곤해? 무슨 일이 있다면 바로 날 불러.”
“이 정돈 괜찮아요. 오히려, 카게로가.”
시라누이가 걱정스런 눈으로 카게로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빨게요.”
“시라누이가 날 봐서, 부끄러운 거야.”
“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손을 뻗어, 카게로의 이마에 올렸다.
“……조금 뜨겁네요.”
“햇살을 받아서 그런 거 아냐?”
“익숙지 않은 일을 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조금 쉬는 편이 어떤지.”
“괜찮아. 농땡이를 치면 오요도씨한테 야단맞을 거야.”
“휴식이랑 농땡이는 달라요.”
진지한 표정으로 거리를 좁히는 시라누이. 카게로는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그 만큼 시라누이가 앞으로 나왔고, 카게로는 점점 뒤로 물러났다.
뒷걸음질로 구축함 기숙사 현관까지 왔다.
“아, 생각났다. 나 다른 일도 있었지.”
“얼버무리지 말아주세요.”
“시라누이는, 나무 꼬챙이 가져다줘!”
“카게로!”
카게로는 안 들리는 척을 하며, 뛰어서 구축함 기숙사에서 떠났다.
한동안 전력질주를 하였다. 수차례 뒤를 돌아보며, 시라누이가 안 쫓아오고 있는 걸 확인을 한 뒤, 발을 멈췄다.
무릎을 짚으며, 어깨로 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로 숨을 헐떡이는 걸 보면 확실히 피로가 쌓인 걸지도 모른다.
시라누이에게 이 꼴을 들키면 쉬란 소릴 들을 참이었다. 카스미한테 부탁받은 일이 있으니 쫓아오지 않을 것이다. 평소라면 어디든 쫓아와서 자신을 잡았을 것이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일어섰다.
마침 바다 쪽에서 쇼호와 아라레가 찾아오고 있는 참이었다.
“고생 하십니다.”
카게로는 경항모에게 경례하였다.
“카게로야 말로 수고하셨어요. 전원 도착해서, 안내는 그만하고 오는 중이었어요.”
“예.”
“당신도 조금 쉬는 게 어떤가요?”
“아뇨. 그럴 순 없죠.”
“뭔가 열이 있지 않나요?”
걱정스런 목소리다. 옆에 있는 아라레도, 보기 드물게 얼굴에 동요가 드러나 있었다.
“괜찮아……?”
카게로는 고개를 있는 힘껏 흔들었다.
“괜찮아. 쇼호씨도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구축함 일일랑 내버려두셔도 돼요.”
“그럴 순 없지요. 알겠나요? 당신에겐 짧은 휴식이 필요해요. 아라레는 먼저 가서, 구호실을 확보해주세요.”
아라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뛰어갔다. 카게로는 허둥거렸다.
“괜찮다니까요! 저는 이렇게나 건강…….”
하다고 말을 하려고 하였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시야가 좁아지고, 땀이 분출하여, 이마를 타고 눈에 들어왔다.
위험하단 직감이 들었다. 마실 것을 입에 대지 않고 달린 탓에 온 탈수증상일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발밑이 휘청거렸다.
갑자기 쇼호의 모습이 뒤집어졌다. 현기증이다. 자각을 한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자연스럽게 무릎으로 땅을 짚었다.
“카게로!”
쇼호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카게로는 의식하지 못 하는 사이에 땅바닥에서 정신을 잃었다.
“……헉!”
카게로는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마에서 젖은 수건이 떨어졌다. 침대에 눕혀져 있었으며, 실내는 흰색으로 통일되었다. 그쯤에서야 겨우 자신이 구호실에 있다는 걸 알았다.
구호실은 독이랑 달리,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것 이외에 사용된다. 컨디션 불량이나 열이 났을 때 신세를 지는 곳이다. 그 중에는 식중독이 났을 경우도 있다.
카게로는 주위를 둘러봤다. 침대 옆에는 걱정스런 얼굴을 한 시라누이와, 평소랑 다를 바가 없는 얼굴을 한 아라레가 있었다.
“정신이 들었나요?”
시라누이가 말했다. 카게로는 시계를 찾았다.
“나, 얼마나 잤었어?”
“2시간 정도인데요. 코를 골았어요.”
“우와, 부끄러.”
볼이 살짝 뜨거워졌다.
“수면 부족이었나.”
“체력이 떨어진 건 분명해요. 열이 있었어요.”
카게로는 자기 이마를 짚었다. 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느낌이었다.
“……괜찮지 않을까?”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고 마는 법이지요. 이거, 드셔주세요.”
시라누이가 정제와 물이 든 컵을 내밀었다.
“일단 받아둔 감기약이에요. 이쪽은 영양제.”
뚜껑이 따인 작은 유리병을 내밀었다. 카게로는 그걸 받아 든 뒤 마셨다.
“고마워. 이제 괜찮아.”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하자, 제지당했다.
“안 돼요.”
“왜?”
“쓰러졌으니까요.”
시라누이는 쇠고집을 부렸다. 애당초 그것은 카게로가 그렇게 느낀 것뿐이었고, 옆에 있는 아라레는 시라누이의 의견에 찬성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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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편이 좋아…….”
“나는 구축함 대표니까, 그럴 순 없어. 일어날래.”
“시라누이가 옳아…….”
“가끔씩은 내 편 좀 들어주라.”
카게로는 억지로 일어나려고 하였지만, 시라누이가 툭, 카게로의 몸을 밀쳤다.
침대 위로 쓰러졌다.
“뭘 하는 거야!”
“역시 자는 편이 좋아요. 이미 허가를 받았으니까요.”
“허가라니 뭐야. 내가 일을 노는 걸?”
자학이 들어간 비꼼을 한 셈이었지만 시라누이는 “네.”라고 말했다.
“오요도씨한테 말해서, 카게로의 휴식을 허가받았어요. 구축함 대표는 카스미가 맡아요.”
“기마전은!?”
“카게로가 나설 곳은 없어요.”
“기마전 작전, 엄청 많이 생각했는데.”
“안 들려요.”
계속 항의를 하였지만, 시라누이는 완전히 무시하였다. 아무리 카게로가 불만을 말한들 저항을 한들, 밖으로 내보내주질 않았다. 아라레도 카게로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불 아래로 몸을 숨겼다.
“시라누이 바보. 냉혈녀.”
“카게로는 때때로 유치해지네요.”
“알고 있어? 카게로란 함명은 1번함이야. 너보다 대단하다구.”
“시라누이쪽이 한자의 수가 더 많으니까 제가 더 대단해요.”
“뭐야 그 논리는……그러고보면, 쇼호씨는 어떻게 됐어? 그 사람한테 폐를 끼친 것 같은데.”
그 질문에는 아라레가 대답하였다.
“여기까지 같이……카게로를 옮겨줬어…….”
“나중에 고맙다고 말해야겠네.”
“뭔가……볼일이 있는 것 같아서……류죠씨네랑 어딘가로 갔어.”
“흐~응……. 슬슬 기마전이 시작하잖아. 너희들도 가지 그래.”
“그렇게 할게요.”
시라누이와 아라레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카게로는 자주세요. 탈출을 하려고 해도 소용없어요. 밖에서 문을 잠글 테니까요.”
“왜 문을 잠그는 건데!?”
분명 카게로 같은 함선 소녀가 많은 것이겠죠. 시라누이는 그렇게 대답을 하고, 아라레와 함께 구호실에서 나갔다.
카게로가 “훌쩍……” 그렇게 중얼거리며 침대에 몸을 눕혔을 무렵.
기마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대가 되는 운동장 주변에는 문자대로 인파(人波)를 이루고 있었다.
정면에는 내빈, 내객, 그 옆에는 전함을 비롯한 화력에 일가견이 있는 함선 소녀들. 거기에 더해 경순양함부터 시작해서 잠수모함까지. 일반 시민이 자리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관객이 이렇게 많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구축함 대항 기마전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작으며, 가장 용감한 함선 소녀들. 그녀들이 정면에서 격돌하는 것이다. 기대가 되지 않을 리가 없다. 게다가 요 수년 동안 여러 이유로 중지가 되었던 행사이다. 고대하고 있었던 이는 구축함들보다도 관객 쪽이 더 많았다.
시합 전, 구축함 소녀들은 제1사관차실에 집합하였다. 그곳에서 제반 주의 사항을 듣고 있었다.
주의사항은, 카게로가 쓰러졌기 때문에 오요도가 대리로 말하고 있었다.
“기마전은 어쨌든, 흥분하기 쉬운 경기입니다. 특히 오늘은 내객이 많기 때문에, 흥분한 나머지 내객석까지 도망치거나 쫓아오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싸워주세요. 이상입니다.”
모두, 긴장한 기색으로 듣고 있지만, 그것은 상대방이 경순양함이라고 그런 것뿐이다. 뇌내에는 벌써부터 아드레날린이 마구잡이로 분비하고 있었다.
오요도가 자리를 떠나자, 단번에 흥분이 높아지고 고양감으로 철철 넘친 분위기가 되었다.
싸울 상대와는 말도 하지 않고, 동료 구축대끼리 회의를 나누었다. 괜한 말을 해서 작전이 들키면 위험하기 때문에, 중요한 건 눈과 눈만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신중함을 발휘하였다.
카스미는 자신의 구축대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길 하였다.
“카게로가 없다고 해서 질 순 없어.”
빙 둘러보았다.
“기권은 안 해. 대신 쿠로시오가 들어와 줬으니까. 변명은 못 해.”
“잘 부탁한다.”
쿠로시오가 인사를 하였다.
“알겠어, 오랜만에 하는 기마전이니까 전력을 다할 거야. 시라누이랑 쿠로시오는 이게 첫참가지.”
시라누이는 무언으로 긍정하였다. 쿠로시오도 “그렇다.”라고 말한다.
“둘 다 신중하게 굴 필욘 없어. 제18구축대의 힘을 보여주자고.”
“네.”
“알았다.”
시라누이와 쿠로시오가 대답했다. 아라레도 고개를 끄덕였고, 카스미는 손뼉을 쳤다.
“자, 가자.”
집합 부저 소리가 울렸다. 구축함 소녀는, 구축대끼리 뭉쳐서 제1사관차실 밖으로 나섰다.
카스미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야나미급 구축함이랑 눈이 마주쳤다.
“너도 이런 행사에 참가하는 거야.”
그 소녀, 아케보노가 말했다.
카스미는 시라누이에게 먼저 가라고 말한 뒤, 아케보노에게 다가갔다.
“참가하는 게 당연하잖아. 우리들은 구축함이라고.”
“구축함이락 하는 건, 아무런 생각도 안하고 있단 증거야.”
‘그런 너도 아무런 생각도 안 해서 참가를 하는 거겠네.“
그 말을 들은 아케보노는 콧방귀를 꼈다.
“우시오가 애걸복걸을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참가하는 거야. 돌아가려고 생각했다고.”
“돌아가면 되잖아.”
“대전 상대가 줄어서 기뻐? 역시 구레쪽 구축함은 얌생이구나.”
“요코스카의 루저보단 나아. 소문 들었는데, 너 빈축을 산다며? 그 성격을 보아하니 당연하구나.”
“몰려다니는 걸 싫어할 뿐이야.”
“친구가 없는 사람은,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카스미와 아케보노가 서로 노려보았다. 인기척이 드물어진 제1사관차실에서, 구축함들은 대치하였다.
아케보노가 거리를 좁혔다.
“머리가 나빠 보이는 구축함의 놀이에 어울려주는 거니까, 고맙게 여기라고.”
카스미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응수하였다.
“너야 말로, 내가 뱉은 침이나 마시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둘은 한 번 노려본 뒤,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운동장의 열기는, 구축함 기숙사의 현관까지 전해져왔다.
기마전의 룰은 일반적인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구축대끼리 기마를 만든 뒤 위에 올라탄 구축함이 머리끈을 맨 뒤, 머리끈을 많이 뺏은 쪽이 이긴다. 시간제한은 일단 있지만, 지금까지 전부 쓴 경우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진수부 별로 나눠진 뒤 겨룬다. 수뢰전대별로 갈라져버리면 함선 소녀 군적이 뒤죽박죽이 되기 때문에, 고려는 그다지 되지 않는다. 단, 명목상 리더로서 경순양함이 붙는 것으로 되어있다.
구축함 소녀들은 전장이 될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기마를 짰다. 사방에서 적이 솟아났다.
진수부별로 기마가 갈라져, 서로 노려보았다.
그 때 경순양함들이 찾아와, 평소 자신들이 가르친 제자들을 고무시켰다. 진수부의 명예가 걸린 것이다, 응원을 하는 쪽도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애들아~, 파이팅~.”
손을 흔들며 말을 거는 것은 요코스카 진수부 소속 나카다. 귀여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구축함 소녀들도 손을 흔들며 답변을 하였다.
“맡겨만 주세요!”
“이길게요!”
동급함 센다이도, 사세보 구축대를 향해 기합을 주입하였다.
“밤이 아니지만 기분은 야전! 힘내자!”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걸고 있다. 사세보 소속 구축함 소녀들은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구레의 진츠는,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없거니와 전신으로 고무를 시키는 일도 없었다.
평소의 내성적인 표정을 보여주면서 말하고 있었다.
“여러분……알고 있죠?”
구레의 구축함 소녀들은, 등줄기에 자라도 들어간 것처럼 등을 꼿꼿하게 세웠다.
진츠는 생긋 웃으며, 그대로 물러났다.
심판역인 중순양함도 필드 밖으로 나왔고, 운동장에는 구축함만 남게 되었다.
개시는 아직 멀었지만, 구축함들은 슬금슬금 거리를 좁혔다. 백색 선으로 나눠졌으며, 개시 전에 밟으면 안 되지만, 넘지만 않으면 다가가도 무방하다.
싫어도 긴박감의 수위가 높아졌다. 머지않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덜떨어진 것들.”
“무능.”
트래쉬 토크라는 것이었다. 상대방을 도발하고, 냉정함을 잃게 하는 기술이다. 밖에 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요령이다. 천박한 행위이지만, 그딴 건 알바가 아니다.
그런 목소리는, 제18구축대의 곁에도 전해졌다.
“도발을 받아들이지 마.”
위에 탄 카스미가 모두에게 전했다.
“걸리면 상대방의 술수에 빠지는 거야. 기마전은 냉정한 쪽이 이기는 거야.”
“뭔가 무진장 잘난 체를 하네!”
갑자기 큰 목소리가 들렸다.
카스미가 깜짝 놀랐다. 다른 쪽에서도 “지금 누가 말한 거야?” 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구축함 따위가 냉정이고 자시고가 어디에 있어! 너, 조깅 때에도 얼굴이 새빨갛게 붉혔지! 진지하게 기마전 따위에 임하니까 넌 애라고!”
그 근처에서 “그런 소리 하면 안 돼.” 라고 말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이 매도는 구축대의 총의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멈출 셈은 없는 것 같았다.
“너 바보 아냐! 다양한 구축대가 있지만 구레가 가장 꽝이야!”
“크윽…….”
카스미가 이를 가는 소릴 냈다.
쿠로시오가 올려보았다. 카스미는 진정을 시키려는 듯이 심호흡을 하였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어. 냉정하게 가자.”
“잠꼬대는 다했어!? 다 들리거든!”
“무시해 무시. 도발을 받아들이면 안 돼. 시작하고 나서 마음껏…….”
“그러고보면 구레 구축함이 한 명, 쓰러진 것 같더라!”
매도는 아직도 이어졌다.
“거론할 가치도 없어! 그렇게 빈약해서 수뢰전대의 일원을 자처할 셈이야!? 꼴불견이구나!”
“침착, 침착…….”
“심해서함한테 잡아먹히는 게 고작이니, 얼른 퇴역하는 편이 좋겠는 걸! 구레의 수준따윈 이게 고작이라고!”
빠직.
카스미는 말없이 숨을 내뱉고는, 아라레에게 말했다.
“……내려줘.”
“어……?”
“괜찮으니까.”
카스미는 기마에서 내려온 뒤, 머리끈을 풀었다.
“……전원 하마(下馬). 머리띠를 버려.”
다른 구축함 소녀들도 그 말을 따랐다. 머리끈이 지면을 향해 내팽겨 쳐졌다.
전방을 쏘아보았다. 한줄기 바람이 몰아쳤다.
그리고, 카스미가 고함을 질렀다.
“조져버려어어엇!”
구레의 구축함 소녀들은 맹렬하게 쳐들어갔다.
운동장은 순식간에 싸움판으로 변했다.
누가 도발을 했는지 상관없다. 얻어맞은 동료의 복수는 바로 하지 않으면 평생 얕보인다. 구축함 최대의 굴욕은 겁쟁이란 딱지가 붙는 일이다.
이젠 기마전이고 뭐고 없었다. 눈에 핏줄기를 세우고 머리에는 열이 잔뜩 올라간 구축함 소녀들이 주먹을 휘두르며 날뛰었다. 자기 식구 이외엔 전부 적이다. 심해서함 이상의 쓰레기들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하늘을 향해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살 수가 없다.
패는 것이 구축함이라면 얻어맞는 것 또한 구축함. 그리고 구축함의 사전에 “맞고만 산다.”란 글귀는 없다. 곧장 반격을 하고, 곤죽을 내줄 테다라고 기세를 올린다. 한 명이 당하면 또 다른 한 명이 되갚아 주고, 누군가가 가세를 해서 제한 없이 규모가 커진다. 이런 때에 말리는 녀석은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얼치기다. 동료가 당하면 분이 풀릴 때까지 되갚아 주는 것이 인지상정. 주먹질뿐만 아니라 발차기도 마음껏 하였다.
“전부터 구레 녀석들은 싫었다고!”
“사세보 자식들! 으스대기나 하고 말이야!”
“요코스카 녀석들을 전부 조져버려!”
여기저기서 주먹다짐이 발발하였다. 이미 기마 따윈 한 기도 없으며, 각자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평소에 얌전하다고 생각했던 소녀마저 지금 이때가 아니면 언제 하냐는 듯이 날뛰었다.
“살려서 구레 밖으로 돌려보내지 마아앗!”
카스미의 절규가 요동쳤다.
내빈석과 관객석은 아연실색하였다. 뭔가 서로 매도를 한다 싶었더니만 갑자기 구축함이 패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시작 신호 따윈 물론 없다.
그리고 갑자기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이거야 이거, 기마전은 이래야지!”
“구축함 소울이구만!”
전함도 항모도 포복절도를 하였다. 웃으면서 응원을 하였다.
실은 이 구축대 기마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승패가 갈린 적이 없었다. 언제 한들, 어디서 한들, 인원을 어떻게 짠들, 어디서든 패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탓에 승패 기록표에는 무승부 마크가 한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일반객도 흥분의 도가니다. 모두, 구축함의 성질을 알고 잇는 것이다. 응원이나 휘파람 소리를 내는 등, 혼연일체가 되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누군가가 음악을 틀었다. 박자가 빠른 행진곡이다. 묘하게 상황과 매치가 되어 공연히 투지를 자극시켰다.
이렇게 되면 구축함의 형식 따윈 무의미하다. 특급 구축함이 떼거지로 몰려와 카게로급을 덮쳤고, 아사시오급이 날뛰었다. 시라츠유급의 돌려차기가 난무를 하고, 하츠하루급의 주먹이 작렬. 이젠 적,아군의 구별 따윈 안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사츠키와 나가츠키도 당연히 이 사태에 휘말렸다.
“우햐앗~!”
줄줄이 공격을 하는 구축함을 피하며, 혹은 맞고, 그리고 반격을 하면서 사츠키는 나가츠키를 향해 외쳤다.
“나가츠키! 어디에 있어!?”
“뒤다, 뒤!”
나가츠키는 발에 엉겨 붙는 구축함을 걷어차며 절규하였다.
“이래서 기마전은 싫다고!”
“어째서 매번 이렇게 되는 걸까!”
“제독의 음모 아냐!”
각 진수부의 제독들은 보기 편한 곳에서 힘내라! 거기다! 작살을 내! 라는 등 응원을 하고 있었다. 특히 구레와 요코스카의 제독의 목소리가 크다.
“사츠키, 후미즈키 봤냐!?”
“글쎄!? 어딘가로 달려갔어!”
“다친 거 아냐!?”
“기마전에서 걔가 부상을 입은 걸 본 적이 없어!”
후미즈카는 어조도 태도도 어려보이지만, 이런 부류의 싸움에선 언제나 생채기 하나 없었다. 때리려고 하는 쪽이 전의를 잃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되었다.
“나, 나가츠키! 위험해!”
사츠키의 삑사리가 난 목소리를 내었다. 구축함 소녀 네, 다섯 명이 서로 얽히고설킨 채로 굴러오고 있었다. 물론 다들 앞 따윈 보고 있질 않았다. 나가츠키는 바닥에 깔릴 것만 같았다.
갑자기 그 몸을 누군가 당겼다.
구축함 덩어리는 그녀의 바로 옆을 지나쳤다.
도와준 것은, 긴 모자를 쓴 아사시오급 구축함 소녀였다. 사츠키도 나가츠키도 그녀의 얼굴은 낯설었다. 사세보 구축함은 아니었다.
“괜찮아……?”
억양없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나가츠키는 대답했다.
“아, 응, 미안하군.”
“다행이다…….”
“어째서 날 도와준 건가? 적이잖아.”
그 구축함 소녀를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그런 걸까? 이유는 없는 것, 같아…….”
“일단 고맙단 말은 하겠지만…….”
나가츠키가 마지막까지 말을 하기 전에, 그 구축함은 어딘가로 가버렸다.
둘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누구야, 저 애.”
사츠키가 중얼거렸다. 나가츠키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어지간한 호인인가, 괴짜겠지.”
“그렇겠지.”
사츠키가 중얼거린 순간, 둘은 다른 다툼에 휘말려 얻어맞고 말았다.
구축함 기마전의 흥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구축함 소녀들이 차례차례 쓰러져나가지만 본연의 투지를 발휘해 자리에 일어서서, 난투에 참가한다. 그 수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거센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카스미는 얼굴을 모르는 구축함을 내던지고, 이어서 근처에 있던 사람을 걷어차며 인파를 해쳐나갔다. 그녀 또한 찾고 있는 인물이 있는 것이다.
“앗, 저런 데에!”
찾고 있던 적을 찾았다. 머리를 한쪽으로만 묶고, 방울 장식을 머리에 단 함선 소녀, 아케보노였다.
“잘도 깔보았겠다! 거기서 꼼짝 마!”
아케보노도 언성을 높여 응수를 하였다.
“할 수 있으면 해보라지, 바보 구축함!”
“아주 작살을 내주겠어!”
둘 사이에서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주먹질을 서로 나누었다. 발차기는 물론, 박치기, 입으로 깨물기까지 하였다. 둘 다 몸 여기저기에 멍이 생겼지만 그래도 싸움은 이어졌다.
구축함의 이점은 투지다. 즉, 쫄아버린 쪽이 지는 것이다. 눈앞의 적보다 먼저 쓰러질 수 없다면서 사력을 다했다.